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유저수첩]

죽화경, 백만 송이 장미

- 호남지역 동호회 빛광회의 열혈유저

김종서 작가2012-05-21 10:12:44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 담양 죽화경 풍경.

S#1. 남도바둑기행

“반집 차이가 반걸음 차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럽다. 바둑을 잘 두지 못하는 게 서럽다.”
프로기사 조혜연은 자신의 책 속에 혈서처럼 뜨거운 고백을 찍어놓았다.
광주로 내려가는 새벽 열차 안에서 그녀의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바둑을 생각한다.
그래, 반집 차이라고 백지 한 장 차이는 아니지.
여류기사로서 상당한 성취를 거둔 조혜연이건만 아직도 바둑에 대한 갈증으로 단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양이다.


▲ 전국적으로 유명한 나주 곰탕.

송정리역에 내려 목포 쪽으로 내려가다가 나주에 들러 곰탕으로 해장한다.
맑은 진국과 묵은 김치의 풍미가 황홀하다.


▲ 광주 빛고을 동호회 정모

광주 빛고을 동호회 정모가 있던 봄날의 주말.
무안의 초당대학교에 50여 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양건, 박승철 프로와 함께 작은 바둑축제를 즐겼다.
만나자마자 말보자 바둑이 먼저였다.


▲ 양건, 박승철의 다면기.

젊은 프로들이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천리를 달려와 바둑동호회 활성화를 위해
뭔가 힘을 보태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
회원들과 바둑을 두면서 조혜연의 ‘반집’을 또 생각한다.
반집의 정밀한 차이를 우리 같은 하수들은 측량할 길이 없다.
그냥 둔다. 그림을 그리듯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내 울타리 쌓고 남의 울타리 넘보고 한껏 욕심을 부리다가 잔뜩 겁을 집어먹고 뭐 그렇게 티격태격 빈칸을 채워간다.
한 수마다 고심과 열정이 가득한 고수의 바둑도 아름답지만 한 수마다 악습과 비능률로 범벅되는 하수들의 바둑도 아름답다.
우리에게는 승부보다 사람이 우선이니까.
서울 팀과 호남 팀으로 나눠 족구도 한 게임했다.
수담과 족담을 섞은 셈이다.


▲ 서울팀 vs 광주팀의 족구시합.

S#2. 7년 동안 심은 백만 송이 장미

심수봉이 불러 널리 알려진 ‘백만 송이 장미’는 우크라이나 노래다.
가난한 화가의 애절한 사랑을 담은 곡.
화가가 사는 마을에 아름다운 여배우가 찾아왔다.
그녀에게 반한 화가는 그녀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전 재산을 처분해 백만 송이 장미를 구한다.
그리고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 주변 전체를 장미로 도배한다.
그녀는 그 지역의 돈 많은 부자가 프로포즈한 걸로 착각한다.
그러다 공연 일정이 끝나고 여배우는 훌쩍 대도시로 떠나고 만다.
가난한 화가의 사랑은 거품이 되어버리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주 잠깐이라도 그가 사랑했던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에 백만 송이 장미를 각인시켰으므로.


▲ 죽화경 전경.

백만 송이 장미를 자신의 정원에 심은 타이젬 유저가 있다고 했다.
그 분을 빛광회 동호회 정모에서 만났다.
담양에 위치한 장미정원으로 달려갔다.
장성에서 순천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주변 비탈진 언덕.
정원의 이름은 ‘죽화경’이었다.
인근도로에 안내 표지판이 세워진 걸로 미루어 벌써 담양의 명소로 알려진 모양이었다.
“6월 2일부터 장미 축제가 시작됩니다. 그때 장미가 활짝 피어납니다.”


▲ 타이젬 죽화경 3단.

오늘 유저수첩의 주인공 아이디가 바로 죽화경 3단이다.
그는 광주에서 증권과 관련된 일을 한다.
업무 특성 상 오후 3시에 퇴근하는데 그러면 곧장 고향 담양으로 달려가 정원을 가꾸었다.
“7년 동안 거의 매일 꽃밭을 가꾸었습니다. 바라는 것도 없고 꿈꾸는 것도 없습니다. 그냥 내 땅에 장미가 만발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싶었지요.”
소박한 그의 고백에서 ‘백만 송이 장미’의 화가가 떠오른다.
죽화경 정원을 둘러보는데 그의 부인이 꽃삽을 들고 씨앗을 묻고 있었다.
“고생 많습니다?”
“아네, 안녕하세요. 장미가 활짝 필 때 오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부부가 7년을 함께 정원을 가꾸었다고 한다.
처음엔 남편의 취미생활이 좀 의아했는데 정원의 틀이 잡혀가면서 마음 가득 차오르는 설렘이 느껴졌다고 했다.


▲ 죽화경 3단 부부.

“아내한테는 늘 미안할 뿐입니다. 세상에 하고 싶고 누리고 싶은 일도 많은데 담양 비탈진 언덕에 데려와 호미질만 시켰으니까요. 그런데도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고 거들어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입 무거운 죽화경 3단이 아내를 그렇게 소개한다.
그녀는 공치사가 듣기 민망한지 슬그머니 등을 돌리고 꽃삽 질을 계속 했다.
죽화경 장미정원에는 정원 북(Book)이라는 테마조형물이 있다.


▲ 죽화경 3단이 직접 쓴 정원북.

서예를 배워 국전에 응모하기도 했던 죽화경 3단이 직접 글씨를 목판에 써서 정원 곳곳에 세웠다.
장미꽃과 함께 영혼의 꽃도 심고 싶었던가 보다.



S#3. 꽃밭에서 바둑을 두고 싶다


빛광회와 담양 취재를 끝내고 광주역으로 나오는 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필자의 이름을 발견했다.



허걱!
묘령의 여인이 나를 찾는 게 아닌가?
알고 봤더니 그녀는 전남대 김성호 교수의 비서였다.
김성호 교수는 다름아닌 김지석 8단의 부친.
"담양에 왔는데, 내 얼굴을 보고 가지 않으면 섭섭하죠!"
그는 담양의 살면서 광주의 대학에 출퇴근한다.
김교수의 손에 이끌려 무등산 호랑이 오규철 사범과 술잔을 부딪혔다.


▲ 오규철 사범(왼쪽)과 김성호 교수.

고교시절 담양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대나무밭 그늘 아래 평상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본 적 있다.
정말 신선이 따로 없는 그림이었다.



죽화경은 한 사람이 만든 정원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 싶었다.
만든 이는 상업적인 계산을 하지 않아 입장료가 없다.
죽화경을 다녀와 다음 카페이자 타이젬에도 소개된 [여행, 바람처럼 흐르다] 무심재에게 연락을 했더니 며칠도 채 안되어 여행클럽 버스가 그곳을 찾아갔다.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자들이다.
반응은 역시 괜찮았다.
꽃도 꽃이지만 죽화경에는 사람의 향기가 있어 좋았다는 이야가 들려왔다.
담양 송강정 부근의 장미정원 죽화경을 타이젬 유저들께 알려드리고 싶다.
알려진 관광명소는 아니지만 바둑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기우가 오랜 세월 공들여 가꾼 꽃밭이다.
6월 2일 그가 장미축제를 연출한다.
꽃잎을 우려낸 꽃차도 음미할 수 있고, 꽃향기 속에서 일상에 지친 자신을 위로할 수도 있으리라.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