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씨카드배]
리베로와 타이젬 키드
제4회 비씨카드배 결승전 참관기
김종서 작가 2012-05-17 09:08:24
▲ 제4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 우승자 백홍석.
S#1. 리베로 백홍석
돌주먹 백홍석이 드디어 '준우승제조기'라는 달갑잖은 별명을 떨쳐냈다.
메이저 세계대회, 그것도 중국의 황사바람이 휘몰아쳤던 봄날의 황야에서 대한민국의 깃발을 꿋꿋하게 지켜냈다.
돌아보건대 지난 겨울 중국의 기세는 어떠했던가?
엘지배, 바이링배, 농심배, 비씨카드배, 등등 모든 세계기전에서 질풍노도처럼 세계를 덮쳤었다.
간판타자였던 구리, 콩지에가 아닌 씨에허와 장웨이지에, 탄샤오, 탕이페이 등 낯선 이름들이라서 더욱 공포스러웠다.
전방위로 엄습해오는 중국 신예들의 공세에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막막할 뿐이었다.
인해전술에 최신병기를 보유한 중국 군단.
비씨카드배에서는 10대의 탕이페이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와 우리에게 응수를 물었다.
▲ 결승 대국 전, 기자회견. 당이페이(왼쪽)와 백홍석이 악수를 하고 있다.
우리의 대답은 백홍석이었다.
그들에게도 백홍석은 낯설었으리라.
이번 4회 비씨카드 배에서 백홍석은 한국의 리베로 역할을 맡았다.
2002년 월드컵 때 영원한 리베로로 불렸던 홍명보가 떠올랐다.
최종수비수, 그러나 기회가 오면 최전방까지 출격해 공격의 물꼬를 트는 포지션이 리베로다.
리베로의 원뜻은 '자유인'이다.
포지션도 그렇지만 어원까지도 백홍석의 이미지와 걸맞는 단어 아닌가 싶다.
백홍석의 기록이나 우승까지의 여정은 이미 기사를 통해 자세히 소개되었으므로 각설하고
포커스를 결승대국 전후 상황으로 맞춰볼까 한다.
지독한 낙관파 백홍석은 이미 4강전 무렵 우승을 예감했던 것 같다.
준결승전을 승리하고 반대쪽 시드가 진행될 때 누가 올라올 것 같은가 물었다.
"아무나 올라오겠죠."
시크하면서 깔끔한 대답이었다.
누가 올라왔으면 좋겠느냐는 물음까지도 다리미질해버린 한 마디였다.
혹자는 바둑 내용의 완성도를 면밀히 따지기도 하지만 억대의 세계대회는 승부가 우선이다.
행운도 따라야 하고 베짱도 있어야 하며 거기에 당연히 실력이 받침되어야 한다.
백홍석은 어렵게 주어진 기회를 최선의 노력으로 거머쥔 승부사다.
지난해 TV바둑아시아 타이틀 매치에서 준우승을 거두었을 때 어떤 예시(豫視)가 있었던 게 아닐까?
최근 후반까지 정교해지면서 끝내기 바둑 불패의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 백홍석.
타이젬에서 해설을 맡았던 김영삼 9단은 최종 4국을 앞두고 단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홍석이가 이기겠죠 뭐."
그런 확신이 들었던 모양이다.
▲ 백홍석의 힘찬 착수.
유쾌하고 솔직한 성격, 그리고 누구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는 기개.
그런 요소들이 백홍석 특유의 낙관적 기풍을 형성했으리라.
결승 5번기 사이에 한국리그까지 출전하면서도 백홍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는 많이 둘수록 좋아요."
뭐 이런 식이다. 시원시원하지 않은가?
그런데 옥의 티로 3국에서의 자책이 거론된다.
"에효! 에효!"
TV중계를 통해 대국자의 소음이 적나라하게 전달됐다.
많은 바둑 팬들이 매너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경사스런 소식에 초를 칠 이유는 없지만 기왕 세계 챔피언이 됐으니 앞으로 그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시기에 기염을 토한 백홍석이 보다 더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 당이페이는 중국 타이젬뿐 아니라, 한국 타이젬에서도 유명하다.
S#2, 타이젬 키드 탕이페이
한중의 일인자인 이세돌과 탄샤오를 물리치며 결승고지에 오른 당이페이는 이번 대회의 스타였다.
결승 4국 모두 타이젬 대국실 유저들은 당이페이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었다.
베팅 그래프가 항상 당이페이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유저들은 당이페이의 심장을 들여다 보지 못했다.
그는 결승에 오르면서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렸다.
중국에서 당이페이는 NBA에 진출한 중국인 프로농구 선수 제러미 린과 함께 스포츠계 신데렐라 쌍두마차로 각광을 받는 중이었다.
국민의 성원이 한몸에 쏠리자 당이페이는 몹시 힘들어했다.
거의 공황상태였다고 한다.
