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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문용직, 사기꾼들이 바둑에서 人生, 道 찾아.

[대담] 문용직, 사기꾼들이 바둑에서 人生, 道 찾아.

i진선2005-10-31 14: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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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야기, 그 신화가 사라지고 있다”

 

(::‘바둑의 발견2’ 출간 문용직 박사 취중 인터뷰::)


“바둑이 뭐 그리 대단한 겁니까? 바둑은 게임일 뿐입니다.

 바둑에 인생이 있다느니 도가 있다느니 하는 놈들은

 다 사기꾼입니다. 뭐도 모르는 것들이 뻔뻔스럽게 하는

 얘기라 이겁니다.”


하얗고 깡마른 얼굴에 점차 붉은 기운이 돌면서 언성이 높아진다. 테이블의 빈 맥주병 줄도 점점 길어진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난다. 그러면서 자꾸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는다. “용직아 용직아 너 이러면 안돼. 왜 흥분하고 그러냐”하면서.

그렇다. 이 사람이 문용직이다. 세계 처음으로 바둑의 역사적 학문적 접근을 시도한 사람. 프로바둑 5단이면서 정치학 박사. 1998년 ‘바둑의 발견’이란 책으로 신문의 북리뷰를 장식하더니 7년 뒤 슬그머니 제2권을 들고 나타났다. 이 사람이 지금 열 받았다.


“바둑이 싫어요, 바둑계도 싫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 …”


“지금 한국 바둑은 위기라 이겁니다. 신문에서도 기전이 사라지고 있어요. 국제 대회서 성적 좀 올리니까 다들 한국 바둑 잘 나가는 줄 알아요. 아무도 걱정을 안해요. 아니 지금이 위기라는것도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바둑계가 사는 겁니까?”
이 사람 대답, 간단하다.

“모릅니다”
모르다니, 실컷 열 올려 놓고선. 미안했던지 한마디 보탠다


“공부해야지요. 공부 안하고는 모릅니다”
그러면서 술집 사장을 부른다. “맥주 두 병 더”


처음 전화를 걸어 약속 장소를 잡을 때 술집을 택한 것은 나였다. 5급 주제에 프로 5단에게 아는 체 할 수도 없을 것 같아 소주나 한 잔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눅여 보자는 속셈이었다. 사실술은 좀 된다는 자신도 있었고. 그런데 지금 상황 역전, 다행히나는 소주를 시켰다. 주거니 받거니 안하기를 천만다행.

“김천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충암으로 옮겼던데요?”
“충암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바둑 특기생으로 찍힌거죠. 뭐별로 고민없이 옮겼어요, 바로 후회했지만.”


그래도 무슨 결심이 있어 옮기지 않았었냐고 재우치자 귀찮다는듯이 툭 던진다.

“심심해서 그랬소”
당시 문 5단은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고 다른 길을 걷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학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그는 그 자신감을 스스로 증명했다. 충암을 졸업한 이듬해 예비고사를 치고 대학에가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프로 입단을 했다. 88년에 프로 신인왕 전에서 우승을 거뒀다.

94년에는 정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바둑과 학문을 교대로 착점을 한 셈이다.

“내겐 바둑도 학문도 다 외도였어요. 재미있는 게 뭐 없을까 하고 이 곳 저 곳 기웃거렸죠. 그래 봤자 모두 겨우 두 집 나고 산바둑이랄까? 그렇다고 나의 진짜 길이 뭐냐 하면 그 것도 모르겠어요. 아직도 찾고 있지요”


정치학 박사라는 양반이 모르는 것 투성이다. 툭하면 모른다고발뺌을 한다. 겸손인가? 아닌 것 같다. 이 사람 진짜 모르는 것같다.

“4~5년 교단에 섰는데 거 참 더럽대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천박해서 더 두고 볼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박차고 나왔단다. 멋 모르고 들어간 은행도 하루만에 때려치웠단다. 그래도 열흘 치의 봉급을 줘서 술 잘 마셨다고 한다. 어째 얘기가 옆 길로 샌다. 이제 제2권도 나왔는데 또 다른 책을 준비하고 있는게 있냐고 말머리를 돌리자 단호하게 말한다.

“더 이상 발견은 없어요. 쓰려면 전혀 다른 걸 써야죠”
다른 것? 이제야 본론이 나오는가 싶어 귀를 쫑긋거리는데 문 5단이 살짝 귀엣말을 한다.

“앉은 자리서 2차 합시다”
700밀리리터 짜리 양주가 나온다. 술집에서 보자고 한 나의 얕은수가 회돌이를 친다. 연신 건배를 하는 통에 정신이 멍하다. 내가 왜 여기 있지?그러다 갑자기 문5단의 안경 속 눈이 의미심장하게 반짝이더니 한마디 한다.

“점을 믿소?”


