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홍도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후원아집도(後園雅集圖)'의 일부분. 109.3×5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일부 선비들의 풍류로만 알려졌던 조선시대 바둑의 풍속도에 대해 안대회(영남대 한문교육과)교수가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계간지 '문헌과 해석'여름호에 발표할 '조선의 바둑계를 평정한 국수 정운창'이란 논문을 통해서다.
안교수는 "조선시대의 개인 문집이나 야담집 등을 통해 18세기의 다양한 기인(奇人)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바둑 관련 기록이 상당히 많음을 알게 됐다"면서 "바둑의 명인을 묘사한 글을 보면 요즘의 스포츠 스타나 유명 연예인에 대한 서술을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안교수는 "바둑의 명인이 사대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두루 화제가 되는 분위기에서 전문 기사들이 탄생한 듯하다"고 말했다.
안교수가 논문 작성에 참고한 문헌은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1760~1815)이 지은 '정운창전(鄭運昌傳)', 이서구(1754~1825)의 '기객소전(棋客小傳)', 유득공의 아들 유본학의 '바둑에 능한 김석신에게 주는 글(贈善棋者金錫信序)' 등.
안교수에 앞서 지난해엔 계명대 한문교육과의 김윤조 교수가 '조선 후기 바둑의 유행과 그 문학적 형상 - 이서구와 이옥의 기객 정운창에 대한 전(傳)을 중심으로'란 논문을 통해 바둑 관련 조선시대 자료를 처음으로 소개한 바 있다.
'바둑 인물사'(한국기원)를 펴냈던 프로 바둑기사 권경언 6단은 "'바둑 인물사'를 쓴 9년 전만 해도 바둑 관련 조선시대 기록이 거의 없어서 정운창 등을 언급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6단은 "주목받지 않았던 개인 문집이 잇따라 공개됨에 따라 조선시대 바둑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 볼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새로운 자료들을 포함해 '바둑 인물사'를 다시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윤조.안대회 두 교수의 논문을 토대로 조선 후기의 바둑 계보를 대략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반을 풍미한 왕실 출신의 덕원군을 꼽을 수 있다. 덕원군에 이어 17세기에는 유찬홍.변흥평.최기상.신환 등의 고수들이 명멸했고, 그 뒤로 18세기 중후반에는 김종귀.정운창.김한흥.김석신 등이 명성을 날렸다. 안교수에 따라 이를 더 단순화하면 덕원군-정운창-김석신으로 최고수의 계보가 이어진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안교수는 김종귀와 정운창의 드라마틱한 대국 장면을 소개한 뒤에 승리자인 정운창을 조선 최고의 국수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대해 권6단은 "나이 든 김종귀를 젊은 정운창이 이겼다고 해서 정운창이 더 세다고 단정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전성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권6단은 "예를 들면 이창호 9단이 전성기가 지난 자신의 스승 조훈현 9단을 이겼다고 해서 '이창호가 더 고수'라 말하는 것이 무리인 것과 같다"며 "김종귀와 정운창 모두 당대 최고수임에는 틀림없다"고 했다. 그는 "정운창을 비롯한 고수들의 정확한 생몰연대가 아직 파악되지 않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배영대 기자<balance@joongang.co.kr> 2004.03.23 17:34 입력 / 2004.03.24 08:20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