"당이페이, 세상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많단다. 너의 선배기사들은 등산을 하던 중 하마터면 실족해 죽을 뻔 한 적도 있었어. 그냥 편하게 즐겨라."
중국의 위빈 단장이 그렇게 위로했다.
그러나 나이 어린 당이페이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했다.
▲ 국후 장면.
3국이 끝난 후 중국의 SNS를 통해 바둑팬들이 당이페이의 '째려보기' 매너를 지적했다.
당이페이는 곧바로 그날 밤 팬들에게 해명했다.
"일부러 상대를 째려본 건 아닙니다. 상대가 자꾸 뭐라고 중얼거려서 하지 말라고 눈짓을 보낸 겁니다."
째려보기와 중얼거리기 매너가 한중 양쪽에서 거론되었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양국의 바둑 팬이 자국 선수의 매너를 염려했다는 이야기다.
어쨌거나 상대의 심기를 건드린 매너는 서로 상쇄!
중요한 것은 중원의 대세를 가른 승부에 있어 그런 심리전까지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
▲ 지난 8강전에서 박영훈을 격파한 당이페이.
당이페이는 타이젬을 통해 실력을 기른 신예다.
미위팅, 판팅위, 탄샤오, 런씨허, 장웨이지에와 함께 타이젬의 영웅호걸로 통한다.
그 중 장웨이지에는 2단으로 타이젬에 들어와 9단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들은 타이젬에서 한국의 정상급 기사들과 무수히 대국하면서 흡성대법으로 무공을 빨아들였다.
그래서 한국 고수들은 타이젬이 중국 신예들의 인큐베이터가 됐노라 투덜거린다.
그들은 기원에서 수업을 하고 귀가하면 타이젬에 입실해 잠들기 직전까지 바둑을 둔다고 했다.
그래서 바둑기계로 불린다.
당이페이의 아버지는 산서성의 경찰공무원이었다가 은퇴하고 아들을 위해 도시로 나왔다.
당이페이는 그런 아버지의 과잉애정이 부담스러워 가출도 하고 바둑을 끊기도 했었다.
그런 반항기로 2년의 공백기가 있었으나 최근 마음을 잡고 매진해 엘지배 본선, 바이링배 본선에 진입했다.
비씨카드배 준우승도 아프겠지만 훈장으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결승 3국 때 당이페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타이젬 아이디로 대국실에 들어와 중국 유저들에게 티머니를 나누어 주었다.
그 바람에 중국고수1방 서버가 마비되었다.
타이젬을 통해 한국 기사들의 전술을 파악해낸 당이페이.
그런데 당이페이는 스스로 중국 방송에서 해설을 맡았을 때 자신의 아이디를 밝히곤 했다.
그렇다면 백홍석은 당이페이의 기보창고를 열어 공략 포인트를 찾지는 않았을까?
그 포인트는 바로 후반에 흔들기였다.
▲ 국후 이세돌이 합류해 복기를 했다.
S#3. 결코 쉽지 않은 한국이기를
중국 기사들은 집단연구를 통해 초반 포석에 강하다.
이제 19로 네 귀의 초반 메뉴얼은 거의 밝혀져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강자들끼리는 백번이 유리하다고 한다.
비씨카드배 32강전에서 한국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날아갔을 때
한국의 절대고수는 한 마디로 평했다.
"우리 기사들이 흑을 많이 쥐었을 걸요."
아무래도 흑이 피곤하다는 뜻이다.
덤의 의식해 흑이 능동적으로 판을 짜야 하는데 백의 대응이 알뜰하게 준비되어 있어 어떻게 두어도 반반으로 나뉘어 힘들다는 분석이다.
▲ 비씨카드배 이종호 사장이 백홍석을 격려해주고 있다.
화제가 만발하고 이변이 속출한 비씨카드는 우리의 호프 백홍석이 우승컵을 안으면서 해미엔딩으로 끝났다.
중국 강세의 흐름을 차단하고 분위기를 전환한 쾌거였다.
물론 결승골은 한국에 내주었지만 볼 점유율이나 전체적인 기량은 중국이 우위였다고 해도 무리는 없다.
"두고 보자. 앞으로 중국바둑은 엄청나게 강해질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다짐하고 패배의 울분을 삭히겠지.
황사바람에 모든 게 휩쓸려 날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흙먼지 툴툴 털고 유심히 보면
뭐 사실 바둑계의 지도가 그리 볼상 사나운 것도 아니다.
잉씨 성주는 최철한, 춘란성은 이세돌, 후지쓰성은 박정환, 삼성화재성은 원성진, 비씨성은 백홍석.
어지간히 요충지로 통하는 성(城)은 죄다 우리의 상위랭커들이 사이좋게 분할점거하고 있다는 사실!
거참 희한하네^^
바둑 공한증이야 많이 치유됐는지는 모르지만 대륙 중국의 일개 성(省) 규모에 불과한 한국이 좀처럼 무너지지 않고
앞길 가로막는 이 현상을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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