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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언론도 '지성-영표 듀오' 활약에 놀라
박지성과 이영표(이상 PSV 아인트호벤)의 활약에 중국도 놀랐다.
중국의 시나일보 인터넷판(http://sports.sina.com.cn)은 6일 ‘한국의 황금소년은
로벤의 창을 이어받았다. 중한 축구의 차이는 도대체 얼마나 큰 차이인가’라는 제목으로
PSV 아인트호벤에서 챔피언스리그 신화를 쓰고 있는 박지성과 이영표 등 코리안 듀오의
활약상을 다루면서 중국과 한국
축구의 수준차를 짚어 보는 기사를 게재했다.
특히 이날은 올림피크 리옹과의 8강전에서 박지성이 극적인 어시스트로 1-1 동점을 만든
날이었다.
국내 축구전문 사이트인
[사커월드]
(www.soccer4u.co.kr)는 이 기사를 번역해 게재, 한국 선수들의 성공 신화로
중국인이 느끼는 좌절감을 수많은 축구팬들과 함께 나눴다. 다음은 기사를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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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사중에서]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은 8강에 진출했고 이날 리옹과 비겨
4강 진입도 머지 않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2명의 한국 선수인 박지성과 이영표는
아인트호벤의 중추적인 선수이고 특히 박지성은 로벤(미드필더로 아인트호벤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로 이적)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한국의 이 귀중한 한
세대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아시아에 가장 찬란한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박지성, 로벤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 리그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으며 천부적인 재능과
수준을 증명했다. 그의 소속팀인 일본 교토 퍼플상가가 해외 이적을 미온적으로 바라
봤지만 그는 히딩크 전 한국대표팀 감독과 함께 아인트호벤으로 옮겼다. 함께 이적한
이영표는 아주 빠르게 아인트호벤에 적응하며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고 지금도
어떤 위치에서도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선수로 히딩크 감독의 신임이 두텁다. 반면
박지성은 로벤이라는 최고수가 있었기에 출장하는 것보다는 벤치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약간의 후보 생활이 있긴 했으나 박지성은 로벤과 같은 고수와 경쟁할 수 있었고 히딩크
라는 절대 스승 밑에 있었기 때문에 현재 아시아의 수준을 벗어나 유럽 선수 수준으로
기량이
성장할 수 있었다.
박지성은 “유럽에 올 수 있게끔 도와준 월드컵에 감사한다.
아인트호벤에 온 것은
대단한 도전이지만 유럽에서 공을 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큰 무대에서 뛰고 있다는 느낌이 상당히 미묘한데 이것 또한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고 높은 수준에서 볼을 차며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히딩크 감독도 ‘한국인
심복’들에 대해 “그들은 강한 정신력이 있고 첫 날부터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흡족해 한다.
한국인의 정신력은 칭찬받을 만하다. 박지성은 후보로 있을 때도
훈련을 통해 부단히
자신을 연마했고 지난해 로벤이 팀에 있었음에도 28경기에 출장, 6골을 뽑아내며
대등한 위치에 올랐다. 올해도 24경기에서 6골을 기록 중이고 챔피언스리그 10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중국과 한국의 차이는 과연 어느정도인가.
일본의 해외파 선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박지성과 이영표의 네덜란드에서의 성공은
아시아 선수들을 더욱 반성하게 만든다. 아인트호벤이 홈에서 리옹을 격파하면 유럽에서
아시아 선수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과거 차범근(수원 삼성 감독)이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두 번이나 UEFA컵 정상에 올랐지만 박지성과 이영표는 이보다 한 단계
수준이 높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서 성공신화를 써 갈 때 중국팬들은 씁쓸한
맛을 느낀다. 순지하이
(맨체스터시티)가 UEFA컵에 진출했지만 챔피언스리그에 오른 한국민의 성취감과
중국민의 그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박지성과 이천수는 청소년대표 시절, 취보가 이끄는 중국에 진
적이 있다. 당시 잠깐
중국민은 공한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후 한국 선수들은 유럽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반면 취보는 올림픽팀에서의 부상으로 네덜란드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도대체 중국과 한국의 수준차는 어느 정도인가. 2002년 월드컵 후 중국이 스페인의
카탈루냐를 방문했을 때 현지의 한 전문가는 ‘약 5년 차이’라고 했다.
정말 5년 차이만
있기를 바란다.
