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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친절한 세돌씨, 착하게 살고 싶었답니다.

[중국] 친절한 세돌씨, 착하게 살고 싶었답니다.

i진선2005-02-09 12: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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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중입니다.
엽기류의 한국 바둑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유행(엽기적인 그녀는 중국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음)하는 것과 
때를 맞추어 바둑계에서도 한국류의 "엽기적인 바둑"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부동의 일인자인 이창호가 대국관과 균형감각에 있어 여전히 전통적인 바둑의 기풍에 기반을 두고 있
는데 반해 이세돌, 최철한, 송태곤 등으로 대표되는 신예들은 "폭력미학"으로 순식간에 반상의 고전
적인 기풍을 다른 색깔로 물들이고 있다.
바둑이 발전하는 단계로 봐야할지 고도의 전투기술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현상으로 봐야할지는 잘 
모른다. 
이세돌은 최근 한 달만에 두 개의 세계기전을 제패했고, 최철한은 올해 3월 창하오와 응씨배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칼을 갈고 있다. 
어찌되었든 '실전바둑'이 위세를 떨치는 지금 한국의 신예들은 용맹한 기세로 바둑세계의 새로운 질
서를 잡아가고 있다. 
기존의 어떤 포석으로 판을 시작해도 결국에는 전투를 피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바둑이며, 최근 5년
동안 이러한 전투양상이 갈수록 바둑계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얼마 전 도요타 덴소배에서 이세돌에게 분루를 삼킨 창하오는 올 3월 응씨배 최종 결승에서 이세돌
의 동생이라 할 수 있는 최철한과 다시 한 번 일전을 겨루게 된다. 
고전파라 할 수 있는 창하오가 최철한을 상대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실전바둑이 현대바둑의 대세로 자리잡아 가는 지금 이전 세대의 기사들은 갈수록 도태되어 가고 있
다. 
이러한 실전바둑을 이끌어 가는 세대들이 바로 한국의 이세돌, 박영훈, 최철한, 송태곤, ... 그리고 
중국의 구리, 쿵제 등과 같은 기사들이며, 이들이 향후 10년 바둑의 역량을 가늠하는 주류로 나서고 
있다.

중국의 대다수 기사들이 여전히 고전적인 정석에 얽매여 있을 때, 진취적인 한국의 젋은 기사들은 기
존의 고정관념을 통째로 뒤엎어 버리고 있다. 
삼연성에서 소목에 이르기까지 상대의 취향이 어떠하던지 간에 마지막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전
투이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전투가 이어진다. 
이러한 실전바둑은 최근 내용면에서 다양화 되어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세돌은 정석에서 시
작하여 대마몰이로, 박영훈은 대마 타개로, 최철한은 끝없는 도발을 통해 이해득실을 따지며, 온유
한 기풍을 가진 중국의 구리마저도 초반부터 화약심지에 불을 당기는 양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창하오는 이미 우리 세대의 기사가 아니다" 
이세돌의 이 말은 귀에 거슬리면서도 그의 풍부한 개성을 엿볼 수 있는데, 이 시대의 우상인 이창호
마저도 그들에게는 그들이 넘어서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바둑을 '도(道)'라고 지칭하였으며, 일본도 오랜 세월을 거쳐 '경지'에 다다르는 모
습을 보여 주었으나 한국에서는 그 양상이 복잡하다. 
바둑은 일종의 오락이면서도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기사들이 기도(棋道)에 집착하는데 반해, 한국의 기사들은 바둑의 다른 한 면인 '전
투'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들의 전투가 기존의 바둑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켜 또다른 바둑의 경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실전바둑형 기사]

