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유창혁 감독이 16강 대진추첨 결과를 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국가대표와 바둑리그 SK엔크린 선수단이 가세한 검토실은 그동안의 썰렁한 프로대회와는 분위기가 엄청 달랐다. 응원단 있다고 선수들이 힘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기운 만으로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16강 대진 추첨 때 유창혁 감독과 속으로 환상의 대진을 외쳤다. '중국 랭킹1~2위를 다투는 스웨와 천야오예가 만나라! 플리즈~'
정말 그렇게 됐다.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중국의 우승후보 한 명을 쓰러트렸다. 추첨 여덟 번 중에 다섯 번을 맞추자 우리의 완벽한 오더가 나왔다. 계속된 패배가 기대치를 낮게 만든 이유로 쉽지 않겠다는 전만도 있었으나, 프로에겐 느낌이 있다. 바람이 우리 쪽에 불고 있다는 것을 필자는 다분히 느끼고 있었다.
10일 선수들이 하루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는 날. 국가대표팀은 오히려 지옥훈련을 했다. 일명 '속기 팀 연승전.' 최명훈 코치가 고안해 낸 방식인데, 선수들 훈련 방식을 고민하다 만들었다고 했다. 결과는 기술위원 목진석이 무려 13승을 했고 안성준도 9승.
▲ 속기 팀 연승전 모습.
▲ 이창호와의 대화 시간.
밤까지 이어진 훈련을 끝내고 다시 선배와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국가대표 팀 비장의 카드 이창호와의 대회시간이었다. 어린 후배들은 몹시 기다렸을 코너였는데, 다들 귀를 쫑긋하고 경청했다. 주로 경험에 관한 질문이 많다.
'바둑을 지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 하시나요?' 시선이 모아지자 이창호는 바둑 두는 것만큼이나 느릿하고 신중한 말투로 '그냥 걷는데?' 라고 말을 시작해 좌중에 웃음을 선사한 후 느릿하게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대화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모두 끝났다. 바둑 기술 하나 더 배우는 것보다 가끔은 말 한마디를 제대로 듣는 게 나을 때가 있다. 더욱이 이창호의 노하우가 담긴 경험담은 금과옥조에 다름 아니다.
11일 16강전이 벌어진 날 12시쯤이 되자 전체적인 초반 윤곽이 드러났다. 초반을 실패한 변상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세. 8강 5명 진출도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멘트들이 검토하던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나온다.
▲ 검토실을 가득 메운 채 검토에 열중하는 상비군.
가장 먼저 김지석이 리저를 KO시키고 검토실로 들어온다. 6월 잔여 시합 결과에 따라 프로가 된 이후 처음으로 랭킹1위에 오를 수 있는 그. 향후 바둑계는 이세돌 시대에 이어 박정환 시대를 예견하고 있지만 중간에 김지석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세계대회 4강이 본인의 최고 성적이지만 조만간 기록을 뛰어 넘을 것 같다. 역시 처음에 말한 프로의 느낌이다. 자기 관리 역시 역대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만큼 4살 어린 박정환과도 함께 공동의 시대가 열 확률이 매우 높다.
박정환은 '한국킬러' 탕웨이싱에게 승리했다. 강동윤이 판팅위에게 패한 것이 무척 아쉽지만 8강에 우리 탑 랭커 4명이 오른 만큼 우승의 기대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보다 성적이 나아진 것이 이제 시작한지 한 달 된 국가대표의 힘이 많이 좌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지훈련 장소로 강릉을 선택하며 혹시 우리 선수들 성적이 나쁘면 어떻게 하나 고민도 참 많았다. 그런 부담을 벗어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온갖 수모를 겪으며 결국 선진국 일본을 이겼다. 우리 후배들도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해 한국을 제치려는 중국을 이겨줬으면 한다. 항상 응원하고 싶다. 팀 코리아 파이팅!
▲ 오대산국립공원 계방산(1577m)정상에 오른 국가대표상비군. '그대들도 언젠가 정상에 오를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