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부따]
매리설산의 비경에 숨은 팻감
10번기 5국의 승부호흡
김성룡프로2014-06-05 14:05:29
▲ 역사상 가장 높은 곳(해발 3340미터)에서 바둑을 두어 화제가 되었던 중국 티베트 샹그릴라의 10번기 5국.
바둑 역사상 최고 높은 지대에서 벌어졌다는 10번기 5국. 상상 속에서나 느껴볼 높이 6740m나 되는 메리설산의 멋진 풍경을 우리는 보았다. 일생에 한번 경험하기 힘든 풍경과 대국은 그만한 대가가 필요했다.
이번 행사에 동행한 김지석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 5월 23일 김포에서 상하이로 이동한 다음, 다시 중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반이 걸려 디칭 샹그릴라 공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도착해 보니 너무 늦은 밤이라 샹그릴라 시내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오전 제2의 티벳사원이라는 송찬린사(松贊林寺)를 구경한 다음 5시간을 대국장소로 이동했다고. 전야제를 한 장소는 메리설산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전망대 페이라이스(飛來寺).
대국장이 있는 별4개 중신위팅호텔(中信御庭)이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언제든지 설산의 위용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3년 전부터 중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기 시작해 샹그릴라 인구는 최근 10년 사이 10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고산병은 낮은 지대에서 고도가 높은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하였을 때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나는 신체의 급성반응이다. 이전에는 몇몇 등산전문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으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높은 고지대를 등산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점차 중요한 환경질환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메리설산을 정복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바둑 시합을 하기 위해 고산병을 걱정하는 상황 자체가 이상하기도 하지만, 호텔 욕실에 적혀 있는 안내문에는 정확히 3340m로 표시되어 있다.
▲ 원난성 샹그릴라 송찬린사 전경.
▲ 페이라이스 전망대.
일정을 마치고 국가대표실로 찾아 온 이세돌과 김지석은 크게 고산증세 때문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고 밝혀 다행이었다. 다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고 다른 점 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고 했다. 오히려 젊은 두 기사 보다는 중년의 기자들이 고산 증세를 많이 느꼈다는 후문. 시합 전 이틀간 휴식을 취하면서 고도 적응을 한 이세돌과는 달리 구리는 이번 대회를 유치한 샹그릴라 관계자들과 함께 하며 하루 전인 전야제가 되어서야 현지에 도착해 매우 피곤한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10번기 5국 바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선 초반 바둑 내용만 보면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구리가 약간 앞선 가운데 중반에 진입하자 묘한 상황이 나왔다. 바둑이 계속 타협이 연출되면서 짧은 중반을 지나 끝내기 승부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참고도1
참고도2
<참고도1> 구리(백)는 당연히 백1로 둘 것으로 예상했다. 그랬다면 흑은 수가 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흑2의 곳에 두어야 한다. 대국 하루가 지난 5월26일 국가대표 연구모임에서는 흑이 좋다는 쪽과 백이 좋다는 쪽이 갈렸다. 중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형세판단이 다른 것이다. 현지 중국 프로들과 함께 검토했던 김지석은 이 시점에서 백이 유리하다고 했다.
<참고도2> 구리는 백1로 1선을 젖혔다. 크다고 본 것 같았다. 그런데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수가 이세돌에게 나왔다. 흑2. 할 말을 없게 만든 한 수다. 초보자도 백이 곧장 5로 둔다면 천지대패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세돌을 왜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저질렀을까? 이건 1집이라도 물러서면 진다고 생각한 이세돌의 승부호흡이었다. 백도 뒤로 물러선다면 1로 젖힌 수가 머쓱해진다. 따라서 계속해서 상대의 낙관을 염두에 둔 강수가 나올 것이며 구리는 이후 끝내기를 견딜 수 없다. 또한 이세돌이 무리했다는 느낌도 강하다. 계속 패를 하면서 흐름에 따랐지만 믿어지지 않는 착각을 포함해 구리는 무너졌다. 사실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산증세가 나타난 것인지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심리적인 이유가 복합되어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구리가 무너진 이유는 <참고도3> 흑1로 패를 따낼 때 백은 2로 크게 패를 들어가 4로 먹여치는 팻감을 썼다면 흑은 완벽한 외통에 걸렸을 것이다. 국후 김지석이 이 수에 대해 말했을 때 이세돌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 수를 전혀 모르고 단지 실전이 승부호흡이라는 생각이 짧았던 것을 실토한 것.
만약 이 변화가 나왔다면 5국은 단명국으로 끝나고 ‘이세돌 고산병으로 인한 패배’라는 제목이 걸릴 뻔 했다. 문제는 대국이 끝날 때까지 전혀 몰랐던 이세돌과 달리 구리는 처음엔 몰랐지만 패를 지고 바꿔치기 할 때쯤에는 알았다는 점이다. 몰랐다면 바둑에 더욱 집중했을지 모르지만 알았다면 심하게 자책하면서 둘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때 부터 구리는 계속된 실수를 하면서 무너졌다. 아는 게 병이란 말도 있듯.
참고도3
▲ 복기 상황에서 문제의 패싸움에서 숨어있는 묘책을 얘기해주는 김지석.
실제 고산 증세를 느낀 사람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 혹은 감기를 심하게 걸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숨 쉴 때 마다 호흡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얘기까지 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10시간 동안 시합할 수 있을까. 그 자체가 경이롭다는 사람도 있다.
7국이 벌어지는 티베트 라싸는 평균고도가 3600m로 샹그릴라와의 높이 경쟁에서 신기록을 경신할 것 같다. 이세돌은 5일 벌어진 중국리그 6라운드에서 광시의 주장으로 신진서가 속해 있는 산동과 티베트 라싸에서 시합을 했다. 3일 청두로 이동한 뒤 하루를 쉬고 3일 5라운드를 마치고 4일 청두에 도착한 광시 선수들과 함께 비행기로 3시간이 걸리는 라싸로 이동한다고 했다.
홈경기인 산동은 지난 번 샤먼의 관광 명소인 무이산(武夷山) 경기에 이어 이번에도 홈경기를 라싸에서 벌이며 홈경기 주최권을 팔았다고 한다. 다행히 10번기에 대비할 수 있는 이세돌 입장에서는 중국리그 시합을 통해 현지적응을 미리 겸할 수 있어 1석2조가 될 것 같다.
다만 5국에서도 초반에 좋지 않은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은 계속해서 숙제로 남게 되었다. 중반 역시 정확한 계산이 아닌 착각에서 출발은 했지만 한 수를 통해 바둑의 흐름도 바꾸고 10번기의 흐름도 크게 바꾼 이세돌의 승부호흡은 6000m급 13봉이 솟아있는 매리설산(梅理雪山)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만큼이나 빛나 보였다.
▲ 다시 보아도 멋진 매리설산의 위용.
총 댓글수: 0
관련 뉴스
Copyright © 컴투스타이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