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총걸음]
'바둑영재들과의 승부호흡이 백홍석을 탄생시켰죠'
백홍석 9단 스승 권갑용 8단 인터뷰
김지은2012-05-18 02:26:44
영웅의 탄생을 지켜본다는 감동은 바로 이런 것일까?
기자가 된 후 지켜 본 세 번의 비씨카드배 결승은 각기 다른 감동으로 기자의 마음 한켠에 보관 중이다. 2회 결승(이세돌-창하오)은 당시 휴직 중이던 이세돌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고, 3회 결승(이세돌-구리)은 세기의 대결로 기자에게 바둑의 본질, 바둑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16일 종료된 4회 결승(백홍석- 당이페이)은 준비된 영웅이 황사바람을 잠재우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자에게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아마 백홍석이라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준우승을 차지한 백홍석이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으로 그 설움을 씻어내 왠지 더 감동적이었으니까.
▲백홍석이 4국 승리 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그래서 우승 후 백홍석의 소감 한 마디, 한 마디에 기자는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승 내내 침착함을 보였던 그는 우승이 결정된 후 함박미소와 함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이는 누구인가요?
스승인 권갑용 8단과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 컨디션 조절에 신경 써 준 여자친구, 그리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은근히 관심이 갔던 한 질문.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컵을 안은 백홍석이 가장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첫 번째로 꼽을 이가 궁금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스승 권갑용 8단이었다.
▲2012년 5월 한국랭킹. 이들 중 박영훈, 조한승을 제외한 나머지 8인 모두 권갑용 바둑도장 출신이다.그 대답을 듣고 갑자기 기자의 뇌리를 스쳐간 것이 있었는데, 유독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세계1인자가 많이 배출된다는 점이었다. 현 한국랭킹 1위 이세돌을 비롯해, 박정환(2위- 2011 후지쯔배), 원성진(4위-2011 삼성화재배), 최철한(5위-잉씨배), 강동윤(7위, 2009-후지쯔배), 백홍석(8위-2012 비씨카드배) 등 모두 권갑용 바둑도장 출신. 또 본격기전 우승 이상을 차지한 기사들까지 추가하면 김지석, 이영구, 윤준상 등도 합세해 더욱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를 냉정하게 놓고 보면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등 이른바 4대 천왕이 물러난 이후 한국바둑계를 끌어가고 있는 든든한 에이스들이 유독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독보적으로 배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층 또한 매우 두텁다.
▲2009년 5월 권갑용 바둑도장 200단 돌파 기념식 모습.
권갑용 바둑도장은 권갑용 8단이 운영하는 입단지망생들을 위한 바둑도장이다. 지난 1983년 국내 최초의 바둑교실을 설립한 권갑용 8단은 1987년 바둑도장으로 체제를 바꾸어 운영, 이 때부터 전문기사 육성에 힘썼다. 1989년 박승문 6단을 시작으로 이후 이세돌·최철한·강동윤·원성진 9단 등 바둑계 스타들이 줄줄이 배출한 바 있는 권갑용 바둑도장은 2009년 국내 단일도장 최초로 출신 프로기사 단위 합이 200단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 1,500승을 달성한 서봉수 9단은 "영웅은 시대적 운을 타고 나야 된다."라고 말했었는데 그 시대적 운을 타고 나는 영웅이 한 도장에서 줄줄이 배출되는 비결이 있는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또 스승인 권갑용 8단에게 듣는 제자 백홍석, 사람 백홍석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17일 오후 총총걸음으로 서울 서래마을에 위치한 권갑용 바둑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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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갑용 8단
- 제자 백홍석 9단의 비씨카드배 우승을 축하드립니다. 백 9단의 우승이 결정됐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백홍석 9단의 본선 전 대국을 지켜봤습니다. 우승이 결정됐을 때 너무 기뻤죠. 눈물이 핑 돌더군요.
- 백 9단이 인터뷰 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분으로 가장 먼저 스승인 권 8단을 꼽더군요. 평소 제자들이 주요 대국에 임할 시 조언을 많이 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결승이 진행될 시 조언을 해주신 부분이 있나요.
