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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창호의 神風과 대륙풍

[칼럼] 이창호의 神風과 대륙풍

i진선2005-03-25 2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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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마당]이창호의 神風과 대륙풍

[뉴스메이커 2005-03-25 09:54]

바둑판은 두뼘쯤 된다. 대국자가 마주앉기만 해도 그 ‘두뼘천하’에는 풍운이 인다. 비김이 없는

처절한 반집 승부. 그 냉엄한 프로세계의 절대 고수는 누구인가? 많은 영웅들이 있지만 모두

이창호를 꼽는다. 농심배 세계대회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혼자 남아 일본과 중국의 강자 5명을

차례로 베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이름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일본은 탄식을 했고 중국은

 땅을 쳤다. 그리고 이창호에게 최상의 예를 올렸다. 한국 바둑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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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종주국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종전까지 바둑의 나라는 일본이었다. 바둑의 온갖 격언과

 일화는 일본에서 생산되었다. 기성으로 추앙받은 오청원, 우주류를 탄생시킨 다케미야, 술 한병

 달랑 들고 조훈현이 보고 싶다고 한국으로 날아오곤 했던 기인 후지사와 등 숱한 장수들이 천하

를 호령하였다. 한국의 천재 조훈현, 조치훈도 일본으로 건너가 무릎을 꿇고 바둑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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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변방에 머물던 한국바둑은 그러나 조금씩 강해졌다. 그리고 어느 날 일본을 꺾었다. 처음에는

 이변이라 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후 철저하게 유린당해야 했다. 조훈현, 서봉수, 이창호, 유창

혁, 이세돌, 최철한…. 영웅들이 꼬리를 물고 태어났다. 변방의 한국은 이제 중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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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둑계를 ‘한류’가 평정했다. 한국바둑은 확실히 다르다. 우선 싸움을 잘하고

특히 접근전에 강하다. 뚝심과 끈기를 겸비한 백병전에 중·일의 고수들은 속속 무릎을

 꿇었다. 바둑 평론가 박치문이 분석한 한류의 특징은 이렇다. 첫째 승부호흡이 격렬

하다. 둘째 수법이 노골적 이다. 셋째 악수라도 둔다. 벼랑끝 승부를 즐기는 한국기사

들은 세계 바둑계를 격렬한 승부세계로 끌고 갔다. 그래서 현대기전은 호흡이 가쁘다.

 난타전이 관전자의 피를 끓게 한다. 자연히 계가보다 불계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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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둑은 모양을 중시하고 기리(棋理)에 충실하다. 이런 기풍은 세월이 흐르면서 미학으로

굳어졌다. 하나 바둑의 미학은 상상력과 개성을 제약했다. 반면 한류는 현실적이었다. 반(反)미

학적이고 반(反)현학적이고 반(反)왕도적이다. 조치훈이 이른바 일본의 대삼관(본인방·기성·명

인전의 3대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함)에 올랐을 때 일본바둑계는 그의 바둑을 ‘무기풍(無棋風)의

 기풍’이라고 평했다. 언뜻 그 실력을 종잡을 수 없다는 비아냥이 숨어 있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

으로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이 한국바둑의 본질을 찾아가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 중국바둑은 어떤가. 조훈현의 지적대로 중국은 ‘관심과 인구’에서 세계 제일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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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란 열기이고 인구란 잠재력이 아닌가. 대륙에서는 자고 나면 고수들이 태어난다. 지는 것

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자에 베이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조훈현은 “과거에 이민족의 지배

를 받다가도 결국 그들의 존재까지도 흡인해버렸던 대국이 바로 중국이었음을 우리 모두 한번쯤

돌이켜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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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른 한국바둑은 숨을 곳이 없다. 일본의 자객들이, 대륙의 고수들이 바다를

건너오고 있다. 그들을 언제까지 물리칠 것인가. 최철한은 이미 바둑올림픽 응씨배

에서 중국의 창하오에게 졌다. 칭기즈칸의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서 사는 날 내 제국

이 망할 것”이라는 말은 우리 바둑계에도 유효할 듯하다. 이창호의 신풍(神風)은 얼마나

 갈 것인가. 대륙풍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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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근 출판국장 wtkim@kyunghyang.com ]

 

 

 

[바둑산책]그가 있어 즐겁다

[뉴스메이커 2005-03-25 09:54]


바둑 두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세월의 아픔, 시대의 고통, 그런 것들로 괴로울 때

바둑에서 위안을 받는다. 요즘은 이창호 9단이 바둑 팬들을 위로해준다. 살기가 팍팍

하고, 그게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뭐 좀 신나는 일이 없을까” 하던 차에

그가 슬며시 다가와 “이런 건 어때요” 하면서 소리없이 선물을 몇개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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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말 그는 농심배에서 4연승(종합 5연승)을 거두며 한국 팀에 또다시 우승을 안겨 주었

다. 3월 18일 끝난 제5회 춘란배에서도 중국의 저우허양 9단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했다.

 이번 결승 3번기에서 이창호 9단은 첫판을 아쉽게 반집으로 패한 후, 둘째판과 세째판을 연달

아 불계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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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연승 모두가 불계승이었다는 점도 놀랍죠.

