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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이 오래가는 오누이로 남아야죠
김남훈 김민정 남매
진재호2014-02-06 12:43:13
▲ 입단 면장수여식에 참석한 김민정-김남훈 남매.
2010년 2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한창이었다. 아마강자 김남훈은 지인들에게 여동생 자랑을 해대고 있었다. "우리 동생 금메달 땁니다. TV 꼭 보세요!" 솔직히 자랑이라기보다는 으스대었다는 편이 옳았다. 으스댈만도 했다. 마치 당시의 바둑처럼 국제대회에 출전만 하면 금메달을 따오던 종목인 쇼트트랙 국가대표 김민정이 그의 여동생이었으니 말이다.
온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려있던 쇼트트랙 경기. 일찍이 한국이 올림픽 5연패를 했던 여자 3000m 계주 결승에서 김민정은 힘차게 트랙을 돌고 있었다. 중국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마지막 5바퀴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당당히 1위로 나선 가운데 끝내기까지 완벽하게 해내며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역시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역사상 희대의 오심이 금메달을 빼았았다. 레이스 도중 김민정이 코너를 돌 때 상대선수의 얼굴을 오른팔로 가격했다며 실격 판정을 내린 것. 당시 김민정은 미니홈피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하늘이 우릴 돕지 않는구나. 너무 억울하다"고 비통한 심정을 내비쳤다. 실격판정을 내린 그 심판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안톤오노의 할리우드액션에 넘어가 김동성의 금메달을 빼앗은 인물이었다.
▲ 지난 1월 입단이 확정된 순간의 김남훈.
지난 1월 2014년 입단대회에서 화제의 인물이 있었다. 프로의 관문을 통과한 이 중에 사연 없는 이가 있겠냐만, 나이 30에 30번이나 줄기차게 입단대회에 출전하다 천신만고 끝에 입단에 성공한 김남훈이었다. 일반입단대회를 통과한 30세 이상 입단자는 지난 1997년 36세의 나이로 입단한 박성수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실 십 수 년 전부터 입단후보자들의 기량은 만개했으나 입단 관문이 너무 비좁다 보니 입단을 포기하는 사례들이 속출했고, 그런 악영향의 여파로 최근 몇 년간은 입단자의 연령대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와중에 30세 김남훈에게 팬들은 오랜 준비 기간 동안 힘들고 고달팠던 시간을 참고 견뎌준 그의 열정과 노력에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많은 나이에 입단하는 현실이 한국바둑의 문제점이라며 울분을 토하는 팬들도 많아, 때 아닌 '흉탄'에 김남훈은 죄인이 된 것 같아 가슴이 쓰리기도 했다. 말이 좋아 30차례 입단대회지, 십년 이상을 입단 공부에만 매달려있었던 그 노고를 생각해보라. 김남훈의 어머니는 그가 입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저 말없이 몇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 쇼트트랙 밴쿠버 올림픽대표 김민정.
지난 4일은 제133회 일반입단대회에서 영예의 입단관문을 통과한 7명에 대한 면장수여식이 거행되었다. 이런 평생의 기념되는 날엔 통상 부모님들이 함께 하는 것이 관례. 이날 행사에 평소 스포츠를 즐기는 기자의 눈에 어디서 많이 본 아가씨가 한명 눈에 들어왔다. 순간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스포츠스타라는 사실은 직감했다. '아하! 김남훈의 여동생이구나!' 모든 기자들이 단상에 카메라를 들이댈 때 기자는 거꾸로 김민정(29)에게 초점을 맞췄다.
TV에서 뵌 것보다 훨씬 미인이네요. 지금도 선수생활을 하나요?
"감사합니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비교적 은퇴가 빨라요. 바둑처럼 고교시절에 두각을 나타내서 제 나이에는 거의 은퇴를 하죠. 여자선수들은 24세 정도, 남자선수들은 30세 정도까지 합니다. 전 서울시청소속으로 아직도 현역입니다."
그럼 바쁘실 텐데 오늘 면장수여식에는 웬 일로?
제가 오빠 보호자잖아요? (웃음). 새벽 운동 갔다가 부랴부랴 나왔어요. 장한 오빠 자랑스러워서요.
