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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타]

'베트남시간' 안에 녹아든 바둑 열기

명지대 바둑선수단과 베트남 바둑인 교류 가져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 2012-07-14 09: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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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입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곳에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글을 써 왔는데 타이젬은 처음인 것 같네요. 저는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학생들과 베트남,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두 나라의 바둑계 체험 및 바둑으로 교류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죠.

일행은 저를 포함하여 총 16명으로 학부생 11명, 대학원생 4명(박사 2, 석사 2)으로 구성되었고, 대학원생들은 해외학술탐방 지원금을, 학부생들은 명지대 특성과 지원금을 받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학생 중에는바둑학 박사 과정에 있는 독일 유학생 다니엘라, 프로기사이자 석사 과정생인 백지희 2단, 싱가포르 유학생 다니엘 등 꽤나 다채로운 구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체 여행은 해외 바둑대회 참가 경험밖에 없고, 더욱이 이번처럼 인솔자로 따라가게 된 것은 처음이라 혹시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만, 다양성과 자율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일깨워주었는지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는 프로기사 이강욱, 조미경 두 기사가 파견되어 바둑을 보급하고 있는 나라로 이미 몇몇 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여행기는 두 나라 바둑계의 일반적인 현황보다는 제가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점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합니다. 재미있게 보시고 베트남과 싱가포르 바둑계에 대헤 여러분들의 관심이 좀 더 깊어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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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의 3박 4일
우리 일행이 베트남의 방문지로 선택한 곳은 호치민시이다. 프로기사 이강욱 사범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치민의 옛 이름인 '사이공'에 끌렸기 때문이다. 남북의 길이가 1650킬로미터나 되는 길쭉한 영토를 가진 나라 베트남 가장 남쪽에 위치한 호치민은 베트남 최대의 도시다.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 서울이라는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베트남은 경제의 중심인 호치민과 정치의 중심인 수도 하노이가 나뉘어져 있다. 두 도시는 자그마치 16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북쪽 끝의 하노이는 날씨, 사람들의 성격, 사고방식, 심지어 언어도 호치민과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호치민을 보았다고 해서 베트남 전부를 알았다고 하는 것은 큰 오산. 따라서 이 여행기는 '베트남'이 아니라 '호치민'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숙소로 이동하는 중 담은 베트남 거리.

우리가 호치민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 시경.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말 그대로 후텁지근한 날씨가 느껴졌다. 5월부터 10월까지 우기인 베트남 남쪽지방에는 하루에도 예고 없는 소나기가 수차례 내리고, 30도 이상의 기온이 겹쳐져 불쾌지수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다행이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는 아침, 저녁으로 꽤 선선한 날씨여서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았다.


▲베트남에 머무르는 동안 묵었던 숙소. 충남방적에서 제공한 숙소는 한국선수단에게 큰 도움이 됐다.

공항엔 이강욱 사범과 충남방적 이흥복 상무님, 그리고 통역을 맡은 멋진 베트남 아가씨가 마중 나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이(Yi)'라고 소개한 이 아가씨는 금년 한국어 말하기 전국대회 우승자로, 내년에 국비장학금을 받아 숭실대학교로 유학 올 예정이란다. SG배 페어바둑최강전의 후원사인 SG그룹의 계열사 충남방적은 체류 기간 동안의 숙소와 미니버스, 교류전 장소의 섭외와 만찬 등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마지막에 있는 CO VAY가 바둑이다.

3박 4일 동안 우리 일행을 책임질 가이드 이강욱 사범이 제일 먼저 데려간 곳은 호치민시 체육협회가 운영하는 체육관 비슷한 낡은 건물로, 바둑 이외에 중국장기, 체스, 탁구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리노베이션 공사라도 하는 듯 건물 내부는 어둡고 공사자재 등으로 어지러웠지만, 바둑실만큼은 바둑 후원사인 충남방적의 도움으로 최근 새롭게 단장을 한 바둑실만큼은 깨끗하고 쾌적했다.


▲주이밍, 녁밍 형제. 이강욱 사범이 하노이 대신 호치민을 선택한 데에는 이 두 꼬마도 크게 작용을 했다고 한다.


▲바둑학과생들과 대국 중인 형제.

평일 수업은 일과가 끝난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예상 밖의 두 명의 귀여운 꼬마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10살 녁밍과 8살 주이밍 형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한생명배 어린이 바둑대회의 베트남 대표로 참가한다는 형 녁밍은 어느 틈엔가 연구생 출신 학생을 붙들고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형제는 둘 다 프로에게 5-6점 치수인데, 전체 인구 약 9천만 명 중 바둑인구가 1만명도 되지 않는 베트남에서는 보기 힘든 기재이다. 30대로 보이는 홀어머니가 4살짜리 막내까지 3형제를 키우며 바둑 공부를 뒷바라지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바둑 유학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낯익은 얼굴도 있었다. 거의 매년 국무총리배 세계아마선수권전에 베트남 대표로 참가하는 유이씨. 프로에게 2점 치수인 유이씨는 2년 전, 이강욱 사범이 베트남에 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선수들의 바둑스승이었는데, 오늘은 그저 한 사람의 바둑인으로 돌아가 역시 학생 한 명과 바둑을 두기 시작한다.


