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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사 홈페이지 고수들의 바둑 사랑이야기 란에 있는 자료를 소개합니다.
| 추억의 아마 고수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한국 바둑계는 프로만의 세상은 아닙니다. 그리고 프로기사만이 바둑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 아닙니다. 바둑을 운명으로 알고 평생을 살아가는 아마 고수분들 많거든요. "아바사" 홈 주인장님과 글로 대화를 잠시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가 프로의 뒷전에 있는 아마 바둑의 부흥을 위해서 나름 노력해보는 시도로, 아마 고수전을 써 보겠다고요. 원래는 제가 첨삭하고 가필하여 단편소설식으로 꾸몄었으나, 다시 전혀 수정없는 원문으로 대치했습니다ㅡ.ㅡ:: 말만 근사하게 아릿답고 재밋게 꾸미면 뭐하겠습니까. 김7단님의 원문 자료가 더욱 진실하죠. 계절에 딱 맞는 고백록 입니다. |
[추억의 아마 고수전] 김동섭 편
"바둑이 유리할때 최선을 다하라"

98년 "지송(志松)배"결승전에서 김동근 6단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96년 3위,97년 준우승에 이어 우승을 한것이다.우연의 일치겠지만 지송배와는 인연이 깊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그리고 지송배에서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볼 때도 여타 아마강자들에 비해 전국대회에서 입상운이 좋은편이다. 약간 늦은 나이에 바둑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는했지만 한번 입상한 후에는 입상운이 계속 따라주었다.40이 넘어선 대부분의 아마강자들은 보통 수십년의 바둑경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동안 좋은 성적을 낸 편이라 생각된다.또한 입상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우승을 한 횟수는 적었고,한때는 준우승을 많이 한다고해서 준우승제조기라는 별명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우승 횟수도 많아지고 다른 기사들,예컨데 박성균7단이나 김세현7단 등의 강자들도 준우승 횟수가 많아짐에 따라 나만의 특징이 아닌 것으로 되어 버렸다.
바둑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무렵이었다.바둑을 알게 되고 좋아지자 실력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책을 찾게 되었고 닥치는대로 외워버렸다. 이해를 하기보다는 무조건 암기하는식의 공부를 했다. 이런 방식으로 공부를 한것이 점차 효과를 거두어 차츰 바둑에 대한 개념이 잡히고 실력도 향상되어 고1무렵에는 약하나마 1급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아마강자의 대열에 오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87년 압구정동에 있는 현대 바둑살롱을 운영하면서부터였다.
기원을 처음 인수했을때는 하루에 손님이 불과 10여명에 불과했지만,몇 달동안 친절과 봉사로 노력한 결과 좌석 36석이 꽉차는 기원이 되었다. 어떤때는 하루 입장 인원이 1백명을 넘어서는 때도 있었다.당시 "현대바둑살롱"은 아마기사들 뿐만아니라 조훈현 ,서봉수등 정상급의 프로들까지 자주 찾아주었다. 이렇게 기원이 호황을 누리자 수입도 괜찮은 편이었다.그러나 한 3년쯤 지나니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지쳤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들어 기원을 프로기사 이봉근사범에게 넘겼다. 기원을 운영하기 시작할때 나의 기력은 보통의 1급 정도 였다. 그러나 기원을 시작하면서 많은 아마 강자들과 프로기사들을 만나게 되었고,이 시기에 수많은 스파링을 통해서 점차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기원운영은 나에게 생활의 안정과 함께 실력향상의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전국대회의 첫 입상은 88년 세실배 대회를 통해서였다. 완전한 무명이었던 나는 당시의 최고수였던 김철중(현프로2단)씨를 물리치는 등 파란을 몰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만난 상대는 안관욱(현프로4단)씨였다. 이 결승3번기에서 지기는 했지만 1승을 거두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바둑대회는 아무나 나갈수 없는 것으로 알았다.무슨 단증이나 자격증이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알았던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당시 나보다 한참 상수였던 강자들을 물리치고 전국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으니 이때부터는 당시 선정도 치수였던 아마 정상들과 호선으로 대국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둑실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늘리가 없었다. 그동안 선.둘 정도의 치수로 많은 지도료를 상납해왔던 나는 이제는 호선 치수로 연패의 행진을 시작했다.
