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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따부따]

10번기는 진정한 승부!

현지에서 본 10번기 감상

김성룡 프로2014-03-25 15:3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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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최정상 간 10번기. 이세돌-구리.


현대바둑에서는 사라진 줄 알았던 10번기가 올 1월 70년 만에 개시되었다. 스폰서가 중국이 되면서 10번기의 공식명칭이 ‘古(구)-李(리) 십번기’로 정해졌다. 중국식으로 읽으면 절묘하게 ‘古(구)李(리)’가 되기 때문에 중국 쪽에서는 그냥 '구리 10번기'라고 한다.

팬들의 관심은 누가 몇 대 몇으로 이길까에 모아진다. 하지만 나의 관점은 '몇 번째 판부터 이 시합이 뜨거워질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대다수 관계자나 프로들은 4:4에서 벌어질 9국이나 5:4에서 10국을 꼽았다. 누구나 똑같이 말하면 재미있는 소재가 안 된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견해는 다양성을 부여한다. 오청원과 기다니의 두 번째 치수고치기 10번기에서(첫 번 째 10번기는 치수고치기가 아님) 다음 판을 지면 치수가 고쳐지는 상황이 되었을 때 기다니는 삭발을 하고 나타난다.

과연 한 기사가 먼저 코너에 몰린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스코어일 때 코너에 몰렸다고 느낄까? 흥미롭게 이세돌에게 이 의문을 풀어달라고 했더니, 그의 대답인 즉 3:0이라고 했다. 그 다음은 4:1, 이세돌은 세 판 차이가 벌어질 경우 한쪽은 여유가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너무 힘들 것이라 했다.

필자는 이번 10번기 2국을 직관했다. 10번기가 벌어지는 비슷한 시기에 한중교류전을 미리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중일정은 북경교류전, 핑후 10번기 2국, 농심배로 이어지는 10일간의 중국방문이 자연스레 성사되었다. 그 중 10번기 2국의 얘기를 먼저 꺼내 보려 한다.

▲ 한중교류전에 다녀온 안성준과 신민준이 10번기가 치르진 핑후시의 상징인 동호(東胡)에서 포즈.

10번기와는 관계없이 미리 계획되었던 한중교류전(이 부분은 별도로 다룰 예정)을 베이징에서 마친 다음날인 2월22일 베이징 공항에는 교류전 선수였던 안성준과 신민준 그리고 필자와 중국 선수단이 함께 10번기를 향해 함께 모여 있었다.

일행 중 안 보이는 이는 바로 구리. 비즈니스 클래스(국내선은 퍼스트 클래스가 없음)로 이동하는 구리는 역시 항공사 라운지에서 쉬고 있었다. 라운지 이용이 가능한 카드를 가지고 있는 필자는 구리와 먼저 인사를 하고 싶었다. 시합 하루 전 그의 모습을 먼저 보며 느낌을 전달 받고 싶었다. 인사를 먼저 했지만 구리는 인사를 할 여유가 없었다. 어딘지 모를 초조함과 긴장감이 역력했다. 1국을 지고 한 달간 복수전을 기다려온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초조하고 황폐해졌을까. 내 앞에 앉아 있는 구리의 모습이 그랬다.

11시45분 비행기는 2시간 남짓 날아간 후 상하이 홍차오공항에 도착했다. 10번기 2국이 열리는 핑후시는 상하이에서 100km 거리에 있다. 푸동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입경한 이세돌과는 오후4시경 그의 호텔방에서 만났다. 제자인 신민준도 인사를 하러 따라 나섰다. 퍼스트 클래스티켓, 핑후시의 상징인 동호(東胡)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스위트룸. 이것이 세계 최고의 기사에게 중국 측이 보여 준 성의 표시였다.

이세돌은 자신의 방에서 팬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책을 읽고 있었다. 시합 전날 선수는 그 무료함이 견디기 힘들다.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책은 큰 도움이 된다. 필자는 오전에 구리를 대한 느낌을 얘기했다. 이세돌은 자신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또 구리는 10번기를 발표한 이후로는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라고 한다, 자신과도 인사 외에는 별다른 얘기가 없다고 했다.

전야제까지는 2시간 정도 남았다. 아까운 2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지역 명소라는 동호에 가보기로 했다. 핑후시는 상하이와 항저우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항저우엔 대표적인 관광 상품인 서호(西湖)가 있듯이 이곳은 동호가 있다. 서호만큼 크지는 않지만 이곳도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2시간은 잡아야 한다.

이곳은 중국 청나라 때 4대국수로 유명한 판시양(范西屛) 스싱앙샤(施襄夏)가 건륭4년인 1739년에 당호10국이라는 10번기를 치른 곳이다. (승부는 5:5 무승부로 끝남). 낮선 핑후라는 도시에서 2국을 대최한 이유가 충분했다. 오히려 애당초엔 10국을 이곳에서 하기로 했지만 혹시 모를 사태(10국까지 안 갈 경우)를 대비해 2국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 전야제 만찬에서 여러 귀빈이 소개된다. 니장건 회장이 소개되고 있다.

