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저마다 독특한 자세로 연필과 크레파스를 움직였다. 소재는 각각 달랐지만 모든 그림에 바둑알이 포도송이처럼 맺혀 있었다.
부천초등학교 전교생이 바둑 그림을 그리는 날. 그림뿐만 아니라 하루의 모든 수업이 바둑으로 이뤄졌다.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 부천 바둑특성화 초등학교 운용남 교장.
윤용남 교장 : 우리 학교는 바둑특성화 학교입니다. 그렇다고 바둑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는 아닙니다.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인 바둑을 통해 침착함과 사고력, 상상력 등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아이들도 바둑을 무척 좋아합니다. 경쟁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해 바둑은 아주 좋은 과목입니다.
바둑알을 모자이크로 그려내는 아이들의 상상력은 찬란하고 천진난만했다. 그림 속의 바둑은 어려운 게임이 아니었다. 공기 돌처럼 아무렇게나 던지고 놀아도 좋았고 악세사리로 몸에 달아도 괜찮았다.
▲ 꼬불꼬불 열심히 바둑 한자를 쓰는 어린이들.
프로기사와 바둑 선생님이 함께 하는 수업도 아주 쉽고 편했다. 물론 단수를 알려주는 수준의 기초 수업이었다. 그러나 바둑을 새로 접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하루 온종일 바둑 수업을 하는 날. 그 날은 진정한 바둑축제라고 해도 좋았다.
▲ Baduk English (부제: 바둑용어 영어로 제대로 읽히기) 표지
S#2. 최고위손필 5단
부천초등학교에 바둑을 심는 지도사는 타이젬의 최고위손필 5단이다. 얼마 전에 ‘바둑 영어’라는 책을 발간한 김동원 박사. 그는 서강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풍산과 새한 등 대기업의 마케팅 담당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다가 라크로스 위스콘신대에서 스포츠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같은 전공으로 박사 필수교과과정을 이수한 후, 현재 성균관대학교에 편입해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인 학구파다.
7세 때 아버지의 권유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해 공인 아마 4단에 이른 김동원 박사는 대바협의 소개로 바둑특성화 학교인 부천초등학교에 출강하기 시작했다. 바둑의 기능과 수단보다 바둑을 통한 인성교육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그는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강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대학 강의만큼 치밀하게 연구하고 준비했다.
▲ 김동원 박사의 수업을 아이들이 경청하고 있다.
‘바둑 잉글리시’라는 교재가 바로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바둑용어의 학습은 바둑기술의 이해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바둑용어가 대부분 한자로 되어 있어 어린 아이들은 무조건 암기를 해야 합니다. 쉬운 영어로 바둑 용어를 풀다 보니 아이들도 흥미를 갖더군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의 잠재력이 대단했습니다. 유아기와 초등학생 시기에는 언어를 왕성하게 습득하는 시기라서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더군요. 특히 저학년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효과가 컸습니다.”
김동원 박사는 바둑언어를 가르치면서 반드시 손으로 글씨를 쓰게 했다. 컴퓨터 만능의 시대에 악필이 많기 때문이었다. 손으로 바둑언어를 익히고 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바둑수업을 좋아하고 기다리게 되었다. 김동원 박사의 진정성을 확인한 윤용남 교장은 아예 일 년에 하루를 바둑의 날로 지정했다.
▲ 부천 초등학교.
S#3.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바둑교육은 전국적으로 많은 학교에서 실시되고 있다. ‘방과후수업’에 바둑이 채택된 학교의 수만 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많은 바둑지도사들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있겠지만 과연 그 수업의 효과가 큰지 확인해보고 싶다. 요즘 잘나가는 중국의 경우 국가소년단을 비롯해 각 성(省)에서 집단적, 체계적으로 바둑꿈나무들을 육성한다. 아이들이나 부모들에게도 바둑의 인식은 아주 좋은 편이다. 왜냐하면 바둑을 잘 두면 미래가 보장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바둑을 철저히 스포츠로 간주하는 중국은 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싶다. 반면 바둑을 예도의 세계에 가둬둔 일본의 경우는 밀레니엄 교체기 이후부터 세계무대에서 한발 뒤쳐진 느낌이다. 역동성이 없으니 바둑이 박물관으로 들어간 케이스다. 우리의 바둑교육은 어떠한가?
▲ 부천초등학교의 바둑수업 한 장면.
필자의 견해로는 일본과 중국의 가운데 토막이라고 본다. 그래서 정체성의 혼란이 극심하다. 어린이들에 대한 바둑 교육부터 다시 생각해야 옳다. 바둑이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경험을 안겨주는 게 우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동원 박사의 부천초등학교 실험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바둑교육의 다양화, 선진화가 바둑의 대중화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