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바둑 10가지 사건

광저우 AG의 금메달 획득으로 뿌듯한 한국 바둑계, 광저우 AG 금메달 못지않은 한국 현대바둑사의 사건은 없을까 찾아서 정리해보았다. 10개를 골랐고, 10대 사건은 공통점은 한국 바둑계의 위상을 드높인 내용으로 부정적인 사건은 제외했다. 순위는 필자의 관점에서 임의로 정한 것일 뿐, 사실상 선후 등위의 의미나 가치 차이는 없다. 모두 한국 현대 바둑을 훌륭한 업적이며 이 후로도 두고 두고 계승해야할 것이다.
1. 출판: 한국 최초의 월간 바둑 전문지 '棋界'의 탄생(1967년 7월7일)~월간바둑으로 이어져

월간 바둑 전문지 기계는 월간바둑지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있습니다. 1967년에 창간되어 40여년이 넘고 지령 520권를 넘어서 이제 한국 출판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느 소중한 출판 문화재로 맥을 잇고 있죠. 최근 PDF 파일로 공개하여 과거의 한국 바둑을 눈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내년부터는 다시 한국기원이 직접 주관하여 월간바둑을 간행하기로했다는 반가운 소식. 바둑전문지로서의 특성을 강화하고, 창간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2. 출판: 최초의 바둑 저서 "조남철, 위기개론' 발간 (1955년 1월)

서울시내 출판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당대의 최고 베스트 셀러였습니다. 한국현대바둑의 창시자 조남철 선생은 이 책의 발간으로 한국 바둑의 초석을 닦았죠. 엄청난 판매부수에도 불구하고 조남철 선생에게는 판권료가 몇 푼 수중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말이 전해옵니다...사기당하시고 그랬다는...조남철 선생의 기록도 엄청나게 많습니다만...그 중에도 "위기개론"은 바둑사적으로도 한국 출판사적으로도 매우 위대한 업적입니다. 한 권의 책. 한 줄의 글을 후예들에게 남기는 것 얼마나 중요한가요.
3. 기전: 한국 최초의 공식 프로기전 국수전(동아일보)창설

1956년 오늘날 국수전의 효시인 국수제1위전이 탄생함으로써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기전의 시대가 열리게 됐습니다. 조남철 선생은 초대 우승 이후 9기 대회까지 무려 9연패를 달성하여 ‘무적의 조남철 시대'를 구가했습니다. 후진 김인 9단이 등장하기까지 한국 바둑계 제1의 원조 최 강자로 군림했습니다.

당시에 국수전의 인기는 대단해서 결승전에는 종로통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국수전의 성공으로 각종 신문기전이 우후죽순격으로 탄생했습니다.
4. 세계기전: 제1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 선수권대회 조훈현 우승(1989년 9월5일)

대만기업가 응창기씨가 창설한 속칭 바둑올림픽 응씨배. 한창 줏가를 올리던 섭위평의 우승을 예상하고 만든 대회였으나 한국 바둑을 대표하여 홀홀단신으로 출전한 조훈현 9단이 우승하여 한중일 바둑계의 추를 확 돌린 대사건이었습니다.

조훈현 九단 제3차 전관왕 달성(1986년 6. 20) 제3기 박카스배에서 하찬석 七단을 3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 11관왕 등극 했습니다. 조훈현 9단의 기록은 하도 많아서 그것만 뽑아도 30여개 됩니다. 조훈현 특집에서 다루기로하고 이걸로 마무리..
5. AG: 2010 광저우, 금메달 싹쓸이 획득

광저우 아시안 게임, 바둑 역사상 첫 공식 경기로 선정된 바둑에서 한국은 페어-남녀단체로 금메달 3개 싹쓸이로 중국과 일본을 완전히 패퇴시켰다. 이 사건으로 한국 바둑은 바둑의 진정한 스포츠화와 세계화의 원년으로 삼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되었다.
6. 창립: 한성기원(1945년 11월 5일(?))~한국기원으로 이어져

한국기원 바둑회관 기공식에서의 조남철 선생의 기공사 중(1967년경(?))
해방을 맞이하자마자 진정한 한국 현대 바둑의 문을 열었습니다. 조남철 선생의 주도하에 창설하였으며, 이 후로 조선기원-대한기원-한국기원으로 이어져 현재의 한국 바둑의 근간을 마련했습니다.
7.교육: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 바둑특활 실시(홍익 초등 1969년9월)~세계 최초의 바둑학과 창설

전 이 사건을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당시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찾아서 상패를 주어야합니다. 한국 바둑계도 감히 생각지 못했던 초등학교 정규 수업인 특활시간에 초등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다니요. 이 정신은 계승되어 훗날 명지대 바둑학과 창설에까지 이어집니다.

바둑학과는 바둑의 스포츠화와 세계화를 목표로 바둑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바둑 학술 아카데미도 개최하고 있으며, 해외를 방문하여 바둑의 세계화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영문 바둑 서적 출간, 해외 유학생 유치와 바둑과 게임산업 전판에 걸친 미디어계열 취업을 위한 교육도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지원 시기가 다가오는데, 바둑학과를 자세히 소개하는 기사를 준비중입니다.)
8.기사: 조치훈 일본바둑史상 3대타이틀(기성, 명인, 본인방) 첫 석권 기록 (1983년 10월(?))

조치훈 9단은 1968년 11세의 나이로 일본기원에 입단한 이래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어 일본 기계를 휩쓸었습니다. 일본 바둑계의 웬만한 기록은 다 갖고 있있습니다. 한국 바둑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업글 중입니다.
9. 기사: 이창호 3단,세계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 ( 당시 14세 1989년 8월8일) ~이창호 시대 활짝 열어

제8기 KBS바둑왕전에서 김수장 八단을 2대0으로 물리치고 우승했습니다. 곧 이어서 최연소 세계바둑챔피언 기록도 세웠죠. 이창호 五단이 17세에 제3회 동양증권배 세계선수권대회 우승(1992년 1월 27일) 이런 기록 보면...이창호 후배들은 이창호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70년대부터 00년까지의 "조훈현-조치훈-이창호"가 이룩한 업적은 기록이 말해줍니다. 기록이...그 후배들은 아직 이 들을 능가한 사람이 없어요...무엇보다 카리스마도 없고...
10. 미디어:한국바둑텔레비전(B-TV) 개국(1995년 12월)~인터넷 바둑 서비스 붐
바둑 TV에 이어 인터넷 바둑은 한국 바둑의 양적 질적인 성장의 촉매가 되었다. 업글중
(타이젬 i진선)
[i진선 한 마디]
원래 10여개의 각각 준비했던 기사인데요...뭐...요약해서 한꺼번에 올립니다.
나중에 심층기사낼 기회가 또 오겠죠 ㅋ
업글 중입니다.
에구 힘들어라..좀 쉬었다가 업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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