이세돌 9단, 최철한 9단 등 제자들이 큰 시합을 앞두면 문자로 조언을 해줍니다. 이번 비씨카드배 결승을 앞 둔 백 9단에게는 "당이페이는 큰 무대 경험이 적기 때문에 결승에서 자기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차분하게 결승을 끌어나가면 좋을 것 같고 마지막에는 즐겨라,"라고 주문했죠.
세계대회 결승이고, 평소 예민한 백 9단이 잠은 설치지 않는지, 긴장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다행히 제가 우려했던 부분은 잘 이겨내고 있었고, 편안하게 두니까 당이페이 4단이 당황해서 실수하더군요.
- 백 9단이 이번 우승 전까지 사실 '결승 징크스'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준우승을 많이 했죠. 그래서 더 각별하셨을 것 같은데요.
동문인 이세돌·최철한·원성진·윤준상·박정환 9단, 김지석 8단은 두각을 나타내는데, 묘하게 이영구·백홍석 9단은 될 듯하면서도 잘 안 풀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판을 엎어주기를 바랬습니다.
이번 비씨카드배는 백9단을 위한 시나리오 같습니다.
- 도장 운영 초기부터 기숙사 제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권 9단 부부가 직접 운영하고, 특히 사모님은 직접 제자들 밥을 챙긴다고 들었습니다.
집사람이 참 고생이 많아요. 지금도 25명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죠.
- 백 9단도 오랫동안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한솥밥을 먹으면 그 사람의 다양한 면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기사 백홍석, 인간 백홍석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7년을 데리고 있었죠. 어릴 때 참 사고뭉치였습니다. 짖궂은 장난도 잘 치고…. 아휴. 말도 마세요. 기숙사나 도장에서 무슨 사건이 터지면 백 9단을 먼저 찾았을 정도죠.
식탐도 굉장히 강했죠. 아이들이 한 두명이 아니기 때문에 기숙사에서는 저녁거리도 아침부터 준비합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준비한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찬 냉장고가 저녁 먹기도 전에 텅텅 빕니다. 범인은 오리무중인데 나중에 알고 보면 대부분 백 9단이 먹은 거죠. (웃음)
- 그 많은 음식을 다 먹나요? 백 9단이 굉장히 말라서 잘 믿기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말랐지만 어렸을 때도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도장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왜소해서 초등학교 1학년인 줄 알았습니다. 이 친구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더군요. 그래서 어렸을 때 별명이 가시였죠.
그런데도 축구를 비롯해 운동은 너무 잘해서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도 있었죠.
- 제가 지난해 후지쯔배 출장을 갔을 때 '동문의 힘'을 톡톡히 느껴져 굉장히 놀란 일이 있었습니다. 관서기원에서 활동 중인 윤춘호 초단이 이세돌 9단을 비롯한 한국기사들을 살뜰히 챙겼고, 일찌감치 탈락한 이영구 8단은 연구할 기보를 구해주는 등 막내 박정환 9단을 그렇게 챙기더군요. 또 이세돌 9단은 탈락한 후 공항으로 향하기 전까지 동문들과 박정환 9단 대국 검토를 주도하더군요. 권갑용 바둑도장 동문만의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는데요. 평소 이런 부분을 강조하신 점이 있나요.
인성교육을 평소에 많이 강조합니다. 그 중 한 부분이 동문들과의 친분인데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기쁠 때 항상 함께 하는게 동문이잖아요. 그래서 계속 그런 부분이 이어갈 수 있게 회식 자리도 자주 만들어주며 노력하고 있죠. 그래서 궙갑용 바둑도장 동문들은 가족 같은 문화가 잡혀있습니다.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바둑계 뿌리가 없는 것 같다. 스타 기사들도 많고 우리가 그 뿌리로 동문회를 만들어서 바둑계에 좋은 일을 꼭 하자."라고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동문회가 발족됩니다. 물론 이 전에도 출신 프로기사들의 동문회가 있었지만 새로 발족되는 동문회에서는 그 구분을 두지 않고 권갑용 바둑도장 출신이면 다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 돌이켜보면 4대천왕이 이세돌 9단을 비롯한 1980년대생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그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면들을 살펴보면 유독 권도장 출신이 그 자리를 많이 차지한 것 같습니다. 프로기사를 배출한 도장은 적지 않지만, 한 도장에서 1인자가 이렇게 계속 동문이라는 것이 신기합니다.
