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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창호 바둑론 / 바둑학이란 무엇인가?

[칼럼] 이창호 바둑론 / 바둑학이란 무엇인가?

i진선2004-07-12 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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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바둑론

양 건(바둑학과99)

 

현대바둑에서 이창호를 말하지 않고서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의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수많은 기사들이 그의 바둑을 연구하고 있고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그 중요성에 비해 뚜렷한 연구발표가 없다는 점은 다소 안타까운 점이다. 그의 바둑에 대해서는 어떤 신비감만을 표현하려는 노력정도라고나 할까. 여러 가지 이창호선국집, 이창호걸작선 같은 책에서도 단순히 그의 대국기보 만을 옮겨 실어 놓는데 그쳤고 바둑지에서의 특집기사 역시 전문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이렇다할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 역시 다양하고 심도 있는 내용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글을 토대로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 수정 보완하여 다른 이에게 공감할 수 있는 정확도 높은 내용을 만들어 내도록 노력하겠다.

이 글에서는 이창호 바둑의 감정과 약점을 통해서 이창호의 궁금한 것들을 풀어보려고 노력했다. 내 자신이 실력이 미흡한 관계로 다소 자신없는 부분이 많이 있지만 처음 시도해 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내가 생각한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1. 이창호 바둑의 강점

이창호 바둑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끝내기라 할 수 있다. 끝내기 분야에서 만큼은 저단 시절부터 인정받았던 분야이고 지금은 누가 뭐라고 세계 1인자다운 끝내기라 인정받고 있다. 끝내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실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중요성을 느낄 수 있는 분야로서 이창호 끝내기의 중요한 의미는 그의 바둑이 끝내기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바둑을 초반 중반부터 간명하게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반전투가 끝나고 바둑을 결정지어야 할 무렵에서 상대가 끝내기가 강하고 자신이 형세에 대해서 확실한 자신이 없다면 좀 더 쉽게 바둑을 마무리지 못하고 어렵고 좀 더 난해한 형태로 이끌어 나가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창호의 높은 승률은 바둑을 간명하게 이겨내는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닐까?

하지만 이창호에 대해서 끝내기만 세다. 라는 식의 얘기는 그를 평가절하 하는 것이다. 두터움을 잘 이용한다는 점. 수읽기가 뛰어나다는 점. 등등 그의 바둑에서 여러 가지 뛰어난 수들은 기보를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바둑판에서 요기 바로위 '+'를 누르시면 편하게 기보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1) 두터움의 활용

1도는 94년도의 바둑으로 조훈현 九단과의 바둑으로 이 九단의 흑번이다.

이 바둑은 이 九단의 특징이 잘 나타난 바둑으로 별다른 싸움없이 흑1,3으로 무난하게 우상변 중앙쪽을 에워싸면서 승세를 굳혔다.

이후 조 九단의 무리수를 적절히 응징하여 무난히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러한 패턴은 이-조 바둑에서 흔히 나오는 패턴으로 이런 식의 바둑이 되면 으레 이 九단이 이겨내고 있다.

 


2) 뛰어난 형세판단

2도는 유창혁 九단과의 바둑으로 이 九단이 흑번이다. 어려운 장면에서 백1의 치중이 유 九단의 치열한 노림으로 계속되는 백7이 강수이다.

실전진행은 거의 필연이지만 흑34까지 좌변 흑대마가 잡혔지만 중앙 흑 모양이 크게 결정지어 지면서 반면 10집은 흑이 우세하게 되었다.

유 九단의 수읽기와 이 九단의 형세판단의 명암이 극명하게 나타난 바둑이라 하겠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승부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능력임을 입증한 한판이다.


3) 세계 최강의 끝내기

3도는 조치훈 九단과의 바둑으로 이 九단의 흑번이다. 유독 조 九단에게 만큼은 천적이라 할 만큼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는데 이 바둑이 조 九단으로서는 제일 아쉬운 한판이라 하겠다.

양쪽 다 초읽기에 몰린 상태에서 백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면인데 여기서부터 백의 실착이 연이어 진다. 흑1은 무리수로 5의 자리에 씌우면 거저 보태주게 된다.

백2가 실착, 계속해서 백 12.20.36이 실착으로 흑39의 시점에서는 기어코 역전이 되고 만다. 백의 실착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흑의 빈틈없는 따라붙기는 과연 끝내기의 이창호라 할만 하다.


(위의 기보 세 개 2) 3) 4) 는 꼭 복기해보셔요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데@.@:: 고수님들만 한 수 한 수를 이해하실듯 싶네요...ㅠ.ㅜ::)

4) 정확한 수읽기

4도는 이 九단의 정확한 수읽기를 보여주고 있는 한판이다. 이 바둑은 진로배에서 고마쯔 九단과의 바둑으로 이 九단의 흑번이다.  흑1로 뒤로 찝은 수가 생각하기 어려운 점으로 백2로 잇는다면 흑3으로 막아서 언뜻 보기엔 흑이 수가 부족해 보이나 4도와 같은 수준으로 메워가면 흑이 한 수 빠른 모습이다. 

