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바둑 천재, 어디로 갔을까?(1)

천재가 범람하는 시대다.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서만도 매주 수 많은 천재들이 출연하니 대한민국에 이렇게 천재들이 많았나 싶다. 요즘에 천재라는 명칭의 정의가 달라졌는지, 고도의 사고력을 발휘하는 두뇌의 명민함만 칭하는 것이 아닌듯. 축구의 천재라던가, 체조의 천재, 피겨의 천재는 그럭저럭 이해가 되어도, 로또 천재니 연예 천재, 심지어는 먹기 천재까지 나오고 보니, 보통 사람도 혹시 나에게 특출한 이상한 재능이 없는지 한 번 찾아볼 일이다.
한국 현대 바둑 공식(?) 바둑 천재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여기서 공식 바둑 천재라 함은 적어도 한국 바둑계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기사가 천재로 언급해주었고, 언론의 스포라이트를 받은 자, 바둑팬들이 끄덕 끄덕 할 수 있는 자 라고 규정하자.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한국 현대 바둑 가장 각광 받았던 첫번째 천재는 조치훈 9단(이하 단위 생략)이다. 당시의 언론 자료를 살펴보자.

1962년 7월일의 동아일보 보도 자료다. 당시 조치훈은 바둑계의 신동으로 한국 바둑계의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일본의 기타니미노루의 초청을 받아서 22일 출국을 한다는 보도. 불과 6세의 나이에 혈혈 단신으로 일본 바둑 수학을 위해 떠났고, 그는 일본 바둑의 정상에 오른다. 지금까지도 일본 바둑계에서 최정상의 자리에 머뭄을 보면 천재성에 노력성까지 갖춘 기사임을 증명한다.

한국 바둑계의 두 번째 천재는 조훈현.

바둑의 천재 천재 천재, 수 많은 천재들이 있겠지만, 진정 천재중의 천재는 조훈현이다. 앞으로 조훈현 같은 천재가 과연 태어날까. 천재로 인정 받는 것으로만 천재성이 발휘하지 못하니 그것이 세상 이치다. 천재로만 살기가 참 힘든 현실. 그러나 조훈현은 9살에 입단한 이 후로 하루도 천재로 살지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그의 천재성은 대단하다. 조훈현이 일본에 가서 프로입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한국에서 먼저 프로기사가 되었다. 그리고 일본으로 유학간거다. 돌이켜보면 굳이 일본 유학가지 않아도 그의 천재성은 변함이 없었을 거라는 생각. 한국 바둑의 모든 기전을 휩쓴 것은 물론이요 40살을 넘어서 세계기전을 다 휩쓸었다. 지금 나이가 50을 넘어서 노년기로 접어든다지만 싱싱한 젊은 기사도 조훈현 앞에서는 기죽을 수 밖에 없다. 그의 연륜과 업적때문이 아니다. 날카로운 행마와 치밀한 수읽기에 젊은 기사도 겁낸다. 한 번 더 세계기전에 우승할 수 있을 힘이 아직도 있다.

그는 세계 최강 내재자를 키웠다. 세번째 천재 기사가 그다.

소년 이창호. 내제자로 들어간 후 곧 스승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한다.

(윗 기사 내용 차 후에 소개하겠습니다.)
청출어람이다 천재가 천재를 길렀으니 조훈현의 내제자 이창호. 한국바둑 조훈현 시대에 걸출한 토종바둑의 대가 서봉수가 끊임없이 조훈현을 위협하기는 했지만, 이창호는 달랐다. 서봉수가 아래서 위로 조훈현을 공격했다면, 이창호는 조훈현을 옆에서 서서히 옥죄다가 끝내기에서 승부를 냈다.

그는 조훈현의 자리를 차지했고, 결국 세계 바둑의 제왕으로 올라선다. 천재가 기른 천재다. 조훈현이 번득이는 예리한 백도의 천재였다면, 이창호는 무겁고 둔박한 흑도의 천재.

(윗 기사 내용 차후에 소개하겠습니다.)
네번째 천재기사 그. 한국 바둑계에서는 항상 2인자 였엿지만, 서봉수는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토종바둑 잡초류를 창안한 그다. 서봉수 이전에 조남철-김인-하찬석-윤기현-조훈현 등을 잇는 일본 유학파가 득세하던 한국 바둑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그다. 서봉수 바둑은 스스로 정리되어 있지않은 바둑이라 자평한다. 그러나 그의 정리되어 있지않은 바둑으로 당시 최강 일본의 정리되어 있는 바둑을 눌렀다. 그것도 아주 숨도 못쉴 정도로. 서봉수의 응씨배 우승은 한국형 바둑으로도 세계 최강이 될 수있음을 보여준 사건. 굳이 일본 유학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한국에서 훌륭한바둑 공부를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다섯번째 천재기사 유창혁의 언론 데뷰는 중학교 3학년때 한일 중학생 바둑대회가 시작이다. 시작을 국제 무대에서 하다니 보통이아니다. 그러나 유창혁의 바둑배우기는 서봉수 못지않게 쉽지않았다. 스승의 가르침이 있다고 해서 바둑 배우기가 편했으랴. 그래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길은 손가락질 받을터. 서봉수와 유창혁은 그 손가락질도 받지 못하고, 수 많은 아마고수들과 독학수련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기사다.