▲ 전야제에 등장한 대만 일본 여자기사들. 헤이쟈쟈 셰이민 오사와나루미.

저녁7시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상상초월의 규모는 아니다. 핑후시는 2국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70만 위안(1억2000만원)을 냈다. 이른바 서브 스폰서다. 메인스폰서가 모든 경비를 내는 우리와는 개념이 다르다. 대회 메인스폰서는 대회의 상금과 기본 행사비를 낸다. (참고로 메인스폰서인 몽백합은 약 12억원을 댔다. 그중 9억 이상이 상금) 기획사는 이 훌륭한 콘텐츠를 통해 대국 장소를 유치한다. 유치한 곳은 방송중계료와 선수 초청 경비, 부대경비를 댄다. 중국의 바둑열기와 기획사의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우리도 이처럼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왜 실행하지 못했을까 새삼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저녁 만찬 때 같은 테이블엔 몽백합 전속 모델인 헤이자자가 함께했다. 이제 20살이 되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작고 예쁘다. 시합이 겹치지만 않는다면 10번기 행사엔 항상 참석한다고 했다. 일본에선 '여자 이야마'라고 불리는 셰이민(일본 여자랭킹 1위)과 오사와나루미도 함께했다. 그들은 기차로 3시간 거리인 장옌시에서 황룡사배 세계대회를 마치고 왔다고 했다. 우리 여자선수들도 같이 왔더라면 흥미로웠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다. 이런 큰 승부는 어린 선수들에겐 한번쯤은 봐야 할 것인데 말이다.

전야제 겸 저녁만찬의 느낌은 우리의 지역 바둑만찬과 크게 다를 게 없다. 다만 세련되었다는 정도. 초청된 사람에 비해 홀이 작아 불편한 느낌. 축사를 10번기에 관해 30분을 혼자서 떠드시는 분도 있지만 모인 대부분의 사람은 다음날 벌어지는 10번기 2국이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해 잠이 안 올 것 같은 사람들로만 가득하다. 밤 9시30분 한명씩 자리를 빠져 나갔다. 이세돌도 호텔방으로 사라졌다.

1국을 통해 2국은 자동으로 이세돌의 백, 그는 내일 과연 어떤 포석을 쓸까. 하루 전 중국기원 국가대표 훈련실에서 리저와 연습했던 포석을 구리는 과연 사용할까. 연습과정에서 이세돌의 제자 신민준이 물어 본 것을 친절하게 대답도 해 주었는데 그것은 어린 후배가 물어 본 것에 대한 자상함인가. 연막작전일까. 다음날 2국에서 대범하게 들고 나올까. 너무 궁금했다.

▲ 김성룡 이영호 이세돌.

2월 23일 10번기 2국이 벌어진 날. 알람이 울려 침대 시트를 젖히니 6시30분이다. 같은 방에서 잠을 잔 사람은 이세돌의 매니저인 이영호. 자비로 구경을 하러 와서 돈 없다고 궁상을 떤 내게 자기랑 자면 된다고 침대 하나를 넘겨주었다. 그는 바둑관계자는 다 아는 이창호의 친동생이면서 나의 친구다. 자신의 형이 중국에서 시합을 할 때 그림자라 불리던 사나이. 돈 없고 말 잘 안 통하던 초창기 중국에서의 고생 시절 몸이 상한 자신을 곁에서 돌봐 준 중국 여성에게 반해 결혼과 더불어 2명의 아이를 키우며 사업도 번창하고 있다. 15년 경력, 세계 최고기사 이창호의 매니저였던 사람을 이세돌도 선택했다.

7시30분 모닝콜을 매니저에게 들은 이세돌이 식당 앞에 먼저 와 있다. 그는 잠을 못 잔 얼굴이다. 그 정도가 심해 보였다. 이곳에 와서 푹 자려고 이틀 전 일부러 날을 세웠다고 한다. 그도 세상 일이 마음처럼 안 되는지 어제도 2시간 반만 잤다고 했다. 그도 긴장하고 있고 부담감도 크게 느낀다. 아침식사는 대국시간이 워낙 길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침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이것도 낯설다. 배가 고파 대국 중 식사를 하게 되면 자신의 시간이 사라진다. 점심시간이 별도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합에 때문에 할 수 없이 먹는 아침 식사가 맛이 있을 리 없다. 역시 대충 때우는 모습.

▲ 대국장은 언제나 취재기자들로 북새통이다. 뒤편에서 니장건 회장이 팬들과 똑같은 위치에서 빅매치를 구경한다.

▲ 침묵이 흐르는 결승2국 현장.

대국개시는 중국시간으로 오전9시. 이세돌은 식당에서 있다가 10분 전에 대국장에 도착했다. 이미 기자들은 대국장을 꽉 메운 상황. 곧이어 2국의 입회인 왕루난 원장(전 중국기원 원장)이 입장했다. 1국 때의 입회인은 네웨이핑, 이 대회의 기획자인 왕이후이은 암 투병 중인 스승 네웨이핑을 가장 중요한 1국에 상징적으로 입회시켰다. 이것은 스승에 대한 보은이다. 그에게 올해 100세가 되는 오청원(1914년생)이 100세가 되는 기념일에 입회인을 맡으시면 좋지 않을까 물어봤더니 이미 의사 타진을 했다고 한다. 오청원 대리인의 답변은 현재로서는 비행기를 타는 건 무리다. 마음만으로도 고맙고 이번 10번기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한다.

