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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신]

棋聖 오청원 각국 애도 줄이어

100세를 살다간 살아있는 기성 추모 메시지 잇다라

김경동(金敬東)2014-12-05 1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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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일본 본인방도전기에 모습을 나타낸 우칭위엔. 맨왼쪽부터 장쉬 린하이펑 왕리청 이치리키료 다카오신지.


'살아있는 기성' 우칭위엔이 지난 11월30일 새벽 1시11분(현지시간) 일본에서 타계했다. 향년100세. 한국 중국 일본 등 각국의의 언론매체는 일제히 그의 서거 소식을 보도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린하이펑, 오오다케, 장쉬, 이야마유타 등 일본 정상급기사들과 중국의 구리 등이 우칭위엔 서거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우칭위엔의 제자인 린하이펑 명예천원(72세)는 "올해 100세 축하연을 했는데 위대한 기사가 우리의 곁을 떠나갔다. 지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선생님의 바둑은 변화가 다양하고 자유로웠다."라고 회상했다. 린하이펑은 1952년 대만에서 우칭위엔 선생의 지도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일본으로 건너가 바둑을 배우게 됐다.

린하이펑의 제자인 장쉬(34세)는 "우칭위엔 선생님은 바둑판 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내셨다. 선생님의 기보에서 느낀 것은 현재 나도 자신의 생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겠다고 느꼈다. 선생님 덕분에 기사들도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장쉬는 최근 우칭위엔의 기보를 다시 놓아보았는데 그 생각의 새로움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야마유타는 그가 현역에서 은퇴할 때 그는아직 출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친히 두 차례 정도 뵈었지만 기사로서 아주 감동적이었다. 선생님의 신선한 신포석은 바둑판 위에서 몸소 바둑의 세계를 넓히셨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과거 이야마유타는 우칭위엔 바둑에 대한 생각으로 "만약 우칭위엔 선생님의 젊은 시절 기보를 놓아보면 그가 줄곧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아주 현대적인 감각이 있다. 비록 당시는 시대의 한 획을 긋는 행마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시대의 흐름이 결국 우칭위엔 선생님을 쫓아가는구나라고 느꼈다."라고 말한 바 있다.

▲ 우칭위엔

일본기원 고문 오오다케(72세) 명예기성은 "우칭위엔 선생이 우리 바둑계에 보물을 선사하셨다. 저는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현재 아마도 기타니미노루 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계실지 모릅니다."라고 추모했다.

일본기원 이사장 와다노리오는 우칭위엔의 부고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일본기원 홈페이지에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우칭위엔 선생의 부고소식을 듣고 놀라움과 애석함을 금할 길 없다. 일본바둑계 뿐만 아니라 현대바둑의 최고 거성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충심으로 우칭위엔 선생의 명복을 빈다."라고 애도했다.

그는 또 "올해 여름 우칭위엔 100세 연회에 중국TV들도 와서 취재하고 보도했는데 이는 위대한 업적이 중국에서도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중일 바둑교류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는 이때에 교량역할을 했던 선생님의 서거는 비통한 일이다. 선생님의 유지를 이어 바둑을 통해 각국의 교류가 깊어지고 바둑을 통한 세계평화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노력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중국위기협회도 우칭위엔의 유족에게 위로 전문을 보내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중국위기협회는 전문에서 "우칭위엔 선생의 서거를 애도한다. 7일전에 중국사회 각계인사가 모여서 100세 축하연을 했는데 얼마 뒤 뜻밖에 대사의 유고소식을 듣게 되어 탄식을 금할 수 없다. 사람은 비록 가셨지만 정신은 불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바둑계는 건교배 등 각종 바둑대회를 진행하기 전에 묵념을 하고 대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 우칭위엔과 그의 제자 루이나이웨이.

중국의 구리도 개인적으로 중국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 구리는 세 차례 우칭위엔을 만났다. 첫 번째는 1993년 우칭위엔의 방문단을 이끌고 충칭을 방문했을 때이고, 당시 그는 10세에 불과했다. 당시 그는 우칭위엔의 제자인 루이나이웨이와 한 차례 지도기를 두었고, 그 후 2004년 상하이에서 벌어진 응씨배 때 구리는 연회장에서 우칭위엔을 만났다. 그리고 2008년 후지쯔배 결승전때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당시 최종 우승한 구리가 연회장에서 우칭위엔을 만났다.

구리는 "단지 세 차례 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우칭위엔 선생과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우칭위엔 선생의 기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공부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당시 모든 충칭 기사들이 우칭위엔 기보전집을 모두가 가지고 있었다. 그의 포석이론이 나에게 아주 많은 영향을 미쳤다." 라고 말했다. 우칭위엔이 자신의 바둑생애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말을 할 때 구리는 자신도 모르게 선생에 대한 뭉클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또 "그는 반상 외에서도 철학적 연구와 기도의 추구 및 중국전통문화의 탐구 등에 대해서도 우리를 감동시켰다. 우리세대 기사들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그와 비교해 너무 모자란 것이 많다 이후에 이런 분야에서도 공부를 더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스스로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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