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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공한 프로기사 부모의 자녀 교육

[칼럼] 성공한 프로기사 부모의 자녀 교육

i진선2005-10-10 23: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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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진선]

논단에서 몇 달째 조혜연 6단에 대한 갑론을박에 끊임없습니다.

조혜연 관련기사로 불쏘시게를 던졌던 저로서는 좀 난감하죠...

 

관련자료를 뒤적이다가, 02년도에 구기호 기자님의 칼럼을 찾았습니다.

구기자님은 한국 기원에서 기자로 활동하셨으며, 좋은 글을 많이 남겨주셨어요.

그런데 요사이엔 거의 글을 쓰시지 않는 것 같아서...궁금합니다.

 

꼭 바둑교육에 대한거라기 보다는 성공적인 프로기사를 키운 부모들의 자녀 교육관은

어땟는가를 알기 위해서도 아주 좋은 글인 것 같습니다.

안보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소개해 드립니다. 

 

전체적으로는 칼럼과  인터뷰와 같이 있어서, 종합하여 "성공한 프로기사

부모의 자녀 교육" 이라는 제목으로 올리오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아이 이렇게 프로기사 만들었다 - 서론 (2002/05/09)
프로기사 부모의 길 - 서론
 
입단제도의 도입으로 갈수록 멀곧 험해져만 가는 프로 입단의 관문. 과연 우리집 아이를 입단시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무엇을 도와주어야 되는지, 잘 나가는 프로 4인을 배출시킨 바로 그 부모들의 뒷바라지를 생생한 육성으로 듣는다.

최근 야구에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면, 바둑에는 ‘국보급’ 이창호가 우상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지 이미 오래다.

“아빠! 나도 ‘창호’형처럼 될 거예요.”

한국기원 4층에 자리한 30여평의 아담한 방이 바로 연구생실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제2의 이창호’를 꿈꾸며 돌과 씨름하는 ‘바둑사관생도’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따악~, 따악~’

청명한 소리를 따라 들어가 보면, 바둑판을 사이에 둑 판 위에서 벌어지는 천변만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아이. 이겼다고 ‘희희낙락’ 마냥 즐겁기만한 아이. 졌다고 ‘울그락 불그락’ 화가 단단히 난 아이. 승패를 금방 잊어버린 듯 무표정한 아이 등등. 대부분 열 살을 갓 넘긴 아이들이지만, 바둑 실력만큼은 ‘짱짱한’실력을 갖추고 있다. 또 그 아이들은 입단의 관문을 통과해 프로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10대가 아니면 안된다”

일찍이 일본 프로 五단이면서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로 전업한 가사이 고우지 씨(조치훈 九단의 고문변호사)는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것보다 오히려 프로에 입단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얘기할 정도로 입단의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프로가 되는 길은 오직 하나. 동등한 조건에서 입단대회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서 프로가 될 수 있다. 국내에서 한해 실시되는 입단대회는 모두 다섯 차례. 여기서 봄가을 대회 두차례와 연구생대회에서 각각 2명씩 남자 6명과 두차례 여류대회에서 각각 1명씩 여자 2명이 프로가 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프로로 선택받은 입단자들 대부분은 10대들이라는 점이다. 어느틈에 바둑계도 10대들의 세상이 된 것이다.

가요계에 ‘힙합’바람을 타고 10대들이 활개를 치는 것마냥, 바둑계도 연구생제도의 도입으로 운동화부대들이 기승을 부린다. 최근 몇 년간 입단자의 추세를 보면 10대들이 프로행을 거의 독차지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이밖에도 바둑을 배우게 되면, “정서가 안정되어 주의력, 집중력, 분석력, 인내심 들이 길러져서 지능개발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는 인식이 사회에 확산된 점과 초일류기사들 대부분이 이미 10대 초반에 입단했다는 점 등도 자녀의 조기(早期)교육의 풍토를 조성해 입단의 연령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스포츠의 과학화가 실현되면서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10초대의 100m육상기록이 허물어졌던 것처럼 어느덧 바둑계도 그간 연구생제도의 도입과 조기 교육에 힘입어 “이제 10대가 아니면 안된다”는 입단의 새로운 풍속도까지 생겨났다.