시대적인 인재들이 많이 들어왔죠. (1980년대생 제자들이 막 들어올 때)바둑이 부흥하던 시기였고, 그 때문인지 좋은 인재들이 넘쳐났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이세돌 9단이고, 그에 버금가는 아이들이 참 많이 들어왔죠. 이 영재들을 기본을 탄탄하게 잡아주면서 경쟁도 시켰고, 그 훈련으로 단련된 층이 뿌리를 이어온 것 같다. 즉 뛰어난 동문들이 함께 성장을 했다는 것이 큰 역할을 한 거죠.
백홍석 9단은 이영구·윤준상·천스위엔 9단과 또래인데다가 실력도 엇비슷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자랐죠. 하지만 이들 외에도 이세돌, 최철한 같은 본 받아야 할 선배가 위에 즐비해서 실제로도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겁니다.
- 백 9단의 우승으로 비씨카드배가 해피엔딩이었지만, 사실 8강전까지 른바 중국의 준비된 바둑돌 90後 세대들이 훨훨 날아 비난이 거셌죠.
이전부터 느낀 부분이지만 앞으로도 중국이 너무 막강하겠죠.

▲공부 중인 권갑용 바둑도장 원생들. 현재 60여명의 원생들이 출석 중이며 지도사범은 권갑용 8단, 강지성 8단, 위에량 5단 등 9명이다.
- 1인자를 많이 배출한 지도자로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대안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현재 한국 상위랭커의 주축인 1980년대 생과 1990년대 이후 생들의 문화도 많이 달라 보입니다. 참을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할까요.
프로가 아닌 일류기사가 되는 걸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어린 나이에 기초를 굉장히 단단하게 해야 되는데 최근 바둑도장들의 분위기를 보면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하다가도 조금만 성적이 나빠지면 도장을 옮겨버리는 일이 빈번하다보니까 선생들 역시 소신껏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뭐든지 최고가 되려면 많은 고생을 참고 이겨내면서 해야 되는데 그 고생을 참지 못하고 뛰쳐 나간다는 자체가 일류기사가 되기 힘들다는 것이죠. 전반적으로 이 점이 1980년대생과 이후 생들의 차이인데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본인과 보호자도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할 겁니다.
인터뷰에 응하기 전 이세돌 9단과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9단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 현 상위랭커들을 뛰어넘는, 중국을 뛰어넘는 인재들이 나올지 걱정하더군요. "선생님 같이 참교육을 해야 되고, 그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이세돌 9단은 안타까워했습니다.
중국처럼 정부의 도움, 공기관도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도장 만에서 이 같은 것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바둑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어린이들 외에도 여성, 노인 등 다양한 층에 바둑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급해야 합니다.
- 최근 몇 년 사이 권갑용 바둑도장이 다른 도장들에 비해 입단자 배출이 많이 줄어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권 8단이 미국 바둑보급, 바둑TV아카대미 서래지부 창설 등 많은 활동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둑인구도 많이 줄었고, 30년 외곬 인생만 살다보니 한국 외 나라에도 바둑을 보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도장 아이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바둑대회를 개최해주시는 후견인을 보면서 이런 것도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강하게 아이들을 지도했다면 지금은 훨씬 더 부드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보급의 중요성을 더욱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일(도장 운영)을 하면서도 보급도 욕심을 내 보자고 마음 먹었지요.
하지만 저에게 도장 운영은 항상 최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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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막바지에 달할 무렵 갑자기 도장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헉. 백홍석 9단이 따끈따끈한 비씨카드배 트로피를 들고 등장한 것!
②편 바로가기☞ 백BC "바둑을 즐기기로 한 목표는 변함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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