최철한 9단 (1985년생)
전력 : 2003년 천원전 우승, 2004년 국수전 우승, 제5회 응씨배 결승 진출
평가 : 
최철한은 한국의 대표적 신예기사이다. 한국 신예 중 균형감각이 가장 뛰어나다. 
포석에서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준엄한 추궁이 그의 바둑의 백미이다. 
세계기전에서의 성적은 이세돌에 못 미치나 국내기전에서는 종종 이창호를 이기곤 한다. 
작년 응씨배 결승에 진출함으로써 그의 바둑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맹렬한 기세가 난무하는 한국바둑에서 최철한은 비슷한 유형의 선배기사들이 가지고 있던 능력을 제
대로 이어 받아 반상에서 표현해 내고 있다.
근황 : 
금년 3월 창하오와 응씨배 결승 최종국을 앞두고 있다. 
최종 3번기에서 최철한과 그보다 9살 위인 창하오 모두 생애 첫번째 세계기전 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세돌 9단
전력 : 2002년 신인왕전 우승, KTF배 우승, 제15회 후지쯔배 우승, 2003년 LG배 우승, 2004년 삼성화
재배 우승, 2005년 도요타 덴소배 우승
평가 : 
'비금도에서 온 천재소년'으로 수식이 그의 뛰어남을 잘 말해준다. 
한국 바둑계에서 겸손을 모르는 전형적인 스타일로 꼽힌다. 
선배기사들에 비해 기력이 뛰어나며, 대단한 완력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 불계승 또는 불계패로 판
을 마감하며, 현대바둑을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대표주자이다.


박영훈 9단
전력 : 2001년 천원전 우승, 2002년 한중천원전 우승, 농심배 4년승, 2003년 삼성화재배 준우승, 제
17회 후지쯔배 우승
평가 : 19세에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한국의 가장 젊은 9단이다. 뛰어난 인내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한 기자의 평에 따르면 ;
1)박영훈과 맞붙어 절대 눈사태 정석을 펼치지 마라. 
2) 절대 박영훈의 대마를 몰지마라. 타개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의 대마를 몰아 성공한 기사가 없
다. 
3) 박영훈과의 승부는 마지막까지 가봐야 안다. 언제든지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
다.



[중국의 실전바둑형 기사]

구리 7단
전력 : 2001년 신인왕전 우승, 제2회 리광배(理光盃) 국수초청전 우승, 제4회 한중신인왕전 우승, 
2003년 천원전 우승
평가 : 한국의 박영훈과 마찬가지로 타개능력이 뛰어나다. 중국 신예의 대표적인 기사로 한국류의 실
전형 바둑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기사이다. 
한국기사들에게도 경계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심천晩報(2005-01-18)










[백호은침]

'허풍' 이세돌

 

어제 오후 3시 한국대표단이 북경 중려호텔에 도착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대회에 불참의사를 밝힌 뒤 '허풍'으로 화를 자초한 이세돌도 같이 끼어 있었다.
10여명의 한국대표단은 두 갈래로 나누어 각자 뭐가 그리 바쁜지 다들 웃긴 꼬락서니다.

부드러워진 '허풍'

얼마 전 삼성배와 도요타배 우승을 차지한 이세돌 9단은 최근 바둑계에서 이름이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인데, 이번 대회에 불참을 표시하고도 한국대표단과 같이 북경에 도착했다.
이유인즉 친한 친구인 최철한을 응원하는 외에 북경에서 진행하는 바둑행사에 참가하기 위함이라는데, 한국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의 유명한 바둑사이트 타이젬과 관련된 행사라고 한다.
이번 대회 불참으로 인해 중국바둑계가 열을 팍팍 받고 있는데, 중국의 우승확률이 제로라는 허풍으로 적잖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어제 오후 기자가 취재를 위해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이세돌이 막 도착했는데, 웃기는 건 지는 바둑도 두지 않으면서 다른 기사들보다 2시간이나 먼저 도착했다.
검은 외투를 거치고 막 이발을 한 듯 반듯해 보이는 이세돌이 기자의 질문에 웃으며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당연히 한국팀이 이기기를 바란다고 한 말이 어떻게 그렇게 와전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注 ; '어차피 그렇게 될거니까 그렇게 말 한건데...' 이게 쎈돌스러운 대답인데...)
금년에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인터뷰 내용에 대해 묻자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곤 유창혁, 김성룡 두 기사와 함께 다른 호텔에서 진행되는 행사 참가를 위해 후다닥 호텔을 나섰다.

