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부따]
서봉수의 특별한 배움의 길
환갑을 넘긴 서봉수의 부단한 노력
김성룡프로2014-06-28 12:56:21
▲ 지지옥션배 예선이 한창 치러지고 있는 광경.
2014년 상반기를 마무리 지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6월 27일 지지옥션배에 나설 시니어기사와 여자기사가 결정되었다. 올해 8회를 맞이하고 있는 이 대회는 2,3,5,7회는 시니어팀이 1,4,6회는 여자팀이 우승했다. 매번 팽팽한 승부가 반복되니 흥행은 만점이었다.
연승전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대회는 결국 마지막 최종 주자가 가장 중요하다. 한쪽 팀이 일방적으로 셀 경우 역효과가 나는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지지옥션배는 항상 새로운 연승 스타와 막판 결정적인 수훈 선수를 통해 팀이 우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국가대표가 5월부터 시작되면서 시합이 있을 때를 제외하면 조용하던 한국기원은 선수들이 매일 같이 훈련하며 제법 사람 냄새 나는 동네가 되고 있다. 이에 질세라 일반 기사들도 국가대표실 옆방에서 나름 연구 분위기를 형성하는 등 '국대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여자선수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시니어 팀 선수는 유창혁 조훈현이 아닌 서봉수다. 그는 지난 4월 전체기사가 참가하는 물가정보배 본선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골수 팬 입장에서야 천하의 서봉수가 본선 하나 오른 것이 무슨 대수라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을 안다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게 된다.
▲ 서봉수가 작년 삼성화재배 본선에 진출했을 때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하고 있다.
우선 물가정보배는 속기 기전이다. 아직 마흔 미만의 기사들도 초읽기바둑을 두면, 어느 순간 내가 뭘 하는 건지 모르는 상태에 접어들 만큼 시간의 부담이 있다. 그런 점에서 어린 기사들을 상대로 40초 바둑에서 신예를 대산으로 5연승으로 본선에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평소에 서명인이 타이젬을 통해 실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또래의 기사들은 생업에 신경도 쓰지만 서명인은 바둑이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분이기에 한국기원에서 자주 마주친다. 처음엔 기사실에 잠깐 들리다가 점차 젊은 기사들과 호흡하는 날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국가대표 선수들만큼 연구하는 시간이 늘었다. 늘어난 공부 시간만큼이나 타이젬에서 당한 수법을 후배에게 물어보던 형태에서 그날 벌어진 프로대국에서 궁금한 대목을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도면 약간 뻥을 가미해서 박정환 빼고 가장 열심히 하는 기사에 들 수준이다.
새로운 국가대표팀 창설은 마침 나이를 잊고 공부하는 노장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만든 것 같다. 아무도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서명인은 조용히 국가대표실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아이들의 새로운 연구에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혹시 공부 방해꾼이 될까봐 처음엔 경청만 했다. 서명인의 바둑에 대한 열의를 알고 있는 코칭스텝은 난처하면서도 대선배인 서명인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오히려 자극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서봉수는 늘 대회장에서 예선시합을 관전하고 있다. 관전하다 궁금증이 나면 대국자보다도 복기에 열중하곤 한다.
▲ 박영훈이 예선 기보를 입력하자 그 수순을 따라 구경하다가 서봉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처음엔 2-3일 정도 적응기간을 넘기고는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자 몇 걸음 나아가 자율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궁금한 점을 계속 물어본다. 나보다 바둑이 세다고 느끼면 나이나 체면 따위는 중요할 것이 없다는 정신이다. 잡초바둑, 고추장바둑, 야전사령관으로 불렸던 서봉수의 힘이 이런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20세에 명인이 되어서도 일본 유학에 갓 돌아 온 조훈현에게 선을 접히며 연습바둑을 통해 배웠다는 얘기가 헛말이 아니었다.
특이한 점은 국가대표실에 박정환 김지석이 있는 날엔 우연치고는 묘하게도 항상 서명인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물어볼 것이 준비되어 있다. 지금은 랭킹93위에 불과하지만 천하의 서명인이 물어보는데 입 다물 기사는 없다.
국가대표 코칭스텝 전원이 국수산맥 예선전 시합을 벌이던 날 서명인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시합을 끝내고 국가대표실로 가자 예기치 않게도 서봉수 연구회가 열리고 있었다. 서명인의 연구 특징은 본인이 납득이 되지 않으면 무조건 끝까지 해보라고 하는데 있다. 이 방식은 나보다 강한 사람이 어려운 변화를 가르쳐 주기 위해 끝까지 해보라고 할 경우 같이 연구하는 사람은 엄청난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반대로 나보다 약한 사람이 내가 모르니까 어떻게 되는지 해봐(한마디로 가르쳐 줘)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아주 김새는 연구가 된다.
가만히 보니 연구 주제는 <장면도>이다. 이날 목진석(백)과 박준석의 국수산맥 예선전 바둑에서 나온 형태인데 실전에서는 흑 진이 완전히 부서졌다. 흑 진에 백이 들어가 살 수 있느냐 없느냐다.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왔다. 김지석은 백3으로 두면 살지 않느냐고 했고 김정현은 위험하다 했다. 보통은 연구해보다 멈추지만 서명인은 흑 모양 헤엄치기를 끝까지 해보는 통에 모두가 질려버렸다.
그날 밤 바둑리그 경기가 있었다. 김지석은 서명인에게 인상 깊었던 두 가지 이야기를 바둑리그 선수들에게 들려줬다. 몇 년 전 전화로 자신의 집으로 와 달라고 해서 급히 간 적이 있다고 한다. 어떤 수에 대한 연구를 하는데 무려 8시간을 같이 했다고 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8시간을 함께 연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 일본 바둑계에서는 도전기가 끝나면 대국자 2명이 밤을 세워가며 연구를 함께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제자도 아닌 어린 기사와 두 기사 간에 실제 대국도 아닌 남의 바둑을 그렇게 오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또 하나는 지방 행사를 같이 간 적이 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전 서명인이 노트와 연필을 사더라는 것이다. 옆에 앉아 도착할 때까지 노트에 바둑판을 연필로 그려 궁금한 점을 계속 물어봤다고 한다. 김지석에게는 이런 대선배의 모습이 특이하게 느껴지면서도 식지 않는 바둑 열정이 더 존경스러웠나 보다.
가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함께 대학에 입학한 얘기가 뉴스로 나올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필자도 '좀 열심히 살아야지' 맘을 단단히 먹고 며칠 동안 마음을 다 잡을 때가 있다. 곧 그러다 말길 수차례 반복하고 있다. 공부는 때가 있다고 하지만 꾸준함을 유지한다면 계속 발전할 수 있다. 환갑이 넘어서도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서명인. 그는 보면 볼수록 우러나는 진국이다.
▲ 72년 명인전 도전기 조남철-서봉수.
▲ 2012년 입신최강전에서 만난 조훈현-서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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