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증권배]
이창호를 성장시킨 동양증권배
역대 온·오프라인 동양증권배 조명
i진선2012-06-25 10:14:31
오늘부터 9회 우승컵을 놓고 울아가(P)와 Light(P)의 결승전 혈전이 벌어질 제9회 동양증권배. 온라인 바둑대회 혁신 모델로 꼽히는 동양증권배를 후원하는 기업은 대회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양증권(주)이다.
동양증권(주)은 한국주최 최초의 오프라인 세계기전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도 후원한 바 있는데, 한국바둑계의 전설 이창호 9단의 세계대회 첫 우승이 바로 이 동양증권배였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9회 동양증권배 결승전 그 뜨거운 열기를 느끼기에 앞서 타이젬 명예기자 I진선이 짚어주는 '되돌아보는 역대 동양증권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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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증권배의 업적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의 본격적인 프로 교류의 장을 연 최초의 세계기전은 88년에 창설된 일본 주최의 후지쯔배. 1년 뒤 잉씨배가 40만 달러라는 엄청난 거액의 상금으로 바둑팬들과 스포츠인들을 놀라게 했는데 한국은 손님으로 참가(?)하여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제1회 잉씨배 우승으로 한껏 고무된 한국 바둑계는 '우리도 세계기전을 개최해보자'라는 움직임이 있었다. 허나 굴뚝같은 마음과는 달리 어느 기업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는데 이런 가운데 한국 바둑 사상 최초로 우승 상금 1억원을 돌파한 첫 세계대회가 있었다.
바로 1989년 막을 연 동양증권(당시 동양종합금융증권)이 후원한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다. (한국 주최기전 중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삼성화재배와 LG배는 동양증권배가 창설된 후 6~7년 후 개막)
잉씨배는 말할 것도 없고, 동양증권배 그리고 후지쯔배와 세계바둑 최강 결정전까지 흥행은 대박이었다. 특히 동양증권배의 중계권을 놓고, 양대 두 방송사가 막후의 경쟁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MBC 제왕전 폐지로 마음 상했던 프로기사들은 KBS로 올인.
2012년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삼성화재배와 LG배 외에도 농심신라면배, 비씨카드배 등 한국이 주최하는 세계대회는 여럿 있고, 기전 규모는 대회 초기보다 확대됐다. 또 각 기전마다 상금제, 오픈제, 연승전 등 각기 다른 대회방식을 도입해 세계바둑팬의 보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고, 공개해설, 프로암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들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아이디어는 이미 동양증권배에서 나왔었다. 24강 토너먼트에 각국 추천 15명, 전기시드 4명, 그리고 외국기사들에게 오픈한 공개오픈예선에서 5명을 선발한 것이다.
동양증권배 이전의 세계대회는 주최측이 한국, 중국, 일본 등 각국에 제한된 인원의 프로기사를 초청하거나, 혹은 각국의 선발전을 거친 프로기사에게 진출권을 부여했었으나, 동양증권배는 이런 제한을 깬 것이다.
현재 당연시되는 아마기사들의 세계기전 참여의 문을 동양증권배가 처음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세계기전이 중단되어 많은 바둑팬들이 슬퍼했으나, 타이젬을 통해서 부활. 다시 세계 바둑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월간바둑에 나온 3회 동양증권배 우승자 이창호.
이창호를 세계로 나가게 한 발판이 된 동양증권배
초대 동양증권배 우승자는 현 한국기원 사무총장인 양재호이며, 2회 대회는 서봉수가 우승을 차지했다.그리고 1992년 1월8일에 열린 3회 대회 결승에서 이창호가 일본 최강자 린하이펑을 상대로 3승 2패를 거두며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의 감격을 맛본다.
이창호는 4회 대회 결승에도 올랐는데 이듬해 롯데호텔 아데나가든에서 조치훈을 상대로 3대0으로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당시 이창호는 국내기전의 전관왕 달성을 눈앞에 둔 일인자.
허나 국제기전에 나가면 바둑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이 나오지를 않아서 '국내용 천재기사'라는 달갑지 않은 평을 듣고 있던 때였다. 이런 가운데 동양증권배는 마치 뛰는 이창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3회 동양증권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창호의 인터뷰
이만하면 동양증권배는 이창호를 위한 세계기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 번(92, 93, 96, 98)에 걸친 동양증권배 우승을 한 후에는 모든 세계기전에서 거침이 없었다. 나가면 우승이었다.