웃고 떠드는 '세 아동들'

이세돌이 떠나고 3시가 좀 넘어 최철한, 박영훈, 송태곤이 중려호텔에 도착했는데, 젊은 세 기사의 꼬라지가 영락없는 세 명의 애들 같다.
옷 입은 꼬락서니는 물론이고 서로 웃고 떠드는 모습까지 바둑의 문외한들이 보면 얼마나 유명한 기사들인지 알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注 ; 섭위평은 마빡에 '나! 전나게 유명한 바둑기사'라 써 붙이고 다니는 갑다 ^.*
응창기배 마지막 세 판을 남겨두고 있는 최철한이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응씨배 전망에 대한 기자의 반복된 질문에도 불구하고 최철한은 웃기만 한다.
옆의 박영훈과 송태곤도 최철한에게 혀를 쏙 내밀고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만든다.
옆에 있던 통역도 실실 웃으면서 최철한의 답변을 말해준다.
'창하오가 아주 실력있는 기사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그리고 이세돌은 행사에 참가하러 갔다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천하에 위명을 떨치는 이세돌에 비해 이 아이들은 아직 수줍어 하는 모양이 역력하다.
(注 ; 수줍어서 웃은 게 아니고 뻔한 결과를 물어보니 웃겨서 웃은건데...)
이세돌은 행사에 참가하러 가고...
세 아동들은 방 열쇠를 받아 아장아장 제 방으로 올라간다.

北京晩報

......................

한중 설전을 야기한 수괴 이세돌이 어제 꼭꼭 숨어서 어제 한중대항전의 기자회견장과 개막식에도 나
오지 않았다.
경박스러운 성격의 이세돌은 한국팀이 3회전 만에 중국팀을 물리칠 것이라는 말로 파장을 몰고 왔
고, 중국 기사들은 이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여지없는 반격을 가했다.
한국팀의 모사꾼의 자격으로 북경에 도착한 이세돌은 자기가 나타나면 뭇사람들의 분노를 살 것을 우
려하여 방구석에 꼭꼭 쳐박혀 개막식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세돌이 없으니 한중 양국 팀의 분위기가 눈에 띄게 화기애애해졌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우호적이며, 대회 전망도 겸손으로 일관했다.
한국팀의 유창혁은 "이번 중국팀은 선발전을 통해 이루어진 팀이라 상당히 강해 한국이 이긴다는 보
장이 없다"는 의견을 내 놓았으며, 중국의 저우허양은 "한국 바둑의 전반적인 실력은 중국보다 강하
며 중국팀은 훈련병과 같다. 기세로 밀어부쳐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注 :
이세돌은 빰 때리고...
유창혁은 달래주고...
저우허양은 영문도 모르고 히죽거리고...
죽이 착착 맞아 떨어진당...

[백호은침]

 

중국 바둑계의 이세돌에 대한 푸대접은

상당부분 안티팬들의 책임도 있다.

 

이세돌은 그가 세계타이틀 첫번째 쟁취할 때부터 그리 국내팬들의 축하를 받지 못했었다.

조훈현 시대를 이창호가 깨고 나와 그의 시대를 이루었듯이, 이세돌 역시 자기 시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이창호를 깨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창호는 조훈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바둑을 조훈현류 라고는 하지 않는다.

 역시 이세돌은 이창호 바둑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그의 바둑을 이창호 바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창호와는 성격도 다르고 기풍도 다르다. 게다가 톡톡튀는 언행은 기존의 이창호 팬들

에게는 너무나 건방져보이고 괘씸해했다. 이창호가 조훈현에게 연전연승하고 타이틀

을 착착 접수해갈 때에도 팬들은 이런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청출어람이라 하여 조훈현이

기른 이창호가 스승을 넘어설 때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주었다. 이창호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스승을 모시고, 스승의 집에서 최고의 공부를 할 수가 있었다.

이창호는 팬 복도 많아서 기존의 조훈현 팬들을 100% 그대로 자기 팬으로 흡수할 수가

있었다. 이창호는 전주에서 소문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세계 바둑의 정상에 오르기

까지 그의 노력에 부응하듯이 모든 조건들이 착착 준비가 되어있었다. 마치 모든 세계기전

이 그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 처럼 그가 기사가 된후에 모든 것이 이루어

졌다. 

