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진선 한 마디]
창하오, 이창호를 이길 수 있을까?
1월 22일(월) ~ 25일(목) 삼성화재배 결승전 상하이 이창호 vs 창하오

삼성화재배 결승전이 1월 말경에
상하이에서 열립니다. 이창호는 작년에 뤄시허에게 우승자리를 물려주고 권토중래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을 것입니다. 상대인 창하오는 중국의
대표기사지만 이창호에게는 제대로된 실력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이창호의 창하오 상대 전적은 20승 1무 5패로 거의 75% 이상의 승률. 특히
결승전에서 만났을때, 이창호가 우승을 놓친적이 없습니다.
창하오는 2005년 응씨배 우승후 상당히 완숙한 기량을 선보이며, 춘란배 결승에도 이미 올라가 있습니다. 이들 기사의 대결이 한중 양국 팬들에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 바둑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창호와 중국 바둑의 대표적인 기사인 창하오의 대결이기 때문이죠. 만약 이창호가 질 경우 이창호 시대의 한 축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올 것 같습니다. 창하오가 질 경우엔 특별한 내상은 없겠죠. 하도 많이 져서 전적 통계에 약간 변화가 올 정도랄까.....
이창호와 창하오의 대결은 물론 이창호가 압도적이지만 여전히 흥미롭습니다.이번 11회 삼성화재배에서 이창호와 창하오는 결승전을 치룹니다. 그것도 상하이에서. 이창호: 창하오 대결을 중국 바둑계에서는 세기의 대결이라하면서 무척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세오른 중국 바둑이 한국 바둑에게 완승을 거두어 보자는 것이겠지요. 만약 창하오가 이긴다면, 기고만장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좀 지난 자료이기는 하지만, 창하오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라서 소개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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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승부사 창하오(常昊)의 경우
우리 한 번쯤은 그의 입장이 돼 보기로 하자. 중국 프로 기사 창하오(常昊). 1976년 생이니 29세다. 바둑에 관한 한 그는 과거에 그랬듯 아직까지도 중국의 희망이다. 마샤오춘(馬曉春) 시대를 이어받은 ‘6소룡(小龍)’ 멤버 가운데서도 13억 중국인들은 그를 언제나 선두에 올려놓았었다. 창하오 역시 그 같은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면서 눈부신 약진을 계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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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0회와 11회 중-일 슈퍼대항전서 일본의 간판급 타자들을 상대로 5연승과 6연승을 거두는 등 맹위를 떨쳤다. 21세 때인 97년엔 당시 1인자였던 마샤오춘을 3대1로 제치고 첫 본격 타이틀인 천원 타이틀을 획득했고 그 때부터 중국 랭킹 1위에 올랐다. 각 지역 소년궁이나 문화관에서 바둑을 공부하는 어린 영재들에게 꿈을 물으면 그들은 십중 팔구 초롱초롱한 눈 빛으로 “창하오 아저씨처럼 되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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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초 8세나 위인 미모의 여류 스타 장쉔(張璇)과 결혼하면서 창하오는 영화배우 못지않은 유명 인기인으로 떠 올랐다. 바둑만이 아니었다. 준수한 외모와 훤칠한 키, 차분하면서도 설득력있는 화술에서 그를 능가할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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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복. 그것은 창하오의 꿈이자 중국 바둑계의 소망이었다. 그들은 창하오가 그 간절한 소망을 풀어줄 것으로 확신했다. 첫 기회는 98년 제11회 후지쓰배 때 처음 찾아왔다. 상대는 한국의 이창호. 한 살위의 이창호는 라이벌이자 사석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 단판 결승은 마지막 순간 승패가 뒤집히면서 이창호의 우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중국 13억 인민들은 창하오의 성장한 모습에 따듯한 박수를 보내며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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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째 결승에 오른 것은 2년 뒤 같은 후지쓰배, 이번 상대는 조훈현이었다. 우세한 바둑으로 우승을 눈 앞에 두는 듯 했으나 결과는 역시 패배였다. 창하오는 뒤이어 제4회 잉씨배 결승(2000년 11월~2001년 2월)에 나갔지만 이창호에게 1대3패으로 무릎을 꿇고 생애 세번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래도 그는 오똑이처럼 일어서 2001년 말 제6회 삼성화재배를 놓고 조훈현과 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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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결을 앞두고 중국기원은 자국내 초1류 기사들을 소집, 창하오와 함께 조훈현 바둑을 공동 분석시키는 노력까지 쏟았지만 결과는 또 한번의 준우승으로 끝났다. 중국 팬들의 바둑계를 향한 질타가 본격화됐고 그 대부분은 창하오를 겨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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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들어 창하오와 같은 ‘6소룡’ 멤버인 왕레이(王磊)가 7회 삼성화재배 결승에 올랐다. 50줄에 접어든 조훈현이 상대로 결정되자 중국 팬들은 축배를 준비했지만 결과는 조훈현의 2연패(連覇)였다. 2000년 위빈(兪斌)의 LG배 제패를 끝으로 중국은 계속 세계 정복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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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도요타덴소배가 새로 창설됐고 창하오는 이듬 해 초로 이어진 결승까지 일직선으로 도약했다. 2회전에선 이세돌을 탈락시켰다. 결승에서 또 다시 그를 막아선 기사는 이창호. 중반까지 창하오가 대세를 이끌었다. 이 바둑을 검토하던 중국 프로들은 “이번에야 말로!”를 외쳤지만, 결과는 역시 ‘이번에도’였다. 창하오의 국제 무대 다섯 번째 준우승이었다.