 

올초 제9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에서 중국의 위빈(兪斌) 9단에게 지고, 제48기 국수전

도전기에서 최철한 9단에게 도전해 3연패로 물러나자, 아니나 다를까, “이창호도 드디어 슬럼

프인가” 하는 얘기들이 나왔는데, 그걸 한방에 날려버렸다. 이창호의 슬럼프, 그건 기우에 지나

지 않았음을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이창호의 하향세, 심리적 갈등, 기풍의 변화에 대한 분석

어쩌고 했던 것이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슬럼프라는 말도 물론 소리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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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창호에게는 적어도 아직은, 일반론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을

뿐이다. 하긴 일반론이라는 게 좀 우스운 것이기는 하다. 조훈현이나 조치훈이 전성기를 구가

할 때, 그들에게 일반론이 통했던가. 그들에게 슬럼프라는 것이 있었던가. 조치훈 9단은 1986년

 시즌부터 3~4년간 부진했지만, 그건 교통사고 후유증이었다. 적어도 바둑의 세계에서 제1인자

에게는 슬럼프란 없다. 일직선으로 치고 올라가 정상을 정복하고 한동안 군림하다가 꺾여내려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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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바둑 스타일, 기풍이 변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그것도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기풍은 변하지 않는다. 삶과 성격이 바뀌지 않는데, 유독 바둑 스타일만 바뀌는 일이 있겠는가.

다만 20~30년 바둑을 두다 보면, 오늘은 이런 식으로 한번 두어볼까, 오늘은 다른 길로 한번

가볼까, 그런 마음도 드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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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바둑에서 큰 위안을 받던 시절이 있다. IMF라는 게 있었다. 모두들 죽는 줄 알았는데,

바둑에서는 LG배, 삼성화재배 같은 굵직한 세계대회가 생겨 바둑 팬들을 들뜨게 해 주었다.

또 서봉수 9단은 진로배에서 전무후무한 9연승 신화를 창조했다. 기록의 희귀성으로 말하자면,

 이창호의 이번 5연승보다 몇 단계나 윗길이다. 실로 바둑사에서, 전에는 물론 없었거니와 앞으

로도 두번 다시 나오지 못할 불멸의 금자탑이다. 옛날에, 그러니까 1980년 시즌에는 바둑 팬들

은 조훈현과 조치훈, 이름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한 두 젊은이가 한국과 일본의 바둑계를 통일

하는 모습에 열광·환호하면서, 그 시절 암울하던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런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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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시끄럽다. LG배나 삼성화재배나, 아무튼 우리가 주최하는 세계대회 결승판을,

 한·중· 일 기사들과 취재진을 불러모아 독도에서 벌이자. 1990년 시즌에 이미 조훈현

과 유창혁이 백두산 정상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타이틀 매치를 벌인 일이 있지 않은가.

지금도 웬만한 기원에 가면 그때 사진이 걸려 있다. 비록 구도도 이상하고, 바둑판도

어색하고, 두 대국자 모두 추워서 떨고 있지만, 역사에 남을 장면이다. 작위적인 의전

(儀典), 그게 때로는 역사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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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구 바둑평론가]

 

 

[기록제조기, 이창호] 

[세계일보 2005-03-24 16:27]

춘란배를 2연패하면서 세계 바둑 1인자 위치를 굳힌 이창호 9단.

농심배에서 드라마틱한 5연승을 거두며 우승컵을 거머쥔 후 춘란배에서도 1패 후 2연승

으로 챔피언 자리를 지켜 큰 경기와 위기 관리에서도 세계 최강의 면모를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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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잉씨배에서 최철한 9단이 중국 기사에게 무릎을 꿇자 공한증을 극복했다고 흥분

했지만, 춘란배 이후 ‘공이증(恐李症)’이 더욱 깊어진 셈이다. 절대지존의 위치에 오른 이

9단의 승부 기록을 보면 ‘역시 이창호’라고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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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란배 우승으로 이 9단은 국제대회 통산 22회(비공식 기전 2회 포함) 우승을 기록했다.

국내 기전 102회 우승을 보태면 프로 생활 19년 만에 무려 124회 우승을 달성했다. 조훈현

9단은 157회 우승했으나 프로 경력 43년이니 연간 3.7회인 데 비해 이 9단은 연간 6.5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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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9단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승 기록이다. 그가 세운 최다연승은 1990년 2월27일

부터 8월31일까지의 41연승. 68년 김인 9단이 40연승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당시의 기전

환경과 프로기사들의 기량을 놓고 볼 때 이 9단의 기록은 사실상 ’신화’에 가깝다고 전문가

들은 입을 모은다. 이창호 이후 최고의 기사로 꼽히는 이세돌 역시 2000년 연승가도는 32연승

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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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9단은 2001년 10억1800만원을 벌어들여 국내 기사 중 유일하게 연중 상금 수입액에서

10억원대를 돌파했다. 결승전 연속우승 기록 역시 이 9단이 보유하고 있다. 국내외 기전을

통틀어 이 9단은 94년 6월부터 96년까지 21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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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9단에게 가장 많이 패한 기사는 스승 조 9단으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 딱 들어맞는다.

조 9단은 이 9단을 상대로 299번을 싸워 무려 181패를 기록했다. 조 9단이 10번 싸워 6판

이상 졌다는 얘기다. 다음은 유창혁 9단으로 이 9단과139판을 둬 91패(승률 34.5%)를 했다.

[i진선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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