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이세돌과 구리, 그들의 기풍 辛!


현 시점에서 한국 1위를 꼽으라면 이세돌이요, 중국 1위를 꼽으라면 구리라 해도 의문을 표할 바둑팬들은 드물다. 동갑내기인 두 기사는 세계바둑계에서 경쟁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물론 이세돌이 2002년에 세계기전 후지스배를 먼저 우승하여, 2006년에야 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에서 생애 첫 세계기전 우승한 구리보다 더 우세함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을 앞두고 지난 전적은 상관없다. 며칠전 농심 신라면배 세계최강전 최종전에서 승리한 이세돌과 내상을 입은 구리, 서로 물러날 수 없는 승부이다. 이번 제 13회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세계1위를 놓은 3번기의 승부 결과에 한중 바둑팬들은 물론이고, 세계 바둑팬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있다. 이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세돌과 구리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자.

LG배세계기왕전 결승을 앞두고 있는 이세돌과 구리의 공통점이 바둑팬들 사이에 화제다. 둘다 1983년생이다. 생일은 이세돌이 3월2일인데 월과 일을 바꾸면 구리의 생일인 2월3일이다. 마침 2월 23일이 LG배세계기왕전 결승인데 생일과 관련있는 숫자인 2와3이다. 입단년도가 1995년으로 똑같다. 바둑의 전체적인 기풍이 비슷하다.(주구도살형 : 개잡듯이 상대방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패는 스타일) 바둑을 배울 당시에 두 기사는 대국에서 패하면 무척 고통스러워했고, 심지어는 울기도 했다고 한다. 두 기사의 부친은 교사였는데 우연히도 향년 5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자랑스런 아들의 성공한 모습을 못본 아쉬운 점도 공통점이다. 둘다 부친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서, "아버지" 소리만 들어도 눈물을 흘릴정도의 효자라고 한다. 
비금도 전경
이세돌은 전남 신안군의 비금도에서 자랐다. 비금도는 작은 섬이 아니다. 섬안에 산도 있고 논밭에 염전에 없는 것이 없는 미니 제주도나 다름없다. 비금도는 바닷 바람이 쎄다. 태풍도 심하게 불어온다. 구리의 고향은 중국의 내륙중의 내륙인 사천성의 중경(충칭)이다. 작년에 중국 대지진이 일어나서 인명 피해가 무척 컷던 바로 그곳이다. 묘하게도 중경시는 얼마전에 전라남도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니. 이세돌과 구리 사이에 지역 인연도 있다.그럼 비금도 바닷가와 내륙 분지 충칭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음식에 있다. 사천 음식은 맵기로 소문난 곳이다. 오죽하면 사천을 고향으로둔 구리가 매운 한국 음식을 먹고, 달콤하다고 했을까. 매운 맛은 우리의 미각중에 속하지 않는 미감각이라고 한다. 짠맛 신맛 쓴맛을 느끼는 미각세포를 동시에 괴롭히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미각이 바로 매운 맛이다. 신라면의 辛이라는 뜻에는 "독하다" "괴롭다, 고생하다" "슬프다" 심지어는 "살생하다 "하다라는 뜻이 있다하니, 두 기사의 기풍과 너무 닮아있다. 상대를 괴롭히고 고생시키고 슬프게하며, 자주 살생을 한다. 즉 辛風이다.

이세돌과 구리는 중국리그를 포함하여 14번을 겨루었다. 역대 전적은 7승7패로 팽팽했다. 그러나 농심배에서 이세돌이 일격을 가하여, 8대7로 이세돌이 앞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구리가 한국 기사를 상대로 공식기전에서 30승20패로 승률이 60%이다. 이세돌은 중국 기전에 참여하는 관계로 중국기사를 상대로한 대국수가 더 많다. 승률은 거의 75%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구리의 공식기전에 주로 세계기전에서의 승률이므로 60%는 낮은 것은 아니지만 이세돌이 앞서있음은 틀림없다.
