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경기는 2년 여만에 열린 한-중전인 동시에 지난 27년간 계속되어 온 '공한증'이
깨지느냐, 계속되느냐에 관심이 모아진 경기였다.
경기 초반 중국의 공격수 가오린이 반칙을
범하지도 않았음에도 '장본인' 리웨이펑 대신
퇴장당하면서 중국의 공한증은 계속되는 듯했으나 한국이 후반 7분 오히려 순시앙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아
'월드컵 8강 성지'에서 공한증이 깨지는 '치욕'을 맛보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후반 27분 청소년대표(U-20) 출신 수비수 김진규가 프리킥으로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결국 1-1로 경기가 끝나면서 중국은 이번에도 한국을 꺾지 못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과연 공한증이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은 27년동안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한국을 깨기 위해 절치부심했고 한국은 이를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중국에게 지면 치욕이라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은 한국만 만나면 시종일관 거친
경기로 일관했고 그때마다 한국
선수들은 부상을 당하거나 시합 자체가 과열돼 경기 내용은 수준 이하였다.
이날까지 26번의 경기 중 가장 많은 점수 차이가 나봐야 겨우 2점이었다. 15승 중 10번이
1점차였고 11번은 무승부, 5번이 2점차였다. 2점차 또는 1점차는 그날 선수들의 컨디션에
따라
충분히 좌우될 수가
있는 것이다.
중국이 국제축구연맹 세계랭킹서 한국에 비해 많이 뒤처져 있긴 하지만 그들도 언제든지
올라설 수 있는 저력이 있다. 그리고 아시아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도 특정 팀이 다른 특정
팀에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거나 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도
세계 최강 브라질을 이겨보지 않았는가.
공한증이란 말이 중국 언론이 만들어낸 말이긴 하지만 우리도 공한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공한증은 징크스일뿐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 모두 공한증이란 말에서 벗어나야만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전=박상현 기자 tankpark@osen.co.kr
|
| |
|
|
| |
|
|
[세상읽기]세계 최강 한국바둑 이야기
신상인 논설위원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 6회 연속 진출 쾌거를 이뤘다.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4강
신화를 독일 월드컵에서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면 얼마나 공허한가.
축구 승리를 계기로 `꿈은
이루어진다` 바람이 다시 불 조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축구 못지
않게 인류 최고의 지적 스포츠로 통하는 한국 바둑에도 잘 어울린다. 우리는 이미 바둑에서
만큼은 세계 제패의 꿈을 완벽하게 실현했다. 13억 인구의 중국이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한국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는 두 가지가 바로 축구와 바둑인 것이다. 중국 축구는 국가대표
간 A매치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한국을 이긴 적이 없다. 오죽하면 공한증(恐韓症)이란
말까지 생겨났을까. 그러나
바둑 공한증은 축구 공한증을 능가한다.
그 뿌리는 저 멀리 1989년 최초의 세계 바둑대회인 잉씨배 결승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한국 바둑은 실력 면에서 일본은 물론 중국한테도 한참 밀리고 있었다. 올림픽
처럼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의 16명 본선 멤버에 한국 기사로는 조훈현 단 한 명이 올라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결승에 오른 조 9단의 상대는 당시 세계 최강자로 지목되던 중국의
1인자 네웨이핑. 10명이 서로 맞붙는 중ㆍ일 바둑슈퍼대항전에서 혼자 살아남아 일본 바둑의
기라성 같은 최고수 9명을 연달아 격파, `철의 수문장`이란 별명을 얻은 실력자였다. 당연히
네웨이핑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승리의 여신은 승부의 최대 고비였던 4번기에서 기적의
반집 역전승을 일궈낸 조 9단에게 미소를 보냈다. 우승컵을 안고 돌아온 조 9단은 시청 앞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반면, 네웨이핑은 패배의 충격을 끝내 이기지
못해 영영 무대 뒤로 사라져야 했다.