웬 점? 우물쭈물 하자 문 5단이 메모지를 찾는다. 그 위에 몇 가지 수학 공식을 적는다. 취중에도 글씨가 반듯하다. 그리고 반드시 오프 더 레코드를 지켜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설명을 한다. 희한하다. 작은 메모지 위에 알 수 없는 미래가 아주 간단하게, 그러면서 명료하게 공식으로 나타난다. 머릿속이 솨하니 말개졌다. 미래가 저런 건가? 저게 다일까? 문 5단이 득의양양 한다. 정신을 수습한 뒤 이걸 책으로 낼거냐고 물으니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책은 무슨 책,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요.”
선물이면 뭐 하나. 내일 아침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공식이 떠오
르지 않을 텐데….

그 뒤로 두어 시간 더. 취중에 그의 말이 단속적으로 들려 온다.

“바둑은 말이요, 모든 사회현상의 작은 반영이요. 그래서 사람들이 바둑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모양인데 그거 말짱 꽝이요. 꼬리가 몸통을 흔들지는 못하지요. 반상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소”


정말 바둑은 끝인가?
“손 기자, 공부하시오. 세상에 공짜는 없소. 공부를 하더라도즐겁게 하시오. 저 좋은 걸 즐겁게 하는 놈을 당할 자 없소.”


괜히 화끈거린다. 1년 쯤 전에 서봉수 9단을 인터뷰 했었다고 슬쩍 내비쳤다. 어째 반응이 시큰둥하다.

“서 9단이 당시 늦어도 2년 안에 다시 정상에 서겠다고 하던데요?”


변명 반 질문 반 삼아 운을 떼도 대답이 없더니 한참만에 고개만절레절레 흔든다. 믿지 못한다는 눈치다.

콜택시가 올 때까지 한 잔 더. 헤어지기 아쉬워 한 잔 더.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

택시 문을 잡은 문 5단, 기어코 한 마디 더.

“한 때 바둑은 우리에게 특별한 이야기였고 또 신화였소. 그런데 그 이야기와 신화가 사라지고 있소. 그것은 바로 우리 한국바둑의 정체성의 문제요.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말이요.

어떡하면 되겠소? 손 기자가 고민해 보시오. 답을 찾거든 한 잔합시다. 여기 대학로에서.”
그는 하지 못할 숙제를 던져 주고는 캄캄한 거리를 휑하니 사라졌다.

그는 바둑이 싫다면서 바둑을 걱정한다. 그리고 혼자서 노아의방주를 지키려 하고 있다. 온 몸으로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다. 취중 인터뷰의 마지막 느낌이었고 결론이었다.

손정배기자 skidary@munhwa.com

 

[관련자료1]

문용직프로의 칼럼 - 사카다 對 후지사와,잊을 수 없는 명국


 

가루처럼 부서지는 시간,시간이여.또다시 과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다가온다.벌써 연말이라니.

오늘 월간 ‘바둑’ 신년호의 ‘나의 잊을 수 없는 명국’ 난에 실릴 바둑 한 판을 해설하였다.사카다와 후지사와의 1960년 일본 최고위전 도전 1국.

필자가 이 바둑을 본 것은 1973년 말,서울로 바둑 유학을 오기 직전 사카다의 저서 ‘귀수묘수(鬼手妙手)’에서였다.강한 1급이었지만 바둑으로는 늦깎이인 중3년생.당시 시(詩) 한 줄에 마음을 빼앗긴 문학 소년은 이 바둑 한 수로 인생의 진로를 바둑으로 바꾸었다.시구(詩句) 하나하나가 예리하고도 날카롭게 벼린 서늘한 비수와 같은 사카다의 한 수 한 수와 비견될 수 있을지.그 때의 감탄이 지금 이 시간에도 생생하기 그지 없다.

27년이 지난 지금,그러나 감상은 다르다.흑을 잡은 후지사와의 두터운 수법이 더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다.왜 그럴까.

아마 필자의 실력이 당시와 비교하여 한 점 반 정도 늘어 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리라.허나 그보다도 필자의 삶이 여기까지 와서 그런 것 아닐까.바둑에서도 인생의 굴곡이 나이테처럼 새겨지는 그런 감각이 있다.나이가 들면 예리한 감성을 사랑하곤 하였던 젊은 시절의 이성(理性)보다도 여유있는 감성이 더욱 더 마음에 든다.바둑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한 번 감상해보자.이 글을 읽을 분 중에는 젊은 청춘도 있을 터,한 때의 문학 청년도 있을 터.그러므로 맛보자.사카다의 수법을.그 서늘한 비수의 맛을.

백A,흑B,백C의 끊음을 엿본 백1이 천하의 묘수.예리하기 짝이 없다.다음 백C로 예방하면 백D,흑E,백F로 나가는데,다음 흑G,백H,흑I,백J로 막을 때 백'△'이 멋진 호구자리 이음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바둑에서는 묘수를 3번 두면 그 바둑은 이길 수 없다 한다.묘수를 두어야만 하는 그만큼 형세가 절박하다는 이야기이다.인생도 그럴까.소년 시절 나의 인생은 그만큼 인생관을 세우는데 절박했던 시절일까.