장현구 기자 cany9900@pocta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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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1]
중국의 ‘공한증’(恐韓症)이 또 도마에 올랐다. 중국은
3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한골을 내주며 또다시
주저앉았다. 중국으로선 ‘공한증’의 악몽을 되씹을 수
밖에 없었다. ‘공한증’의 뿌리는 1978년
12월17일 방콕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본다. 당시
차범근(현 수원삼성 감독) 감독의 결승골이
‘공한증’을 처음 발병시켰다. 이후 26년동안
국가대표팀은 25전 15승 10무, 올림픽대표팀은
3일 경기를 포함해 7전 6승 1무의 무패
행진을 계속중이다.
도데체 ‘공한증’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대국’(大國) 중국은 왜 한국축구 앞에서는 작아지는가?
3년여 동안 중국인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공한증’의 비밀은 종합적인 것이다. 한가지 이유로
서는 설명할 수 없다. 이에는
축구적인 요소와 비축구적인 사회문화적 요소가 있다. 축구적인
요소는 대륙에서 중국 선수를 약
6년간 지도한 이장수 감독(전남 드래곤즈 감독)의 분석이
정설로 통한다. 이 감독은
충칭(重慶) 리판팀과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맥주팀을 중국
축구협회(FA)컵 우승으로 각각
이끌었다. 이 감독은 우선 중국 선수들의 해이한 ‘프로 의식’을
지적했다. 선수들의
정신력이 한국 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신력은 혹독한
훈련량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과
직결된다. 특히 이 감독은 자기 관리에서 선수들이 철저하지
못한 부분을 질타했다.
프로 선수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마시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을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감독이
충칭팀을 FA컵 정상에 올려 놓은 것은 뛰어난 용병술외에
선수들에게 ‘프로 근성’을 심어준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원정 경기때 자신의
방을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출입구에 잡기로 유명하다. 이는 밤 늦께 중국 선수들의 무단
외출을 감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패배 이후 25전15패10무 한번도 승리 없어
충칭팀 선수들의 길러진 ‘프로
근성’은 이 감독을
‘충칭의 별’로
추앙받도록 만들었다. 이 감독은
충칭팀을 갑A팀(1부리그)
우승까지 끌어 올려
충칭 팬들의 한을 씻었다. 갑A팀
리그는 ‘중국판
K리그’로 15개팀이
홈앤 어웨이 리그전으로
우승을 다툰다. 이 감독은
2001년 12월 충칭을
떠났으며 충칭팬들은 고별전뒤
눈물을 흘리며
이 감독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당부했다.
이 감독은 중국에서 한국의
박종환, 김정남과 차범근
등 역대지도자들이 줄줄이 실패한
가운데 탄생한
신화같은 존재로 꼽히고 있다.
중국팬들은 "선수들의 고액 연봉이 선수를 망친다”며 질타한다. 선수들이 축구의
프로화를 바탕으로 돈방석
에 오르면서 정신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프로 선수들은 텔레비전과 거리
광고판에서 상업
광고의 모델로 출연해 ‘돈맛’에
빠지면서 정신력이
해이해졌다는 것이다. 실제 대졸
초임이 1800위안
(약 27만원)인 상황에서
스타급들은 수백만 위안의
연봉을 받아 훈련을 게을리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대표팀이
패할 경우 언론 등 여론의 따가운 ‘매질’과 함께 감독 경질 등
‘여론 재판’이 있으나
중국 언론에선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중국 당국이 국민
사기 저하를 이유로 지나치게
비판적인 보도를 자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신력’이 중국 선수들의 결핍요소라는 것은 중국 축구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한국팀의 승승장구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전투정신을
배우자”라며 자국팀의 나약한
정신력을 질책했다. 당시 (베이징 완바오 北京晩報)는
“한국팀이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마지막 1분까지 목숨 걸고 전력을 다했다”고 보도했다.
[인민일보]의 한국 월드컵팀 승인
분석도 ‘공한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인민일보]는
웹사이트에서 당시
‘한국 축구의 성공비결’이란 분석을 통해 한국이 단시간내에 어떻게
‘작은 오리’에서 ‘큰 백조’가 됐는지 그 비결을 공개했다. 당시 승인의 분포도를
보면
정신력 20%,
체력 10%, ‘붉은 악마’ 20%, 기술 10%, 히딩크 10%,
K리그
5%, 경험 5%, 심판 5%, 운 5%, 막후 변수 10% 로 각각 분석했다.
여기서도 정신력과 체력을 가장 많이 안배해 중국 선수들의 부족한 부분을 간접
시인했다.