실전은 백이 8로 밀어가 반발했으나 백2쪽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흑의 완승으로 끝이 난다. 속기전에서 여기까지 수읽기를 하고 둔 다는 것은 그가 바둑에 대하는 진지함과 확신 없는 수읽기가 아니라면 보여질 수 없는 그림이다.


5) 부동심

5도는 근래에 보기 드문 명승부로 주목받은 한판이다. 백1로 패로 버틴 장면에서 줄곧 우세를 지켜오던 흑이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흑4가 그 신호탄으로 흑6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백7.9가 기민한 이득으로 백15로 갈라지는 수가 성립 되어서는 천하의 이창호라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추측된다.

이런 큰판에서 덤에 근접한 손해를 본다면 보통은 자멸하거나 그냥 밀리게 되는데 불가사이 하게도 이 바둑은 이 九단의 역전승으로 끝이 난다. 역시 이 바둑에서도 이런 큰 실수 이후에 흔들림없이 끝내기로 상대를 흔들었던 것이다.


2. 이창호의 단점

저단 시절 이 九단의 약점이라 불렸던 부분은 포석이었다. 사실 조훈현 九단에게 포석에서 압도적으로 밀려서 어이없이 진 바둑도 여러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국제기전에서 흑번 포석 24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포석이 문제라는 부분은 어느 정도 극복한 듯 하다. 그렇다면 단점으로는 어떤 면이 있을까? 상대적으로 불리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기사의 바둑에서 찾아보기로 하자. 이 九단이 다소 어려운 승부를 하고 있는 기사는 요다 九단, 가토 九단, 유창혁 九단 정도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들이 더 실력이 강한 것은 아니고 좀 더 나은 내용의 바둑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기사들의 특징들을 보면 두터운 바둑을 둔다는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조치훈 九단, 조훈현 九단, 마사요춘 九단 등의 엷지만 뛰어난 타개와 전투바둑을 구사하는 기사에게는 다소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고 있다는 점과 볼 때 비교된다. 

그렇다면 왜 두텁게 두는 바둑에게 고전할까? 그의 특질이라 할 수 있는 두터움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어서 상대에게 기선을 빼앗기면 자신의 특징을 살리기가 힘들어지므로 고전하는게 아닐까? 실례로 왜 요다에게 약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자신이 괴롭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두어오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특히 요다 九단에 대해서 승률이 좋지 않은데 이것은 요다 九단은 실수가 적은데다 두터운 바둑을 구사하고 또한 이 九단과의 대국에서 주로 흑으로 두었다는 것이 승부에 어느 정도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바로 이 부분에서 단점을 찾아보기로 하자. 


1) 백번 포석이 약점

최근 이창호의 특징은 흑번으로는 쉽게 이겨내고 있지만 백으로는 고전 끝에 반집이나 한집반 정도 이겨내거나 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상대가 대부분 초일류기사 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무리일 지 모르나 아무튼 백번으로는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례로 99년 삼성화재배 결승 5국에서 백돌은 두 개 놓았다는 것을 유명한 일화이다.

6도는 99년 춘란배에서 요다 九단과 둔 바둑으로 이 九단의 백번이다. 흑89까지 흑의 두터운 국면으로 요다 九단의 특징이 잘 나타난 포석이다.


2) 두터운 바둑에 약점

7도는 킬러 가토 九단과의 바둑으로 이 九단의 흑번이다. 백1로 날일자 씌움이 절호의 곳으로 여기서부터 백의 두터움이 힘을 발휘한다.

흑24에 백5.7로 되모는 수가 강력한 수로 가토 九단의 저력을 볼 수 있다. 흑16세 백17.19가 다시 번 강타로 흑은 힘 한번 못 쓰고 무너지고 만다.

이 九단의 명국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겠지만 상대가 제대로 공격해 오면 힘들어하는 바둑이 유창혁 九단과의 바둑에서도 종종 보인다.


(바둑판에서 요기 바로위 '+'를 누르시면 편하게 기보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3) 공격 바둑이 약함

8도는 이 九단의 흑번으로 이 九단의 바둑에서 보기 드물게도 완전한 세력작전을 지향하고 있다. 상대인 최명훈 六단은 이 九단과 비슷한 이 풍으로 이 당시 이 九단에게 연패를 거듭하던 중이었다. 

