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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생각이 솔솔 납니다!'

인제 세계청소년축제에서 만난 이관철 프로

진재호 바둑평론가2015-08-04 19: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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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청소년축제가 벌어지는 인제체육관에서 포
즈를 취한 이관철 프로.

시니어 프로치고 사연이 없는 이는 드물다. 지금보다 훨씬 좁았던 입단 관문 탓에, 기량은 출중했으나 프로가 이른 시간에 되지못해 이무기로써 힘든 나날을 살아왔기에 그렇다. 지독한 병목현상을 뚫고서 35살의 나이에 프로가 된 이관철(59)은 그나마 행운아다. 평생 꿈꾸었던 프로의 꿈이 오히려 한이 되어버린 강자들에 비하면.

1956년 1월 1일생 이관철은 뽀얀 살결에 인성 좋은 국수(國手) 조한승를 제자로 두었다. 오히려 이관철을 대하면 조한승부터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아마도 그가 늘 앞서기 보다는 뒤에 섰던 그림자 기질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는 조한승에게 바둑판과 바둑돌을 귀하게 다루며,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아마도 '한국판 미학(美學)'을 구사하는 조한승의 기풍도 스승의 그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냄새만 맡아도 좋아요! 막걸리 생각이 먼저 솔솔 납니다!"

세계청소년축제 인제대회에서 이관철 프로를 만났다. 바둑기자가 프로를 대하는 것은 다반사지만 이관철 사범은 근 3년 만에 얼굴을 대한다. 혹시 축제의 심판위원장으로 방문했을까? 아니었다. 그는 중국선수단을 이끌고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것이다. 한국에 떨어진 일성은 매우 들떠있었다.

어쩌면 아마시절이 더 화려했던 이관철은 요즘 중국에서 제2의 바둑인생을 살고 있다. 피서철이라 인천공항에서 인제로 오는 길이 너무 막혀서 몹시 피곤할 그에게 무례하지만 몇 마디 나눠보았다.

▲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10명의 제자들을 인솔하고 한국을 방문한 이관철 프로와 중국팀 선수단.

얼굴이 더 좋습니다. 살만하신가 보죠?
아, 그런가요. 중국은 재작년 7월29일 갔으니 만 2년 3일째군요. 조선족 아내와 한국에서 살았는데, 아내가 한국 직장생활을 힘들어 했죠. 비단 그 이유 때문은 아니고요, 중국행은 오래전부터 계획했습니다. 아내는 40대 후반이고 바둑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한국은 언제 마지막으로 오셨나요? 이번 대회엔 아이들 몇 명이 왔는지?
작년에 한번 들어오고 올해니까 두 번째네요. 현재 길림성 연길시에서 사범을 하고 있어요. 잘 두는 애들은 이번에 같이 못 왔고, 4명 정도가 유단자부에 참가했어요. 관광 삼아 온 아이들도 있고….

이번에 어떤 자격으로 오게 되었는지요. 심판위원은 아닐 테고….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서 영재바둑도장 사범이며 개인적으로 지도도 하고 있어요. 이 대회는 남금화 원장님이 경영하는 영재바둑도장의 인솔자로 왔어요. 길림성은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이지요. 연길시는 조선족 학교가 4개가 있는데, 이번에 영재도장에서 관활하게 되어서 좀 바쁠 것 같아요.

중국엔 왜 갔으며, 떠나기 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족적은 어땠나요?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간 것은 아니고, 오래 전부터 개인적으로 중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어요. 그 이전에는 안산에 있는 도장에서 사범을 했고 여기저기서 많은 개인지도도 했죠.

그래도 나이가 들어서 중국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지 않았는지?
오히려 나이가 드니까 간 것이죠. 이제 더 이상 승부를 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았고, 제가 비교적 잘하는 것은 아이들 지도하는 것이니까 중국에서도 그 일을 하고 있죠. 사실 저는 중국에 관한 호기심이 굉장히 많았어요.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고전을 접하면서 중국문화에 대해서 공부도 했고 자연스레 중국에 대한 동경도 많았죠.

그렇다면 떠나기전과 지금 생각과 달라진 게 있나요?
중국생활은 여기처럼 복잡다단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고 느긋해요. 그래서인지 얼굴 좋아졌다는 분이 많아요. 하하.