8시57분 구리가 기자들 틈새를 빠져 나와 자리에 착석했다. 얼굴이 안 좋기는 잠을 못잔 이세돌이나 매한가지다. 그도 잠을 설친 얼굴이다.

9시 정각, 입회인 왕루난 원장은 대국규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1분 후 대국은 시작되고 카메라 셔터가 불을 뿜었다. 대회 스폰서인 니장건 회장이 입회인 옆에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기자들 뒤에서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두 사람의 첫수 장면을 찍으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기자들에 밀려 한참 뒤쪽에 있었지만 보통 사람의 머리 하나 정도는 키가 훌쩍 커서인지 사진을 찍는 데는 아무 불편이 없어 보인다. 12억을 내는 메인 스폰서가 구경꾼이 되어서 행동한다. 이것이 대륙인가. 그건 아니다. 니장건의 스타일이다. 핸드폰을 꺼내 조용히 그의 모습을 찍었다. 나에겐 그 사진이 10일간의 중국 사진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세돌의 두 번째 수는 바로 착점 되지 않았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다. 몇 분이 흘러 돌이 놓였다. 구리의 세 번 째 수는 빠르다. '그렇지! 이 순간을 보러 내가 이곳에 왔지.' 필자의 가슴도 떨려왔다.

3수까지의 수순은 이미 이틀 전 중국기원 국가대표 훈련실의 상황과 똑같다. 역시 예상대로 이세돌의 다음 수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포토타임 10분이 넘어가 대국장에서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다. 다음 수를 꼭 보고 검토실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된다. 검토실에서 곧 다음 한 수가 TV를 통해 찍혔다. '어?' 필자, 안성준, 신민준 모두 놀라기는 마찬가지. 이세돌은 4번째 수는 구리의 예상된 수가 아닌 한 달 전 중국 기성전 본선에서 구리가 랴오싱원과 두었을 때 나온 수였다.

▲ 머리를 깎은 이세돌이 또다시 2국에서도 승리했다.

거의 10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2국은 저녁 6시가 넘어 끝이 났다. 공배까지 메운 상황. 이미 서로 승패를 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두 대국자가 계가를 하면 그만이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심판이 계가를 해준다. 이번 대회 심판은 중국기원 바둑부 직원인 류징, 한때 중국의 ‘6소룡’으로 주가를 올리던 때가 있었다. 계가 속도가 빠르다. 이미 그도 누가 이긴 줄은 알고 있다. 이세돌의 승리.

바로 복기를 할 수 없다. 규정상 공개해설장으로 이동해서 팬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 넒은 호텔 공개해설장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거의 1000명에 육박했다. 그것도 구리 패배의 실망감인지 절반은 떠났다. 이긴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진 쪽에서는 이건 두 번 죽이는 행위. 하지만 이것도 팬서비스다. 팬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팬들은 '구리! 짜요! 짜요!(힘내라!)'를 계속 외친다. 그 자리에 와서 죄인처럼 있는 구리가 안쓰럽기는 팬도 마찬가지. 그들 뒤편에 스폰서 니장건 회장도 있다. 그도 팬이고 관중이다.

30분 후 다시 대국장으로 이동해 복기를 시작한다. 이세돌의 옆에 붙었다. 의외로 하수인 내게도 천하의 이세돌이 다 물어본다. 이런 걸 하늘이 내려 준 기회라고 했던가. 복기를 할 때의 구리는 혼이 빠진 듯 보였다. 얼굴은 정말 흙빛으로 변했다. 조명 때문이 아니다. 사람 얼굴이 저렇게 변할 수 있나. 이건 복기가 아니다. 이세돌은 자신의 수에 대해 말하지만 구리는 이미 넋이 나간 지 오래다.

▲ 2국을 마친 뒤 공개해설장으로 나와서 팬서비스를 해야 한다.

저녁식사를 이세돌이 한 턱 냈다. 호텔 식당에서 그는 중국 음식을 너무나도 잘 먹는다. 개구리 요리가 나오자 제자인 신민준과 함께 간 안성준에게 먹어보라 한다. 둘 다 맛있다고 한다. 고량주 한 병을 같이 마신 이세돌은 3국이 승부처라고 했다. 3국을 이기면 지는 일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진다면 한 판을 겨우 앞서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쫓기는 입장이 된다. 3국에 승부를 걸겠다. 그의 결연한 모습이 보인다.

다음 날 아침 이세돌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다. 늦잠을 잤다고 한다. 니장건 회장은 우리를 보더니 서울에서 만나자고 한다. 그리고는 회사로 출근한다고 했다. 이세돌의 다음을 노리는 김지석 박정환이 3국에는 함께 동행 한다. 그들도 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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