이제 웬만큼 바둑을 일찍 배우지 않고서는 입단의 문턱은 고사하고 연구생 문턱도 밟아 보지 못할 지경까지 치달을 게 입단의 현실이 됐다. 과연 입단을 위해서 부모는 아이에게 무슨 뒷바라지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현역 프로기사를 배출해 낸 부모들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본다.

[구기호 기자]

 

이창호 9단의 아버지 이재룡씨의 인터뷰  (2002/05/09)

지나친 간섭은 아이에게 부담

이창호 九단이 세계최강으로 군림하기까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있었꼬, 또 무엇보다 스승을 세 분씩이나 만났다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당대의 1인자 조훈현 九단의 내제자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행운이었다.



- 왼쪽은 세계최강 이창호 9단의 사진







다음은 이창호 九단의 아버지 이재룡씨의 인터뷰

“지나친 간섭은 아이에게 부담”

89년 8월 KBS E스튜디오. 역사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기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오후 4시 30분. 바둑계에 전무후무할 대기록이 세워졌다. 그해 불과 14세 소년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제8기 KBS바둑왕전 결승 제2국에서 이창호 九단이 김수장 九단(당시 七단)을 2:0으로 누르고, 입단한지 4년 만에 첫 타이틀을 따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세계 최연소 타이틀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려진 사건. 그 뒤로 2년이 지난 91년에는 무대를 세계대회로 옮겨 동양증권배에서 우승, 또 한번 세계를 깜짝 놀래 키며 세계대회에서도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운다.

한국바둑계의 ‘보배 중의 보배’ 이창호 九단도 그의 할아버지 고(故) 이화춘 옹(86년 작고)과 아버지 이재룡 씨가 ‘기재’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그랬더라면 한국바둑계는 상당히 불행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전주에서 네 살 때 할아버지에게 바둑을 배워 84년 두차례의 시험기를 거쳐 조훈현 九단의 ‘내제자’로 들어가기까지 6년 동안 2명의 스승을 만난다. 첫 번째 스승이 당시 전주의 아마추어 강자였던 이정옥 6단. 이창호는 이6단으로부터 1천판에 달하는 복기를 받으며 기초를 착실히 쌓았다. 이어 두 번째 스승인 전영선 七단을 권경언 六단으로부터 소개받아 1년 동안 ‘사사’를 받는다. 그리고 세 번째 스승인 조훈현 九단의 내제자로 들어가 오늘날의 이창호로 거듭난다.

-아드님을 세계 최고의 기사로 키우시기까지 어려운 점은?

“창호가 워낙 무던한 아이라 별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묵묵히 객지 생활을 잘 해준데 대해 아버지로서 고마울 뿐입니다. 저보다는 창호 할아버지와 선생님들이 애써 주신 덕분에 창호가 세계 최고기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철부지 창호를 내제자로까지 받아들인 조국수님(조훈현 九단)의 은혜는 평생의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창호가 대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떻게 보십니까?

“아무래도 ‘선생님복’을 타고 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평생 한분도 만나기 어렵다는 선생님을 한분도 아니고 세분씩이나 만나게 되었으니, 창호는 정말이지 운이 참 좋은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당대의 최고수인 조국수님을 만났다는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창호가 조국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창호가 될 수 없었겠죠.”

-입단지망생을 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아이에게 지나치게 기대를 하거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칫 중압감이 가중돼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나친 간섭은 아이에게 그만큼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더욱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결코 자만하지 않고 정상의 자리를 지켰으면 합니다.”