1 [클릭하시면 당시의 바둑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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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불계승 |
2003-01-29 |
13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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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의 최대 자산은 뭐니뭐니 해도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중요한 승부를 따낼 때만 축적된다. 패하면 추락이 기다릴 뿐이다. 잇단 실패를 겪은 창하오의 추락이 시작됐다. 랭킹이 곤두박질 쳤고 국내 기전서도 그의 존재는 갈 수록 왜소해져 갔다. 구리(古力) 쿵제(孔杰) 후야오위(胡耀宇) 등, 하나 아래 세대인 ’10소호(小虎)’그룹이 성큼 들어섰다. 창하오는 이제 정상권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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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4년에 접어 들면서 그는 믿을 수 없는 부활을 시작한다. 송태곤 최철한을 연파하고 2회 도요타덴소 배에서, 그리고 유창혁 쿵제 송태곤을 제물로 5회 잉씨배에서 잇달아 결승 고지를 밟은 것이다. 왕시(王檄)가 삼성화재배 결승서 이세돌에게 영봉패하면서 중국 팬들의 시선은 다시 창하오에게로 쏠렸다. 개인전 뿐 아니라 농심배 정관장배 등 단체전서조차 단 한 번도 한국을 이겨보지 못한 중국. 그들은 ‘노련해질 대로 노련해진’ 창하오에게 올 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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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나고야에서 벌어진 제2회 도요타덴소배 결승 최종국은 이런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1국 이세돌 승. 2국 창하오 승. 최종 3국은 중반까지 창하오의 필승지세였다. 마침내 창하오가, 그리고 중국이 정상에 서 보는구나. 한국의 연승도 일단 끝나는구나. 모니터와 TV를 지켜보던 한 중 일 바둑팬들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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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정적 고비에서 창하오는 귀신에 홀린 듯 무너져 내린다. 망연자실. 우승 컵이 이세돌의 품에 안기는 장면을 어렴풋이 기억하며 창하오는 도망치듯 시상식장을 빠져나간다. 옆에 자리했던 연상의 아내 장쉔의 표정은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생애 통산 여섯번의 준우승. 승부사들에게 그 것은 여섯번의 ‘실적’이 아니다. 여섯번 째 ‘좌절’이었다.
[클릭하시면 당시의 바둑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이세돌 최고의 명국이었지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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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불계승 |
2005-01-08 |
5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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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 바둑계는 국상(國喪)이라도 당한 듯 침통한 분위기에 빠져있다. 창하오의 스승인 녜웨이핑(?衛平)은 “중반까지의 일방적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패한 것은 불가사의하다. 고비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면 바둑은 이길 수 없다”고 탄식했다. 마샤오춘의 평은 더욱 신랄해서 “유리해도 잡을 수 있는 말은 잡아야 한다. 침투한 말을 손을 빼 살려주다니...그의 바둑은 분명 문제가 있다 .” 마샤오춘은 백의 침투 부대가 삶을 확보한 순간 그대로 컴퓨터를 꺼 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 내 바둑 네티즌들은 사이트 곳곳에서 아예 호곡(號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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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창하오의 준우승 기록 
창하오는 호텔 방 한 쪽에서 중국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큰 승부에서 패하면 죽고싶은 심정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인터뷰에 응한 걸 보면 창하오란 인물은 엄청 대범하거나 무신경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 좋던 바둑을...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대국 중 상금이 어른거렸던 건 아니다. 내게 있어 우승은 상금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는 귀국 후 쏟아질 팬들의 비난을 각오하느냐는 질문에는 "바둑은 개인전이다. 패배했다는 사실 보다는 양질의 내용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해 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내 바둑 스타일을 계속 지켜나갈 것” 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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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회 결승전 6전 6패. 이처럼 가혹한 시련을 겪은 승부사는 이제껏 아무도 없었다. 이번 패배로 자신감을 잃게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마음을 정비하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긴 그런 성격의 보유자가 아니라면 계속 넘어지면서도 6번이나 결승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6회의 준우승에 무엇을 얻었을까? 창하오는 쓴 웃음을 지은 채 “실패에 대한 면역성이 강해졌다 ”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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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하오와 한국과의 ‘악연’은 참으로 끈질기다. 지난 5년 간 세계 정상을 올라보지 못한 중국 바둑계가 그 간 내세운 유일한 ‘변명’은 “한국 때문에”가 아닌 “이창호와 조훈현 때문에...” 였다. 그 것 마저 이번에 깨졌다. 연말 연시에 걸쳐 창하오와 왕시가 이세돌에게 연패했으므로. 2000년 이후 중국은 한국과 7번 메이저급 패권 전쟁을 펼쳐 단 한 차례도 이겨보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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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에게 3번, 조훈현에게 2번, 그리고 이세돌에게도 1번. 만신창이가 된 창하오는 파트너를 바꿔 최철한과 지금 일곱번째 세계 대회 결승전을 치르는 중이다. 제5회 잉씨배 결승 5번기 2국까지 소화된 현재 스코어는 1승 1패. 이번 도요타덴소 배의 충격으로 창하오는 잉씨배서도 승산이 희박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바둑계부터 또 한 번의 패배를 각오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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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간판으로 성장 중인 최철한을 위해, 그리고 한국 바둑의 전통 계승을 위해 이번 잉씨배에서도 우승 컵은 한반도에 머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비운의 승부사’ 창하오도 언젠가 한 번 쯤은 정상에 서는 모습을 보고싶다. 그 경우 결승 상대는 중국 또는 일본 기사가 알맞을 것이다. 이 걸 단순히 동정심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http://cafe.naver.com/tonermall.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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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진선 한 마디] 적당할 때 소개하려고 보관해오던 글 입니다만...출처는 알겠습니다만...글쓴이를 알 수가 없네요...ㅡ.ㅡ:: 만약 오늘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이 될지 궁금합니다. 무척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화재배...이번에 이창호 9단이 꼭 우승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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