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뉴스페이퍼]
‘괴물’ 후지사와의 환생, 손녀 리나가 있다
거침없는 우승 질주…그 할아버지에 그 손녀
타이젬2014-12-03 19:13:36
▲ 풋풋한 16세 소녀가 일본 여자바둑 판도를 뒤
흔들고 있다. 후지사와리나는 '괴물' 후지사와
슈코(작은 사진)의 친손녀다.
우리 여자 프로바둑에는 최정, 중국에는 위즈잉이 있다. 한중 여자바둑 현재의 정상이다. 일본은? 조금 전까지는 대만 출신의 셰이민(25)이 부동의 일인자였다. 2006년경부터 타이틀에 뛰어들었고, 이후 각종 타이틀을 연패(連覇)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셰이민의 행진에 이상 징후 같은 것은 없었다. 그랬다. 그랬는데 최근 주목할 변화가 생기고 있다. 셰이민의 장기집권 철옹성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 것. 역시 권불십년이다.
일본 여자바둑의 샛별 후지사와리나(16)가 일본 여자프로 판도를 흔들고 있다. 제33기 여류본인방전에서 도전권을 차지하더니 11월7일 일본기원에서 열린 도전5번기 제3국에서 현 타이틀 보유자 무카이치아키에게 흑을 들고 233수 만에 5집반승, 1~2국 연승에 이어 종합전적 3대0으로 단숨에 정상을 정복했다.
일본 여자 프로기전으로는 여류본인방 여류명인 여류기성과 올해 출범한 회진중앙병원배(會津中央病院杯) 등이 있다. 일본 프로바둑 7대 타이틀 중 빅3의 서열이 기성→명인→본인방인 것과는 달리 여자 쪽은 본인방이 역사도 제일 오래고 서열도 1위다.

▲ 일본에 건너가 후학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홍맑은샘(오른쪽)이 후지사와리나의 스승이다.
후지사와리나는 누구인가. 올 2월 중국 장쑤성 장옌에서 열린 제4회 황룡사쌍등배 한중일 여자단체전에 일본 2장으로 출전, 중국 선봉 쑹룽후이의 4연승을 가로막는 것으로 세계무대 데뷔전에서 합격점을 받은 바로 그 소녀다. 일본에는 한중에 대적할 만한 여자기사가 없다고 보고, 일본 팀을 전혀 경계하지 않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뿐인가, 사람들은 그 소녀가 바로 지난날 독창적 품격의 기예와 파격의 기행으로 바둑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20세기 바둑의 전설, '괴물' 후지사와슈코의 친손녀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몇 년 전, 2010년에 입단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11세 6개월. 일본 여자기사 중에서 최연소기록인 데다가 후지사와의 손녀이고, 아빠도 프로기사여서 기대를 했는데, 그 후에 별로 소식이 없어서 그저 그런 정도인가 했다. 하긴 예전과 달리 최연소 입단기록 같은 게 요즘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요새는 10대 초반에 입단하는 바둑 천재들이 어디 한둘인가. 문제는 입단 후 어떻게 성장하느냐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리나 할아버지의 열렬한 팬이었다. 리나 아빠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지만….(후지사와가즈나리가 아빠다)."
이에 앞서, 후지사와리나는 몇 달 전 6월에 제1회 회진중앙병원배에서 오쿠다아야(26)를 꺾고 우승했다. 15세 9개월, 일본 여자프로바둑 사상 최연소 타이틀획득 기록이다. 무카이와 오쿠다는 요즘 세계여자대회 단골 일본대표로 얼굴이 자주 보인다. 여자 기사 중에서는 손꼽히는 강자.
