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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편지]

유럽인들의 바둑축제

- 아일랜드 두 번째 편지 <Irish Go Congress>

정승교2014-03-03 10:4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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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rish Go Congress에 참여한 필자(왼쪽).


2월 한 달이 마술처럼 지나갔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뜻 깊은 한 달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바둑을 처음 시작하여 아마5단에 이르기까지 개인전 바둑대회에 한 번도 참가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타이젬에서 바둑을 두는 것이 전부였는데 생전 처음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특별한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바둑대회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Irish Go association 홈페이지에서였습니다. 사실 참가 자격이 있는지도 몰랐고 유럽인들의 바둑 축제인 것 같아 사진 정도 찍으며 구경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 필자를 Irish Go Congress에 초대해준 고마운 Rory.

그런데 어느 날 Irish Go Club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처음 뵌 분께서 저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시더니 너무나 반가워하시며 대회에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바둑 고수들이 참가해주길 원한다."며 직접 신청서도 작성해주시고 대회에 대해 친절히 안내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함은 Rory이고 주최 측이자 진행자였습니다.

Irish Go Congress라는 명칭으로 매년 2~3월 중에 사흘 간 바둑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첫 날에는 The Rapid라고 하여 이벤트 속기전으로 상급자와 하급자 간의 접바둑이 펼쳐집니다. 보통 치수가 4점 접바둑이라면 5점을 놓아 하수가 더 유리한 상태에서 바둑이 진행됩니다. 이는 고수에게 바둑을 배우고 만약 이기게 되면 자신감도 얻을 수 있기에 아주 좋은 의미가 있는 이벤트인 것 같았습니다.

▲ 대국이 없는 틈에 참가자들이 서로 통성명을 하며 친해진다.  

둘째 날부터 본 대회인 The Confucius Cup이 진행됩니다. 총 5판의 호선 대국을 두게 되며 점수제인 토너먼트로 진행됩니다. 무엇보다 채점 방식이 참 신기했습니다. 토너먼트라고 해서 첫 판을 지게 되면 끝일 줄 알았는데 5판을 모두 두게 됩니다. 높은 급수로 신청할수록 더 많은 점수를 갖고 시작하게 됩니다. 대신 자신보다 낮은 급수에게 지면 그만큼 많은 점수가 깎입니다. 또한 승수가 동률이 날 경우 첫 판을 이겼거나 높은 급수에게 이겼을수록 많은 점수를 얻게 되어 우열을 가리게 됩니다.

우승상금은 500유로(약 74만원)이고 준우승은 400유로, 이런 식으로 5등까지 상금이 수여됩니다. 그리고 하급자들을 위한 전 승자, 4승자, 특별상 등이 수여됩니다. 이번 대회에는 여러 나라의 강자들이 초청되었습니다. 중국과 폴란드 네덜란드 영국 등에서 참가했고 아일랜드 외 다른 지역에 있는 고수들도 더블린에서 함께 수담을 나누었습니다.

▲ 트로피를 들고있는 가죽재킷이 이번 대회 우승자 중국의 Hui Fan.

특히나 우승자인 중국의 Hui Fan이라는 분은 프로2단이고 유럽에서는 아마8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초고수이십니다. (유럽도 우리나라처럼 아마7단까지 있지만 프로는 아마8단으로 칭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프로에게 지도를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5단으로 신청을 하였습니다. 솔직히 유럽 강자와 한국 강자 사이에는 실력 차이가 꽤 난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서 내심 5등 안쪽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제 위로 딱 5명이 있었습니다. 첫 판에 6단과 두어 정말 운이 좋게도 승리를 하여 속으로 '이거야! 가는 거야!'를 외치며 산뜻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판에서 우승자인 Hui Fan 8단에게 처참히 대마가 몰살됨을 시작, 연패를 거듭하다 1승4패 7위로 마감했습니다. 제가 강자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Kim(4단)이라는 네덜란드 친구도 사귀고 기존에 다니고 있던 더블린 바둑클럽 사람들과도 더욱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타이젬을 알고 있는 Kim은 집에 돌아가면 쪽지를 남기겠다며 제 ID를 물어보았습니다. 대회에서는 아쉽게 상대로 못 만났지만 온라인에서 한 수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몸 상태가 좋질 않아 피부가 찢어지는 따가움 때문에 1~2시간 밖에 잠을 못 자고 대회에 임해서인지 처음에는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마지막 대국만큼은 집중을 다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물론 제가 상대하기에는 다들 벅찬 선수들이었지만 조금 더 좋은 내용의 수담을 나누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 Matthew 부부

마지막 상대였던 Matthew(6단)라는 분은 아내와 함께 대회에 참가하셨습니다. 첫째 날 속기 대국 상대로 아내분과 7점 접바둑을 두었는데 대국을 마치고 제가 어디서 바둑을 배우셨냐고 여쭤봤습니다. 바둑이 너무나 탄탄했고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바둑을 두셔서 하급자에게서는 보기 드문 바둑이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배웠다며 자기 남편을 저에게 소개해주셨습니다.

공교롭게도 마지막 대국 상대로 그분과 대진이 잡혔고 저는 아내분의 기풍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10수도 놓아지기 전에 제 머리 속에는 "응??? 이 양반이?’라는 물음표가 가득 채워졌습니다. 5.5와 고목에 이어 협공으로 무차별 공격태세를 지니고 무언가 하나 엮어서 제 돌을 취하기 위한 살기가 느껴졌습니다. 결국에는 제 대마가 잡히고야 말았지요. 하하하. 스승과 제자의 기풍이 솜털하나 겹쳐지지 않는 놀라움을 경험하였습니다. 마치 조훈현 이창호 사범님의 사제지간 기풍 차이라고나 할까요?

▲ 이번 대회에서 친해진 바둑 친구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이번을 계기로 바둑 공부에 더욱 관심이 생겨서 프로 기보를 놓아보고 문제를 푸는 등 하루에 1~2시간씩은 꼭 바둑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연구생이었던 친구에게도 1주일에 한두 번씩 복기를 받으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매주 월, 수 나가던 Irish Go Club에서 제가 가지고 있는 手筋辞典(수근사전)으로 월요일마다 같이 문제를 풀어보며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번 아일랜드 편지에서는 다시 Irish Go Club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로 찾아뵙겠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2월 한 달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태풍으로 인해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건물이 침수되는 등의 사건 사고들이 많았습니다. 상당히 강력한 바람이 불어 사람들이 거리에서 우왕좌왕 제대로 걷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면 창문 하나 정도는 깨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다행히 안전한 지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지만 피해를 입은 지역 사람들이 하루 빨리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참가자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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