네웨이핑의
뒤를 이어 중국 기계(棋界)의 부동의 1인자로 떠올랐던 마샤오춘 9단의 운명은
더 처절했다. 각종 국제 기전에서 조훈현과 이창호의 벽에 막혀 패퇴를 거듭하다 급기야
이창호에게 10연패란 치욕적 기록까지 남겨야 했다. 현재 랭킹 1위인 창하오 9단도 최근
잉씨배에서 우승하기까지 오랜 세월 극심한 공한증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인 것은 지난주 한국 기사들이 일본 주최 후지쓰배 세계대회의
준결승전 4국을 모두 승리로 장식, 이미 한국의 우승을 확정지은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한ㆍ중ㆍ일 3국간 바둑 삼국지에서 한국의 급격한 부상은 당연히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 바둑의 급격한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80년대까지 바둑의 중심을 자처했던 일본
바둑이 변방의 한국 바둑에 지리멸렬하는 과정은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90년대 들어
어느 순간 투박하면서 힘이 강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전적 수법의 한국 잡초바둑이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며 도(道)와 예(藝)의 격을 갖춘 일본 바둑의 미학을 압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기리(棋理)나 모양에 얽매이지 않고 붙여서 끊거나 밀어붙이는 소위 `무식하고
노골적` 수법의 한국식 바둑은 중국에 의해 `한국류`라 명명됐다.
따지고 보면
바둑이 한류의 원조였던 셈이다.
그리고 그런 한국 바둑의 선봉에는 항상 조훈현이란 불세출의 영웅이 서 있었다. 조 9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바둑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바둑평론가 박치문
씨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한국 바둑의 치수를 `최소한 한 점 반 이상` 올려놓은 공로자다.
마치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살아남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는 필마단기로 일본과
중국 고수들의 숲을 헤집고 달렸으며, 아직도 건재하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최강자인 부동심 이창호를 길러낸 것도
바로 그다.
세월이 흘러 50대 중반에 이른
조훈현은 이제 결코 `넘지 못할 산`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한국 바둑의 내일을 짊어질 신예기사들에게 `디딤돌`이 돼주고 있다. `바둑황제` 조훈현을
넘은 신예들에게 두려운 상대란 있을 수 없다. 한국 바둑의 오늘이 있게 한 천하무적 조 9단이
고통스런 한숨과 장탄식을 내뿜으며 신예 강호들에게 밀리는 모습은 세월의 무상과 함께
한국 바둑의 밝은 앞날을 말해
준다.
바둑처럼 `한국류`라 부를 만한 우리만의 경영문화와 기업지배구조 그리고
노사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은 아쉬운 일이다. 우리 경제의 비약적 도약이 가능하려면 황우석,
이건희를 뛰어넘는 후학들이 줄을 잇고, 삼성전자와 포스코의 명성을 무색케 하는 생명
공학과 IT 분야 벤처신화가 탄생해야 한다.
경제에 있어 `한국류` 출현은 불가능한 것인가.
|
[관련자료1]
중국 축구, 恐韓症 에 시달린다.
