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타]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는 싱가포르
명지대 바둑선수단과 베트남 바둑인 교류 가져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2012-07-15 11:53:19
바둑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입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곳에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글을 써 왔는데 타이젬은 처음인 것 같네요. 저는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학생들과 베트남,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두 나라의 바둑계 체험 및 바둑으로 교류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죠.
일행은 저를 포함하여 총 16명으로 학부생 11명, 대학원생 4명(박사 2, 석사 2)으로 구성되었고, 대학원생들은 해외학술탐방 지원금을, 학부생들은 명지대 특성과 지원금을 받아서 가게 되었습니다. 학생 중에는바둑학 박사 과정에 있는 독일 유학생 다니엘라, 프로기사이자 석사 과정생인 백지희 2단, 싱가포르 유학생 다니엘 등 꽤나 다채로운 구성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체 여행은 해외 바둑대회 참가 경험밖에 없고, 더욱이 이번처럼 인솔자로 따라가게 된 것은 처음이라 혹시 사고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만, 다양성과 자율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일깨워주었는지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는 프로기사 이강욱, 조미경 두 기사가 파견되어 바둑을 보급하고 있는 나라로 이미 몇몇 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여행기는 두 나라 바둑계의 일반적인 현황보다는 제가 여행하면서 보고 느꼈던 점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합니다. 재미있게 보시고 베트남과 싱가포르 바둑계에 대한 여러분들의 관심이 좀 더 깊어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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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느낌을 주는 싱가포르 주택들.
싱가포르에서의 2박 3일
창이(Changi)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모두는 베트남과는 전혀 다른 나라에 왔다는 것을 금새 느낄 수 있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공항은 세계 제일의 공항이라는 인천 공항보다 훨씬 깨끗하고 화려했고, 세관 직원들의 표정 또한 베트남과는 달리 여유가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연결되는 전철 역시 서울 지하철 이상으로 깨끗하고 새 냄새가 났고, 열차 밖으로 보이는 유럽식 주택들과 잘 꾸며진 공원들은 싱가포르 전체가 하나의 테마파크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싱가포르에서 가이드를 맡은 유학생 다니엘이 짐을 풀기가 무섭게 우리를 데려간 곳은 자신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음식점. 쇼핑몰 내 푸드코트처럼 여러 가게들이 한 데 모여있고 야외에 테이블을 놓아 둔 곳이었는데, 오후 5시라는 이른 시간에 먹는 저녁이었음에도 나오는 음식마다 모두 맛있었다.
하나 문제가 있었다면 숙소로부터의 거리. 서울보다 면적이 아주 조금 크고, 남북보다 동서로 더 긴 형태도 서울을 닮은 싱가포르는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선 숙소가 제공되지 않아 숙박비를 줄이기 위해 공항에서 가까운 동쪽 끝에 숙소를 잡았는데, 다니엘 부모님의 식당은 서쪽의 끝.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가는데 편도로만 1시간 45분이 걸렸다. 베트남에서 오는데 2시간밖에 안 걸렸는데…….
▲싱가포르 바둑협회 임원들과의 회의를 위해 이동 중 한 컷.
식사 후, 요즘 싱가포르에서 가장 잘 나가는 관광지인 마리나 배이 샌즈를 구경하고 나니 밤 11시. 하지만 나와 대학원생인 백지희 2단의 하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정이 짧은 탓에 낮 동안에는 만날 기회를 잡지 못한 싱가포르 바둑협회의 탄(Tan)회장과 부회장 제임스가 의논할 일이 있다며 우리를 마중 나온 것이다. 마침 근처에 "싱가포르 슬링"이라는 칵테일의 원조로 유명한 래플스 호텔이 있어 그곳에서 원조 싱가포르 슬링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싱가포르 아이들과 만나기 전 싱가포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명지대학교 선수단.
▲싱가포르에서 보급 활동 중인 조미경,
현재 싱가포르에는 한국의 조미경 사범이 보급을 나와 있는데,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초, 중, 고교는 물론 대학교에까지 있는 바둑강좌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
싱가포르에는 각급 학교를 통틀어 30여 개의 학교에서 이런 수업을 개설하고 있는데, 한 학교가 두 개 이상의 강의를 개설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상당하다. 때문에 조미경 사범과 제임스를 포함한 3명의 정규 강사, 그리고 회장인 탄씨와 명지대 바둑학과를 졸업하고 협회 일을 맡고 있는 신디, 자원봉사 학생들까지 1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한 채 열심히 강의하고 있다.
