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 뉴스人]
사관(史官)의 맘으로 셔터를 누르다
20년간 바둑계의 기록사진 담당해 온 이시용 작가 인터뷰
진재호 바둑평론가2015-02-01 13:46:18
▲ 사진작가 이시용은 한국바둑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관(史官)이다.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나 뉴스를 나르는 시절이다 보니 기사(記事)의 질 가운데 사진이 치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 과거엔 그저 글만 잘 쓰면 우수한 기자였지만 지금은 취재 편집 사진기자를 모두 겸하고 있다.
자질구레한 글보다는 그저 사진 한 장이 당시의 상황과 정황을 제대로 설명하는 악센트가 될 때가 많다. 특히 활동성이 전무한 정중동(靜中動)의 바둑세계에서는 하나의 장면이 그 자체로 역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청원 조남철 선생의 얘기가 나올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은 역사의 무게와 향내가 깊게 마련이다.
과거 바둑사진은 신문사의 소관이었다. 조남철 선생의 60년 전 국수전 대국모습을 보려거든 동아일보사 자료실을 뒤져서 캡쳐를 해 와야 했다. '월간바둑'이 70년대를 지나오면서 차츰 사진의 중요성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잡지는 사진이 생명이지만 '형편상' 취재기자가 겸사겸사 현장 사진을 찍어 와서 '인증 샷'만 취급해오던 것이 관례였다. 필자도 사진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지만 20여 년간 카메라를 끼고 현장을 뛰어다닌 이력으로 겨우 면피만 하는 정도다.
한국바둑계에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사진은 모두 몇 장이나 될까. 한국기원 보물창고(자료실)에 존재하는 수만 장의 사진을 모두 그의 손으로 살펴보고 정리도 해 본 사람이 있다. 프로 세계에 사는 또 다른 프로 사진작가 이시용(50) 씨를 만났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사진학과를 나왔으며 각종 주간지 미술 음악 패션잡지사를 두루 거쳤으며, 1994년부터 3년간 월간바둑에 근무했다. 그러나 타고난 역마(驛馬) 탓에 홀연히 공부를 한다며 야인으로 돌아섰다가, 작년 5월부터 다시 바둑의 향기가 그리워 바둑 사진에 몰두하고 있다.
▲ 지난 연말 바둑대상에서 취재 중인 이시용 씨(맨 왼쪽). 그는 20년간 바둑계의 자료사진을 담당해왔다.
사진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시골인데도 우리 집은 전축 카메라가 있었고 직접 암실작업도 했었다. 선친께서 재주가 많은 분이었는데 바둑도 조금 두셨고, 지방신문사의 사진기자를 잠시 했었다. 어렸을 때는 선친께서 내게 직접 사진을 찍어주시곤 했다. 아마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프로작가들은 흔히 배움의 길에서 고생한 얘기가 더러 있던데?
하하. 원래는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서 전공도 그쪽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와서 한 순간 맘이 바뀌었다. 사진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는 형이 스튜디오를 했었는데, 하루 1시간씩 가르쳐 주는 조건으로 3개월을 배우고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다. 처음 사진은 독학이었던 셈이다.
바둑계에 발을 디딜 생각은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떤 계기였는가?
처음 바둑계에 발을 댄 것은 바둑출판 '현현각'이다. 지금의 '현현각양지'의 전신이었고, 잠깐 근무했다. 과거 '현현각'에서는 바둑서적과는 별도의 '주간음악신문'을 발행했었는데, 음악신문을 하게 되니 사진이 필요했다. 그때 어깨너머로 바둑을 알게 되었다. 그 때도 바둑계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될지는 몰랐다.
바둑계에 입성한 지 20년을 넘긴다. 간단하게 이력을 알려주신다면.
1994년부터 약 3년간 바둑기자로 일했다. 이제는 바둑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모두 다 알았다는 매너리즘 탓인지 당시 더 이상 발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훌훌 털고 야인의 길을 가다가, 작년 5월 한국기원 홍보담당 파트에서 바둑 일을 다시 하고 있다. 물론 비어있는 기간 중에도 바둑계와는 끈을 놓치는 않았으며, 한국기원의 사료 정리 작업에 장시간 투입되기도 했다. 서울예술대학 사진과를 졸업했고 주간지 미술잡지 음악 패션 잡지사에서 일했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생겨서 방송통신대학 방송정보학과를 다녔다.
사진기자의 매력은 어떤 것인가?
치과의사는 환자들의 입 속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살아온 이력이 보인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렌즈 속에 비친 작은 세상이지만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랄까. 매력이라기보다는 임무겠지만, 일단 현장의 기록자로서 각종행사도 하고 인물사진도 정리해두어야 하고 행사기록을 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시는 오지 않으니 잠시도 한 눈을 팔 순 없다.
▲ 사진기자는 대국이 끝나면 더욱 바빠진다. 짧은 시간동안 대국자의 표정 하나 하나를 모두 잡아내야 한다.
바둑사진이 다른 종목의 사진과 다른 점이라면?
정적인 바둑은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남들이 보면 똑같은 장면인데, 표정 하나 눈빛 하나 다 다르다. 액션이 없기 때문에 표정이나 미묘한 변화나 몸짓 하나가 소중하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점을 자꾸 찾아내야하는 즐거움이 있다. 바둑과 바둑인의 일상을 모조리 기록하는 바둑계의 사초를 쓰는 사관(史官)이었다.
지금도 바둑사진에서 새롭게 발견된 게 있는가?