( 문용직 프로4단/ 2001.12.20 )

[i진선 한 마디]

 

문용직 5단께서 바둑에 대하여 언급한 내용이 좀 충격적이어서, 발언중에서 제목을

뽑았습니다. 좀 기분은 안 좋으네요.

 

문사범님이 찾고 있는  "신화"가 어떤 신화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만...

바둑에서 "인생"을 찾고, "도"를 찾고, "예"를 찾은 것은 일본 바둑이 먼저죠.

일본 바둑은 세계기전에 나가서 연전 연패하여도, 바둑의 근본 만큼은 자기네가

최고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일본 바둑은 사기 바둑?

 

일본 바둑의 자기네 바둑사를 신화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럼 일본 바둑을 본받자는

뜻인지? 아니면 무얼 지적한 것인지...참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과거 문사범님의 어록을

참고자료를 통해서 심중을 헤아려보도록 하죠. 평소에 일본 바둑을 찬양하시고 참고자료

에서 보셨다 시피 일본 바둑 덕분에 인생의 길을 바꾸셧다는 분이 갑자기 사기꾼론을

말씀하시니..황당...문사범님 말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프로 기사가 된 분들은 도대체 무엇인지...바둑 팬들은 또 무엇인지...난감합니다.

 

문용직 사범님은 종종 희안한 발언으로 바둑 팬들의 흉중을 혼란 스럽게 하셧던 분이지만..

우리 바둑계에서는 반드시 꼭 필요한 분이시죠.

 

취중진담이라고 하던데....제가 깊은 뜻 잘 모르겠네요...ㅠ.ㅜ::

 

꾸벅

 

(취중면담이라는 오프 더 레코드를 기사화 해주신 손정배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첨부자료]

 

[논단]우리 모두가 심각히 고민해야 할 화두  


   진선님의 명예기자 뉴스에 실린 손정배 기자님의 문용직 프로와 인터뷰를 읽고 느낌 점을 적습니다.
 
   제 생각엔 문 박사님이 한국 바둑이 점차 밑바탕이 흔들린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 원인을 프로기사들의 안일한 자세에서 찾고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 한 마디로 프로 기사들은 심각히 자기 반성하자는 화두를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 바둑, 그 신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화두입니다.
      


  이 화두는 "프로 기사들이여, 너무 도인인 척 폼만 잡지 말고 바둑의 대중화에 좀더 몸을 던져라!" 하고 외치는 소리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 "바둑은 도가 아니다, 생업의 수단이다. 그런데 왜 프로가 생계수단에 큰 고민을 안 하느냐?"고 꾸짖는 것으로 들립니다.       


  좀더 철저한 프로기사분들의 정신자세와 함께 좀더 적극적인 태도와 행동을 촉구하는 소리로 들립니다. 이런 위기의식은 우리 타이젬 회원들도 공감하는 내용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공감이 갑니다. 우리는 문 프로님의 말에서 겉표현보다는 그 속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문 박사님은 제정신으로는 같은 동료들인 프로 기사분들을 비판할 수 없으니까 술의 힘을 빌려서 은유적으로 비판했다고 봅니다. 저는 문 박사님의 말씀을 다른 프로 기사분들이 좀 심각하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문 박사님 자신도 현재 해답은 못 찾고 있는 듯 싶습니다. 그 정도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이대로 가만히 침몰하는 타이타닉을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외침은 분명 공감이 가는 소리입니다. 프로 기사님들과 함께 우리 바둑팬들도 같이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봐야 합니다. 정말 이대로 주저앉아서 타이타닉이 가라앉는 걸 프로 기사와 바둑팬으로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물론 엊그제 관련 세미나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스포츠화도 논의하고 있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좀더 활발히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타이젬 차원에서도요.       

 

   지금 우리는 조훈현 국수님이 응창기배 제패하던 때의 감동도 잃어버렸습니다. 이창호나 이세돌이 세계대회를 제패해도 우리는 그 일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알고 덤덤해 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다릅니다. 창호가 응창기배 하나 우승하자 과거 우리나라가 조 국수님 때 하던 것처럼 신화화하고 분위기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문 박사님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도 그 신화시대의 감격을 다시 되찾자, 왜 우리는 그걸 과거의 일로만 내팽겨치려 하느냐? 그 신화를 계속해서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나가자"  이런 말씀이 아닌가 판단합니다.

 

  문용직 박사님의 표현은 조금 과격했지만 근본은 옳은 말씀이라고 봅니다 .  이것은 문 프로님만의 고민이 아니라 우리 모든 타이젬 바둑팬들의 공통 고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흥부의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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