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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총걸음]

'한국 프로기사만큼 강해지고 싶어요'

외국인 특별입단 우크라이나 출신 마리야 초단 인터뷰

김지은 기자2013-01-13 1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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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니 꽤나 오래전 기억이다. 가만있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정말 무덥던 날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바둑축제' 취재를 갔었다. 기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사진을 찍는 포즈도 어색했던 그 시절 절로 기자의 렌즈가 바둑삼매경에 푹 빠져있던 한 외국인 소녀에게 향했다.

▲2009년 '서울시민과 함께하는 바둑축제'에서 마리야양

매우 더운 날씨에도 몇 판을 소화했던 그녀는 대국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기력도 상당해보였던 그녀는 대국 후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에 수즙게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고,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국말로 또박또박 행사에 나온 소감을 말해주기도 했다.

그 후 다른 바둑행사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그녀는 바둑유학을 온 꿈 많은 소녀였다. 후에 기자의 귓가에는 차곡차곡 여자연구생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끔씩 기억나던 그녀.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29일 제98회 한국기원 상임이사회에서 그녀의 외국인 특별입단이 확정돼 객원기사로의 활동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녀의 외국인 특별입단은 제니스김 초단, 알렉산더 디너스타인·스베틀라나 쉭시나 3단, 코세기 디아나 초단에 이어 다섯 번째다.

이제 그녀의 정체(?)를 대충 눈치 채셨으리라. 바로 우크라이나 출신 마리야 자카르첸코(Mariya Zakharchenko)초단(이하 마리야)이다. 1995년생인 마리야 초단은 2008년 8월 한국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한국기원 여자연구생 1조 5위까지 오른 바 있다.

오랜 한국 바둑유학생활 끝에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할 마리야 초단. 한국기원 옆 카페 유전에서 오랜만에 만난 마리야 초단은 소녀에서 이쁜 아가씨 로 성장해 있었다. 

▲마리야 초단. 우크라이나 첫 프로기사. 

-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잘 지냈죠? 지난해 연말 특별 입단에 성공했는데, (입단)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땠나요?
어머니는 당연히 기뻐하셨고, 우크라이나 바둑협회 등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어요.
저는 2개월간 기다림 끝에 결정됐음인지 마음이 편했어요. 외국인 특별 입단은 (여자의 경우) 1조 실력이 되어야 자격이 돼요. 제가 지난해 10월 여자연구생 1조 진출을 확정짓고, 이를 신청했는데, 1조에 오른 직후라 아직 1조 실력에 다다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판단됐는지 결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거든요.

- 바둑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2004년 여름이요. 저의 10살 생일에 삼촌이 13줄 바둑판 세트를 선물로 줬어요. 그 바둑판으로 여름 3주간을 해변에서 가족들이 모여서 바둑을 뒀죠. 3주 동안 둔 바둑이 70판 정도 되니 말 다했죠.

- 삼촌이 바둑을 굉장히 잘 두셨나봐요? 삼촌의 기력이 궁금해지네요.
아니요.(웃음) 삼촌은 초보자예요. 70판이 끝나갈 때 쯤에는 제가 이기게 됐으니까요. 그해 가을 바둑시합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서 시합에 참가했죠. 첫 참가였는데 우승을 했죠. 물론 초보자들만 나오는 부였지만 기분이 아주 좋았어요. 그리고 그 때 19줄 바둑판이있다는 것도 알아서 깜짝 놀랐죠.

- 대단하네요. 이후로도 바둑을 계속 배웠나요? 
2005년 봄에 우크라이나에 아마 5단 선생님에게 지도받기 시작했고. 그해 여름 선생님과 시합 참가차 러시아에 가게 됐어요. 그렇게 시합도 참가하고 계속 공부하다가 2007년 러시아에서 천풍조 사범님(9단)을 만났는데 한국 유학을 권유하셨죠.
제 기력이 당시 2급 정도였는데 처음에는 준비할 것도 많았고 결정하기도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KGS 등 인터넷사이트에 접속해 천풍조 사범님에게 배우다가 2008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유학을 왔죠. 유학올 때 초청장 준비, 비행기표 후원(LG) 등 천풍조 사범님과 한국기업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 지금도 어리지만(한국나이 19살, 유럽 나이 17살), 당시에는 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아무리 바둑이 좋다고 하더라도 유학까지 결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2008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아마 초단 정도였어요. 사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여자바둑고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당시 잘두는 여자가 2~3급 정도였는데 실력이 강해져서 남자 아마 6~7단 그룹하고도 비슷한 실력이 되고 싶었죠.

- 바둑실력이 생각처럼 쉽게 늘지 않잖아요? 타지 생활이니 언어도 문제가 될 것이고. 한국에서 바둑공부는 어떻게 했나요?
골든벨 바둑도장, 산본 바둑도장, 기린아 바둑도장, 진석 바둑도장에 주 1~2회 나갔고, 주말에는 아마강자 모임인 정맥회와 압구정기원 리그, 여자연구생리그에 참가했어요.
사실 우크라이나 학교 졸업 때문에 2010년까지는 바둑공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인터넷으로 수업을 듣고, 숙제, 시험도 꼬박꼬박 하면서 바둑공부를 해야 해서 졸업할 때 까지(2010년)는 학교공부 외에는 실전 위주와 천풍조 사범님의 복기가 주를 이뤘어요.

- 타지에 유학까지 왔는데 바둑에만 집중할 수 없었네요? 굉장히 힘들었겠어요.
어머니와 함께 유학을 왔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아버지와 오빠는 인터넷 화상채팅을 자주 하니 외롭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바둑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서 힘들었어요. 입단을 꿈꾸는 한국 아이들은 6~7살에 바둑을 시작하는데, 저는 늦게 시작한데다가 우크라이나에서도 그렇게 바둑공부를 해본 적이 없으니 적응하기도 힘들었죠. 공부시간도 적었고요.

- 사실 인터뷰 약속을 잡기 전에 마리야 초단이 한국어 실력이 궁금했는데, 굉장히 잘하네요? 한국어 공부는 따로 했나요?
잘 못하는데…. 처음에 한국어 입문자 책을 봐서 조금 공부했는데, 나중에는 할 시간도 없고 해서 책을 버리고 실전에서 많이 배웠죠.

- 첫 시합일은 언제인가요?
30일 열리는 2013 동아팜텍배 오픈 신인왕전 1회전이 저의 첫 시합이에요. 1주일 후에 이사를 해야해서 시합준비는 별로 못했네요.

- 프로로서 첫 대국인데 어떨 것 같나요?
아직 안 둬봐서요. 아마 많이 다르겠죠.

- 마지막으로 마리아 양의 목표는?
우선 한국 프로기사와 비슷한 실력을 키우고 싶어요.

삼촌에게 배운 재미있는 놀이로 저 멀리 한국에 유학 와 자신의 1차 꿈을 이룬 마리야 초단. 마리야 초단이 밝힌 우크라이나 바둑 인구는 약 1천명. 그 중 아마 6~7단 급은 10명 이내라고 했다. 한국에서 멋진 프로생활을 즐긴 후 고향 우크라이나에서 바둑보급에 일조하고 싶다는 마리야 초단의 꿈에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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