사실 오빠나 누나가 부모님 대신으로 참석하는 경우는 있지만 한 살 터울의 여동생이 부모님 대역으로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다. 김민정은 첫눈에 엄청 활달하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똑똑해 보였고, 운동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쑥한 외모를 지녔다. 그녀에게서 금메달박탈이라는 불운은 도무지 느껴지지 않았다.
▲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결승에서 역주하는 파란
유니폼의 김민정. (사진출처=연합뉴스)
김남훈은 동생 칭찬이 이어진다.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써요. 어릴 때부터 검도 태권도 서예 미술 볼링 수영 당구 등 거의 전 종목에 대해 못하는 게 없을 정도로 타고난 예체능꾼이예요. 활발한 성격에 학교 다닐 때는 이미 리더 기질을 발휘했죠." 그래서 일까. 현재도 여자 쇼트트랙 선수 중 맏언니로서 리드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동생 프로필은 인터넷 쳐 보면 나오겠지?"
"아, 엄청 많아요!"
아니나 다를까. 오후에 김민정을 검색해봤더니 관련기사가 너무 많아 어느 것 부터 보아야 할 지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블로그엔 가장 최근 소식으로 4시간전에 있었던 입단면장 수여식 소식이 들어가 있는게 아닌가.
<우리 오라방 소개 겸 입단면장 수여식>
우리 오빠야랑 저랑 닮았어요????? ㅋㅋㅋ
오빠야 오늘 축하해주러 온 착한 동생 ㅋㅋㅋ
▲ 어린시절 두 남매. 김민정-김남훈.
면장수여식을 마치고 김남훈과 얘기를 이어갔다. 17년 전 박성수와 최철한 사제가 동반 입단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김남훈은 당시부터 입단대회에 참가한 이후 지금까지 30번째 출전했다고 한다. 그야 말로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송태곤 박정상 등이 같이 공부하던 시절의 친구였다. 그들은 이미 세계대회에서도 우승 준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실패를 거듭하며 나이가 많이 찬 후배들이 나의 예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늦게 입단한 만큼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죠."
솔직히 제자를 키우는 사범으로서 제자들 몫을 빼앗은 것은 아닌지 얄궂게 물어봤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르친 아이가 입단할 뻔했는데 결국 못하니까 몹시 아쉬웠어요. 그러나 실력이 있으면 결국 입단할 수 있으니 1년 늦어진다 해서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번 입단대회에서 입단을 하리라 생각했었나요?
마지막 입단대회 참가라고 생각했어요. 다음엔 안 나오려고 했으니까요. 나이가 30이 되니까 생각이 많아지게 되고 준비를 하는 기간도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다른 일은 아예 못하고 입단 준비만 해야 하니까 나에겐 갈림길이죠. 그런데 운 좋게 턱 입단한 것입니다.
30번 중에 가장 안타까웠을 때가 있다면?
2008년 군에 갔다 와서 첫 입단대회를 나갔어요. 뭐, 준비과정도 별로 없어 나갔죠. 이호범 김세동이 입단했는데, 그때는 2명이 입단할 때였어요. 최종 4명에서 2명이 입단하는데, 첫판 이기고 두 판중에 한판만 이기면 되었어요. (한숨을 쉬더니) 왜 그리 떨리던지, 역전패를 당하고 한숨도 못 자겠는 거예요. 그 다음날 또 졌죠. 그 후로 새삼스레 미련이 남더라고요. 2명 뽑는데 3등 했다면, 7명 뽑는데 7등 못하겠나 하면서요.
다른 길을 가는 남매지만 참으로 닮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누구 못지않은 재능으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었지만, 눈에 띄는 성과물은 갖지 못했던 불운까지도 똑같다. 그러나 향기가 오래가는 꽃처럼 지금도 화려한 리즈시절을 구가하는 것도 똑 같다. 1등이 아니라면 2등을 위해서, 2등이 아니라면 3등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진정한 프로의 모습일 것이다.
내일(8일)이면 러시아 소치에서는 201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김남훈 김민정 오누이도 과거의 안타까움은 이제 내려놓고 맘 편히 맥주잔을 기울이며 TV시청을 해도 되리라.
▲ 다정한 오누이의 셀카.
▲ 첫 출전한 바둑왕전에서 무릎을 꿇고 대국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김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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