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타]
'딸바보 장쉬'가 만든 야심작!
잉씨배 동행취재 - 현장에서 만난 장쉬는 '딸바보'
대만 타이페이-김지은2012-05-26 13:28:11
기자는 제7회 잉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취재로 지난 21일부터 대만 타이페이에서 머무르고 있다. 4년마다 개최돼 바둑올림픽으로도 불리우는 잉씨배는 대만의 부호이자 애기가인 故잉창지 씨가 1988년 40만불의 우승상금을 걸고 야심차게 준비한 대회로, 아들 잉밍하오가 이를 이어받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존하는 세계바둑대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잉씨배는 가장 큰 우승상금을 자랑하는 대회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언어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현장 인터넷환경이 좋지 않아(한국, 대만, 중국, 일본 취재진이 동시에 무선 인터넷을 사용) 난감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세계최고수들이 전통의 대회 잉씨배를 목표로 펼치는 열띤 혈전을 직접 볼 수 있어 기쁘다.
대국일, 휴식일 상관없이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기자에게 누군가가 아이패드를 불쑥 내민다. 조금은 정신이 없었던지라 '누구지?'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드니 아주 밝고, 장난끼 어린 표정의 대만기사 장쉬 9단의 모습이 보인다. 대만출신 장쉬는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가 그 곳에서 입단했고, 현재 일본 내 기성과 왕좌 타이틀을 보유하며 1인자로 군림 중인 기사. 이번 잉씨배에는 대만대표로 출전해 8강에 올라 있다.
▲평소 대국시에는 굉장히 매서운 이미지의 장쉬. 그러나 동료 기사들은 "말도 잘하고 쾌활한 성격"이라고 장쉬를 평한다.
대국에 몰입하는 모습을 주로 봐왔던지라 평소 냉철한 무사의 이미지였던 장쉬가 저렇게 밝고 장난끼 어린 표정은 기자에게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장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침 옆에 있던 장정핑 초단이 재빨리 통역을 해준다. "장쉬가 한 번 풀어보라는데요?."
그제야 아이패드를 바라 본 기자. 오호~말로만 듣던 4줄 사활인데, 어라? 이건 어플이다. 어플의 이름은 '검은 고양이의 4줄'. 이전 4줄 사활집을 낸 장쉬가 이를 어플로 제작한 것이다.
왠지 '사활집'이라고 하면 고3 수험생들이 수학문제집을 연상시키는 그런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이 어플은 상당히 귀엽다. 그리고 장쉬가 직접 짠 재미있는 스토리도 있다. 평소 공원에 산책을 가는 것이 삶의 낙이었던 검은 고양이. 그러나 평소처럼 공원으로 향하던 이 검은 고양이 앞에 강아지 떼가 등장해 횡포(?)를 부린다. 이 강아지 떼의 억지(?)를 벗어나 평소처럼 산책을 하려면 바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이 어플의 스토리.
시합출전, 바둑공부만 해도 빠듯할 것 같은 정상급 기사가 사활집을 내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바둑 어플까지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직접 스토리와 디자인까지 신경 써서 말이다.
▲어플 화면. 디자인이 참 귀엽다. 처음에는 고양이와 강아지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바로 자신의 두 딸을 위해서라고 한다. 딸 이야기가 나오자 더욱 싱글벙글한 장쉬. 고바야시 이즈미(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딸)와 부부의 연을 맺은 장쉬는 슬하에 6살, 2살인 두 딸이 있다. 반상에서는 매서운 일본 1인자지만 두 딸에게 만큼은 너무 자상한 아빠 장쉬는 시합에 없는 날이면 아이들과 자주 놀아준다고. 장쉬는 "일본 정상급 기사 중에 아이가 2명인 기사는 별로 없는데, 나는 참 특별한 사람이죠."라고 웃는다.
이렇게 딸바보(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신조어) 장쉬는 사랑하는 두 딸이 바둑을 배울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어플 제작을 구상하게 된다. "딸들에게 바둑이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라는 아빠 장쉬의 바람을 아는지 6살 큰 딸은 7급, 2살짜리 딸은 잡아먹기 기술까지 터득했다고.
그러나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쉬는 "이전부터 사활을 만드는 것은 취미였고, 어려운 사활도 많이 만들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감동을 줄 수 있는 사활을 만들고 싶더군요. 요즘 일본 바둑계가 발전이 더디고, 특히 바둑을 입문하기까지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재미있게 바둑을 접근할 수 있는 어플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지요."라면서 "몇년 전부터 머리 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직접 만들게 돼서 너무 기뻐요. 현재는 일본어 버전만 나왔지만 번역해서 한국, 중국, 영문 등 다양한 나라에 이 어플을 소개해 바둑계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요."라고 바둑인 다운 말을 덧붙인다.
▲어플을 소개하며 웃는 장쉬. 장쉬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어 일부러 스토리에 이를 넣었다고.
장쉬의 검은고양이의 4줄 어플은 출시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는데, 유료(3달러)임에도 1만 건에 가까운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직접 풀어 본 동료프로기사와 바둑인들 사이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조금은 염려되는 부분. 실질적인 일본 1인자가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해 성적이 떨어지면 세계바둑팬이 서운해 하지 않을까? 사활에 나온 모든 변화도를 본인이 직접 꼼꼼하게 검수했다고 하는 것을 보니 준비기간도 꽤 길었을 법 한데 말이다.
그래서 이 부분과 함께 슬쩍 잉씨배 임전각오까지 물어보니 장쉬는 "열심히 내 스스로의 힘으로 둬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라면서 대국에 임할 때 같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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