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따부따]
양외목에 흠뻑 빠진 세계바둑퀸!
최정의 승전보를 기뻐하며
김성룡프로2014-09-05 14:15:49
▲ 18세 최정이 세계여류바둑퀸에 올랐다. 궁륭산
병성배에서 중국복식을 입고 포즈를 취한 최정.
작년 최정을 락스타리그 선수로 뽑았을 때 기대와 달리 최정의 안색은 영 별로였다. 막바지 사춘기를 타고 있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으로서 또 선배기사로서 따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 대화의 결론은 두 가지였다. 또래 남자 기사와의 격차가 자꾸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첫째고, 한참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민감한 나이에 자택과 거리가 멀어 도장기숙사 생활을 하는 어려움이 둘째였다.
최정은 초등학생 때부터 여자뿐만이 아닌 또래의 남자 영재들과 비교해도 못하지 않은 실력을 갖출 정도로 한국 여자바둑의 대들보 소리를 들어왔다. 더욱이 스승인 유창혁과 닮은 공격적인 힘 바둑을 구사하며, 동명이인인 프로야구 SK '소년장사' 최정을 빗대 '소녀장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입단과 함께 곧바로 여자 대회를 거의 석권하며 승승장구 했고 루이 이후 남자기사와 성대결이 가능한 또 한 명의 여자기사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바둑계는 술렁였다.
문제는 입단 이후 관리를 받을 나이에 자유의 몸이 되며 공부를 소홀이 한 점과 남자기사들보다 성적이 못한다고 해서 그렇게 혼을 낸 사람도 없다는 것이었다.
▲ 한국바둑의 미래인 10대 국가대표들. 나현 신진서 최정 변상일.
올해 국가대표가 새로 출범하며 가장 혜택을 많이 받고 있는 그룹은 여자기사들이다. 여자 프로들의 고민은 막상 프로가 되면 연습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아마 때는 남자 연구생과 두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프로가 되면 자존심 때문에 두지 않으려 한다. 반대로 남자프로들 입장에서도 여자기사들과 두는 것은 아무래도 꺼리는 것이 사실.
그런 차에 국가대표팀에서는 남자기사들과 속기가 아닌 제한시간 1시간의 연습을 할 기회가 생겼고 초일류 프로들이 복기를 해준다. 그런 점에서 입단한지 얼마 안 된 오유진 박태희 등 여자기사들의 성장은 눈부실 정도다.
만약 최정이 입단할 무렵에 국가대표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보여 지고 있는 여자들의 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아마 또래의 한승주 김진휘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최정의 장점은 일명 '최정zone'이라고 하는 중반 전투에서 한방에 걸려들면 남자프로들도 숨도 못 쉬고 그대로 판을 쓸어담기 일쑤다. 반면 단점은 초반 포석이다. 골프의 경우 신체적인 차이로 인해 드라이브 거리 차를 극복 못해 남자와의 도전이 어렵다고 하지만 바둑은 신체적인 차이 때문에 초반 포석이 불리할 이유는 없다. 올해 최정이 보여주고 있는 노력은 다른 부분 보다 자신의 가장 큰 핸디캡인 초반 포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최정은 힘 바둑이다. 특히 남자기사들과 사활문제 먼저 풀기 시합을 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수읽기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 힘 바둑과 수읽기 바둑이 만들어지기 좋은 ‘양 외목’을 연구한 것이다. 아무래도 변화가 무쌍한 바둑이 자신의 체절에 맞는 바둑이라는 나름의 연구결과가 나온 듯하다.
사실 지난해 락스타리그에서 양외목을 두어 번 시도하길래 당시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후 타이젬에서 수많은 연습대국을 통해 어느 정도 맘에 들었던지 자주 사용한다. 연습에서의 좋은 성과는 결국 실전에서 사용할만한 자신이 붙게 된다. 그런 계기가 됐던 바둑이 있었다.
장면1 타이젬 대국실 2014. 6. 1 최정(흑)-변상일
최정의 양외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바둑은 올해 6월 타이젬에서 두어졌던 변상일과의 연습 대국이다. 최정은 변상일 신진서만큼 타이젬에서 트레이닝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실전 감각을 키우기 위해 한 달에 평균 20판 정도는 두는 것으로 안다. 변상일이 마침 대국신청을 받아줬다. 최정은 변상일인 줄 알았지만 변상일은 상대가 최정인지 모르고 받은 것이다.
초반 최정은 자신의 비장의 무기가 될 양외목을 들고 나왔다. 특히 우상귀 외목에서 중앙으로 한 칸 뛰는 5의5에 둔 수는 이제 최정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것 같다.
이 바둑에서 나온 초반 수순은 이번 궁륭산배 8강전 중국의 차오요인과의 대국에서 그대로 재현됐고 완승을 거두었다. 4강전 루자와의 대국에서도 백으로 외목을 한 곳에 두었는데 그만큼 승리를 통해 자신의 포석에 자신을 갖게 되었다는 얘기다. 프로들이 시합을 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준비한 수들이 기가 막히게 먹혀들 때인데 적어도 양외목의 노력이 이번 궁륭산배에서는 통했다.
장면2 궁륭산병성배 8강전 최정(흑)-차오유인.
▲ 궁륭산병성배 대망의 결승 루이-최정.
또 하나 칭찬 할 점은 루이나이웨이와의 결승전이다. 두 기사의 나이 차는 무려 33년이다. 1971년 명인전에서 조남철 선생(1923년생)은 18세의 서봉수에게 패해 타이틀을 내줬다. 당시 조남철은 후배 김인에게 밀리며 정상에서 내려오던 시절 마지막 불꽃을 피우던 시합이 명인전이었다.
루이는 당시 조남철보다도 3살 위인 51세. 최정은 묘하게도 당시 서봉수의 나이와 정확히 같다. 루이는 올해 여자갑조리그에서 9승1패로 위즈잉과 더불어 다승1위를 달리고 있다. 얼마 전 삼성화재배 32강에서는 여자기사는 들러리라는 공식을 깨고 당당히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며 '제3의 전성기'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물론 그런 상승세의 루이를 이겨서 칭찬하는 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내용도 첫 세계대회 결승전 치고 나쁘지 않았다. 특히 침착함을 계속 유지한 것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전에 성공한 원동력이 되었다. 첫 세계대회 결승전. 필자는 경험한 바 없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역전에 성공했다고 느낄 때 그 떨림은 대단할 것 같은데, 이후 100여수의 마무리 과정에서 단 하나의 실수도 없었다. 마치 이런 승부를 준비해 왔던 것처럼 마무리 과정은 예술 그 자체였다.
▲ 결승에서 사투를 벌렸던 루이와 최정이 궁륭산병성배 시상식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4강전을 할 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최정의 결승전 상대는 위즈잉과 루이 중 누가 올라오는 것이 나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면 루이라고 말했다. 위즈잉에 대한 최정의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이 부담이 지금은 노력과 함께 좋은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고 우승을 통한 정신적인 성숙과 함께 앞으로 위즈잉과의 시합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우승은 같이 동행한 김채영 오유진 같은 10대 기사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줄 수 있다. 우리 여자바둑이 또 한 번 도약할 계기를 마련해줘서 너무 고맙다. 하루 빨리 국가대표실에서 최정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최정과 화장을 한 최정.(사진제공=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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