정신력 부족 가장 큰 원인…프로 근성 중시 이장수 감독 '충칭의 별' 추앙
20%에 해당하는 ‘붉은 악마’도
중국 축구로선 결핍 요소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팬들이 경기장에서 팀을 마음껏 응원하고 스트레스를 발산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허용돼 있다. 축구팬들의 열렬한 응원은 선수들이 젖먹던 힘까지 다해 뛰게 만드는 ‘사기’(士氣)로 연결된다. 프로 선수들은 극한
상황에서 골작렬에 따른 팬들의 환호를 위해 한발을 더 뛰고 더 뻗는다. 한국기업 LG가 월드컵을 앞두고 ‘중국판 붉은 악마’ 구성을
지원한 적이 있다. 당시 중국 ‘추미’(蹴迷 축구광)의 이름은 ‘용의 혼’이란 뜻인 ‘룽훈’(龍魂)으로 결정됐다. LG는 2002년
3~4월 ‘전국 추미 총동원’(全國球迷總動員)
행사에서 응원 경연를 통해 한국에
파견할 팀을 선발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10여명으로
구성된 각지역팀들의 ‘응원
수준’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음악 소리에 맞춘 율동, 나팔,
북과 피리 등 갖가지 응원도구가
동원됐으나 무대를 뒤흔드는 신명과 열기는 없었다. 이는
중국 사회의 오랜 ‘표현
억제’문화와 관련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중국은 집회, 결사와 시위의
자유가 없다. 이는 축구팬들의
응원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운동장에서도 축구팬들의 심리를
위축시킨다. 축구
선수들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이름을 외치고 악을 쓰는
‘열광’(熱狂)이 아직 중국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한국관광공사가 월드컵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01년 12월
‘중국 축구팬 협회’ 구성을 위한 행사를 직접 꾸릴 정도로 팬문화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1980년대 초 국내에서 프로
야구와 축구 출범뒤 생겨난
응원 문화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응원하던 팀이
경기에 패한데 격분해 술병을
던지고 심지어 불을 지르던
당시의 응원 수준을
탈피했다. 2년전 월드컵 당시 수백
만의 관중이 시청 광장에
모였음에도 쓰레기를 줍고 어떤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중국
언론은 한국팀의 4강 진출에
놀라고 수백만이 시청
광장에 모인 수준 높은 응원 문화에
‘경악’했다. 중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때문이다.
실제 국가대항전 성격을 지닌
축구는 선수 기량뿐 아니라
국가 역량의 총합이다. 선수들은
갈고 닦은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뿐 아니라 팬과
국민들의 기대를 온몸에 안고
경기장에 나선다. 따라서
‘공한증’의 정체는 선수들의
정신력, 체력, 기술, 구단과
축구협회의 적극적 지원과 축구팬 활성화 등이 총합된
결정체로
봐야한다.
‘만만디’(慢慢地) 정신도 무시 못해…"매운 고추 같은 독기(毒氣) 필요" 축구외적인 요소로 중국인들의 기질도 ‘공한증’을 부추기는 한 요소로 보인다. 축구는 속도와 순간적인 집중력이 요구되는
경기다. 중국인들의 느긋한 ‘만만디’(慢慢地) 정신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교육 체제에 따른 몸에 밴 단체 생활로 주동적으로 나서길
꺼리는 점도 스트라이크 부재의
원인으로 꼽힌다. 또 한국이 70%가 산악 지형인데
반해 중국 도시 대부분이
평지인점도 어릴때부터 선수들의 하체 단련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치’ 등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식습관도 간접 영향을 미쳤다.
닭 싸움전 주인들은
닭에게 고추장을 먹인다. ‘싸움닭’의 투지를 기르기 위한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공다툼과 몸싸움에서
발현되는 악착같은 맛은 매운 고추장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 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 베이징 농업무역관(관장 정운용)은
2002년 7월 ‘월드컵 4강은
김치 덕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베이징에서 판촉활동을 벌여
효과를 거뒀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등 반도 국가들이 축구
강국이란 점이 이를 반영한다.
중국 선수들은 ‘공한증’의 극복을 위해서는 평상시
‘매운
고추’로 ‘독기’(毒氣)를 길러야 할 듯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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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2] 한중일 바둑 최강은?
보나마나 한국임에 틀림없는데 naver 지식 창고에 이런 질문이 올라와 있더군요. ostone이라는 분이 답변을 해주셨는데, 간단명료해서 좋습니다^-^:: =============================================================== [질문] 고스트 바둑왕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진건데요..일본의 바둑실력이 어느정도인지.. 뛰어나고 유명한가요?