[구기호 기자]

 

최명훈 8단의 아버지, 최오준씨 인터뷰 (2002/05/13)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성공의 비결”

최명훈 五단이 프로무대에 우뚝 서기까지는 아버지 최오준씨의 자식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있었다.

아들의 입단을 위해서 아버지의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바둑에만 몰두하게 한, 그야말로 헌신적인 사랑 덕택이었다.


좌측의 이미지는 최명훈 8단의 사진. 아래의 인터뷰는 최명훈 8단이 5단이었던 시절의 것이며. 이후 프로 최명훈은 제5기 LG정유배 프로기전에서 우승했으며 2001년 후지쯔배에서 준우승하는등 정상에서 활약하고 있다.





최명훈 8단의 아버지, 최오준씨의 인터뷰
-한 우물을 파라!!


국내바둑계에 요즘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창호 九단을 빼고 잘 나가는 기사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최명훈 五단이 매번 오르내린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본선무대를 뛰어넘어 기성전에서 도전권을 따낸 이래 명인전까지 두차례나 도전권을 따내더니 얼마 전에는 테크론배 프로기전에서도 도전권을 따냈다. 비록 이창호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九단 일변도의 도전무대에 식상해 있던 바둑팬들에게 이번만큼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도 흔치 않았다.

본선멤버에서 이제 어엿한 도전무대로 자리를 옮긴 최명훈 五단. 그의 이면엔 누구보다도 소중한 아버지 최오준씨가 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들에게 자상하기보다는 엄한 아버지. 때론 매정할 정도로 혹독하게 바둑공부를 시키지는 않았는지.”

91년 최명훈 五단이 입단할 때, 최오준(52세)씨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내 자식이나 된 것마냥 바둑을 지도해 주신 김좌기 七단. 경남 함양에 있는 용추사에서의 외로운 싸움 등등. 만감이 교차된 감격의 눈물이었다.

6년이란 세월을 오로지 바둑 하나만 보고 외길 인생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그의 눈가엔 송글송글 이슬이 맺혀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프로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꼭 바둑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기가 이루고 싶을 일을 이룰 때까지 한눈 팔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한 우물만 계속해서 파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바둑계 주위를 돌아보면 어떤 아이는 분명히 기재가 있는 것 같은데, 한 두 번 실패했다고 아예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을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도전에 실패했을 때는 자기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보고, 다시 일어나 도전하십시오. 결국 강한자가 성공하게 되어 있는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프로를 길러낸 아버님으로서 프로 지망생들을 둔 부모님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다 기울였더라도 집중력을 갖지 못했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십상입니다. 하루 1시간을 공부하더라고 온 신경을 다 쏟아 부어 공부할 때 효과가 분명히 끌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 부모님들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다시 말해 아이가 신경쓰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방문마다 문 여닫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기름칠을 해 둘 정도로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 심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아이가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면?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쓰고 계속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선후배간에 우애와 신의를 잘 지켜 인정받는 명훈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괴동 목진석 - 부자(父子)의 인터뷰 (2002/05/18)

강요보다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프로 목진석의 경우는 조기(早期)교육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여기에는 물론 프로기사 목진석의 아버지 목이균 씨의 아들에 대한 각별한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목진석 6단은 19기 KBS 바둑왕전에서 이창호 9단을 누르고 우승했었고, 1999년과 2002년 기성전에서는 이창호 9단에게 도전했으나 실패, 준우승에 그쳤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가는 박빙의 승부는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목진석. 이창호 9단을 위협하는 정상급의 초특급 강호임이 분명하다.



■목진석 三단의 아버지 목이균 씨의 인터뷰 내용

젖먹이를 이제 막 벗어난 두살 바기 아이가 한글을 깨우치는가 하면, 다섯 살이 채 안돼 구구단을 줄줄 외우는 아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천자문(千字文)을 모두 꿰차고 있는 아이 등등. 세상엔 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정말 믿어지지 않는 사실에 참 놀랄 때가 있다.