이세돌과 구리의 바둑은 "선생의 바둑"은 아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기보를 놓고 복기를 하면서, 타 기사들이나 바둑팬들이 '배우기가 힘든 바둑'이라는 말이다. 다시말하면 오청원바둑이나 이창호의 바둑은 "선생의 바둑"으로서, 이론화하여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즉 '오청원 포석' '이창호 끝내기'은 가능하지만, '이세돌 쌈바둑' '구리 쌈바둑' 이렇게 명칭 붙이기는 곤란하지 않은가. 자칭 실리를 좋아한다는 이세돌과 구리의 바둑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주구도살형'. 하긴 중후반의 치열한 싸움바둑을 이론화하기는 힘든 점이 있겠다. 싸움 바둑은 기세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다가 날카롭게 상대방을 한 번 쳐다보고 두는 한 수. 바둑 기보에는 전혀 나타나지않는 일면이다. 한 때 이창호 9단이 세계 최고의 연승 기록인 41연승 할 당시에 상대 기사들은 이창호 9단 앞에 앉는 자체만으로 주눅이 들었다. 바둑을 두기 전에 이미 지고들어간 것이다. 이세돌과 구리에게도 역시 이런 '아후라'가 있다. 상대방의 기가 질리게 하는 바둑 외의 힘이 있다. 이세돌과 구리의 바둑을 위에서 辛바둑이라 언급했다. 이세돌과 구리의 대국 하이라이트를 보면 그들의 바둑이 얼마나, 맵고, 위험하고, 독하고 고통스럽게하고 살의가 번득이는 辛바둑인가 알 수가 있다.
| 이세돌과 구리 대국 하이라이트 (이 자료는 로그인해야 보실 수 있는 유료회원에게만 제공되는 서비스입니다. 죄송합니다.) |
매운 맛의 가장 대표적인 화학물질은 캡사이신이다. 캡사이신은 구강내의 미각세포에 고통을 선사한다. 辛맛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맛이며, 캡사이신으로 발생되는 통증을 우리는 매운맛이라고 칭할 뿐이다. 이 통증은 우리몸에서 베타엔돌핀의 분비를 촉진하게되는데, 이 베타엔돌핀이 작용을 하면서, 사람은 쾌감을 느끼게된다. 이세돌이나 구리의 주구도살의 바둑을 관전하면서 바둑팬들은 희열을 느끼게된다. 두 기사의 辛感은 유리하든 불리하든간에 발동한다. 스스로도 맵다. 상대방도 매움에 푹 빠지게 한다. 관전하는 바둑팬들도 이세돌 구리의 캡사이신의 매운 작용에 놀라고, 그로인해 분비되는 베타엔돌핀의 마약성 효과에 희열을 느끼데된다. 세상사람들은 베타엔돌핀이 작용될때 '재미있다.'라고 말한다. 그럼 이렇게 놀라운 辛感이 있는 이세돌과 구리 바둑의 약점은 어디에 있을까. 약점이 무엇인지를 몰라도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辛바둑의 특징은 상대를 괴롭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자신도 괴롭다. 이 매운 바둑의 대가인 두 기사의 대결을 통해서 서로의 약점을 한 가지 정도 작게나마 엿볼 수가 있었다. 바둑판의 중앙은 집이 되기 힘든 곳이다. 윗 하이라이트의 1,2,4 번 모두가 중앙에서의 접전이다. 두 기사의 강점이 중앙 처리라면, 약점 역시 중앙에 있다. 두 기사는 다른 기사들 보다 중앙 접전이 매우 빠르게 나온다. 깊은 수읽기를 하고 고민을 해야하는 중앙 작전에서 현대바둑은 갈 수록 시간이 짧아지니 대부분의 상대 기사들은 중앙 바둑의 접전에서 패배는 결국 불계를 가져오기 때문에 과감한 수보다는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피하기만 해서 그들을 능가할 수 없다. 이세돌이 구리를 상대할 때, 구리가 이세돌을 상대할 때, 서로의 기세에 전혀 눌림이 없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기관차랄까? 이세돌과 구리가 뛰어난 두뇌의 프로기사임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들만한 능력을 가진 프로기사들은 그들 뿐만 아니다. 그들은 단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피하고 돌아가서는 이길 수도 없고 능가할 수도 없다.
바둑팬들은 이세돌과 구리의 대결에 반가워한다. 이 두 기사는 세계바둑 발전에 앞으로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세돌과 구리를 철저하게 농락할 새로운 기사의 탄생을 바란다. 팬들은 변덕 스럽다. 절대지존 이창호 시대에도 바둑이 재미없어진다고 불평을 했다. 이세돌 구리 양강체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것의 해결은 이세돌과 구리가 아닌 다른 기사들의 몫이겠다. 이세돌과 구리의 辛바둑을 초라하게 만들 새로운 기풍은 무엇이 될까? 기대가 된다.