동양증권배가 없었다고 해도 이창호의 세계정복은 이뤄졌겠지만 그 시기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동양증권배를 통해서 중국과 일본의 최고 프로기사를 연파하면서 자신감이 붙은 소년 이창호는 이후 세계기전에서 맹위를 떨치게 되는데, 그 발판이 동양증권배에서 마련됐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응창기배와 후지쯔배로 중국과 일본이 세계바둑계를 주도하던 상황에서 삼성화재배와 LG배가 탄생하기 전 몇 년 동안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지켜준 동증배의 업적은 매우 훌륭하다. 이렇게 한국 바둑계에 큰 공헌을 한 동양증권배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98년 9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회를 중단한다.
한편, 동양증권배로 불운을 맛 본(?) 기사도 있었다. 매번 이창호의 벽을 넘지 못했던 중국 천재기사 마샤오춘은 동양증권배의 충격으로부터 시작하여 200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 5승 21패라는 성적을 남기고 쓸쓸하게 저물어갔다.
인터넷기전으로 부활한 타이젬 동양증권배
이렇듯 동양증권배 세계기전이 한국 바둑사에 끼친 공로는 막대한데, 여러 사정으로 중단된 동양증권배는 영원히 사라지는가 했다.
2004년 동양증권배가 대한민국 1위 사이트 타이젬에서 온라인 대회로 부활했다. 2003년 하반기에 바둑계의 화제였던 동양생명배 타이젬 바둑 오픈기전에 이어, 2004년 동양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이 탄생한 것이다.
총상금 1억 2천만원에 우승상금이 2천500만원, 그리고 준우승상금이 천 5백만원이었다. 본선 진출 32위까지 80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상금이 주어지며 심지어 예선결승 패자와 준결승 패자에게까지도 짭짤한 상금이 책정되었다. 이렇게 국내기전에 버금가는 인터넷 기전이 창설이 되고 보니 프로기사들이 동요하게 되었다.
타이젬의 동양증권배가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한국기원이 동양증권배의 인준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타이젬과 인터넷 기전의 필요성에 적극 동조하는 프로기사들이 단호히 동양증권배를 옹호하자 결국 한국기원은 동양증권배를 공식기전으로 인정하고 프로기사들의 참여를 승인했다.
물론 당시 타이젬 직원들의 노고와 조훈현, 이창호, 유창혁 등 프로기사들의 응원 등 그 밖의 비화도 많다.
이렇게 부활한 동양증권배 타이젬 왕중왕전은 인터넷 세계기전의 선례가 되어 훗날 타 바둑사이트에서 주최하는 대회의 교본이 된다. 큰 우승상금 외에도 회를 거듭할 수록 상금제, 오픈제, 결승진출자 실명공개 등 다양한 대회방식을 적용해 온라인 바둑대회 혁신모델로 꼽히고 있기도.

구렛나루걸을 비롯한 속기약해, 다까가와, 우정과♡, 시끄러, 절대지존, green1234, 공짱타약, 마루치 등 전설의 타이젬 고수들의 전쟁터였고, 현재 역시 울아가(P), 공짱조폭, 외톨이, 철이(P), daxiang, 번개소문(P), joonki 등 많은 스타 아이디들이 매일 혈전을 벌이고 있다.
이전 8번의 대회에서는 green1234, ☆보디가드, xiabscheng, 또바기(P), 철이(P), 아쉬워서, 공짱조폭. 그동안 참 많은 강자들이 아이디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었다. (3회 대회는 단체전으로 진행)
그리고 오늘 9회 결승(울아가(P)vsLight(P)) 에서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것이다. 상금도 대폭 올랐다. 온라인 바둑대회 사상 최고금액인 5000만원. 첫 대회와 비교했을 때 두 배나 오른 우승상금이다. 아마도 세계바둑팬의 열렬한 성원과 세계각국의 바둑고수들의 참여가 변함없다면, 몇 년 안가서 1억원을 돌파할 지도 모른다. ^^;
개혁과 혁신의 동양증권배. 한 때는 한국 바둑을 세계로 알리는데 선구자였던 동양증권배가 이제는 인터넷으로 돌아와 바둑팬 앞에 우리의 무궁화같은 꽃이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바둑계의 최고 인터넷 기전 동양증권배 왕중왕전! 위대한 기사인 이창호가 세계로 향하는 발판이었던 동양증권배를, 신예기사들은 자기 발전 기회로 삼아서 수많은 미래의 이창호가 탄생하는 대회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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