지난 94년에 입단, 올해로 프로 4년차를 맞고 있는 목진석 三단도 이미 다섯 살 때 한글이며 구구단을 깨우친 ‘신동(神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그의 천재성이 반상에서 현실로 나타났던 때를 기억하는 바둑팬들은 의외로 많을 것이다. 바로 그 때 기억을 끄집어 내보자.

지난 9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벌어진 제2회 한,중 바둑대항전에서 믿어지지 않을 일이 벌어졌다. 불과 입단한지 1년 남짓한 15세 소년 목진석 初단이 ‘철의 수문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녜 웨이핑(聶衛平) 九단을 무참히, 그것도 중국의 안방에서 쓰러뜨린 것이다. 그야말로 우연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큰 엄청난 대사건이었다.[하단 관련기보에서 총보감상 가능]

자고 일어나 보니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훌쩍 커 버린 목진석 三단. 이후 제3회 대회에서는 당시 중국내 3인자인던 류 샤오광(劉小光) 九단을, 얼마전 한국이 분패한 제4회 대회에서는 중국내 차세대 주역으로 손꼽히는 ‘6소룡’중의 한명인 뤄 시허(羅洗河) 六단을 꺾어 결코 제2회 대회 때 녜 웨이핑 九단을 꺾은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재차 증명해 보였다.

오늘 목진석 三단이 있기까지에는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인 아버지 목이균(46세, 동원증권 고문)씨가 있었다.

-목진석 初단이 바둑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한 번 몰두하면 좀처럼 헤어날 줄 모르고 깊이 빠져드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로서 이 아이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에 바둑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다섯 살 짜리 꼬마를 바둑학원에 보내려니까 너무 어리다고 돌려보내더군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한동안 직접 가르쳤지요. 느는 속도가 무척 빨랐던 기억이 듭니다. 바둑을 배운지 불과 1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8강, 3년만에 이붕배와 해태배를 우승해 그 이듬해 연구생에 들여보냈죠.”

-연구생을 하다가 중도에 1년 정도 쉰 것으로 아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내 아들이 바둑을 제일 잘 두는 줄로만 알고 연구생으로 키워 보려고 했는데, 글쎄 구생 7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고작 연구생 7급이라니. 처음엔 하도 기가차 한동안 말도 안 나오더군요. 제가 그럴 정도였으니까 아들이야 오죽했겠어요. 아무튼 연구생들의 실력을 그때서야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적응이 힘들었던지 무척 괴로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입단의 꿈을 접고 1년을 쉬기로 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들이 1년을 쉬는 동안 바둑을 마음속에 끼고 살았나 봅니다. 다시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결국 입단까지 해내고 말았습니다.”

-자식을 프로로 키우려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강요하지 말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입단이라는 것이 당사자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으니까 말입니다.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는 냇가까지는 끌고 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말이 물을 먹고 안 먹고는 말에게 달려 있습니다. 주인이 말에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또 억지로 먹이려고 해도 듣지도 않고요. 자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바둑을 둘 수 있는 여건까지만 부모가 책임지면 된다고 봅니다. 너무 다그치고 강요하는 것은 아이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끝으로 아들에게 거는 기대나 바람은?

“현재 거두고 있는 성적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앞으로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꾸준한 성적을 내준다면 아버지로서는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목진석 3단시절 아버지 목이균씨의 인터뷰이다./ 구기호 기자]


 

조혜연 어머니 황연숙씨 인터뷰 (2002/05/23)

천리안 바둑동 사범님들이 일등공신

내(조혜연 初단) '진짜기풍'은 어떤 것일까? 혜연이의 잃어버린 기풍을 찾아주세요!!!