[i진선]
[참고자료]
이세돌과 구리의 공통점을 기사화 하기 위해서 자료를 찾고 있는데, 두 사람의 아버지에 대하여 궁금하여 웹써핑을 했더니, 조선일보 이홍렬전문기자님께서 기사화를 해주셨네요. 읽어보시면 두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이세돌이 우승해도 좋고, 구리가 우승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프로기사로 성공시키기 위해서 두 아버지는 얼마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겠습니까? 두 기사는 아버님의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좋은 바둑을 남겨주기를 바랍니다. 이홍렬 바둑전문기자님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이세돌·구리 ‘아버지의 추억’
이수오(李壽五)씨는 기인(奇人)이었다. 바둑천재 이세돌의 아버지인 그는 44년 생으로 광주교대를 나왔다. 젊은 시절 목포에서 교편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식솔들을 이끌고 고향인 비금도(飛禽島)로 유턴, 98년 세상을 뜰 때까지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아마 5단의 바둑실력과 함께 천문, 역사, 족보 등에 두루 해박한 인텔리였다.
말년의 그는 막내 세돌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다. 3남 2녀의 자녀 모두를 도시로 진출시키고 유일하게 세돌이만 곁에 남긴 채 바둑을 가르쳤다. 그의 바둑 교육방식은 특이했다. 아침에 농사일을 보러 나가기 전 사활(死活)문제를 내주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숙제를 점검하는 식이었다.
전직 교사이자 현직 농부였던 이수오씨의 막내사랑은 끔찍했다. 다섯 살 막내동이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치는 식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곱 살이 채 안돼 부자(父子)는 호선(互先)바둑이 됐다. 바둑돌 잡은 지 불과 2년 만에 ‘군기(郡棋)’ 소리를 듣던 아버지를 따라잡은 것이다.
세돌은 91년 제12회 해태배에 나가 우승, 전국 어린이대회를 제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우승할 수는 없었다. 워낙 재주가 넘쳐 손이 너무 빨리 나오는 바람에 다 이겨놓았던 바둑을 패하기 일쑤였다. 이수오씨는 그럴 때마다 막내의 얼굴을 외면한 채 종아리에 사정없이 회초리를 내리쳤다.
이수오씨의 장남 이상훈이 90년 15세의 나이로 프로기사가 됐다. 세돌보다 8살 위인 상훈은 서울에 바둑 유학을 가 있었다. 상훈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무섭게 성장한 막내 동생의 실력에 전율하곤 했다.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장남에게 “막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라”는 명이 떨어졌다. 세돌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세돌은 그때부터 8살 위의 형 이상훈의 보살핌 속에 권갑룡 바둑도장에 똬리를 틀었다.
11살 때이던 94년부터 입단대회에 나간 이세돌은 도전 네 번째 만인 95년 여름 프로가 됐다. 12세 4개월만의 기록적인 나이였다. 군 입영 날짜를 받아놓고 좌불안석이던 이상훈은 한숨을 돌렸다. 7월 2일 동생의 입단이 확정된 이틀 뒤인 7월 4일 형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영열차에 몸을 실었다.
세돌이 물 만난 고기처럼 바둑계를 휘젓기 시작할 무렵인 98년, 이들 형제 앞으로 아버지의 부음이 전해져 왔다. 청천벽력은 아니었다. 막내의 상경 직후 불치의 병을 얻었던 이수오씨의 죽음은 웬만큼 예견되던 터였다. 그렇더라도 충격은 컸다. 3년 전 조혼(早婚)한 이세돌은 요즘 3살짜리 딸의 재롱에 깜빡 죽다가도, 문득 상념에 빠져들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 집안은 매년 3월 2일이 되면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인다. 선친 이수오씨의 제삿날인 동시에 이세돌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이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아버지를 추억하고, 세돌의 빛나는 무훈(武勳)을 격려하는 자리가 된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고향 비금도에 집결했지만 요즘은 이 행사를 서울에서 치른다. 대신 홀어머니 박양례(61)씨가 상경한다.
