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뉴스 기보 상점 새소식

[총총걸음]

'한국바둑과 항상 함께하는 월간『바둑』이 되어야죠'

월간『바둑』구기호 편집장 인터뷰

김지은 기자2012-07-27 14:33:13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1990년대 초반 기자는 매달 25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간『바둑』이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등 좋아하는 기사들의 명국들이 가득(!) 실려 있었고, 주옥같은 대국을 심층 분석한 관전기, 최신포석 연구 등 강좌, 바둑이야기까지 다양한 바둑콘텐츠들이 구성된 월간『바둑』을 보지 않고서는 너무나 허전했고, 또래 바둑도장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다.

따끈따끈한 바둑소식이 가득한 월간바둑을 들고 한 구석에서 탐독하고 있자면 그날은 참 행복한 하루였다. 고수의 숨결을 느껴보고자 이해가 되지도 않는 기보를 놓고, 놓고, 또 놔보면 본의 아니게 어느덧 월간『바둑』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주간지, 월간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진다고는 하나, 애기가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기자와 같은 마음으로 월간바둑을 본 기억이 있지 않을까.

아무튼 애기가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국내 유일의 바둑정통 월간지 월간『바둑』이 25일 45번째 생일을 맞았다. (재)한국기원이 바둑보급을 목적으로 1967년 8월 『棋界(기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월간『바둑』. 1969년 8월부터 이번 달 541호까지 이어지기까지 단 한 차례의 쉼도 없이 그렇게 월간『바둑』은 바둑팬과 함께 했다.

정보화시대 바둑전문지로서 묵묵히 행마 중인 월간『바둑. 월간『바둑』 구기호 편집장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봤다.

▲월간『바둑』구기호 20대 편집장. 충남 서천출신. 어릴 적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운 바둑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아마 4단에 오름(현 기력은 짱짱한 아마 6단). 바둑을 좋아하는 것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바둑광. 우칭위엔(吳淸原) 9단을 존경해 득남하자마자 물어물어 우칭위엔 9단의 허락을 받아 아들 이름을 구청원으로 지었을 정도.

- 창간 4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모든 호를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셨겠지만, 이번 호는 의미가 있어 더욱 남달랐을 것 같은데요?
45주년은 어떻게 보면 큰 의미가 있지는 않지요. 보통 잡지에서는 50주년, 100주년 등 0으로 떨어지는 년도나, 호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만 45세를 맞이했다는 것은 전문지 분야에서 손꼽을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 신경을 썼습니다.(웃음)


▲45주년 기념호 표지. 영재입단대회 통과자 신민준과 신진서의 모습이 보인다. 

- 잡지의 얼굴은 '표지'이고 그만큼 신경이 쓰이죠. 45주년 기념호이기에 더욱 고심이 많이 됐을 것 같습니다. 표지는 영재입단대회를 통과한 신진서, 신민준 초단이 장식했군요. 개인적으로 아주 흐뭇한 표지입니다.
최근 한국이 중간 층, 특히 신예 쪽이 중국에 밀리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 호 특집으로 한국과 중국의 95後 세대들을 분석, 비교한 '한·중신예 어디까지를 왔나’를 준비했습니다.
표지 역시 특집하고 연관되는 영재입단대회 통과자 신진서, 신민준 군으로 선정했죠. 월간『바둑』주구독층 40~60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심도 됐지만 그래도 한국바둑의 미래들을 표지모델로 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편집장님 외에도 취재기자 2명(이세나, 김정민 기자)과 편집위원회(위원장: 조상호, 위원: 이홍렬, 신병식, 최규병, 김진환, 임진영)가 함께 뭉쳐 기획 회의를 한다고 들었는데요. 한 권의 월간『바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매달 말일에 편집위원회와 그 달의 주요기사, 주제선정, 표지인물 설정, 특집 준비에 대해 회의를 한 후 배열 표를 작성해 각자 맡은 업무에 들어가죠. 특집의 경우 여건(취재기자 2명)상 3달 한 번 정도 준비하고, 기본 연재물 외, 그달의 특성에 맞는 연재물을 가미하고, 대회, 인물 선정도 하죠.
준비한 원고들을 13~14일에 마감하고, 그 이후에는 편집사무실에서 1주일 정도 교정 및 편집작업에 들어갑니다. 그 작업까지 마감하면 20일. 그리고 인쇄를 하면, 25일 독자분들의 손에 월간『바둑』이 들어가는 것이죠.
표지인물 선정에 공을 많이 들이죠. 월간『바둑』 기획편집 부분에서는 '숙제'라는 표현을 하는데요. 인물을 선정한 후 한국기원 이주배 사진전문기자에 기획 의도를 전달해 요청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걸 찍기 위해서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컷을 찍고, 그 사진들을 모니터에 나열해 편집 기자들, 디자이너들과 상의해 결정합니다.