▲입단전 기풍변화(제1의 변신)-엄청난 속기바둑에 '깡패바둑'으로 불릴 정도로 공격적인 기풍(노근수 사범님은 제발, 천천히 두라고 노래를 부른다)

▲입단후 기풍변화(제2의 변신)-지독한 장고파에 엄청 땡기는 실리바둑(김원 사범님은 제발, 빨리 두라고 노래를 부른다)

▲조혜연 初단의 진짜기풍(제3의 변신)-???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처럼 영원한 기록은 없다. 그런데 바둑에는 예외가 있는 듯 하다. 바로 조훈현 九단이 9세 때 세운 최연소 입단 기록이다. 분명 이 기록은 앞으로도 영원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여류에서는 김민희 初단이 13세로 최연소입단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록을 1년 앞당긴 소녀가 화제가 되었던 사실을 바둑팬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올 봄 제11회 여류입단대회에서 조혜연 初단이 12세에 입단에 성공, 여류바둑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사랑하는 남편과 1남1녀를 둔 평범한 가정을 가진 황연숙(39세) 씨. 바로 여류계의 샛별로 떠오른 조혜연 初단의 어머니다. "단지 아이가 내성적이다보니 밖에 잘 나가 놀지도 않고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것이 걱정돼, 밖으로 내돌리려고 바둑교실에 보낸게 결국에는 바둑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처음엔 그저 바둑교실에 나가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도 사귀고 취미라도 붙여보라고 시작한 바둑에 혜연이가 이처럼 깊숙이 빠져들 줄은 정말 몰랐다고 한다.

"어쩌면 혜연이가 바둑과 연을 맺으려고 그렇게 집밖으로 나가길 꺼렸나 봐요." 사실 혜연이에게 바둑을 가르쳐 프로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바둑계에 프로기사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전혀 모르던, 바둑에 관 한한 완전히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던 조혜연 初단의 어머니 황연숙(39세)씨. 어쩌면 애초부터 각본에 짜여진 운명이었는지….

-소문에 의하면 천리안 바둑동에서 가장 인기있는 아이가 바로 따님이었다면서요.

"꼬마인데다 여자아이라니까 이용하는 사범님들이 귀여워 한판씩 지도해 준 거죠. 천리안 바둑동에서 통신대국을 하게 된 것은 주위에 마땅한 대국 상대가 없어 고민 끝에 당시 아이의 지도를 맡아 주셨던 노근수 사범님(아마5단)이 추천했어요. 또 두고 난 다음에는 노사범님이 복기지도를 철저히 해주셨어요. 아마 모르긴 해도 엄청 많이 대국을 했을 거예요. '실전보다 좋은 스승은 없다'. 바둑은 잘 모르지만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아무튼 통신대국이 혜연이한테는 무척 재미가 있었나봐요. 프로가 된 지금도 통신바둑을 두다가 김원 사범님한테 가끔 혼나는 때가 있어요."

-바둑을 전혀 모르는 어머니로서 딸 뒷바라지를 하다보면 애로 사항이 많았을텐데.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는 이따금씩 아이가 프로의 꿈을 버려주길 바랬어요. 그래서 딸하고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까지 입단을 못하면 바둑을 포기하기로 약속까지 했었어요. 혜연이도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려는지 여느때 보다 열심히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결과는 또 떨어졌어요. 그런데 딸애가 막무가내로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그러더군요. 어떻게해요. 엄마가 져야지. 그 뒤로 아이가 강해졌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곧 프로가 되었죠. 결국 입단이라는게 자신이 스스로 강해질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될 수록 아이에게 강한 정신력을 키워주는 게 우리집 아이의 경우에는 입단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막 입단한 딸이지만 나름대로 거는 기대가 있을 텐데요.