절대적으로 감정표현이 절제되어 있으나 전투가 벌어졌을 때의 느낌도 또 다르다. 복기 때가 가장 좋다. 일단 공식대국이 끝났기 때문에 아쉬움이나 탄식 등 여러 표현을 하니까 비교적 다채로운 사진이 나온다. 사실 대국개시 때와 점심휴식 후의 사진도 표정변화가 있다. 다만 촬영시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한계는 있다.
바둑이 약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은 없을까?
내가 바둑이 왜 약한가? 타이젬 9급이다!(웃음)
디테일 한 것은 모르지만, 바둑관상을 보면 이제는 5분 후에 대국이 끝난다는 정도는 경험상으로는 안다. 오히려 인터넷 중계도 없고 TV바둑도 없던 때가 어려웠다. 그 시절엔 진짜 결과를 모르니 계속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복기도 안 하고 감정이 상해서 헤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 그 현장을 놓치면 어떡하나 하고 긴장감이 늘 생겼다. 한번은 계단을 서너 개씩 뛰어가다 넘어져서 피가 뚝뚝 떨어지면서도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사진 촬영을 손쉽게 하는 시대를 맞아 유저들에게 사진 잘 찍는 팁을 달라?
스마트폰 시대여서 사진 찍은 환경이 많이 바뀌긴 했다. 너무 잘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피사체를 보게 되면 최종 형상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사진에서 말하고자 하는 순수함을 잃어버릴 수 있다. 있는 상황 그대로를 찍는 것이 명작이다.
전문가로서 바둑 사진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동적인 스포츠는 촬영시간이 따로 없기에 다양한 사진이 막 나온다. 바둑은 정적인 부분을 인정하지만, 촬영시간 10분이라는 것은 작품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사진은 작가가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저들이 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바둑도 중간에 플래시를 친다든지 하는 방해동작이 없다면 다양한 장면을 찍도록 시간이 많았으면 한다. 도전기나 세계기전 같은 큰 경우는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도록 부스를 만들어줘도 될 것이다.
사진 속에 나타난 바둑인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절제된 감성이다. 아이든 노인이든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재미는 없다(웃음).
자신이 바둑인이 다 되었구나 할 때?
바둑계에 들어오면서 숙명처럼 바둑을 배우게 되었다. 주요대국이 마칠 때가 되어 가는데, 누가 한판 두자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둑을 둔다. 그런데 그 와중에 기다리던 대국이 끝나면 복기 때 사진을 촬영하고 취합해서 보도자료로 넘겨준 다음, 다시 두었던 바둑을 마무리한 적이 있다. 바둑동네에서 가장 하수다. 그래도 독학으로 9급에 올랐다는 것을 내가 칭찬해주고 싶다.
▲ '이쪽으로 좀 빠지고, 뒷 분은 얼굴이 안 보여요~!' 이럴 때는 동네사진관 아저씨다. 작년 내셔널리그 시상식에서.
바둑계도 사진에 대해서는 과거와 상당부분 바뀌었을 것 같다.
프로는 성적이 우선이다. 따라서 사진을 찍는다든지 인터뷰를 하는 것을 가치 있게 생각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대국이 끝나고 회식자리까지 쫓아다니며 '협조 좀 해주세요'하며 통사정을 해야 했다. 그래도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TV도 생겼고 인터넷도 생긴 영향일 것이다. 모 프로는 내가 대국사진을 찍으려고 준비동작을 취하고 있으면 일부러 빨리 두어줄 정도로 변했다.
피사체로 본 유명기사들의 에피소드도 있을 듯하다
많다. 조(훈현)국수는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자세를 흩트리는데, 그 얘기는 '이제 그만 찍고 나가라'는 소리로 받아들인다. 그래도 일인자의 풍모는 여전하고 사진 기자에 대한 배려가 많은 사람이다. 서(봉수)명인은 과거엔 굉장히 어려웠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아예 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서 한 3분 동안 들어오질 않는다. 나가서 통사정을 하면 '그럼 딱 1장만 찍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단 표정을 편하게 취해주면 좋은데, 김지석은 고개를 가끔 들고 오래 자리를 지켜주고 배려심이 있는 편이라 맘에 든다. 박정환은 고개만 파묻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즘은 고개도 가끔 들어준다. 신민준은 나이가 어림에도 스타기질이 있다. 졌음에도 불구하고 복기할 때 눈을 깔고 괴로워만 하지 않고 복기 때는 의젓한 편이다. 반면 신진서는 이기든 지든 고개를 들지 않고 계속 심각한 인상만 계속 한다.
사실 사진보다 바둑이 더 중요하지 당연히. 그러나 팬들을 위해서 감정절제보다는 감정표현이 더 좋은 것 아닐까. 조한승 박영훈 최철한 이세돌은 물론 잘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찍은 사진이 굉장히 많을 텐데, 전시회 한번 할 예정이 없는지?
거창한 전시회가 꼭 아니라도 바둑대상 시상식이라든지 굵직한 바둑계 행사의 오프닝 행사로 사진전을 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꼭 나의 이름을 빌리지 않더라고 한국기원에는 수 만장의 낮 잠 자는 사진들이 있다. 주제별로 다룬다든지 연도별로 다룬다든지 하면 좋은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최근 블로그를 열었다고 들었다.
취재를 하다보면 실제로 사용되는 사진은 몇 장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사장되어지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월간바둑 팀과 상의 끝에 온라인상으로 더 많이 소통하기 위해 격조 있는 '사진으로 보는 바둑이야기'를 만들었다. 100일 정도 되었다. 개인적인 블로그라기 보다는 월간바둑의 사진첩이다. 가끔 들어와서 구경하시길 바란다. 인터넷 주소는 blog.naver.com/azziyong이다. 많은 격려 바란다(웃음).
▲ 프로세계에 사는 또 다른 프로, 사진작가 이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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