흑11부터 세력작전을 시도하더니 흑 37까지 중앙일대를 키우고 있다. 단연 문제수는 59로 붙인 수로 백66까지 되어서는 이미 흑으로서 이기기 힘든 형세가 되었다. 

흑59로는 중앙 일대를 공격했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 九단은 두터운 바둑을 두지만 그러다고 세력 바둑을 잘 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한판이다.


3. 기 타

이제까지 이창호 바둑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여러 가지 측면을 볼 수 있지만 이 九단이 흑번으로 자신의 스타일로 두어간다면 거의 지지 않는다는 점과 백번 포석 일 때 상대가 두텁게 두어오고 정확하게 공격해 온다면 약간의 틈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것 역시 초일류 기사들과 대국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의스럽기까지 하다.

이 밖에 요다 九단에게 약한 이유와 이 九단의 신수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1) 왜 요다에게 약한가?

9도는 93년 동양증권배 본선에서 두어진 바둑으로 이 九단의 흑번이다.  흑△ 로 두어진 장면에서 백이 약간 우세하다는 평이 있었으나 이 九단은 백1이라는 대무리수를 두고 만다. 

흑4로 나가는 수를 보지 못한 듯 싶은데 이런 현상은 형세를 비관했거나 집중력이 떨어졌을 때 나오는 현상으로 이 九단이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은 상대가 요가 九단 이어서 일까? 

하지만 흑도 18이라는 느슨한 수를 두어서 바둑은 오래 가게 된다. 하지만 흑은 여기서의 포인트를 기점으로 시종일관 두텁고 견실하게 두어서 한집 반을 남기게 된다. 이는 요다 9단이 실수가 적은 바둑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바둑판에서 요기 바로 위 '+'를 누르시면 편하게 기보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 이창호의 신수

이창호의 신수는 여러 가지 유명한 형태가 많지만 중요한 점은 주로 큰 시합에서 두어지고 있다는 것으로서 그의 평소 공부량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0도는 요다 九단과 신예대표기사 5번기중에서 두어진 대국이다. 

지금은 대단히 많이 두어지고 있지만 이 당시 흑15는 신수로서 대국이전에 동료기사들과 충분한 연구가 있었다고 한다.

 


[i진선 한 마디]

 

한국 바둑계의 희망! "명지대 바둑학과" 관련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찾다보니, 명지대 바둑학과 홈페이지에 이렇게 좋은 글이 있더군요^-^:: 양건님의  '이창호 바둑론'은 쉽고 재미있게 이창호 바둑의 일면을 예를 들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복기해보고 그러니 뭔가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좀 설명이...너무 간단해서...좀 아쉬움이 큽니다만...)

특히..이창호 신수라는 바로 위의 기보는 꼭 아셔야 할 것 같네요. 이창호 신수인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훔...저도 저 수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이창호 도령의 신수였군요^-^::

 

밑의 바둑학과 정수현 교수님의 글은 바둑학이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한 글입니다. 명지대 바둑학과 더욱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꾸벅

 

 

바둑학의 이해

정수현 (바둑학과 교수)

 

1. 바둑학의 개념

2. 바둑학의 학문적 배경

3. 바둑의 학문적 당위성

4. 바둑학의 영역

5. 바둑학의 연구방법

 

인류가 창안해 낸 오락적 경기로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진 바둑은 오늘날 인간의 두뇌를 훈련시키는 두뇌스포츠로서 전세계로 널리 보급되고 있다. 바둑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양인의 고상한 취미수단으로 여겨져 왔고, 단순한 娛樂의 차원을 넘어 인생에 교훈을 주는 현묘한 이치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수련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신비스러운 문화적 利器로 간주되어 왔다. 이처럼 바둑이 오랜 역사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학문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역사는 지극히 짧다. 따라서 '바둑학'이란 말을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며, 심지어는 바둑을 학문의 班列에 올려놓는 것 자체를 희한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이 장에서는 바둑의 학문적 성격, 바둑학의 개념, 바둑학의 영역, 바둑학의 연구방법 등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바둑학의 槪念

 

바둑학이란 동양 전래의 두뇌적 경기인 바둑을 대상으로 하여 그 本質을 규명하고, 기술을 탐구하며, 관련있는 분야를 다양한 접근법에 의해 분석하고, 실용적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해서, 바둑학은 고대에서부터 傳承되어온 바둑이라는 경기를 주제로 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둑의 本質과 機能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바둑학에 대한 최초의 定義일 것이다. 바둑이 학문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기간은 매우 짧기 때문에 바둑학에 대한 정의를 내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거에도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둑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가당치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바둑이란 결코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잘못 된 偏見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바둑학에 대한 개념이 定立되기는 극히 어려웠다고 하겠다.