▲강의를 듣고 있는 싱가포르 아이들.
▲바둑실습 중인 싱가포르 아이들
탄씨와 제임스는 이러한 강의를 좀더 늘리고 싶어한다. 500만 인구 중 80%가 중국계인 싱가포르에는 학생들에게 중국 문화를 가르치고자 하는 학교들이 많은데, 바둑은 중국의 여러 문화 중에서 '다도(茶道)' 다음으로 인기 있는 분야로서, 학교와 강의의 수를 늘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옆 나라인 베트남에서 이강욱 사범 같은 고급 인력이 학생을 찾지 못해 호치민과 하노이를 오가며 고생하는 것을 본 우리로서는 싱가포르의 상황은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이런 싱가포르에도 고민이 있었다. 강의를 늘리고 싶어도 가르칠 선생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싱가포르의 경우 바둑 연령층이 매우 젊어 아직까지는 봉사차원에서 강의를 해주는 대학생을 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현재 열심히 활동 중인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에도 더 좋은 직장을 찾아가지 않고 박봉의 협회 일을 선택할 지는 의문이다.
또한 최근 들어 외국인의 취업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싱가포르 정부가 조미경 사범같은 파견 기사의 비자를 연장해 줄 지도 장담할 수 없다. 학교에서 바둑 강의를 개설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는 바둑 보급의 관점에서는 분명 엄청난 기회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을 구해서 이 좋은 기회를 살릴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며 싱가포르에서의 첫째 날이 지나갔다.
▲싱가포르 본부에 있는 바둑 서적, 신문 들
협회 방문과 교류전은 둘째 날 저녁 7시부터였다. 싱가포르에는 협회 사무실만 두 곳이 있는데, 우리가 찾아간 곳이 본부. 호치민 협회 바둑실의 두 배가 넘는 대국실이 두 곳에 휴게공간과 창고까지 갖춘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 더욱이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하여 접근성도 매우 좋다.
그런데, 베트남 시간은 베트남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7시가 훨씬 지났는데도 몇 명의 학생들이 기웃거릴 뿐 교류전을 시작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 대국이 시작된 것은 거의 8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교류전 모습
대국은 다니엘의 주도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호치민과는 달리 실력이 만만치 않다. 결국 실전 경험이 많은 바둑학과 학생들 대부분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호락호락하게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칠 정도로 실력은 만만치 않았다.
이는 기력 인플레이션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 승급이나 승단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공식 대국에서 일정한 승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류전 선수들의 전반적인 기력은 아마추어 4-7단 정도였고 개중에는 13세 소년도 있었다.

▲강의 중인 제임스.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는 여정이어서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날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이날은 성영(聖嬰, Holy Child)소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바둑 수업의 참관이 예정되어 있었다. 성영소학교는 중국계 공립학교로 다도와 바둑을 중국 문화의 하나로 가르치고 있는데, 바둑을 가르치는 학교들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입문자를 위한 강좌가 2개에 각각 40여명, 중급 이상을 위한 강좌 역시 2개로 각각 20여명이 바둑을 배운다.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쓰며 진행되는 강의는 협회 부회장인 제임스와 자원봉사 학생이 한 반씩 맡아 진행되었는데, 화상자료나 수업의 진행 방식이 재미있으면서도 실질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있어 인상 깊었다.
▲성영소학교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친 명지대 바둑선수단
우리 일행도 수업 진행을 도왔는데 외국인이 단체로 방문한 것이 신기했는지 학생들도 예상 외로 크게 호응해 주었다. 이 학교는 향후 몇 년 내에 바둑만을 위한 강의실과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금을 모으는 중이었는데, 반드시 실현되길 빈다.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모든 수업을 끝까지 참관하지는 못한 것, 그리고 이튿날부터 열리는 싱가포르 마인드 스포츠 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나는 물론이고 바둑학과 학생들 모두에게 싱가포르 바둑계의 예상 밖의 발전된 모습은 기분 좋은 충격이었다.
특히, 싱가포르 바둑협회의 주최로 열리는 마인드 스포츠 대회에는 400여 명의 바둑부문 참가자를 포함해 약 2,000명이 체스와 중국장기, 브릿지, 포커 부문에 참가한다니 인구가 10배인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일 듯 하다. 싱가포르의 바둑이 우리나라와 어깨를 겨룰 날이 그리 먼 미래는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런 예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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