"벌써부터 주위에서들 혜연이를 앞으로 잘만 다듬으면 중국여류를 꺾을 재목이라는 얘기를 해요. 아무튼 너무 어려서 프로가 되다보니 잘 키워 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열두살짜리 딸을 둔 엄마로서는 이보다 사실 걱정이 앞서요. 어릴 때부터 유달리 집착이 강한 아이인데, 자칫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혹 중도에 열등감이나 좌절감 속에 사로잡혀 살까 우려가 되요. 혜연이가 원하는 일이 앞으로도 잘 되길 빌어 야죠. 항상 최선을 다하는 딸을 보는게 소원이에요."

[조혜연 初단 시절의 인터뷰임. 글 구기호 기자/구성 CYBERORO]

 

박영훈 아버지 박광호씨의 이야기.  (2002/05/28)

즐겁고 폭넓은 바둑으로~♬

“처음엔 취미 생활을 같이 하고 싶어 아들한테 바둑을 가르쳤죠.”

- 2001년 12월, 제6기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서봉수 2단에 두번째로, 어린왕자 박영훈 2단이 10대의 나이와 2단의 단위로 타이틀 정복에 성공했다. 지금은 박영훈 3단이 되었고, 도요타 덴소배. 후지쯔배, LG배등 각종 세계기전에서 무서운 활약을 펼치고 있다. 밑의 글은 현재의 박영훈 3단이 아직 타이틀을 따기 전의 것으로서, 부친인 박광호씨와 스승인 최규병 9단의 이야기를 취재와 인터뷰 형식으로 박영훈 3단의 입단전, 입단후, 포부를 다각도에서 조명한 것이다. 왼쪽의 사진은 박영훈 2단이 월간바둑 표지로 나왔던 것. 2001년 10월호.

그렇다. 아마5단의 기력을 갖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바둑광 박광호 씨가 아들 영훈에게 바둑을 가르친 이유는, 함께 수담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허나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는 법. 특히 자식에 대한 바람이란?



영훈은 서너살 때부터 숫자에 묘한 관심을 보여왔다. 1부터 1,000까지 재미 삼아 쓰길 즐겼고, 지하철을 타면 구간별 덧셈을 하며 즐거워했으며, 식당에서 메뉴들끼리 묶어서 더하길 좋아했다. 심지어 바둑책을 보면서도 결과에 적힌 숫자에 꽤 관심을 보였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예사롭지 않는 현상에 바둑을 가르쳐 보고픈 마음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영훈이가 다섯 살 되던 해(90년)에 지리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중턱에서 쉬며 아버지는 누나와 함께 장기를 두라고 권했다. 고사리 손으로 장기를 두는 모습이란, 등산하던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따. 그때 그 어떤 계시를 받은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묘한 감정에 빠지며 마침내 아들한테 바둑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때부터 영훈은 아버지한테 혹독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다. 8급 정도인데도 6급 수준의 문제를 내 못 풀면 잠을 재우지 않을 정도였다. 6개월 가량을 그렇게 강행했다. 마치 시라소니가 자기 새끼를 낭떠러지로 몰아넣은 후 기어올라오는 놈만 키우는 그런 심정으로.

“저(아버지)한테는 그 6개월이 테스트 기간이었죠. 프로가 될 가능성에 대한. 그리고 프로가 되더라도 박세리나 박지은 같은 일류 프로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설픈 프로가 될 양이라면 애당초 시작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잠잘 여관을 찾을 때?

영훈이는 아마추어 시절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우승했을 때가 아니라고 기억한다. 지방대회에 출전해 본선에 진출, 잠잘 여관을 찾으러 다니던 시간이 제일 황홀했다는 것. 왜? 이유는 간단했다. 보통 지방 대회엔 아버지 차로 가기 십상인데, 예선탈락 하면 화가 잔뜩 난 아버지가 과속으로 달려 집으로 돌아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라고.