 

장차 바둑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활발해짐에 따라 바둑학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리라고 본다. 학자에 따라서는 바둑학을 바둑의 본질과 기술에 관한 학으로 정의하는 이도 있을 것이며, 거기에서 더 나아가 바둑이 응용되는 모든 분야까지를 망라하여 包括的 정의를 내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前者는 바둑학을 순수하게 바둑手의 現象에만 국한시키기 때문에 ?純粹바둑학?이라고 부를 수 있고, 또한 狹義의 바둑학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서 후자의 바둑학은 순수바둑학에 應用바둑학을 포함하는 廣義의 바둑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협의의 바둑학은 바둑을 순수한 藝能의 입장에서 본 것으로서 종래의 바둑에 대한 認識 내지는 접근법과 합치한다. 사실 바둑이라고 하면 바둑수가 바둑판 위에 펼치는 경기적 현상을 연상하게 마련이며, 이것과 관련된 바둑기술의 탐구에 최대의 관심이 쏠리게 되어 있다. 실제로 바둑팬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바둑경기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술적 쾌감이며, 그런 점에서 바둑기술의 전문가인 프로기사는 팬들에게 예능적 존경의 대상이 된다. 종래의 바둑에 대한 이해는 대체로 이와 같은 바둑의 技術的 영역에 집중되어 왔다. 바둑에 관한 천여 종의 서적 중 거의 대부분이 바둑기술을 다룬 책이라는 사실은 이와 같은 경향을 잘 반영한다.

 

바둑의 효용성이 증대된 오늘날에는 바둑이 국민생활의 다양한 영역으로 스며들어 인간생활과 바둑의 관계를 순수바둑학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과거에 비해 바둑이 활용되는 환경과 용도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 바둑기술에 관한 지식은 물론 바둑이 실생활에서 적용되는 여러 분야까지를 폭넓게 바라보아야 바둑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옛날에는 사랑방에서 소수의 有閑계층이 단지 오락적 차원에서 바둑을 즐겼을 뿐이나, 오늘날에는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계층, 즉 대중이 바둑을 취미로 즐기게 되었다. 또한 단순히 오락으로 즐기는 데서 벗어나, 어린이의 두뇌개발 및 정서순화의 교육적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사회적 親善의 매개체로 이용되고 있으며, 노인의 치매 방지 등 건강유지의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와 같은 바둑대중화의 물결을 타고 매스미디어에는 바둑란이 필수적인 칼럼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국민과의 친숙도를 반영하듯 포석·악수·자충수·수순·초읽기 등 20여 가지의 바둑 전문용어가 時事的인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또한 현대공학의 총아인 컴퓨터의 영역에서도 신비스러운 동양문화의 유산 중 하나인 바둑을 연구하려는 시도가 빈번해지고 있고, 컴퓨터를 이용한 바둑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바둑학을 순수기술의 분야에만 국한한다는 것은 바둑의 다양한 기능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서에서는 바둑학을 순수바둑학과 응용바둑학을 망라한 폭넓은 학문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바둑의 본질에 관한 탐구, 바둑기술의 경험적 이론에 관한 체계적 정리, 바둑이 실제로 적용되는 여러 환경에 대한 분석과 바람직한 像의 제시 등을 다루게 된다. 이러한 종합적 측면에서의 바둑학은 과거의 기술숙달식 수련법을 넘어선 광범위한 접근법에 의해 조망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둑을 역사적·문화적·철학적·예술적·공학적·사회적 연구방법 등 다양한 접근법에 의해 연구하게 된다.

 

바둑을 광의적으로 다룬다고 할 때, 그 대상과 내용의 폭은 상당히 넓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광범위하다고 해도 바둑학의 대상은 결국 바둑, 사람, 환경의 세 가지 요소로 압축되며, 바둑학의 내용은 직접·간접적으로 이들 세 요소와 관계된다. 바둑이 갖고 있는 內在的 특징과 外延的 기능을 분석하고, 바둑을 이용하는 인간의 行動機制를 연구하며, 바둑현상이 행해지는 환경을 照明하는 것이 바둑학의 주요 내용인 것이다. 요약하면, 바둑학이란 바둑이라는 도구,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 바둑활동이 행해지는 환경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바둑학의 학문적 배경

 

1) 바둑에 대한 학문적 인식의 결여

 