‘중국 恐韓症 ’ 헤집을
것까지야 ‘추미’들이 창사 허룽경기장에 모인 건 한번만이라도 중국이 한국을 꺾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 이었다. [의용군행진곡][조국찬가]를 목청껏 불러대며 백여명에 지나지 않는 ‘훙모(붉은 악마)’의 함성을 지울 순 있었지만, ‘恐韓症 ’이라 불리는 중국팀의 불쾌한 증후군을 지울 순 없었다. 추미들의 게시판은 실망과 야유와 한탄으로 덮였다.“13억명 가운데 쓸만한 자 11명이 없냐” 는 외침과 그 밑에 붙은 “26억개의 다리 가운데 쓸만한 다리 22개가 없냐” 는 댓글에는 중국의 성 하나보다도 작은 한국을 26년 동안 꺾지 못한 중국팀과 추미들의 원망이 절절히 배어 있다. 6666 최근 한국의 베이징 주재 외교관과 술잔을 기울이다 이 ‘공한증’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중국 추미들의 열정과 좌절이 안주거리로 오르내리던 중 그 외교관은 “한국팀이 한번쯤 중국팀에 졌으면 좋겠다”는, “이완용 이래 가장 강도 높은 매국노적 망언 ”이라는 십자 포화를 불러들인 대쪽같은 소신을 내뱉어 좌중을 잠시 소란하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외교활동을 해야 하는 그로선‘恐韓症 ’ 신화로 인해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맹목적으로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는 현실이 부담으로 작용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6666 게임에서 억지로 져줄 수야 없지만, 중국팀이 하루빨리 진정으로 한국을 꺾을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길 희망한 것이라는 부연설명으로 이 외교관은 자신을 이완용의 뒷줄에 세우려는 열성파들을 무마할 수 있었다. 6666
한국 언론은 중국과 경기가 있을 때마다 “恐韓症 은 계속돼야 한다”고 제목을 뽑는다. 6666 이는 중국 추미들도 상세히 알고 있다. 이런 자극 때문에 이들의 공한증 격파 열망은 더더욱 하늘을 찌르며, 그로 인해 좌절의 골 또한 깊은 것이다. 만약 처지가 거꾸로 라면 중국 언론은 아마도 자신들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려 온힘을 다할 것 같다. 중국 언론은 하루가 멀다하고 중국의 경제발전이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증명 하려는주장을 발표한다. 최근 중국 지도부의 유행어 가운데 하나인 ‘평화적인 일어남’도 같은 맥락에 놓인 설법이다. 6666 중국엔 [손자병법]을 머리로 한 이른바 ‘무경칠서’(전쟁술에 관한 일곱 가지 경전)가 있다. 강태공이 지었다는[육도]란 책도 그 가운데 하나다. ‘육도’란 ‘여섯 가지 칼집 주머니’란 뜻이다. 칼을 논한 것도, 칼집을 논한 것도 아니요, ‘칼집을 넣어두는 주머니’에 대해 논한 책이다. 칼춤 추며 진흙탕 개싸움을 벌이는 건 낮고도 낮은 술책이며,칼집 주머니의 그림자만 언뜻언뜻 보여주면서 천하를 얻는 게 진정한 고수 라는 사상이 제목에 이미 반영돼 있다. 중국이 결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강변은 이런 ‘육도’의 전통과 이어지는 처세 철학이다. 6666 ‘恐韓症 ’이 한국에 대한 중국 젊은이들의 극심한 질시와 증오감을 부추기는 신화라면 우리가 나서서 이들의 아픈 상처를 헤집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칼집 주머니의 그림자만 슬쩍 비쳐주고도 천하를 얻는 지혜 를 우리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6666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앞으로 저런 구호는 삼가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
|
[i진선 한 마디] 오늘도 역시 '공한증' 을 내세운 축구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경기장에서는 피켓팅까지 하면서 공한증을 자랑(?)합니다. 바둑에서도 세계기전하면 역시 공한증에 대한 말이 빠지지를 않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한국은, 인구도 많고 국토도 넓은 세계적인 강자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공한증"이라는 말로 위로하는 것 아닐까요?
윗 글 쓰신 세 분의 말씀의 공통점은 바로 그들의 질시어린 공한증이란 말에 즐거워하고 으쓱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속내를 파악하고 우리의 발전에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 역사상 중국의 침략에 조상님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습니까. 유전적으로 갖고 있는 공중증이, 짧은 기간 동안에 잠시 그들에게 공한증으로 옮겨갔다고해서, 우리의 공중증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조상님들의 고통을 잠시 잊고, 몇 개 분야의 공한증에 만족한다면 되겠습니까?
경기장에서 저렇게 공개적으로 '공한증'을 들고 내세울때, 저것을 보는 중국인들의 속은 얼마나 상할까요? 이유없이 한국을 미워하고 조롱하는 중국인들이 무척 많다고 들었습니다. 축구나 바둑에서 공한증으로 우월감 느끼는 동안 다른 분야에서는 공중증에 더욱더시달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축구든 바둑이든 현재의 승부이고 과거 기록에만 연연해 했다가는 큰코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심합시다. 공한증. 그리고 중국.
|
총 댓글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