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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젬스페셜]

봄날의 어버이들

- 제주 길거리 바둑축제에 부쳐

김종서 작가2012-05-08 1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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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다시 서귀포에서

헤아려보니 손가락 여덟 개가 접힌다.
제주도의 어린이들과 바둑으로 만나는 5월.
햇수로 벌써 8년째 접어들었다.
이 만남에 애틋한 복선이 깔려있다.
제주도의 보육원에서 외롭게 소년기를 보낸 바둑행사 디스플레이어 A7의 홍시범 감독.
그는 무작정 상경해 미아리에서 재봉일을 하면서 청춘을 보냈다.
그 지하실 공장에서 아내와 만나 가정을 이루며 아들을 낳았다.
아들 홍맑은샘은 영리했다.
돈이 들지 않을 것 같아 바둑을 가르쳤다.
아들은 각종 아마추어 바둑대회를 석권하며 바둑 영재로 성장했다.
그 아들을 위해 아마추어 선배기사들이 바둑의 어버이가 되어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 아들은 일본에서 입단을 했고 바둑도장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 땅 끝까지 달려온 A7 수송차량

아버지 홍 감독은 훗날 국내 최초의 바둑행사전문회사 A7을 차린다.
A7은 아마추어 7단들의 클럽을 일컫는다.
자신의 아들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준 아마추어 기사들이 너무 고마워 이름까지 그렇게 붙인 것이다.
그리고 외로움으로 기억되는 고향 제주를 다시 찾아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전하기 시작했다.
소년기의 자신이거나 아들과도 같은 어린이들에게.
그 마음을 읽은 아마추어 바둑인들이 조용히 따라나섰다.
누군가는 경비를 대고 누군가는 재능을 기부해 제주 길거리 바둑축제를 8년째 이어왔다.
바둑축제라 하지만 거창한 이벤트는 아니다.
그냥 서귀포의 한적한 길 한 모퉁이에서 아이들과 바둑의 인연을 쌓을 뿐이다.
A7의 수송차량과 함께 본진(本陣)은 호남고속도로를 통해 목포까지 내려가 선박을 이용해 제주로 건너가고 전국 각지의 아마추어 기사들이 일정에 맞춰 항공편으로 합류한다.


▲ 방파제에서 자유시간.

집결지는 서귀포의 방파제.
모두 도착할 때까지 자유시간이다.


▲ 낚시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해녀들이 건져 올린 소라를 맛본다.

▲ 바둑대회 전경.

S#2. 바람 부는 날 서귀포에서

바람 부는 날 서귀포에서
바둑판을 앞에 두고
너희들에게 들려줄 노래가 있다.

▲ 대회의 소소한 이야기.

한 수 놓고 네 생각을 기다리고
한 수 놓고 나를 돌아보고
생각과 생각이 그려내는 화음을 들려주고 싶다.

▲ 제주 바다 위에 섬.

저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보아라.
바람과 물결에 부서지고 깎이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서 있지 않느냐.
무너지며 견디는 것이 어찌 섬뿐이랴.

바람 부는 날 서귀포에서
어린 날의 내가 그리워
너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싶다.

▲ 제주도를 찾은 바둑인들과 대회전경.

S#3. 그렇게 봄날은 간다

작년 이맘 때 서귀포를 찾아와 '봄날은 간다'와 '봄날은 온다'를 불렀다.
☞ 봄날은 간다 바로가기 
☞ 봄날은 온다 바로가기 

화가 이중섭의 그리움과 필자의 사촌누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누나를 이번에 만나지 못했다.
며칠 전에 전화로 재회를 약속했는데 서귀포에 와서 연락이 되지 않았다.
누나의 가게를 찾아갔더니 몸이 좋지 않아 입원해 있다고 전한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말꼬리를 흐린다.
“아들이 먼저 갔어요.”
어디를 갔느냐 묻지 않아도 느낌이 왔다.
청년으로 장성해 횟집을 냈던 누나의 아들.
그 녀석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거였다.
부모는 땅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누나의 가슴은 피멍으로 시커멓게 얼룩졌으리라.
“미안해.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서귀포를 빠져나올 때 누나의 문자가 날아왔다.
세상은 왜 이런지!

▲ 모슬포에서 마라도로 가는 배.

모슬포에서 마라도 가는 배를 탄다.
땅 끝에 가면 먹먹한 가슴이 좀 뚫릴까?

▲ 마라도의 들판.

바둑의 어버이로 제주도를 찾은 바둑 인들이 마라도의 들판에서 동심으로 돌아간다.
해물짜장면을 먹고 마라도 둘레 길을 걷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머리숱이 헐해지고 배도 불룩 나오고 머릿속에 번뇌가 가득한 중년들이건만 마라도의 햇살 아래서 우리는 소년이고 싶었다.

▲ 마라분교의 풍경.

제주 바둑 길거리 바둑축제 일정을 마치고 올라가는 길.
제주 바둑협회 식구들이 길을 막았다.
어찌 제주를 와서 그냥 갈 수 있는 거냐고 옷소매를 잡는다.

▲ 제주 바둑인들과의 저녁 식사.

밥이라도 한 끼 같이 나누자는 이야기다.
사양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면 내년에 제주시에서 다면기를 해드리는 조건을 걸고 초대에 응했다.


▲ 마라도 등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에 핀 꽃.

(P.S)
제주에 동행한 아마추어 기사들은 30년 지기들이다.
청운의 뜻을 품었던 젊은 날 만나서 지금까지 경쟁도 하고 술잔도 부딪히며 긴 세월을 나란히 걸어왔다.

그들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것.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그리워한다.
모두 프로기사가 되었더라면 저러진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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