바둑은 수천 년의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고, 인간의 생활에 유익한 기능을 해 왔음에도 20세기 말경까지 학문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로부터 바둑은 고상한 취미로 인식되어 귀족층의 애호를 받아왔고, 오늘날에는 대중적인 두뇌스포츠로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취미의 차원을 넘어 어린이의 정신적 교육 및 노인의 건강 유지 등의 부수적 효과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바둑이 국민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문화적 利器로 자리잡고 있음에도 바둑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는 우선 바둑의 연구가 승부를 업으로 하는 專門棋士의 손에만 맡겨져 학문적 연구를 주도할 만한 계층의 출현이 어려웠다는 점, 인간생활의 두 축인 일과 餘暇 중 여가를 일에 대한 보조적 관점에서 보아 국민적으로 여가의 중요성에 대한 관심이 미약하다는 점, 바둑을 즐기는 애호가들이 지나치게 바둑의 오락적 측면에 탐닉함으로써 바둑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는 데 지장을 주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전문기사들의 꾸준한 연구는 기술력의 향상을 가져왔으나, 직업적 속성상 바둑기술 외적인 요소에 대한 관심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고, 기술 자체에 관해서도 체계적 이론의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회적 인식의 측면에서는, 여가가 인간생활에서 중요하고 이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행복한 삶의 필수적 조건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대체로 여가란 시간이 날 때 적당히 보내면 된다는 식의 관념을 갖고 있고, 이로 인해 여가를 건전하게 활용하는 수단의 하나인 바둑의 가치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바둑팬들도 바둑이 제공하는 강한 흥미성에 매료되어 바둑이 갖는 다른 가치의 측면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요인들이 바둑의 학문적 인식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작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바둑의 학문적 접근을 가로막은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국민들의 바둑에 대한 二重的 이해 혹은 그릇된 이해 때문이었다. 우리 국민들은 바둑을 귀족층이 향유하던 고급문화로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雜技에 불과하다는 모순된 인식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잡기란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기예나 투전, 골패 따위의 잡된 노름을 가리킨다. 외관상 바둑의 도구는 너무 단순하고 소박해서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경기의 형식적 요소가 빈약한 하찮은 놀이로 보이기 쉽다. 바둑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둑이란 한가한 사람들이 오락거리로 하는 잡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경향이 있었고, 이러한 인식이 바둑의 학문화에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이처럼 바둑을 하나의 문화로 보지 않고 잡기로 간주하는 경향은 우리 국민의 사회·문화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겠으나, 이치상으로 따져볼 때 잘못 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예능적 技란 문화의 고귀한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바둑이 잡스런 기예로 취급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소설가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행위, 화가의 그림 그리는 행위, 음악가의 노래 부르는 행위 등은 넓은 의미에서 예능적 기술이며, 일반에게 가치있는 문화활동으로 간주된다. 이것과 전문기사가 바둑을 두어 棋譜를 창작하는 행위를 비교해 보자. 근본적으로 예능적 기술을 사용하여 가치있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점에서 기사의 바둑두는 행위는 다른 예술가의 창작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차이가 있다면 바둑은 승부를 주제로 한다는 점과 대중적 오락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승부를 겨루는 많은 경기들이 체육이라는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둑에서 문제되는 것은 강한 娛樂性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대단히 흥미진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오락성이 바둑의 학문화를 가로막는 요인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어떤 문화활동이 강렬한 재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서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고 하겠으나, 어떻든 바둑은 많은 사람들이 강하게 흥미를 느끼는 오락이라는 점에서 학문적 접근이 방해되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 인식전환의 계기

 

1990년대에 들어와서 국민들의 바둑에 대한 인식에 轉換이 왔다. 한국의 전문기사들이 國際棋戰에서 경이로운 승리를 기록하며 세계바둑계를 거의 휩쓸다시피 하면서 국민들 사이에 旋風的인 바둑붐이 일어났는데, 이에 따라 바둑에 대한 이해가 증진됨과 함께 바둑이 문화생활의 다양한 영역으로 스며들게 되었다. 바둑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자, 신문이나 잡지에는 바둑란이 거의 필수적인 칼럼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TV에서도 바둑해설을 정규 프로그램이나 교육 프로그램으로 다루게 되었다. 이와 같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바둑이 전국적으로 전파되면서 바둑의 이미지에 관한 몇 가지 긍정적 효과가 나타났다.

 

우선 공영방송이나 신문에서 바둑을 가치있는 하나의 문화로 다룸으로써 국민들이 무의식적으로 바둑이 잡기와는 다르다는 관념을 갖게 되었고, 바둑을 모르는 이들도 소설란이나 스포츠란을 대하듯 신문의 바둑란을 흥미삼아 읽을 정도가 되어 국민의 생활과 매우 친숙해졌으며, 언론에서는 상당수의 바둑 전문용어를 시사적인 용어로 차용(借用)함으로써 바둑이 국민의 언어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바둑이 대중화되고 아울러 位相이 提高됨에 따라 어린이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교습소가 전국에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남으로써, 바둑은 놀이문화의 영역에서 교육의 영역으로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바둑은 또한 첨단과학의 영역으로 진군하여 '컴퓨터바둑'이라는 고전적 동양문화와 현대기술공학의 기묘한 조합(組合)을 창안해 내었고, 많은 학자들과 컴퓨터 기술자들은 인간두뇌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최후의 보루인 바둑에 대한 정복욕을 불태우고 있다. 이처럼 바둑이 국민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자 이제는 바둑을 전문가의 예능적 연마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서서히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여가선용에 크게 기여하고 다른 영역에까지 진입하여 문화생활에 영향을 주는 바둑을 이제는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3) 바둑학의 태동

