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젬스페셜]
戰神, 적벽에 서다!
-한 눈으로 본 시니어 바둑삼국지
김종서 작가2012-06-07 14:00:55

▲리버사이트 호텔에서 열린 시니어 삼국지 개막식에서 추억의 승부사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S#1. 고전(古典)의 낭만
반년을 이어온 시니어 삼국지가 막을 내렸다.
국수, 명인, 왕위 세 팀에 각각 10명의 장수들이 포진해 힘겨루기를 펼쳤다.
승부의 현장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중견기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러나 올드 팬들에게는 참으로 친숙한 이름들.
K바둑과 리버사이드 호텔이 힘을 합쳐 만든 시니어 기전을 삼국지로 명명했다.

▲신중하게 추첨 중인 각 팀 주장들. 왼쪽부터 서봉수, 유창혁, 조훈현.
영원한 라이벌 조. 서의 대립에 유창혁 왕위가 시니어 대열로 들어서면서 절묘하게 삼국의 구도로 재편됐다.
삼국의 수장(首長)들은 정해진 순번에 따라 돌아가면서 동지들을 뽑았다.
조 국수 : 우리 장수들을 믿는다. 내가 칼을 뽑기 전에 끝났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 차례가 온다면 맨 마지막에 1승만 거뒀으면 좋겠다.
▲왕위팀 유창혁 주장(왼쪽 사진)과 명인팀 주장 서봉수(오른쪽 사진)이 임전소감을 말하는 모습.
서 명인 : 음, 어깨가 무겁다. 지장(智將) 최규병과 맹장(猛將) 김종수를
믿는다. 다들 잘해주길 바란다.
유 왕위 : 주장이지만 내가 가장 막내다. 우리의 전력이 가장 강한 듯싶다. 상대 장수들 중 탐나는 이가 별로 없으니까. 아마도 우리가 천하통일을 이룩할 것이다.
삼국 전쟁의 서막이 올라갈 때의 임전소감이 흥미롭다.
그 중에서 조 국수의 엄살 섞인 희망 성 예측은 현실로 적중했다.
서 명인의 겸허함도 친근하게 들리고 유 왕위의 기개 또한 정겨웠다.
2월부터 시작한 시니어 삼국지의 대장정은 드라마틱했다.
모처럼 바둑 팬들과 조우한 중견기사들은 치열하게 수순을 펼쳐보였다.
노장들은 전의(戰意)를 발산했고, 최후의 순간까지 힘을 쏟았다.

▲시니어삼국지 참가자들
그래서 시니어 삼국지는 더욱 감동적인지 모른다.
솔직히 말해 최강 전력의 전사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들판에 선 30명의 전사들은 척박한 불모지대에서 우리 바둑 사를 지켜온 수비대원들이었다.
비록 창과 방패의 무게를 감당할 힘이 딸린다 하여도 노장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그림 자체로 가슴 따뜻하지 않은가?
이런 풍경에 부질없는 잣대를 들이대며 2부 리그 운운하는 이들도 보인다.
너그럽게 박수를 보내줄 수는 없을까?
노장들의 바둑은 또 그 나름대로 매력이 넘친다.
그들이 걸어온 가시밭길의 이야기를 다시 곰씹어보는 맛도 고소하다.
클래식이 주는 낭만을 여유 있게 감상하는 이 또한 클래식이리라.
▲초반 혁혁한 공을 세웠던 노장들.
국수 팀 2승자 노영하(사진 상단)와 왕위팀 2승자 박성수.
S#2. 다시 보는 전적표
중원의 들판에 삼각으로 포진한 국수, 명인, 왕위 삼국의 진영에서 차례로 장수들이 출전했다.
방식은 고전 삼국지와 다를 바 없었다.
부대와 부대가 맞부딪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낼 것 없이 장수들끼리 무예를 겨뤄 승패를 가르자는 것.
승리한 장수는 계속 다음 상대를 맞는다.
초반 삼국의 균형은 팽팽하게 이어져갔다.
국수 팀의 노영하가 2승을 거둬 한 발 앞서 가다 왕위 팀의 박성수에게 쓰러진다.
박성수 역시 2승을 달리다 국수 팀의 김석흥에 의해 하차한다.
위기를 감지한 왕위 팀에서 강력한 카드를 꺼낸다.
▲관록이 속기에 녹아 든 승부사 박영찬
연초 대주배 시니어 기전에서 4강에 올랐던 박영찬.
그는 김석흥, 나종훈, 양상국을 연파하면서 3승으로 기염을 토한다.
이때까지 명인 팀은 속수무책 당하고 있다가 뚝심의 조대현이 등장해 박영찬을 무너뜨린다.
▲연승삼국지에 출전한 시니어 기사들. 사진 윗줄 왼쪽부터 김종수, 조대현, 이관철, 장주주, 김준영, 정동식
그러나 조대현은 국수 팀의 박승문에게 일격을 당하고, 박승문은 다시 정동식에 칼을 맞는다.
속절없이 밀리기만 하던 명인 팀에서 권갑룡이 출전해 정동식, 오규철을 꺾으며 팀 최초의 2연승을 기록한다.
그러나 김준영에 저지당하면서 물러나고 만다.
국수 팀의 암살자 김기헌은 김준영, 최규병, 정대상을 내리 쓸어버린다.
양질(良質)의 3연승이다.
그러자 명인 팀의 부장 격인 김종수가 제동을 건다.
서 명인이 믿고 믿었던 김종수는 왕위 팀의 김동엽과 혼전을 벌인 끝에 낙마한다.
김동엽의 저돌적인 돌진을 막아선 투우사는 차민수.
9명의 전력이 바닥난 명인 팀에서 최후의 보루 서봉수가 등장했다.
그는 주장답게 갬블러 차민수를 격파했다.
이런 추세라면 결국 세 팀의 주장들이 격돌할 가능성이 높았다.