▲바둑실에 있던 기력표.


▲관광보다는 대국이 우선!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시내 관광을 하고 있어야 하지만 바둑판과 바둑알이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자기집 안방으로 만들어 버리는 바둑광들이 모이니 관광은 이미 잊혀 지고 나머지 학생들도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바둑을 둔다. 이제 막 쏟아지기 시작한 비가 낡은 건물의 얇은 지붕에 구멍이라도 낼 듯한 기세로 내려대는 가운데 수담과 함께 호치민에서의 첫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오후 2시부터 교류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전 중 간단히 관광을 한 우리 일행은 교류전 예정시간을 약간 남기고 교류전 장소에 도착했다. 교류전 장소는 시내의 한 양고기 식당 2층. 많은 인원이 모이기에 바둑 협회가 협소했고, 교류전이 끝난 후 만찬을 진행하기에도 식당이 편리했기 때문.


▲베트남 선수들을 기다리며 찰칵!

그런데 2시가 넘어도 베트남 측 선수들은 두어 명 밖에 보이질 않는다. 이강욱 사범에 설명에 의하면 일명 ‘베트남 시간’이라고 하는데, 정말 약속 시간이 30분쯤 지나자 대부분의 선수들이 사과의 말 한 마디 없이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드디어 교류전 시작!

교류전의 첫 판은 이강욱 사범이 미리 준비한 대진표대로 진행되었지만, 한 판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베트남 선수들은 첫 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상대를 찾아 대국을 청한다. 베트남 측 선수는 35명 정도가 참가했는데, 대부분은 호치민이나 여기서 멀지 않은 주변 도시들의 대표들이었지만 개중에는 800킬로미터쯤 떨어진 다낭에서 일부러 찾아 온 사람도 있었다. 전날 만났던 귀여운 형제도 어머니와 함께 참석했고, 베트남 여류 최강자를 포함한 여학생들도 많았다.


▲베트남 최강자 중 한 명인 유이 씨(왼쪽)가 백지희 2단과 대국하는 모습



▲교류전 중인 양측 선수단. 상단은 베트남 선수들, 하단은 명지대 바둑학과 학생들.

참가자 대부분은 유단자였고 또한 거의 2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베트남에선 바둑이 체육 종목의 하나로 인정되어 도시마다 대표를 선발하고 팀을 운영하는 등 시스템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다. 바둑 두는 사람들이 이처럼 젊고 바둑에 대한 열의가 높다면 그리고 실력적으로는 하노이가 호치민보다 더 세다는 이강욱 사범의 말을 감안해 본다면, 베트남 바둑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류전이 끝난 뒤 이어진 만찬은 왜 호치민 사람들을 외향적이고, 자유분방하고, 정이 많다고 하는지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우리 학생들과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웃고, 떠들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하는 등 시끌벅적해지는 데는 커다란 얼음을 넣어 마시는 밍숭맹숭한 베트남식 맥주 한 잔이면 충분했다. 심지어 그들과 헤어지는 데만도 꼬박 한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만찬에는 호치민 바둑협회 담당 공무원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사회주의 국가답게 공무원의 높은 지위를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음음 느낄 수 있는 동시에 우리의 방문이 호치민 바둑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한 자리였다. 혹시 몰라 인사동에서 구입한 합죽선에 유명한 기사들의 사인들 잔뜩 받아 선물을 준비했는데, 이 선물은 이강욱 사범의 조언에 따라 공무원에게 바쳐졌다(?).

호치민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날인 이튿날은 메콩강 유역을 관광한 후 호치민 한인 기우회 회장님께 저녁을 얻어 먹었다. 베트남 제조업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호치민이므로 거주하는 한인들의 숫자가 상당하여 기우회 활동도 매우 활발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상설 기원이 한인 거주지에 하나 있을 뿐 정작 기우회가 활성화 된 것은 이강욱 사범이 오고 나서란다. 우리가 오기 직전인 6월 중순에 제2회 한베친선바둑대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고 그 기사가 교민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백지희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강욱(오른쪽). 이강욱은 베트남 바둑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과 헤어지기 싫었던 것일까, 이강욱 사범은 새벽같이 싱가포르로 떠나는 우리를 다음날 공항까지 배웅해 주었다. 베트남에 온 지 벌써 햇수로 3년째. 고향에 대한 그리움, 타지 생활의 서러움 등으로 힘들 것도 같지만 그렇다고 이강욱 사범이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이곳에 있으면 한국에 있을 때처럼 조바심을 내거나 남들과 경쟁하지 않아 마음이 편하단다.

하긴 '베트남 시간'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화내지 않고 기다려주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베트남 바둑이 우리나라 못지않게 성장할 그날을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싶다.

*15일 싱가포르 편이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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