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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커제, '4년간 4000판, 타이젬이 나를 키웠다!'

지난 5일 몽백합배에서 이세돌 꺾고 세계3관왕 등극한 커제스토리①

이영재2016-01-15 14: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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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일 이세돌과의 몽백합배 결승5번기에서 3-2 승리를 거두고 현존 유일한 세계3관왕이 된 커제. 

※아래 기사는 북경청년보 추펑 기자(北京青年报 褚鹏)가 쓴 "바둑천재 커제의 파란만장 바둑스토리"를 타이젬에서 번역 및 편집했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 5일 몽백합배 결승5번기 최종국에서 이세돌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천재기사 커제의 이야기다.

커제는 6살에 바둑에 입문해 7살부터 고향을 떠나 북경 녜웨이핑 도장으로 바둑유학을 왔고, 11살에 프로입단에 성공했다. 최근 1년 동안 세계타이틀 3개(바이링배 삼성화재배 몽백합배)를 차지하며 명실상부한 세계바둑의 최고봉으로 올라섰다.

1997년생, 19세 밖에 되지 않은 이 어린 소년이 정상에 올라가기까지의 어려움과 소감, 성공하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을 조명해본다.

▲ 몽백합배 결승5번기 최종국 대국장면. "만약 졌으면 삭발하려고 했다"는 커제의 모습이다.


몽백합배 결승전이 끝난지 며칠 된 시점, 커제와 중국기원 근처에서 만났다. 커제는 몽백합배 얘기를 하면 여전히 마음이 들뜬다고 한다.

몽백합배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던 날, 저녁시간은 어떻게 보냈나?
먼저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술도 한잔 했다(웃음).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분과 함께 노래방에도 갔다. 노래를 조금 부르고 먼저 들어왔다.

숙소로 돌아와서 복기를 했는지?
복기도 좀 했다. 그러나 대국의 마지막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다시 계산하기 싫었다. 끝내기 단계에서 너무 많은 승기를 놓쳤다. 스스로도 계가가 잘 안되었던 탓에 복기를 할수록 마음이 괴로웠다. 원래는 약간이라도 남는 바둑이었으나 마지막에 또 실수를 했다. 그땐 정말 지는 줄 알았다.

당시 질 뻔 했을 때, 돌을 거두고 싶은 심경이었던 것인가?
그렇다. 계산이 정확하게 안되어서 처음에 반면5집 후에는 반면6집이라고 생각했다.

대국 당시 패색이 짙었을 때, 바둑을 생각하지 않고 향후 인생 계획 등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인지?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바둑을 졌으면 향후에 어떻게 지내야 할지, 오늘 저녁은 또 어떻게 보낼지, '아마도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머리를 하도 헝클어서 헤어스타일도 많이 망가졌다. '헤어스타일 관리가 잘 안되니 삭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삭발하면 머리를 헝크는 나쁜 버릇도 없어지니… 다행히 마지막에 이겨서 삭발 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웃음).

▲ "이세돌이 나에게 이길 확률이 5프로
라고 했던 것은 진지하게 생각한 후 얘기한
것이다."(커제)


커제는 이겼고 삭발할 필요는 없었다. 이세돌은 졌다. 만약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야 한다면 그것은 이세돌 쪽이 된다. 프로바둑세계는 이렇게 잔인하다.

몽백합배 결승5번기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커제가 자신의 승산이 95%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커제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몽백합배 결승 후에 이세돌에 대해서 생각이 바뀐 점이 있나?
크게 바뀐 것은 없다. 하지만 느낀 점이 많다. 이세돌의 바둑은 경험과 관록이 있고 끈기가 있었다. 정말 일대 승부사였다. 아마도 내가 패했다면 저녁시간 내내 술을 마시며 보냈을 것이다. 사실, 이세돌과 술로 싸운다면 주량은 자신이 있다(웃음).

95%승산 발언은 일종의 심리전이었나?
맞다. 근데 결과적으로는 큰 실수였다. 효과가 좋지 않았다(웃음). 사실 그 얘기는 4강전이 벌어질 때부터 생각해온 것이었다. 4강에서 이기면 이 말을 해야 하는지 안 해야 하는지 그때부터 고민했었다.
후에 다른 기자가 이세돌을 인터뷰를 할 때(이세돌은 4강에서 2-0으로 승리해 커제보다 하루 앞서 결승에 선착했다) 나와의 대결에서 승산이 적어도 50%라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내 생각에 그건 맞지 않다고 느꼈다. 내가 이세돌에게 2연승을 거두지 않았나. 내 승산이 월등히 높은 것이 맞다는 생각이었다(웃음).

현재 세계타이틀 3개를 차지한 세계바둑 최고봉의 위치에 올랐다. 어떻게 이렇게 높은 수준의 기력을 갖게 되었는가?
혁성(타이젬) 바둑의 힘이 컸다. 힘든 시기를 걷고 있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혁성(타이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인터넷 바둑을 두게 되었나?
어려운 생활 끝에 힘들게 프로입단에 성공했다. 그러나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와 같이 입단한 다른 기사들은 각 팀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했는데 나는 아무 팀에서도 데려가지 않았다. 팀에 들어가지 못하면 큰 시합에 나갈 수가 없다. 물론 갑조리그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일년에 공식시합은 10판 정도, 아무리 많아봐야 20판도 안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 바둑을 둘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바둑 경력을 얘기해준다면?
최근에 데이터를 직접 체크해봤는데, 2011년부터 2015년 사이에 내가 혁성(타이젬)에서 둔 바둑은 4000판이 넘는다. 하루 평균 3.6판을 둔 셈이다(웃음).

당시 혁성(타이젬)에 고수가 많았나?
한국 기사가 많았다. 나는 한국기사와 두고 싶다. 왜냐면 당시 혁성(타이젬)에 중국 고수도 많았지만, 내가 누군지 알게되면 더이상 나와 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기사는 그렇지 않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박정환과도 둘 수 있었다(웃음).

인터넷 바둑을 통해 어떤 점을 얻었나?
2011년부터 시합이나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엔 하루에 5~6판 정도 뒀다. 대부분 20초 초읽기 바둑이었는데, 큰 승부에서도 긴장하지 않는 '심장'이 그 당시 훈련으로 만들어졌다. 승부에서 설혹 패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연습을 하다보면 자신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

인터넷 바둑을 많이 두면 공식시합에도 정말 도움이 되는가?
물론이다. 인터넷 바둑을 잘 두려면 계산이 빨라야 한다. 그러나 수읽기의 정확성과 속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빨라야 하고 더욱 중요하다. 전략적인 방향 설정도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런 모든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면 긴 바둑을 둘 때 상대보다 수읽기에서 앞설 수 있지 않겠는가. 같은 10분의 생각시간이 있다면 내가 보는 수가 상대보다 훨씬 많지 않겠나. 전략적인 방향이라는 말이 다소 혼동될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방향감각은 타고나는 천재성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7살 커제가 베이징으로 바둑유학을 와서 겪는 우여곡절과 커제의 진솔한 속마음이 2부에서 이어집니다.

▲ 12년전 커제(오른쪽)가 아버지와 바둑을 두는 모습. 커제의 부친은 타이젬 7단 기력이다.


※위 기사는 북경청년보 추펑 기자(北京青年报 褚鹏)가 쓴 "바둑천재 커제의 파란만장 바둑스토리"를 타이젬에서 번역 및 편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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