- 정보화 시대 인터넷 매체의 빠른 발전 때문에, 아무래도 속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신문, 잡지의 위기시대라고 보는 시각이 많죠. 편집장으로서는 그리 달가운 변화는 아닐 것 같은데요. 그에 대한 준비랄까. 월간『바둑』이 변화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나요.
요즘 콘텐츠들은 비주얼을 강조하는 편이라 글자가 많으면 잘 안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가급적으로 사진을 많이 담으려고 해요. 어느 선배가 이 부분에 대해 강조하면서 "잡지고, 매체이고 많은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야 한다. 사진을 많이 담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라고 말 한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이죠. 그래서 많은 바둑인의 이름을 담으려고 하죠. 이번 호에서도 국수전 파주대국(16강전-김지석VS강동윤)에 나왔던 많은 얼굴과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았죠.
또, 바둑팬들이 인터넷 기사, 바둑TV 등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소식을 접하고, 월간『바둑』을 보기 때문에 상세관전기, 눈으로 보는 관전기 두 코너만 운영하는 등 이전보다 관전기 비중을 줄였죠,
16페이지를 차지하는 상세관전기의 경우 이슈 대국을 대국자가 직접 해설하고, 관전필자 역시 그 대국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섭외하기 때문에 퀄리티 면에서는 자신 있습니다.
눈으로 보는 관전기는 새로운 시도죠. 바둑판에 직접 기보를 놓아보는 바둑팬이 줄고 있기 때문에 10수 이내로 기보를 나눠서 눈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매년 열리는 대회의 경우를 조명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하려고 애쓰죠. 9월 월간『바둑』콘텐츠 중에 타이젬이 후원하는 청풍명월배가 있는데요. 지난해와는 달리 가요제를 중심으로 구성할 거예요. 특히 이번에는 김정민 기자가 직접 가요제에 참가해 참가자로서 분석할 예정입니다. (구 편집장은 이 말을 하면서 김정민 기자가 타고난 미성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초·중급용 실전트레이닝 마스터 시리즈. 월간『바둑』내 인기리에 연재됐던 강좌물을 보완 시리즈물로 출간했는데, 처음으로 로열티를 받고 수출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관전기와 함께 메인 콘텐츠 강좌는 어떤가요. 제가 어렸을 때 신수신형 강좌를 달달 외어 라이벌을 톡톡히 골려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강좌는 월간『바둑』이 자랑하는 고퀄리티 콘텐츠죠, 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죠.
1997년 한국기원은 초-중급용 실전트레이닝 마스터 시리즈(10권)를 펴냈죠. 월간바둑에 기획, 연재됐던 내용을 보완해 출판한 것인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출판시장이 좋았던 때라 한 부를 찍으면 2,000~3,000부를 기본으로 찍었는데 5쇄를 넘어서 찍었을 정도니까요.
판매 부수보다도 의미가 있었죠. 1970~80년대 우리나라에는 우리 손으로 직접 기획해서 만든 책이 드물었고, 복사본, 이른바 해적판이 주류였죠. 물론 마스터시리즈 전에도 출판물은 있었지만 조금은 체계가 덜 잡힌 느낌이 있었어요.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나라가 세계흐름을 주도해도 바둑 출판 시장은 마찬가지였어요. '세계최강 한국'이라면 당연히 그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한국이 직접 기획한 바둑책도 필요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마스터시리즈 출간 자체가 의미가 크고 이후 2000년 초반 로열티를 받고 일본, 중국 대만에 수출이 되기 시작했죠. 돈 벌자고 바둑책을 만든 것은 절대 아니지만 취재 목적으로 나간 외국에서 한국바둑책을 보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 없더라고요.


▲500호 기념 특대호

- 541권의 월간바둑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호가 있다면요.
통산 500호였죠. 숫자도 굉장히 의미가 있었고…. 당시에도 편집장이었는데 호를 기념하는 500페이지 분량의 특대호, 바둑을 상징하는 361페이지 등 페이지부터 기획을 들어갔는데 제작비 부담을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결국 못하고 320페이지로 냈죠. 그래도 역대 월간바둑지 중에서는 가장 통통한 분량이고 표지에 등장했던 인물들 우리가 가진 데이터 내에서 최대한 많이 담아내 의미가 있었어요.
당시 바둑계 숨은 공로자 故이학진 선생을 인터뷰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의친왕 사위인 이학진 옹은 젊은 시절 故조남철 국수와 인연을 맺고, 우리 바둑계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준 숨은 공로자죠. 당시 돌아가시기 1년 전이라 원했던 만큼 많은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죠. 하지만 뒤늦게나마 그런 바둑계에 많은 공로를 하신 분을 인터뷰했다는 것이 참 기억에 남아요.