[답변] 어느나라가 제일 바둑실력이 뛰어나냐에 대해 다들 막연히 이야기 하고 있군요. 바둑실력은 우리나라가 제일 뛰어납니다. 객관적인 증거들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랭킹을 매기고 있습니다.타이젬에 보니 1,2,5,6,7,11 위가 우리나라 기사들이군요.
http://www.tygem.com/Column/ranking/view.asp?seq=175&pagec=1&find=&findword=&gubun=KL http://www.tygem.com/news/news/viewpage.asp?pagec=1&seq=3672&gubun=0
때 우리나라는 껴주지도 않았지요. 그러던 와중에 1988년 대만의 응창기씨가 세계대회를 거의 최초로 엽니다. 1등 상금 4억원여...이 때 우리나라는 단 한사람만 대회 참가를 배정 받습니다. 미국이나 남미에서도 한명을 배정했으니 우리나라 바둑을 물로 본거지요.
이때 참가한 기사가 유명한 조훈현입니다. 이 때 참가한 조훈현은 소외받는 한국바둑을 서러움을 한 번에 날려버립니다. 단신으로 참가하여 당당히 적지에서
우승!!! 해설자(바둑기사 노영하로 알고 있습니다.)는 막 울었습니다. 그리고 생방송 도중 만세삼창을 한 일화는 유명하지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이창호의
전성시대!! 합니다. 그 정도로 바둑이 인기가 있는데 존경하는 기사가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 중국 기사가 아니라 이창호라고 합니다. 다들 이창호처럼 훌륭한 바둑기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말이지요. 야 이거 한국 쪼만한 나라 한테 질리가 없는데 왜 지는 거지? 실력도 우리가 뛰어난 것 같은데... 라는 심리가 깔려있는거지요. 공일증...이런거 없지않습니까? 일본은 인정한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런 중국이 정신적으로나 실력으로나 인정하는 것,
이창호가 중국을 가면 가히 웬만한 대통령 대접을 받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노무현은 몰라도 이창호는 압니다. 편집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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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3] 한중간의 바둑 세대간 비교
세계기전을 중심으로한 세대 구분
*위에 대한민국은 크게 쓰고, 중국은 작게 쓴 것은 국수 먹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세계 기전에서의 상대적 위상을 뜻하는 것 입니다^-^::
위 자료에서 보면 4세대(80년대출생자)가 본격적으로 성적을 내기 시작하는 시기여야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4세대에서 이세돌과 박영훈이 세계기전에서 6회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소리만 요란 할 뿐, 우승자는 단 한 명도 없고 준우승자만 두 명뿐입니다.
웃기는 것은 오히려 3세대 창하오와 2세대 위빈이 4세대 보다 힘을 더 발휘하고 있으니, 중국 기계는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닐까요^^::? (그럼 다음에는 1세대 섭위평이 우승하려나? 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은 각 세대 대표주자를 보면 1세대 조훈현, 2세대 유창혁, 3세대 이창호, 4세대 이세돌까지 확실한 포인트 메이커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1세대인 섭위평은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고, 2세대인 마효춘과 위빈 3세대인 창하오만 겨우 타이틀 몇개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4세대는 아예 국제 무대결승에만 올라가면 연전연패 입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한국 바둑에서 스타가 중요한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이 한국에 졌다고 하기 보다는 이창호에게 졌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사실 내용을 살펴보면 각 세대 대표주자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이 자꾸 한국과의 격차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는데 집 수로 계산 해서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을 하는 것인지? 실력차이는 결과가 말해줍니다. 통계가 말해주고 있구요. 예선에서 아무리 잘 했어도, 결승에만 올라가면 새가슴 새머리가 되는데...무슨 종이 한 장...ㅡ.ㅡ::
걱정스러운 것은 80년대 후반의 미래세대에서 치고 올라오는 신예가 솔직히 안 보인다는 것 입니다. 이창호는 저 나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세돌은 말 할 필요두 없구요.. 과연 저 중에 이창호에 버금가는 대기가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분발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윗 자료의 우측을 보면 바둑을 잘 두려면 이름에 "창"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ㅋㅋㅋㅋ이창호 유창혁 창하오...훔..또 없나요?
[명예기자 149번] 아르마다님이 위의 자료 관련 해설을 하셨습니다. http://www.tygem.com/news/writer/viewpage.asp?pagec=9&seq=171&gubun=W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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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진선 한 마디]
박지성 이영표가 앞으로 세계 축구의 이창호가 되기를 바랍니다.
중국 언론에서 중국 축구를 논할 때면 의례히 중국 바둑을 한번 언급하고, 역시 바둑을 논할 때면 한중간의 축구에 대하여 논하는 기사는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윗 중국 기사와 관련자료1과 관련자료2가 똑같은 맥락에서 쓴 기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관련자료1에서 김치의 예는 좋은 것 같은데... 중국에서는 싸움 닭에 고추장을 먹이나 보죠? ㅡ.ㅡ::
업글중 |
수박 위에 새긴 독도는 우리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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