조훈현이세계기전우승할 때는 일본 바둑계에서 일본 바둑을 배운자라서 더욱 강하다. 라고 위로를 했다. 이창호가 우승할 때는 일본 바둑을 훌륭하게 습득한 스승의 제자라서 그렇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서봉수와 유창혁까지 계속 일본바둑계를 초토화 시키자, 아연 실색. 돌이켜보면 일본 바둑의 몰락을 가속화 시킨 시작은 바로 토종바둑 서봉수-유창혁 쌍두마차.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천재 양재호가 여섯번째. 양재호가 조치훈 조훈현과는 다른 점은 특별한 선생의 사사를 받지 못한 점. 바둑 성장기가 서봉수-유창혁과 비슷하다. 초중고 과정에서 공부도 특별하게 아주 잘해서 다재다능한것이 탈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 뛰어난 천재기사로서의 성적은 미흡하다. 물론 지금도 중년 기사로는 최정상급 성적을 거두고 있다.

세계기전에서는 1번 우승으로 만족(?)하고 훌륭한 해설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제71회 입단대회에서 12세의 이세돌, 13세의 조한승이 입단했다. 이 둘은 훗날 한국 바둑계의 거목이 되고 일곱 여덟번째로 꼽는다. 이세돌 9단은 이창호를 이어 세계 바둑을 석권했다. 조한승은 세계기전 우승의 마지막 순간에 넘어지곤 했으나 언젠가는 반드시 세계기전 우승을 하고 말 듯.기사 자료를 좀 더 보자


기사 자료 다 옳지만, 마지막 부분은 틀렸다. 이세돌-조한승의 평균 입단 연령은 12세 6개월. 이 후로 입단 평균 연령이 10대 이하는 커녕 15세 이하는 구경하기도 힘들고 매년 7~8개월 씩 뒤로 뒤로 가기 시작했다. 천재는 천재인데 너무 나이든 이세돌과 조한승을 뽑기 시작한 것이다.

기력33년님이 이 사진이 조한승이 이세돌에게강한 이유라고 하시네요 ㅋㅋㅋ
나이든 이세돌과 조한승은 이렇게 껴안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가리는 것이 많아서 일듯. 그 만큼 천진 난만하던 마음이 닫혀져있음을 뜻할지도. 이렇게 귀엽고 앙증맞은 천재 이세돌-조한승의 입단 기사의 사진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한국 바둑계에 이들 천재만 있으랴, 2부에서는 성공한 천재와 아울러 실패한 천재도 조명해보려한다.
(타이젬 i진선)
[i진선 한 마디]
대구가 열대야라..밤새 컴퓨터가 더위 먹었는지..이 기사 올리는데..엄청 시간이 걸렸습니다...ㅠ.ㅜ::원래 각 부분 별 기사였는데..통합 기사로 방향 전환 했습니다. 각 기사들에 대한 심층 기사는 조만간 소개토록 하죠. 소스로 이용한 자료는 원래 기사에서는 없었는데..도움자료로 첨부했고요, 맨마지막 이세돌 기사만 전문 소개했습니다. 기사를 쓰고 증거자료를 찾아 첨부하려니 너무 힘이드네요ㅡ.ㅡ:: 하여간 자료 기사도 각 부문 별 기사화 할 때 꼭 전문 소개하겠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실패한 천재 기사도 조명하려고 하는데..당사자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런지 걱정입니다. 천재 어쩌구 한 기사야 드물게라도 나오지 않았나요..그러나 실패한 천재 기사는 나온 적이 전무했었습니다. 제가 추진해보려고 합니다. 바둑의 성적으로만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지는 것이지, 성적은 실패였지만 현실은 얼마든지 성공한 분 일수도있으니 오해는 금물입니다^^. 조한승은 성공한 천재냐 실패한 천재냐를 놓고 고민좀 했었습니다. 윗 기사에는 빠졌습니다만, 김인-서능욱-하찬석 등의 사범님들도 엄청난 내공을 지닌 천재 분명합니다. 기사량이 너무 많아서 뺏습니다. 2부때에 기사화 하겠습니다
꾸벅
필리핀 소녀의 you & I 커버 영상입니다.
총 댓글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