 

국민들의 인식과 생활면에서 바둑이 차지하는 비중이 획기적으로 향상됨에 따라 바둑을 학문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초반에 문화인류학자인 조흥윤박사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인 바둑을 당연히 학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바둑의 학문화를 위한 학술대회를 열자고 제안하였다. 또한 전문기사를 비롯한 바둑계 인사들 사이에서도 대학에 바둑학이 창설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1996년 명지대학교 예체능대학 체육학부에 바둑지도학 전공이라는 학과가 최초로 창설되었다. 바둑을 애호하는 고건 총장의 제안을 학교당국이 검토하여 별다른 이견없이 바둑학의 도입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바둑이 상아탑 안으로 진입하게 되자 사회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바둑을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공식적으로 이런 입장을 표명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바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져 있음을 반영하는 증거라고 하겠다. 이렇게 해서 바둑은 탄생된 지 무려 4000년 만에 처음으로 학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명지대의 바둑지도학 전공은 바둑지도자의 양성을 기치로 내걸었다. 두뇌스포츠라는 사회적 관념에 따라 체육학부에 소속되었으나, 체육학의 학문적 접근법이 바둑학의 탐구에 적절치 않다는 반성이 일어 1997년 11월에 바둑학과로 독립하였다. 바둑은 두뇌스포츠라는 성격을 갖고 있지만, 신체적 운동 중심의 체육학적 개념으로는 바둑의 본질과 현상을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제 학문으로서의 걸음마를 시작한 바둑학은 동양 3국은 물론 세계 바둑인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학계와 바둑계의 새로운 별로서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3. 바둑의 학문적 당위성

 

바둑이 최근에 이르러서야 학문으로 인정받은 것은 때늦은 감이 짙다. 바둑이 좀더 일찍 학문적으로 연구되었다면 바둑계는 물론 국민들의 바둑과 관련된 문화생활에 훨씬 더 많은 혜택이 있었을 것이다. 학문이란 인문·사회·자연과학 외에 인간생활에 유용한 기술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닌가. 유서깊은 문화적 활동이자, 정신훈련의 유익한 분야인 바둑을 학술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둑을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첫째, 바둑은 고대에서부터 전승되어온 동양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므로 文化史的 측면에서 학술적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 한국인의 문화생활에 일익을 담당해 온 바둑의 起源, 용도, 발전과정 등에 대하여 사실적이고 의미있는 지식을 체계있게 정립해야 한다. 우리가 고려 청자나 무속, 씨름 같은 것을 문화적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삼국시대 이전부터 끊임없이 우리 국민의 생활과 관련을 맺어온 바둑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극히 불공평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바둑은 미개척 분야인 정신체육에 관한 학문으로 성립할 수 있다. 체육학이 신체의 발달과 운동에 관한 학문이라면, 바둑은 인간신체의 한 부분인 두뇌를 발달시키는 학문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사고력을 증진시켜 주는 학문으로 수학과 논리학 등을 들 수 있으나, 바둑은 사실 이들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하게 사고의 기능을 활동시킨다고 할 수 있다. (바둑의 기술은 평생을 연마해도 정복하기 어려우며, 서양장기인 체스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미묘한 사고력을 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스에서는 전문가의 영역에 이르기 위하여 적어도 10년간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연구가 있다.) 실제적으로 취미보다는 두뇌개발과 정서교육을 위하여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가 많은 실정임을 고려할 때, 바둑이 인간의 사고활동과 정서적 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당연히 학술적으로 규명을 해 줘야 할 것이다.

 

셋째, 바둑판 위에 전개되는 바둑수의 行態는 대단히 풍부한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다. 바둑수는 무궁무진한 변화성과 무한한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성질의 아름다움과 격조있는 쾌감을 수반한다. 수많은 바둑팬들이 바둑에 매료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예술성 때문으로서, 심오한 예술성의 배후에는 인생의 이치와 일맥상통하는 어떤 법칙이 있다고 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바둑은 '思考의 예술'이나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비유적인 명칭으로 불리워진다. 바둑수의 예술성에 관한 연구는 전문예능인인 전문기사가 담당하고 있으나, 이들의 연구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 탐구에 집중되어 있다. 전문적 기술에 관한 학문적 照明을 통해 통일된 이론적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바둑의 예술성이 보다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우리 나라의 바둑인구는 천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거대한 그룹이므로 국민 다수의 餘暇善用의 차원에서 바둑의 사회적 영향을 학문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바둑이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 직장생활과의 관계, 바둑을 매개로 한 비공식 모임의 의의, 건전한 바둑문화 暢達의 방향 및 제도의 개선 등 대중문화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사실 많은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구성원의 놀이문화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국민 다수의 놀이문화인 바둑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가 행해져야 하겠다.