▲김수장과 서봉수의 대국 모습. 김수장의 승리로 명인팀은 가장 먼저 탈락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왕위 팀의 김수장이 유연한 행마로 거함 서 명인을 따돌리며 이변을 연출했다.
그리하며 명인 팀은 삼국지 지도에서 지워졌다.
국수 팀과 왕위 팀의 맞대결.
장주주가 김수장, 안관욱을 격파하면서 마침내 왕위 성주 유창혁을 불러냈다.
그리고 젖 먹던 힘을 짜내가며 대등하게 승부했으나 한집 반 패배.

▲유창혁과 조훈현이 대결한 우승 팀 결정판
드디어 6월 5일.
조훈현과 유창혁의 마지막 대결이 성사됐다.
아주 까마득한 시절 제주도 신라호텔에서 엘지 배 타이틀과 억대의 상금을 걸고 맞붙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실리와 명예도 컸지만 두 기사 모두 그랜드슬럼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때는 유창혁이 승리했었다.
시니어 삼국지 최종결승전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이 한 판에 우승상금 8천만원이 걸려있다.
팀원들에게 골고루 돌아갈 상금.
지면 아무 것도 없다.
국수와 왕위의 어깨를 천근만근 하중이 짓누른다.
삼국지라면 이 대결이 적벽대전쯤 되리라.
▲착점하는 국수팀 주장 조훈현
“맨 나중에 행운의 1승만 거두고 싶다.”
조 국수는 임전소감대로 유 왕위로부터 커다란 1승을 거두며 시니어 삼국지를 종결한다.
▲평창동 자택에서 조훈현 9단.S#3. 낡아도 화염방사기는 쓸 만하다
삼국지의 막이 내린 그날 밤, 평창동 조 국수 자택을 찾아갔다.
늦은 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테트리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도 인간적인 장면이라 한 커트 찍었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런 걸 왜 찍어?"
아직도 카메라를 어색해하는 바둑황제.
거실로 나와 유심히 살피니 머리가 온통 은발이다.
이번 6월로 회갑을 맞는다.
거기에 입단 50주년이 포개진다.
필자가 바둑황제의 일대기를 발표한 지도 어언 10년이 흘렀나보다.
그 사이 또 어떤 족적이 새겨졌던가?
최근만 해도 이벤트 기전 4개국 레전드 토너먼트에서 우승했고, 페어 바둑대회까지 우승했었지.
비씨카드 준결승에서 막강 구리를 지옥 입구까지 몰아붙이다가 반집 역전패를 당했고, 한국리그 멤버로 출전해 신예들과 난타전을 벌이고 며칠 전 한태희에게 어이없는 실수로 한 판 내준 적도 있었고.
▲김진명의 고구려를 읽고 있는 조훈현 9단.아직도 그는 화염을 내뿜고 있는 중이다.
낡아도 성능은 만만치 않은 듯싶다.
사거리가 전성기만큼은 못 미치겠지만 탱크 속에 연료가 남아있다는 게 경이적이다.
은발(銀髮) 또한 뭐 대수일까?
그 속에 깃든 생각의 힘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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