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충성, 조치훈

22일 새벽에 열린 2011년 AFC 아시안컵대회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한 재일 한국인 4세 출신 이충성(李忠成)이 연장 극적인 결승골로 일본에 우승을 안겼다. 이제 출발이고 앞으로 어떤 선수로 자랄 지는 미지수이지만 카타르 아시안컵의 종결자로 등극하게한 그의 환상적인 논스톱 시저스킥은 세계 축구팬들 사이에 오래동안 회자될 듯하다. 비록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일본 바둑계에서 엄청난 업적을 기록한 조치훈 9단을 생각하지않을 수 없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일본 여권을 받아든 이충성
이충성은 일본어로는 리 다다나리 라고 칭한다. 출신은 일본 도쿄, 일본에 귀화한 한국계 일본인.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이며 포지션은 공격수. 현재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이다. 2004년 대한민국 U-19 축구 국가대표로 뽑혔지만, 한국어 미숙으로 일본인이라는 편견과 부상까지 당하여 고생했다고 한다. 2006년에 일본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일본으로 귀화를 권유하자 2007년 일본어 이름인 리 다다나리로 개명하고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 AFC 아시안컵은 무엇? AFC 아시안컵은 아시아 축구연맹이 주관하는 국가대항 축구대회다. 이 대회 우승자는 아시아 대륙 우승 팀의 자격으로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진출한다. 원래 아시안컵은 1956년부터 2004년까지 매 4년마다 열렸다. 그러나 아시안컵보다 인지도가 더 높은 하계올림픽등과 대회가 겹쳐져 개최주기를 변경하게 된다. 그 첫 해가 2007년이고 변경후 두번째 대회가 이번에 개최되었다. 최근 이 대회의 인기가 급상승하여 세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으며, 앞으로 엄청난 아시아 축구 시장을 고려하면 차기는 더욱 업그래이드된 범세계적인 축구 대회로 격상될 움직임이다.
http://www.the-afc.com/en/tournaments/men-a-youth/afc-asian-cup 일반적으로 전 대회 1~3위 팀과 다음 대회 개최국 및 2개의 AFC 가맹국들은 별도의 예선을 통해 본선 진출권을 얻으며, 자동 본선 진출국까지 합하면 아시안컵 본선에는 총 16개 국가가 진출 할 수 있다. 이번에 대회 3위를 한 한국팀은 2015년 대회 본선 진출권을 확보한 셈이다... |
2008년에 일본 올림픽 대표팀 일원이었고, FC 도쿄 시절 같은 팀 동료였던 한국 오장은 선수와 절친했고, 가시와 레이솔에서 뛸 때는 같은 팀의 홍명보 선수가 달았던 20번을 달기를 원했고,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했을때는 같은 팀의 노정윤 선수가 달았던 9번 달기를 고집해서 화제가 되었다. 비록 국적은 일본이지만 마음만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듯 보인다.

일본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선수 이충성.
1985년 12월19일 대한민국 국적의 제일교포3세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충성의 아버지도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 그는 실업구단인 요코하마 트라이스타 SC 소속의 축구 선수였다. 이충성의 아버지는 서도쿄 시내에서 유명한 불고기집을 운영하는데, 어렸을 때 부터 민족 정체성을 키워주었다고 한다. 도쿄 조선 제 9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초등학교 5학년때 요코가와 무사시오 주니어 팀의 선수 시험을 통과했고, 유소년기를 축구와 함께 보냈다.

비록 일본 대표선수로 선발은 되었으나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지않았다. 연장전에서 불과 몇 분. 이 몇 분 사이에 그는 자신의 준비된 가치로 빛을 발하였다. 해외 언론은 물론 일본 네티즌들까지 "한국인이 일본을 우승하게 하였다."라고 했을까. 그는 한국도 일본도 사랑하며 축구선수로서만 보아주고 응원해달라고 부탁한다.

한국인으로 전문분야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일은 좋은 일이다. 이충성에게 한 때 그의 조국 대한민국이 그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음이 아쉽지만, 세계각국으로 퍼져나가서 그 나라의 각 전문분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들과 큰 차이는 없다. 바둑계에는 한국인으로서 일본 바둑계에 입문하여 일본 바둑계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조치훈 9단이 있다.

도일할 당시에 덜컹거리는 비행기가 그렇게 무서웠다는 소년 조치훈은 일본 바둑계의 거목으로 성장하여 70~80년대 세계 최고기사로 인정 받고있다. 그에게 수 많은 일본 귀화의 요청이 있어왔으나 그는 아직도 한국 국적이다. 조치훈 9단은 최고의 자리에서 이제 서서히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는 입장이라면 이충성은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점이 다르다. 조치훈 9단과 같은 불굴의 투지를 습득한다면 일본 축구계뿐 만 아니라 세계 축구계의 영웅이 될 수 있을 듯.

당시 일본의 청년 고수 임해봉과 대국중인 소년 조치훈
자기 전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마음가짐은 이제 비록 일본 축구 발전을 위하여 뛰는 일본 국적의 축구 선수지만, 일본바둑 발전을 위하여 한국인 조치훈의 근본과 크게 다르지 않아보인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인 이충성 선수에게는 격려와 성원을,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일본바둑계의 프로기사인 조치훈 9단에는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타이젬i진선)
[i진선 한 마디]
일본에서는 한국인으로,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왕따를 당했었다니...마음이 짠 하네요ㅠ.ㅜ::그러나 왕따를 극복하면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납니다^^::앞으로 위대한 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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