- 참.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데,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외형이 크게 두 번이 바뀌었죠. 지금의 시원시원한 46배판인데, 이전 크기보다 눈에 띄게 커졌죠. 이와 관련된 일화는 없나요.
2000년, 2011년 크게 두 번 바뀌었죠. 보통 월간지는 한 번 보면 버리기 마련인데, 월간바둑은 차곡차곡 모으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사이즈가 확 바뀌게 되면 다른 책같이 느껴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바꾸기 이전 3~4차례 설문조사에 ‘월간바둑 불매운동을 벌이겠다.’ 등 열혈독자들의 반발이 아주 매서웠습니다.
하지만 2011년 1월호부터 과감하게 바꾸었죠. 시원해보이고, 이미지로 부각할 수 있는 점등 장점이 많았거든요.

- 올해 일본 전통바둑잡지 위기(圍基)가 5월호(통권737호)를 끝으로 휴간했죠. 개근 중인 월간『바둑』은 이런 위기가 없었나요? 한 때 폐간설도 바둑계에 적잖이 돌았는데요.
폐간 이야기는 없었고, 위탁경영은 나왔어요. 자회사인 사이버오로에서 3년 가까이 맡았었으니까요. 
이는 월간『바둑』이 수익을 벌고자가 아닌 보다 많은 이들에게 바둑을 알리고자, 창간된 것이기 때문이죠. 1980~1990년 초반에는 기원재정에 보탬이 되는 등 활황기도 있었지요.

▲월간바둑 현장팀(?) 왼쪽부터 구기호 편집장, 김정민 기자, 이세나 기자

- 현재 월간바둑 취재기자는 앞서 나온 이세나, 김정민 기자 이렇게 두 명이죠. 함께 월간바둑을 이끌어나가는 업무적 파트너로 자랑을 해주신다면요. 바둑도 엄청나게 강하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말년에 복덩이를 만났죠. 저도 현장에서 뛰지만 그걸 고려해도 현장취재인원, 편집까지 3명이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거든요. 이 친구들을 안 만났으면 힘들었을 거예요.
우선 둘 다 바둑이 아주 강합니다. 바둑콘텐츠를 제작하라면 아마 3단 이상의 기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세돌 9단 친누나인 이세나 기자는 아마여류강자이고, 김정민 기자 역시 남자연구생 1조 출신이거든요. 제가 구멍이겠지만, 나중에 팀을 이뤄 직장인 바둑대회를 나가보고 싶기도 해요. 하하
또, 두 기자의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 팀워크 부분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죠. 이세나 기자는 글 솜씨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들어온 경우(이화여대 국문학과 졸업)인데 글도 좋고, 무엇보다 마감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김정민 기자는 근성이 좋죠. 자신이 원하는 글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움켜쥐는 글에서도 승부사입니다.

- 표정에서도 신뢰가 묻어나오는데요? 편집장님과 이세나, 김정민 기자의 나이 차가 꽤 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바둑기자 쪽에서도 까마득한 후배인데요. 함께 일하다가 젊은 세대들과의 시각차이, 즉 관점의 차이를 느낄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왜 이러세요. 특별히 그렇게 느낀 적은 없습니다. 제가 그 친구들을 많이 이해하려고 합니다.

- 흠. 그렇다면 젊은 세대, 젊은 기자들이 추구하는 콘텐츠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그러고 보니 기림(棋林)이라는 포토드라마가 연재되고 있기도 한데요.
제가 글의 방향을 코치도 하지만 신선하게 하자고 하는 것은 100% 수용하는 편이에요.
포토드라마는 사실 안 맞는 부분도 있어요. 두 친구가 왔을 때 물어봤어요. 꼬맹이 때 본 월간바둑 콘텐츠 중에서 가장 재미있던 것이 무엇인지요. 그 친구들이 어릴 때 포토카툰이라고, 바둑 사진에 말풍선을 넣은 코너가 있었는데, 그 코너를 꼽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부류의 콘텐츠를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지요. 다시 하기는 물리잖아요? 또 김정민 기자는 입사 전 경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포토드라마를 기획한 것이죠.

- 반응은 어떤가요?
보통 독자의 소리, 문의 전화, 취재현장에서 독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하는데요. 포토드라마의 경우 젊은 독자층은 바둑리포트, 젊은 프로기사가 등장하니 참신하다. 중, 장년 독자층은 달갑지 않게 보시기도 하고요. 호불호가 갈리는 유일한 코너죠.
기림이 종료되면 기존 기림을 보완해 풀 버전을 만들어 인터넷 매체에 게재하려고 해요.

-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네요. 45주년을 맞은 월간바둑. 앞으로 월간『바둑』의 목표를 말씀하신다면요.
기자가 늘어나, 더욱 다양한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월간『바둑』이 됐으면 합니다. 또, 한국에 바둑이 있는 한 계속 월간『바둑』이 있어야겠죠. 그것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바둑팬의 바람 아닐까요?

총 댓글수: 0새로고침

0/150자등록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