박광호 씨는 그만큼 아들에 대한 기대가 각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 뒤엔 남모를 고충과 피멍어린 노력이 동반돼 있다. 누가 ‘아버지의 지나친 욕심’으로 폄하할 수 있으리오. 아들에 대한, 단 한줄의 기사라도 빠뜨림없이 모든 기록을 스크랩해 온 아버지. 기사 스크랩은 기본. 아들이 3급 정도부터 둔 친선바둑까지도 손수 기보를 떠 관리해 온 아버지. 그 바둑이 지금까지 1,000여판은 족히 된다고 하니. 더 나아가 아들에 대한 바둑일기를 10년 가량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기도 했다. 입단대회에서 8번 고배를 마시는 동안 아버지는 낙마한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감독 겸 코치를 맡았다.

도대체 무슨 감독과 코치를 했다는 얘기일까?

한 마디로 아들과 붙은 모든 대국자를 면밀히 분석, 이를 아들한테 알려준 것이다. 개인별 승률은 기본 사항이었으며, 아들한테 이긴 사람은 보다 철저히 분석했다. 가령 A군의 미니중국식 포석에 양화점으로 대응했더니 졌더라, 다음엔 A군의 미니중국식에 다른 포석으로 대결해 봐라, 하는 식이었다. 아무리 아들일지라도 여간한 희생과 관심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다. 그런 아버지의 노고와 아들의 노력에 하늘도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던지, 99년 12월 8전9기 만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입단의 관문을 뚫는데 성공한다.

실력도 세고 겸손한 이창호 九단을 존경하고, 화려한 기풍을 펼치는 유창혁 九단 바둑을 흉내내고 싶다고 말하는 박영훈 二단. ‘이창호 九단처럼 세계 1인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유창혁 九단처럼 조금 여유 있게 살고 싶기도 하다.’는 욕심 많은 바둑 새내기.

지금까지 아버지 손에 키워졌다손치더라도 프로가 된 지금부터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바둑을 대하는 게 가장 큰 장점

“제 제자라서가 아니라 프로기사로선 아주 손색이 없습니다. 척척 알아서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가르치기가 너무 편하죠. 다만 몸이 좀 약한 것 같아서.”

최규병 九단은 자신이 프로로 배출한 첫 제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제 갓 입단해 얼마전 도전권 문턱(배달왕기전 도전자 결정전서 이세돌 三단한테 1승 2패로 패한 것을 말함)까지 간 것은 기대 이상의 성적이었지만 좀더 지켜 볼 일.”이라며, “무엇보다도 영훈이는 지금도 입단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는 게 다른 프로기사들한테서 보기 힘든 장점”이라고 말한다.

보통 프로가 되면 승부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어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이나 의무감 속에서 늘 긴장하기 일쑤다. 그러나 박二단은 다르다.

 

박二단은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즐거워하며 바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九단은 이 점을 높이 평가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기꺼이 즐거워하며 공부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당연히 잠재력이 더 많고 ‘폭 넓은 바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훈이가 바둑을 각별히 좋아하고 기재도 있다 보니 많은 프로기사들이 기회가 되면 가르쳐주곤 했습니다. 복이라면 복이었죠. 특히 어릴 때 기초를 다잡아 주신 홍태선 사범님을 일찍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영훈이가 입단하는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일인데, 좋은 프로기사를 만들려면 삼위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부모와 선생, 그리고 본인이 한 마음으로 뭉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란 얘기죠. 특히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데, 영훈이의 부모는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어요.”

끝으로, 박영훈 二단을 이렇게 전망한다.

“얼마 전만 해도 실리를 너무 밝히는 경향이 있어 우려했는데, 지금은 그 점도 많이 보완된 것 같아요. 지금 스타일처럼 공부한다면 머지 않아 이세돌 三단처럼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니겠어요. 하하, 제자 자랑이 너무 심했나요.”

[구기호 기자 / 구성 Cyberoro ]

[i진선 한 마디]

위의 프로기사 부모님들이 자녀교육에 대한 언급이 거의 같죠?

강요하지 말라, 즐기게 하라. 항상 긍정적으로 격려해주어라...등

바둑교육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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