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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

아버지의 완성은 아들이다

-강금채, 강병권 부자(父子)의 설날 산책

김종서 작가 2013-02-10 11: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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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길은 계속 이어진다

폭설과 강추위에 북한강이 얼어붙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들과 나란히 서 본다.
이 녀석, 생각은 많은데 말이 별로 없다.


이렇게 살아야 하고 저렇게 견뎌야 한다고 틈만 나면 훈수하지만
빙그레 웃기만 한다.
때로 그 과묵함이 듬직하게 느껴져도 좀 서운한 게 사실이다.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들의 길은 참 험하고 멀었다.
앞만 보고 길을 달려왔지만 이젠 자식들의 길도 안내해야 하는 시간이다.
마음 다치지 않고 반듯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생의 길이 어찌 늘 순탄할 수 있으랴?
애비가 한발 앞서 길을 닦아도 네 마음이 흔치 않으면 제 길이 아닌걸.
야무지게 걸어라. 아들아!


프로기사 강병권 2단.
강동 명인도장과 양재호 9단으로부터 사사하고 충암도장에서 수학.
아마 시절 이창호배와 삼다수배에서 우승하고 17세에 잉창치배 세계청소년 바둑대회에서 미위팅을 꺾고 우승, 유망주로 떠오름.
그러나 입단대회 때마다 결정적 고비에서 실족하는 아픔을 겪음.


2012년 입단대회에서 치열한 동률 재 대국을 거쳐 프로면장을 받음.
입단 첫해 50국까지 승률 70%를 상회하며 랭킹 20위까지 진입.
국수전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함.


현재 부모의 품을 떠나 충암도장 인근에 방을 얻고 바둑공부에 전념 중.
올해 세한대 언어치료학과에 입학해 대학수업과 한국리그 준비 중인 푸른 신호등의 청춘.


“아버지, 한 잔 올릴게요.”
병권이 처음으로 아버지께 술을 올린다.
외아들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는데 프로 입단이 늦어지면서 무던히 속을 썩혔었지.
이 술잔은 그런 마음의 부채를 녹여 담은 정수이며, 이제 당당하게 일어선 자신감의 표현이다.


S#2. 한 길만 바라보다

강금채 회장은 바둑계의 호인(好人)으로 유명하다.
글로벌 바둑CEO과정 3기 원우회장을 맡으면서 바둑계에 알려진 인물.
1기 SG물산 이의범 회장, 2기 지지옥션 강명주 회장 등 쟁쟁한 바둑계 인사들이 원우회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방에서 상고를 나와 수산업에 뛰어들었다.
중부시장에서 출발해 가락동 시장이 오픈할 때 조미 김과 멸치유통으로 조선시대의 허생(許生)처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늘 웃음기 가득한 관상이 좋아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고급 참치를 식자재로 수입하는 일과 금융컨설턴트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필자와는 GBC 동기로 함께 활동했는데 처음엔 그가 왜 바둑을 좋아하는지 몰랐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이 연구생 강병권이었다.
아마대회에서 곧잘 정상에 오르며 성적을 내는데 프로 입단대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며 그는 가슴아파했다.
아들이 스무 살을 넘으면서 강금채 회장은 장고에 빠졌다.
어려서 반짝이는 기재가 있어 바둑을 시켰는데 혹시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러나 바둑만 공부하고 성장해 온 아들은 바둑 이외에 세상물정을 아는 게 없었다.
그것이 바둑지망생 아버지들의 공통된 아픔이리라.


그래서 강회장은 바둑학교를 생각했다.
서울 곳곳을 다니며 학교 부지를 살폈다.
아들에게 바둑학교라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애가 끓는 부성애를 읽었던지 아들은 2012년 기어이 입단에 성공했다.


그날 강 회장은 아들을 만나자마자 등에 업고 몇 바퀴 돌았다.
평생의 숙원이 풀린 날이었다.
“아들한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저 고생길을 권하고 등 떠밀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아들이 프로 가 되었으니 힘닿는 데까지 응원하고 밀어줘야죠.”


그런 내력이 있어 강 회장의 바둑 사랑은 유별났다.
바둑 모임의 리더로 앞장서며 바둑계의 요청에 마다하는 법 없이 마음을 보탰다.
중국 명사들과의 바둑교류전이나 몽골 바둑 보급행사에 참여해 바둑계의 원군으로 활동했다.


S#3. 이젠 즐기고 싶다

강금채 회장은 타이젬 마니아이다.(4단~5단)
매일 오전 사무실에 출근하면 타이젬 대국실로 들어와 바둑을 둔다.
그의 기풍은 어설픈 이창호 류로 통한다.
“상대와 엉켜 부딪히는 게 싫어요.”
그는 체질적으로 몸싸움을 싫어한다.
그냥 서로 한 수씩 두면서 구획을 정리하자는 기풍이다.
그래서 사석이 없는 바둑이다.


“며칠 전에 아들과 모처럼 바둑을 뒀지요. 다섯 점을 깔고 뒀는데 반상에 제 돌들이 거의 전멸했습니다. 와따, 프로 바둑이 세긴 세더구만요.”
타이젬 4단과 5단을 오가는 기력인데 프로기사 아들에게 손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기분이 묘하던데요? 아들 실력을 확인해서 좋기는 한데 제 바둑이 그렇게 엉망이었던가 싶으니 살짝 화도 나고 하하하.”
강금채 회장은 앞으로 타이젬 바둑을 더 많이 즐길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좋은 바둑대회를 후원하기 위해 사업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아들, 1등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바둑을 즐기면서 네 길에 만족하면 아빠는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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