그녀는 서울에 올 때면 여전히 손수 재배한 농산물과 약재를 바리바리 싸들고 나선다. 막내 세돌이네 식구들 먹이기 위해서다. 최근엔 밭에서 딴 배에 각종 약재를 넣은 음식을 잔뜩 부쳐오기도 했다. LG배와 농심배 등 큰 대회가 줄줄이 잡혔다는 얘기를 ‘동네 유지’들로부터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지난 연말 비금도에서 이세돌 대 강동윤의 천원전 결승 2국이 두어졌다. 박양례 여사는 바둑의 ‘바’자도 모르면서도 그 현장에 나타나 5시간이나 머물렀다. ‘이세돌 기념관’ 건립행사를 겸해 내려온 이세돌이 최악의 몸살감기로 간신히 대국만 마치고 올라가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배 승선시간 때문에 그날 부친 묘소에도 못 들리고 상경한 것을 이세돌은 두고두고 죄스러워했다.

"캬캬캬캬 정말 좋다 좋아 ㅋㅋㅋㅋㅋ"
중국 바둑의 1인자인 구리(古力) 부자(父子)의 스토리도 많은 바둑 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구리는 지난 해 여름 후지쓰배서 우승하고 귀국, 공항에 내리는 길로 부친 묘소를 찾았다. 그리곤 이창호와 치른 결승전 기보를 펼쳐 제단 위에 놓은 뒤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가신지 벌써 435일이 흘렀군요. 아버지께서 그토록 고대하시던 이창호를 이기고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어요.” 그는 부친이 생전에 즐기던 담뱃불을 붙여놓고 봉분에 술도 따르면서 울먹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구리의 아버지 구쥐산(古巨山)은 2007년 5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뇌출혈이라고 했다. 이세돌의 부친처럼 웬만큼 예고된 케이스가 아니었다. 사망하기 불과 1주일 전 온 가족의 축하 속에 54세 생일 파티를 즐겁게 치렀던 아버지였으니 구리의 충격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부친 타계로 구리는 집안의 유일한 남자가 됐다.

"천야오예야...복기 그만하고 상좀 받으러가자 ㅋ"
구리의 아버지는 충칭(重慶) 시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담당과목이 또한 지리였다니 이세돌의 아버지와는 거의 완벽한 ‘동업자’ 격이었다. 구쥐산은 아들이 신동으로 소문을 떨치기 시작하자 6살 되던 해 충칭기원으로 보냈다. 그리곤 아들이 출전하는 대회마다 따라다니며 보살폈고, 기자들의 질문이 나올 때마다 성실히 답변하는 등 둘도 없는 매니저였다.
2007년 초반까지만 해도 눈부셨던 구리의 상승세는 5월 이후 급전직하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읜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눈물을 흘리곤 했다. 연패가 거듭되는 가운데 굳게 지켜오던 랭킹 1위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그의 슬럼프는 거의 1년 가까이 이어지다가 후지쓰배 제패 이후 다시 옛 위용을 찾았다. 현재는 2위와 더 큰 점수 차로 랭킹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으흐흐흐 2억5천만원이닷 ㅋ"
구리의 어머니 장중쉰(張中遜)은 남편이 세상을 등진 후 남편을 대신해 자주 외아들 구리의 대국장을 찾는다. 대국 후 아들이 인터뷰하는 동안 내내 흐뭇한 표정으로 옆에 붙어 앉아있곤 한다. 기자들이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구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는 것”이라고 대답하곤 했다.
장중쉰 여사는 오는 23일부터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서 시작되는 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에 맞춰 내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세돌과 달리 내조자가 없는 아들을 현지에서 보살펴주고 싶은 모정 때문일 것이다. 55년 생으로 은행에 근무하다가 50세가 넘으면서 퇴직했다는 정도 외엔 그녀에 관해 아직 확인된 것이 없다.
이세돌과 구리.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닮은꼴인 둘 간의 대결이 곧 시작된다. 역발산(力拔山)의 승부사들도 그 괴력의 원천은 가족 간의 사랑이란 사실, 세상 없는 천재들이라도 부모들의 헌신적 보살핌 없이는 대업(大業)에 이를 수 없다는 상식을 그들을 통해 확인한다.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승부의 이면(裏面)이 뜨거운 가족애로 뭉쳐있다는 사실 또한 새삼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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