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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문제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문제다

운영자302006-10-10 16:4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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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란배 8강전에서 믿었던 이창호 이세돌 두 거두가 한꺼번에 탈락한 다음 바둑계가 몹시 시끌시끌하다. 올 것이 왔다는 비관파. 아직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라는 낙관파. 또 한중간의 정립구도가 되었다며 미래를 위해 좋은 징후라는 미래파가 혼재해 있다. 세계대회 25회 연속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지 꼭 3년 만의 격변이다.

지금은 비록 중국의 성장에 가려져 있지만 아직도 한국은 ‘원석 천국’이다. 20년 전 바둑계의 백년대계를 위해 혁명적인 결단을 내렸던 심정으로 돌아가 보면 원석이 보석으로 바뀔 가능성을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창호의 등장은 연구생 입단제도의 결과

1986년을 떠올리면 퍼뜩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 국민이라면 서울아시안게임이 생각나겠지만, 필자에게는 연구생 입단 1호 이창호가 떠오른다. 천하의 이창호도 연구생 입단제도가 아니었으면 지금 그를 바둑계에서 만나는 행운도 없었으리라.

사실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바둑 삼류국이었다. 조남철·김인·윤기현·하찬석·조훈현 등 모든 ‘국수’가 일본에서 바둑을 배웠다. 중국은 그 보다도 먼저 일본과 통했다. 우칭위엔·린하이펑의 발굴은 물론, 1960년대부터 일본과 본격적인 교류를 통해 선진바둑을 배웠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서 일본이 정체기를 걸을 때 그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세계바둑계를 선도한 것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그러한 짧은 시간동안 급성장을 이룬 것은 한발 앞서 실시한 연구생 입단제도가 자양분이 되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록 당시엔 유소년들의 기력이 약하더라도 성장가능성을 본 것이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88년 응씨배에서 조훈현이 ‘뜻하지 않게’ 우승컵을 차지한다. 또한 인큐베이터에서 프로가 된 이창호가 89년부터 국내 타이틀을 섭렵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일반인들의 한국기원을 향한 반발도 잠잠해 진다. 당시 한국기원이 내건 기치는 ‘바둑계의 백년대계’였다.

10대 유망주가 사라진다

1990년대 들어 한참 유망주가 '쏟아질' 때는 12~13세에 프로에 입단하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최철한·이세돌·조한승·원성진·조혜연 등이 바로 그때 등장한 기사들이다. 그때는 자라나는 유망주만 보아도 배가 부른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창호의 대활약을 보며 바둑돌을 잡았던 요즘 기재들은 17~18세는 되어야 입단이 가능하다. 뛰어난 기량을 가졌으나 똑같이 뛰어난 수재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입단이 늦어지면 성장동력도 그만큼 적어지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의 경우 어린 나이에 입단한 다음 세계무대에서 이미 맹활약하고 있는 ‘젊은 그대’가 많다. 천야오예 왕시 구링이 씨에허 등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저우루이양 3단은 91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랭킹 10위에 올라있다. 그밖에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할 지도 모른다. ‘인재천국’ 중국에게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정도.

반면 이들과 맞설 한국의 프로유망주로는 김지석·강동윤 등이 꼽힌다. 늘 미래가 촉망되던 그들의 나이도 생각같이 기다려주지도 않고(이상 89년생), 더욱이 입단 4~5년째가 되었어도 타이틀을 따낸다든지 하는 호성적은 아직 없다. 물론 보통 이상의 성적은 보여주었으나 아직까지는 성장가능성이 있는 ‘신예기사’일 뿐이다.

다양한 인재풀로 승부를 걸자

인재풀(pool)을 지금보다 몇 배 수 늘리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양질의 사관생도는 ‘인구대국’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 바로 수백을 헤아리는 프로급 연구생들을 말한다. 수년간의 엘리트코스를 밟은 유망주들이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에 재주를 펼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유망한 기재가 지천에 늘렸음에도, ‘병목현상’을 뚫고 17~18세의 늦은 나이에 운 좋게 프로가 되어본들 더 이상 출중한 기재가 되기는 힘든 실정이라는 것은 바둑인이라면 다 아는 얘기가 아니던가. 유망주들은 링에 오를 준비는 다 되었는데 계속 줄넘기만 하다 지쳐버리게 만든다면 국가적인 낭비가 아닐까 싶다.

그간 세계대회에서는 조훈현·유창혁·이창호·이세돌 등 몇몇 탁월한 스타에 의존하는 양태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어차피 바둑승부는 개인전이므로 한 개인이 잘하면 그가 속한 국가까지도 강국이 된다. 우승은 물론 일인자의 몫이지만 우승까지 이르는 원동력은 ‘우승후보군’에서 나온다. 같은 이창호라고 해도 저변이 풍부한 상태에서 뽑히는 이창호는 세계무대에서도 그 위력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80년대 ‘조·서 시대’를 돌이켜보면 ‘도전5강’이라는 추격그룹이 있었기에 ‘조·서’가 더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입단은 졸업이 아니라 입학

20년 전 한국바둑이 혁명적인 결정으로 말미암아 급기야 세계 속에 우뚝 섰다. 그러면 향후 20년 동안 한국바둑은 무엇으로 살 것인가. 갈수록 어린 기사가 판을 치는 요즘, 한국에는 지금 주목을 확 끌 만한 10대 기사가 없다. 몽골처럼 추억만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유비무환이라고, 끊임없이 유망주을 배출하여 선수층을 두껍게 만드는 것만이 한국바둑이 성장을 계속하는 길이다.

물론 입단제도나 프로의 성격규정 등 제도적으로 보완할 점은 따를 것이다. 이 참에 입단은 곧 바둑공부의 졸업이 아니라 공부할 자격이 주어지는 입학으로써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드넓은 인재풀을 구성하여 두각을 나타내고 도태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시스템화해야 할 것이다.

‘10만양병설’을 실천하지 못한 우리 역사는 임진왜란이라는 오점을 남겼지만, 이미 출전할 채비를 갖춘 ‘10만철기군’을 제대로 써 먹지 못한다면 우리 바둑 역사의 큰 오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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