 

다섯째, 바둑은 점점 세계적인 두뇌스포츠로 확산되어가고 있고, 이에 따라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 실정에서 바둑을 올바로 가르칠 수 있는 指導者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바둑지도라고 하면 바둑의 高手가 下手에게 단순히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을 의미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바둑기술과 함께 바둑에 관한 여러 가지 교양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상식이다. 바둑에 관한 종합적인 교육-바둑이론, 바둑사, 바둑철학, 바둑심리, 바둑지도론 등-을 받은 지도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보다 질서있고 효과적인 바둑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不問可知이다. 정규 바둑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도 학문적 연구는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더구나 바둑의 선진국인 한국의 지도자가 선교사처럼 해외에 나가 바둑을 전파해야 할 사명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둑에 관한 전반적인 素養은 물론 전문적인 외국어 능력을 겸비한 지도자를 배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상으로 바둑의 학문적 필요성과 당위성을 살펴보았는데, 이밖에도 바둑의 보건학적 측면, 바둑전술의 군사학적 적용, 컴퓨터공학과의 관련, 바둑계 조직의 실무능력자 육성 등 여러 면에서 바둑의 학문적 접근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4. 바둑학의 영역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바둑은 競技的·藝術的인 본질과 함께 다양한 측면으로의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는 바둑학은 몇 가지로 구별되는 연구영역을 갖는다. 바둑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분야, 바둑수의 기술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분야, 예능적으로 바둑수를 연마하여 실전능력을 향상시키는 분야, 바둑이 사회적·문화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분야로 구별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앞의 세 분야는 순수바둑학의 영역에 속하며, 마지막의 분야는 응용바둑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와 같은 바둑학의 분야들을 몇 가지 영역으로 분류해 본다.

 

1) 바둑의 본질에 관한 영역

 

바둑학의 기초는 바둑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바둑을 아는 사람치고 바둑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바둑의 본질적 특성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바둑은 기본적으로 영토 점령을 목표로 하는 경기이나, 단순한 경기의 차원으로 끝나지 않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미국바둑협회에서 발행하는 American Go Journal에는 바둑의 복합적 속성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게임이라는 것을 넘어서 바둑은 애호가들에게 색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인생과의 유사함, 강도높은 숙고, 성격의 거울, 추상적 추리의 훈련이며, 잘 두었을 때는 반상의 미묘한 균형 속에서 흑과 백이 춤추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그러나 바둑두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의 게임으로서 매력적이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Beyond being merely a game, go can take on other meanings to enthusiasts: an analogy with life, an intense meditation, a mirror of one's personality, an exercise in abstract reasoning, or, when played well, a beautiful art in which black and white dance across the board in delicate balance. But most important for all who play, go is challenging and fun.)

이 설명은 바둑의 복합적인 특질을 잘 묘사해 주고 있는데, 이와 같은 바둑의 다양한 특질을 종합적으로 조명하여 바둑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하려는 것이 바둑학의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 된다. 바둑의 본질을 다루는 영역으로는 바둑철학, 바둑문화론, 바둑규칙론, 바둑수 분석론 등을 들 수 있다.

 

2) 기술적 이론에 관한 영역

 

바둑학의 진수는 뭐니뭐니해도 바둑의 技術을 다루는 부문일 것이다. 바둑은 초보적인 수준에서부터 고급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광범위한 기술을 갖고 있으며, 기술의 최고영역에 달하는 것은 극히 요원한 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술의 部門을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포석, 정석, 행마, 중반전술, 사활, 끝내기, 계산법, 대국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초반전술을 추가할 수가 있고, 중반전술을 침입이나 공격 등의 하위기술로 세분화할 수 있으나, 위의 범주 속에 거의 모든 바둑기술이 포함된다. 이것은 바둑기술에 대한 橫的인 분류라고 볼 수 있다.

 

바둑기술의 영역은 이해의 수준에 따라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각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난이도에 의한 縱的인 분류로서, 각 단계마다 위의 부문별 기술을 포괄적으로 다루게 된다.

 

부문별 분류와 수준별 분류를 병행하여 초급포석, 중급포석, 초급사활, 고급사활과 같이 구분할 수도 있다.

