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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vs구리 10번기]

이세돌-구리 10번기가 남긴 것

중국언론이 제기한 구리의 패인

김경동(金敬東)2014-10-03 22: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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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돌은 10번기를 승리했다.

세기의 대결 이세돌-구리 10번기 제8국이 충칭에서 끝났다. 구리의 고향인 충칭에서 벌이져 구리의 모친과 아내 뤼위엔양과 딸이 모두 대국장에 와서 응원했다.

이외에도 중국갑조리그 충칭팀 팀원들도 왔으며, 그의 은사이자 이날 심판(입회인)을 맡은 양이도 모습을 드러냈다. 수 백 명의 바둑팬들도 현장에 와서 관전을 하며 구리에게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요란한 응원 분위기와는 달리 구리는 다시 한번 이세돌에게 패하면서 종합전적 2대6으로 패해 10번기를 마무리 지었으며, 10번기의 모든 상금 500만 위안은 이세돌에게 돌아갔다.

대국이 끝난 후 언론매체들은 앞을 다투어 대국장으로 향했으며, 복기를 하는 구리의 모습은 풀이 죽어있었다. 구리는 복기를 마친 후 바둑판에 사인을 하고는 언론과의 인터뷰도 없이 곧 대국장을 빠져나갔다. 그의 아내는 자신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고 전했다.

한 네티즌은 "2005년 이후 힘겹게 한국보다 더 많은 우승을 쌓아왔으나 그 탑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네웨이핑, 마샤오춘, 창하오, 구리 등 중국의 바둑영웅들이 모두 한국의 바둑천왕에게 무너졌던 역사를 깨끗이 지울 수가 없게 됐다."라고 한탄했다.

후원사 입장에서는 마지막 10국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돌아야 하는데 2대6으로 싱겁게 끝나 흥행에 약간 실패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당초 두 사람이 이미 세계 1인자 자리를 다투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행감소요인을 감싸고 시작했지만 10번기 전행 중의 전체적인 흐름에서도 긴장감은 떨어졌다.
 
구리의 입장에서 진 것도 진 것이지만 2대6으로 너무 비참하게 졌다는 점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구리는 전체 10번기에서 줄곧 추격하는 입장에 놓였다. 2대6은 과거 일본바둑에서는 선상선(先相先)의 치수.

검토실에서 제자의 마지막 대국을 지켜보던 충칭기원의 양이 원장은 "구리는 당시 고원지대에 대한 반응이 좀 심했다. 간단한 수도 못 봤다. 전체적으로 그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이는 그가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 10번기의 마지막 대국.

10번기는 바둑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기에 10번기가 벌어지는 시점도 아주 중요하다. 2009년 6월, 이세돌이 갑자기 휴직을 선언하자 중국에서는 그와 구리의 10번기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한 명은 삼성화재배, LG배 우승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BC카드배와 후지쯔배 우승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때 구리와 이세돌의 대결은 곧 세계 1인자의 자리를 가리는 대국이었다. 이런 가운데 10번기를 주최하려는 쪽에서 패하는 쪽의 상처가 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와 후원사 비용문제로 10번기를 치를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10번기 문제가 다시 한번 언급됐으나 똑같은 문제로 인해 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2012년 몽백합그룹에서 10번기를 후원하기로 했지만 이때는 이미 박정환, 스웨 등이 급부상하면서 세계1인자 자리를 다투는 시기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출발부터 세계 1인자 자리를 다투는 인물의 대국이 아니었다. 구리는 중국 내에서는 이미 스웨, 천야오예 등보다 랭킹과 승률에 모두 뒤지고 있었고, 이세돌 역시 한국내에서는 박정환, 김지석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국내 1인자 자리를 모두 빼앗긴 상황이었던 것이다.

중국언론은 구리의 패배에 대해서 진단했다. 1월에 시작해서 매월 한판을 두는 것은 일정상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구리에게 있어서 10번기 1,2국은 중국 춘절(설날) 전후로 진행되었는데 중국 바둑계는 이전에 이 기간에는 공식대국을 진행하지 않았다. 10번기는 대다수의 기사들이 베이징을 떠나 오랫동안 떠나있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주변의 분위기도 놀고 먹고 마시는 분위기에서 대회가 시작했다.

또한 고원지대에서의 대국이 구리에게 홈에서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구리는 샹그릴라 대국 이전에 이세돌에게 3연승을 거두며 번기 대국을 2대2(그 중 한판은 초상은행배)을 만들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하지만 고원지대의 대국에서 고전하면서 오히려 대국장소가 그에게 맞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이세돌은 이전에 "5국인 샹그릴라 대국이 이번 10번기의 전환점이다. 고원지대에서 싸우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겨서 기선을 제압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시 구리는 샹그릴라 대국이 자신의 신체적 우세와 홈의 우세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으나 실제 대국에서 수 차례 실수를 범했으면서 7국인 라싸 대국에서도 사전 적응훈련을 하지 않아 다 이긴 바둑을 실수로 잃고 말았다.

또한 그는 10번기를 위해서 국내 여러 대회 출전을 포기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과연 10번기에 도움이 됐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 이세돌이 10번기 마지막 충칭대국을 승리했다.

외부적인 변수도 등장했다. 고향에서 배수진을 친 구리는 갑자기 대국을 준비하다가 고향의 후원기업이 갑자기 10번기 개최에 난색을 표명하면서 반상 외의 일로 골머리를 앓았다. 최종 온갖 물밑협상으로 대회는 예정대로 치렀지만 어쨌든 마음은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구리의 기술적 결함이 존재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런 결함은 그의 심리상태가 만든 것 같다. 중국의 많은 기자의 기억 속에 제8회 농심신라면배 주장전 최종국에서 구리가 이창호에게 역전패를 당한 후 많은 매체가 카메라 플레시를 터뜨리는 가운데 그가 머리카락을 움켜쥐는 모습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후 그의 손 가는 데로 두는 덜컥수(?) 바둑은 중요한 시합에서 자주 출몰했다. 이번 라싸 10번기에서도 젖히는 그 한 수 때문에 현재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구리는 아함동산배, TV속기전, NEC배 등의 속기전에서 모두 우승한 적이 있다. 이는 마샤오춘과 구리 이외에 달성한 적이 없는 기록이다. 하지만 장고대국에서 초읽기에 들어가면 그는 그의 본 모습을 잃어 버리는 듯하다. 2007년 삼성화재배 준결승전에서 박영훈에게 패한 것이 그 예. 위빈 총감독도 그의 이런 단점을 지적한 바 있다.

긴장감 없이 이세돌-구리 10번기는 끝났다. 과연 언제 또 이와 같은 10번기가 있게 될까? 10번기 개최는 때가 있는 법이다. 최근 세계대회에서 두 차례 이상 우승을 차지한 인물이 없는 가운데 10번기를 치를 만한 인물이 나타나기란 당분간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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