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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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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진선2010-12-12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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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政治

 광복후 현대 바둑의 싹을 조금씩 키워나가던 한국 바둑계는 6.25라는 전쟁의 참화에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 싶었다. 당장에 먹고 살기도 바쁜데 바둑을 어찌 보급할 수나 있었을까. 조남철 선생을 중심으로 하여 조금씩 바둑 보급에 나섰으나, 여건은 여전히 긍정적이지 않았다. 당장 한성기원 유지비 조차도 마련하기 힘든 실정이니 조남철을 중심으로 하여 기사들이 바둑판을 들고 후원자를 찾아 나선다. 그 중 유력층중에 정치인들도 있었다. 

정치 9단이니, 정치의 정석이니 하는 말은 비록 바둑을 모르는 정치인들 일지라도 다 안다. 한국 현대 바둑 초창기에 프로기사들은 정치인들과 교유 관계가 매우 깊었다. 한국 최초의 9단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었고, 관철동 한국바둑회관을 건립하는데 당시의 정계 유력자의 도움이 매우 컸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60~70년대만해도 해외나가기가 무척 힘이들었다. 대국민 해외여행금지조치가 있기도 했지만, 한 번 나가려면 서류를 산더미처럼 싸들고 가고 남산녁에 있는 반공 교육관에서 하루종일 강의를 듣고 나가야만 하던 시절. 그런데 바둑계의 과거 기록을 보면 해외 활동이 상당히 활발했다. 이는 정계의 도움없이는 쉽지않았다.

1955년 2월 4일 경무대(현 청와대)에 나(조남철)와 김봉선 초단이 초대받았다. 한국기원 초대 이사장이자 집권 자유당 중진이었던 장경근씨가 주선했다. 백발에 보일락말락 미소를 띠며 팔자걸음으로 다가온 이승만 대통령은 ”아, 자네들이 바둑을 잘 둔다고. 어디 한 판 구경 좀 시켜주게“라며 자리를 잡았다.

1시간 여 만에 바둑을 끝낸 순간, 이 대통령이 물었다.“그런데 자네들 왜 하필 ‘왜놈바둑‘을 두는 거지?”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침착하게 설명을 드렸다. 대통령은 ”응. 그렇다면 어디 우리 순장바둑을 한 번 두어보게“했다.
대국을 관전하면서 대통령은 ”나 같으면 이렇게 두겠다. 그게 바로 도남에 의재북이거든“이라며 흥겨워했다. 꼬박 3시간이 넘어가자 노(老) 대통령의 건강이 걱정된 프란체스카 여사가 말리려 했으나, 이 대통령이 워낙 좋아하는 모습을 확인하곤 조용히 사라졌다.
바둑이 끝나자 이 대통령은 “아. 재미있게 구경했네. 자네들 중국으로 원정을 간다고?”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 대통령은 “그래, 잘 싸워 이기고들 오시오”하며 비로소 안채로 사라져 갔다.
이런 곡절을 거쳐 우리 대표 팀은 자유중국(현 대만)과의 제1회 한-중 친선바둑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6.25 동란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당시엔 대통령의 서명이 있어야 달러를 지급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조남철 회고록 발췌)

한국 근대 스포츠史에 프로 선수가 청와대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을까? 있다. 프로기사가 이승만 정권 시절에 경무대에 가서 바둑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국무총리 공관에서도 바둑을 두었다. 1999년 1월 7일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의 삼청당(三淸堂)에서였다. 제10기 기성전 도전3번기 제1국, 이창호 9단과 목진석 4단의 대국이었다. 김종필 국무총리의 배려에 의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정치인 김종필은 바둑을 매우 잘두었다고 하며 은근한 도움도 적지않았다.

"계획중인 아시안게임 주 경기장"

기타등등 정치인들과 바둑인들의 인연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제5공화국 시절에 국보위라는 초헌법적 기관이 있었는데,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유력 기사가 위원 명단에 떡 하니 올라가 있었다. 당시 서슬퍼런 군부에 끽 소리도 못하는 판이라 그 쪽에서 사회 각계각층 유력인사들을 모아서 위원을 내세웠는데, 빼달라고 할 형편도 아니었다. 해당 기사는 상당한 비판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조훈현과 조치훈은 한국-일본의 당대의 최고 프로기사로서 모 정당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조치훈이 대삼관왕을 달성한 후 한국 방문을 한 듯. 그런데 그 자리에 왔던 모 정치인이 대뜸 대국 구경하고 싶으니 두 기사보고 긴급대국(?)을 요구했다. 당황한 조치훈은 얼굴이 붉어져 자리를 일어났고, 조훈현은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대국 요청한 정치인은 바둑을 한갓 묘기나 부리는 術로만 알고 있었던 듯. 바둑팬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크고작은 선거때만 되면 바둑계에 대한 은근한 압력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았다. 한국 바둑이 굳건하게 서가면서 한국 바둑계는 과거처럼 자발적이든 억지로든간에 정치와는 확살히 거리를 두고 있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문제 라는 것을 체감으로 앎이었으리라. 

차기 인천 AG에서의 체스/바둑의 퇴출의 충격이 바둑계를 강타했다. 광저우 AG 바둑 금메달 석권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라온 소식으로 바둑인들은 매우 우울하다. 내막을 알고보니 갑자기 퇴출함이 아니라 몇년전부터 인천 조직위가 결정한 사항을 확인함에 불과했다. 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릐 퇴출이 아니라, 인천 조직위가 대회 개최시에 체스/바둑종목을 아예 신청도 아니하였다. 올림픽 공식 종목과는 달리 AG는 개최국의 의사가 상당히 반영되어왔었는데, 차기대회는 그 여지마저도 없앴다고 전한다. 까딱하다가는 첫금메달이 마지막 금메달이 되지않을런지.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고 바둑계는 희망중인데, 인천 지역 정치인들은 한국 현대 바둑의 가치를 모르는가. 애초부터 없던 일이라면 모르되, 중국 광저우시는 바둑을 아시안게임의 식구로 받아들인 마당에 인천시에서는 세계 최강 한국 바둑보고 짐싸서 나가라니. 정치적인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시 한 번 고려를 바란다. 정치 9단은 고사하고 정치 18급만 있는가.     

(타이젬 i진선)

[i진선 한 마디]

답답합니다. 차라리 광저우가 없었다면 모르되 이건 아니거든요...차기 기사로 준비하고 있습니다만..광저우 AG로 포털 바둑 검색이 평소보다 거의 수백배가 증가했었습니다. 한국 바둑 금메달 소식으로 바둑 미디어를 제외하고 스포츠 뉴스등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바둑 노출은 엄청났습니다. 그것이 AG 금메달의 위력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만두라고? 휴우....

OCA 탓을 할 수도 없더라구요...인천조직위원회에서 신청도 한 적이 없는데..사실 퇴출도 아닙니다. 신청을 한 적이 있어야죠...

"첫 금메달인디...혹시 마지막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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