 

3) 실전적 기술에 관한 영역

 

바둑은 경기적 예능에 관한 학이므로 이론적 지식과 함께 實技能力이 매우 중요시된다. 실전적인 능력이 결여된 이론은 砂上樓閣처럼 취약성을 갖게 되며, 또한 실전기술이 없이는 고급스런 이론을 이해하고 바둑수의 精髓에 접근하기 힘들다. 한편, 이론적인 뒷받침이 없는 실기능력도 문제가 있다. 이론과 실전의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관해서는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다; 이론 없는 실전은 무질서하며, 실전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

 

실전적 기술을 다루는 방법으로는 실전대국, 기술실습, 명국감상, 복기, 對局세미나 등 다양한 기법이 사용된다.

 

4) 관련성있는 분야에 관한 영역

 

오늘날 바둑은 단순한 경기의 차원을 넘어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바둑과 관련된 분야를 탐구하거나, 관련된 분야의 관점에서 바둑을 분석하는 영역이 있다. 이 영역은 순수바둑학을 응용한 분야로서 바둑과 생활, 바둑사, 기사론, 바둑심리학, 바둑문학, 매스컴과 바둑, 컴퓨터와 바둑 등이 있다. 이 응용바둑학의 영역은 장차 학문적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확대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예를 들어 바둑사회학, 전쟁과 바둑, 건강과 바둑, 통신바둑 등 여러 분야로의 확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5) 바둑교육과 보급에 관한 영역

 

이 영역은 위의 관련성있는 분야에 관한 영역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으나, 비중이 크기 때문에 따로 분류한다. 취미생활을 위하여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과 함께, 두뇌를 계발하고 정서를 순화시키기 위해서 자녀에게 바둑을 가르치려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들에 대한 교육과 관련된 영역으로는 바둑지도론, 바둑교육방법론, 바둑교재연구법, 바둑격언론 등이 있다. 이 영역도 학문적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포석교육론, 사활교육론, 아동바둑교육론 등으로 세분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 영역은 아동심리학, 스트레스심리학, 노인건강학 등 연관성있는 분야와의 접목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6) 실용적 기술에 관한 영역

 

이것은 바둑과 관련된 분야에서 종사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다루는 영역이다. 바둑계에는 재단법인 한국기원, 바둑TV, 바둑잡지사, 아마추어협회 등의 전문기관이 있고, 대다수의 직장에는 棋友會라는 써클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수많은 바둑교습소와 기원이 있다. 이와 같은 직업적 분야와 관련된 영역으로는 바둑제도론, 바둑경영론 및 실무, 바둑평론, 바둑영어, 바둑일본어, 바둑중국어 등을 들 수 있다. 실무와 관계된 영역이기 때문에 비교적 학문적 성격이 약하고 기술적 성격이 강한 부문이라고 할 수 있다.

 

5. 바둑학의 연구방법

 

바둑학에 대한 연구방법으로는 다양한 접근법이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학문의 연구방법으로는 實驗과 檢證에 의한 과학적인 접근법을 사용하지만, 바둑학은 과학적인 방법을 포함하여 예능적 방법 및 直觀과 경험에 의한 방법을 두루 사용한다. 바둑수와 바둑에 관련된 현상을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함으로써 귀납법적으로 원리를 도출해 내는 방법, 어떤 일반적인 원리로부터 구체적인 사실을 도출하여 연역법적으로 결론을 얻는 방법, 실습에 의해 어떤 원리를 직관적으로 터득하는 방법, 그리고 경험적인 사실을 종합하여 가설적 결론에 이르는 방법이 골고루 쓰이는 것이다.

 

바둑학에서 이처럼 여러 가지 접근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바둑학의 대상이 科學的 현상이 아닌, 藝術的 현상이기 때문이다. 예술적 현상이란 이론적 지식의 습득을 기초소양으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것을 초월하여 고도의 수련에 의한 直觀的 洞察로 원리가 포착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렇게 얻은 지식이 학문적 체계를 갖추려면 과학적 방법에 의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고차적 원리의 導出이라는 사전적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전문가의 직관적 통찰과 경험적 지식의 도움이 필요하다. 직관과 경험에 의한 지식이 과학적 검증에 의하여 체계화된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이 직관적 통찰의 바탕이 되는 순환과정을 거듭하면서 예술로서의 바둑학의 학문적 영역이 확충된다.

 

바둑과 관련된 현상을 탐구함에 있어서는 당연히 과학적 접근법을 주된 연구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매스컴과 바둑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한다고 하자. 이 경우 직관에 의한 지식은 사실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의미있는 현상을 과학적 접근법에 의하여 측정하는 연구방법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바둑학의 연구방법으로 어떤 접근법을 사용할 것인가는 바둑학의 영역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순수바둑학은 위에 언급한 모든 방법을 종합적으로 사용하며, 응용바둑학은 주로 과학적인 방법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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