 

그런데 이세돌은 달랐다. 이세돌은 바둑을 정상적으로 배우기에는 너무나 힘든 섬마을

소년으로 태어났다. 이창호가 인내와 참음과 타협의 바둑을 둘수밖에 없는 천성과 환경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자랐다면, 이세돌은 바닷가의 외로움과 거친 태풍속에서 자란 탓에

그의 바둑이 그렇게도 거칠다고 한다면 지나친 상상일까?당대의 대가 조훈현 팬을 스폰지

 처럼 흡수한 이창호에 비하여, 이세돌은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창호는 그의 소년기에 그에 필적하는 기력을 가진 소년들은 많지않았다. 따라서

그는 그의 나이에 항상 최고 경지에 이른 대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세돌은

그가 본격적으로 바둑 공부를 시작할때 당시에만도 그를 능가하는 경쟁자가 수도 없이

있었다. 그는 이겨야했고 피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인 비금도를

떠나서 서울로 바둑 유학을 와서 그의 기재를 알아보고 도움 주는 분들이 있었지만,

스승 조훈현 선생의 집에 들어가서 공부한 이창호에 비하면 너무나 힘든 고생길 이었다.

 

그의 바둑을 잡초류의 서봉수를 있는 한국 토종 바둑의 대본류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이창호가 찬사 일색이었다면, 이세돌에게는 비판 일색이었다.

한국 바둑 팬들에게 최초의 안티팬이라는 것을 만들어준 사람도 이세돌이다.

그는 해외에서도 안티팬을 갖고있으니 가장 큰 안티팬들은 뭐니뭐니해도 중국 바둑 언론

이다. 그가 담배를 피우면 마약을 피우는 것이며. 그가 술을 마시면 독주를 마시고 주정하

는 것이다. 그가 여자와 대화라도하면 바로 여성을 희롱하는 것이 되며, 그가 한 마디 하면

악의적인 주석을 붙여서 대서특필이 된다.

 

중국 바둑계가 이세돌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다. 이창호를 계승하는

 세계바둑의 맥은 반드시 중국에서 나오기를 소원했으나, 그것은 꿈에 불과했고, 이세돌이

나타났다. 이세돌 같은 자가 자국에서 나오지를 않고 한국에서 나오느 그들은 아픈

마음에 이세돌에게 험짓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한국 바둑에 화풀이 하고 싶은데,

이세돌이 대타로 구박을 받는 것이다.

 

이세돌이 이런 입장에 서게된 것은 이세돌의 처신과 중국 바둑계의 밴댕이 속알딱지보다

못한 좁은 마음탓도 있으나 한국 바둑팬들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집안에서 구박떼기가

동네 나가서 칭찬받을 리가 없다. 식구들의 사랑을 못 받는 사람을 이웃 사람들이 이뻐할

리는 없지않는가?

 

이창호에 대한 언급은 그리도 조심스럽게 하면서도, 이세돌에 대한 언급은 너무나 경망

되고 추잡하게 하는 중국언론은 어디서 그런 것을 배운 것일까? 알고보면 그 원조는

 한국 바둑팬들이었다.

 

업글 중 입니다.

친절한 세돌씨, 정말이지...착하게 살고 싶었답니다. 

 

편집중 입니다.

[i진선 한 마디]

 

저의 컴에 문제가 있어서 그동안 저장해두었던 수 많은 자료가 날라가 버렸습니다.

월간 바둑 약 5년치 스캔한 자료, 신문기사, 기사들 사진 약 천여장 등등

모두 허공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도 실망하여 한동안 기사를 올리기 못하기도 했지만..사실 자료가 없어서

기사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ㅡ.ㅡ::

 

하지만 곧 명예기자 개편안이 발표될 것이고, 그 이후엔 지금보다 더욱 풍부하고

생생한 기사들, 특히 중국 관련 기사들이 올라올 것 입니다.

 

업글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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