▲ 이관철 프로와 연길시에서 영재바둑도장을 운영하는 남금화 원장

한국보다 수입은 나은지 제일 궁금합니다. 하하.
처음엔 굉장히 어려웠어요. 사범들의 한 달 지도료가 평균 2000 위안 남짓이예요. 한 달에 우리 돈으로 40만원 정도인데 이 돈으로는 아무리 물가가 싸다고 해도 살기 힘들죠. 그런 줄 알고서, 이전부터 준비를 철지히 했지요. 그래도 넉넉한 편은 아니고 맘으로 여유 있게 사는 정도입니다. 아내가 백화점에 다니면서 보태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중국 공무원들 월급의 두 세 배 정도는 받고 있습니다. 이곳은 돈이 많이 필요없죠.

처음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고생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전 중국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수읽기를 미리 해본 사람임에도 처음엔 무진장 고생했어요. 한 달 일해서 20만원을 벌어서 교통비만 8만원이 들었어요. 이렇게 살 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다만 전 한국에서 철저한 준비가 된 상황이어서 어려운 고비를 버틸 수 있었어요.

고비라뇨? 한국에서 온 프로인데 힘들었나요?
제가 사는 곳은 훈춘이라는 곳입니다. 도장과는 1시간 30분 거리죠. 그런데 한번 나가면 차편이 불편하니 4일을 보내고 오노라면 피곤하잖아요. 그리고 제가 그네들에게는 유명하지 않으니 프로대접을 처음엔 못받았죠. 그러다 작년에 장춘바둑대회에 나가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성적이 좋았더니. 연길시에서 인정을 해주더라고요. 장춘시합 이후로 수입이 좀 늘었지요.

중국은 바둑이 굉장히 활황이라고 하던데 탐낼 정도는 아닙니까?
보통사람은 버티질 못해요. 낭만적으로 바둑이 활황세라고 생각해서 넘어오면 안 됩니다. 저처럼 1년간은 안 벌어도 괜찮다는 생각이면 와도 되지만요. 한국에서 왔다고 월급을 더 주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중국정착에는 부인의 도움이 컸겠습니다.
거의 절대적이었죠. 생활하면서 겪는 불편함, 체류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등 저는 거의 본토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았어요 또 도움을 준 사람은 전 길림성바둑협회주석 동권 선생과 제 친구 안병학입니다. 안병학 씨는 그 이전 10년 동안 연길시에서 바둑을 전파하고 있었어요. 노하우를 물려받았죠.

▲ '제2의 조한승'을 중국 연길시에서 키우고 있는 이관철 프로가 유단자부 한중전을 지켜보고 있다.


영재바둑도장 출신 아이들 가운데 '제2의 조한승'을 기대할만한 프로지망생은 있나요?
2명인데 그 얘들을 이번에 못 왔습니다. 장춘대회에서 성적을 내다보니 그 아이들이 저를 찾아와서 제자로 받았어요 7세가 타이젬 6단, 8세는 7단쯤 될 것입니다. 나에게 3점 바둑인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저와 비슷한 기력을 만들어야죠. 그 뒤로는 더 큰 물에서 놀겠지만.

타이젬 유저들 중에서 반가워하는 분이 꽤 있을 것입니다. 본명으로 ID를 만드셨더라구요.
타이젬에는 과거에도 자주 들어왔죠. 그저 좋으니까. 중국에 가면서 본명 ID만 쓰게 되었죠. 중국에서는 시간이 많고 말할 사람이 드무니 당연히 타이젬이 없으면 못 살죠. 바둑이 고프면 가끔 다른 ID 둡니다. 왜 이렇게 세졌는지, 타이젬 9단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어요. 하하.

바둑을 주로 둡니까? 주로 뭐하고 시간을 보냅니까?
타이젬에 있는 여러 가지 게임을 즐깁니다. 음방도 들어가고 대화창에서 수다 떨기로 하고… 뭐 남들과 똑같죠. 가끔 '20시간째 접속 중입니다'는 경고 메시지가 뜨기도 해요. 하하. 가장 좋은 것은 가끔 아는 친구들도 만나게 된다는 것이지만.

타이젬에 기억나는 ID들 한번 읊어보세요. 연락하면 여기까지 오실 텐데요.
아, 혹시 빼먹고 자신의 ID 안 불러주면 오해 사는데…. 감춰진똥배, 선운사, 아기자기, 깽수기, 므네모쉬네, 홀라당… 그리고 음방하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해요. 늘 저에게 신경써주시는 분이 참 많아요.

▲ '왕년의 용사들' 강만우(59년생) 이관철(56년생) 박성균(57년생).


▲ '앞날에 행운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축제현장에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이관철 사범(왼쪽 두번째). 사진에 잡힌 얼굴들은 중국선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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