이렇게 몇 년동안 단련이 되다보니 나의 바둑은 자연스럽게 단단해졌고 점차 그들과의 승부에서도 밀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91년 아마대왕전에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전국대회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아마대왕전에서는 우승상금 대신 금메달을 상품으로 주었는데 나는 이 메달을 간직하지 못하고 팔아서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92년은 이른바 나의 전성기였다.이 한 해동안 우승1회,준우승 2회를 기록하는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이다.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93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며 나는 다시 슬럼프에 빠졌다. 사고의 원인은 과로였다. 기원운영을 그만두고 1년 정도 쉬자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이 떨어져 다시 사범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일단 일을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로 이 당시 남양주와 분당을 오가며 바둑사범 노릇을 했고,저녁에는 강영일7단이 운영하는 기원의 운영을 도와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상주에 내려가 개인지도를 하기도 했다.이렇게 몇 달을 보내니 피로가 겹쳤고,분당에서 창동으로,그리고 다시 남양주로 출퇴근 하는 일을 반복하던 중 졸음운전을 하게 된것이다.
그때 당한 사고로 3개월 가량 입원하는 중상을 입었으며 거의 1년정도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또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나는 정상적인 시력을 갖지 못하게 됐다. 즉, 바둑판을 바라보는 정도의 시야만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보이지 않게 된것이다. 사고로 인한 후유증 또한 운명적으로 바둑과 연결이 되고 있는 듯했다.그리고 3년뒤 학초배에서 그동안의 부진을 극복하며 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김동섭이 부활했다고 말했다.바둑이 1급정도 된 사람들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한번쯤은 프로기사를 꿈꾸게된다. 나도 입단대회에 여러번 참가하기도 했는데 꼭 입단을 목표로 대회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다.그냥 일반대회처럼 바둑실력 향상을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할 수있다. 그리고 지금의 심정은 설사 입단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다.아마추어로서 어느정도의 입지도 세웠고 솔직히 프로의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분당 서현바둑교실의 사범으로 있으며 지역 바둑 동호인들과의 교류를 하고 있다.그외에 송탄 기우회의 사범을 하고 있는데,송탄기우회는 내가 바둑에만 전념할수 있도록 지도료의 명목으로 적지 않은 금액을 후원해주고 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나의 기풍에 대해 잠깐 언급해 보면,내 바둑은 끝내기에 강점이 있는 편이다.그래서 승부를 길게 끌고가려는 경향이 있다. 주변에서는 집에 대한 감각이 좋다고들 한다.단점이라면 가끔 실리를 밝히다 바둑이 엷어지는 경향이 있는것이다.
독자 여러분들께 대회바둑에서 승률을 높이는 한가지 비결을 가르쳐 드린다면 그것은 승부처에서 집중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하라는 것이다. 항상 100%를 다할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평상시에는 80%정도의 집중력만을 가지고 두다가 승부처에서만 특히,승기를 잡았다고 생각되는 순간부터 100%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길 수 있는 바둑을 꼭 이겨가는 것이 승률향상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오히려 불리한 국면의 경우에는,속기로 두다보면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는 것이다.........
=위의 글은 바둑 361에 기재된 아마강자파일에서 퍼온 글입니다.
현재 2003년 꾸준히 바둑대회에 참석하시고 계십니다..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빠른 쾌유를 빕니다....
= 김동섭아마7단의 프로필
1958년 경남함안 출생,제9회전국아마대왕전 우승(91) 제22회 전국아마유단자대회우승(92),제23회 학초배우승(96), 지송배3위(96),제2회지송배준우승(97),삼성화재아마예선최강부우승(97), 제3회지송배우승(97),탐라배3위(99),학초배우승(2001)등등...
[i진선 한 마디]
가을 입니다.
쓸쓸하고 차디찬 가을 입니다.
쓰산합니다.
바람도 찹니다.
김동섭7단의 고백록이라 할 수 있는 글 입니다...읽어가면서 마음이 짠~해집니다. 바둑에 빠져 과로로 시력 상실까지 가져오고, 그런 상태에서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다니요. 가슴 한구석이 아파옵니다. 김동섭 7단은 한국 바둑계에서 아마도 최초로 성공적인 바둑 살롱식 경영을 한 분일겁니다. 지금도 압구정동에서 현대바둑살롱이 운영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때 고수분들께 무척 유명했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시각 장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둑에 대한 열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어떠신지요. 근황을 아시는 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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