회진중앙병원배는 타이틀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기전이다. 본선 토너먼트 입장권은 8매이고, 결승은 단판인데, 제한시간이 각자 5시간으로 '빅3 타이틀'처럼 이틀거리로 둔다. 우승상금 700만 엔. 여류본인방은 580만 엔이고, 여류명인과 여류기성은 똑같이 500만 엔이니, 상금으로 말하자면 회진중앙병원배가 실질적인 여자 프로기전 서열1위이고 여류본인방이 2위인 셈이다. 우리 여자기전 우승 상금이 1000만~1200만 원인 것에 비긴다면 500만 엔, 700만 엔은 크다. 게다가 너도나도 빨리빨리 속기, 속기 하는 시대에,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듯 복고풍의 이틀바둑을 들고 나왔으니 만만치 않다. 그를 통해 후지사와리나 같은 재목들이 계속 등장하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현시점에서 말하자면 후지사와 2단이 서열 1~2위 타이틀을 석권한 것인데, 다만 그러니 이제 후지사와 2단이 1등이라고 단언하기는 아직은 좀 이른 것이 셰이민 명인-기성과의 정면승부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셰이민의 경력은 실로 화려 찬란하다. 2006년 제8기 여류최강전 우승이 첫 타이틀이었는데, 17세 1개월, 당시로서는 여자기사 사상 최연소 기록이었다. 이듬해 17세 11개월로 역시 사상 최연소로 제26기 여류본인방에 취임했고, 2012년 제31기까지 6연패하다가 32기 때 무카이에게 빼앗겼다. 그걸 이번에 후지사와가 빼앗은 것.

▲ 후지사와리나-오쿠다아야 간 회진중앙병원배 결승 장면.
셰이민은 또 2008년에는 제20기 여류명인을 쟁취했고(이것도 사상 최연소), 2014년 올해 26기까지 무카이, 오쿠다 등의 도전을 뿌리치면서 7연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2010년에는 제13기 여류기성에 올라 올해 17기에 이르는 동안 15기 때 한 번을 빼고 네 번을 제패했다. 3대 여류기전에서만 17회 우승의 대기록을 세우고 있고, '명예 여류본인방'과 명예 '여류명인' 칭호를 이미 따놓았다. 일본에서는 한 타이틀을 5연패 이상 하면, 이후 타이틀에서 물러나면 '명예OO'로 불러준다. 과연 지금 셰이민과 후지사와가 맞붙는다면?
"관록이나 노련미에서는 당연히 셰이민이겠지만, 5대5로 본다. 내년에 만난다면 후지사와에게 걸겠다. 셰이민은 어느덧 중천을 지난 해, 후지사와는 뜨는 해 아닌가. 나이도 25세와 16세. 과거의 사례를 보거나 요즘 추세로나 후지사와가 6대4 정도로는 무조건 유리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한중일 여자바둑은 18세 최정, 17세 위즈잉, 16세 후지사와의 각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자들의 얘기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후지사와는 홍맑은샘(33)의 제자다. 아마 정상급의 실력이었는데도 입단 운이 따르지 않자 과감히 일본에 건너가 2005년에 바둑도장을 열어 활동을 시작했고, 2009년에 드디어 관서기원에서 입단을 꿈을 이룬 홍맑은샘. 도쿄 아라가야에 있는 '홍도장(洪道場)'은 벌써부터 명문 바둑도장으로 발돋움해 있다. 프로기사 12명을 배출했다. 전 세계 20세 미만의 신예들이 경쟁한 제1회 글로비스배 세계바둑U-20에서 예상 밖으로 한중의 신진정예를 따돌리고 우승, 일본 신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이치리키료(17)를 비롯해 90년대 생 풋풋한 일본 청년기사들 중에 최근 농심배 등에서 일본대표로 출전하는 실력자들이 대개 홍도장 출신이다. 현재 35명 소년들이 일본바둑 재건을 꿈꾸고 있다.
"리나가 여섯 살 때 우리 도장에 왔습니다. 10여 년 같이 공부하다보니 이제는 제자라기보다 막내 여동생 같고, 딸 같고 그렇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입단 후 향상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다음 목표는 여자 세계대회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일요신문 12월03일자 이광구 객원기자가 쓴 일본의 '뜨는 해' 후지사와리나 2단 스토리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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