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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세돌은 '돌갈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흉내바둑 둔 적 없는 알파고 - '바보' 자청한 무책임한 기자들

이영재2016-03-21 12: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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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에 문외한일뿐만 아니라 주위에 물어보거나 검색 등을 통해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무책임한 기자들로 인해 황당한 연관 검색어가 생겨버렸다.


이세돌vs알파고 대결이 광풍처럼 바둑계를 휩쓸고 지나갔다. 바둑 역사상 최대였던 약 300명의 취재진이 몰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현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지난 2주 동안 모든 매체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을 메인 뉴스로 다뤘다.

수 천 년 역사를 가진 바둑은 만들어진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관심을 받았다. 단언하건대, 이전에도 이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바둑이 이번 이세돌vs알파고 대결만큼 조명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좋은 점도 많았다. 일단 '바둑'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런 게 있다는 사실도 몰랐던 서양 사람들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에게 바둑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바둑 산업이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점 또한 확실하다.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일 지라도.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바둑은 단 한 번도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던 종목이었다. 언론사 등 각종 매체에서 '비 인기 종목' 바둑을 전담하는 기자가 있을 리는 만무하다. 스포츠나 문화·예술 담당 기자들이 갑자기 터진 '대 사건' 때문에 부랴부랴 이세돌vs알파고 대국 현장으로 달려왔지만, 대부분이 바둑에는 문외한이었다.

해당 분야의 전문기자가 아닌 다음에야, 기자들이 항상 알고 있는 걸 취재하러 다니는 건 아니다. 취재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사전 조사', 혹은 '정보 취재'라고까지 불리는 준비 단계로, 기자가 취재 내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채 현장에 갔다가 '바보'가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하도록 교육을 받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 6층 이세돌vs알파고 대국 현장에 모인 수 백명의 기자들은 신기하게도 바보가 되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하다 못해, 기사를 쓰기 전에 주위에 항시 대기 중이던 한국기원 직원을 포함한 바둑계 종사자들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다.

졸지에 이세돌은 '돌갈이 얘기'를 한 사람이 되었고, 바둑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돌갈이 얘기'라는 단어는 겉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바둑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세돌이 '돌가리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즉 돌가리기 없이 흑으로 두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사에 '돌갈이 얘기'라고 써있든, '돌가리기'라고 써있든 소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바둑계에선 관대하게 넘어갔는 지도 모른다. 수 천 년만에 받는 관심인데 그 정도 오류쯤이야 뭐 어때, 하는 분위기였을까. 하지만 굳이 바보가 되는 걸 자청하면서 '돌갈이 얘기'를 고집한 기자들 때문에, 1분 아니 30초의 시간을 투자해 자신이 모르는 분야의 용어를 알아보는 노력을 하지 않은 기자들 때문에 바둑계는 황당한 단어 하나를 떠맡게 되고 말았다.

▲ 알파고는 만들어진 이래 단 한 번도 둬본 적이 없는 '흉내바둑'을 뒀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이세돌이 3연패 끝에 첫 승리를 거두며 전 세계 '인간'들을 열광하게 했던 알파고와의 제4국. 흑을 잡은 알파고는 2국과 똑같은 수순으로 11수까지 진행시켰다. 중앙을 중시하는 알파고를 의식해 이세돌이 백12에서 변화를 주면서 2국과 똑같은 진행은 끝났지만, 알파고가 흑 차례일 때 두 판 연속 같은 포석을 사용했다는 건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생전 처음 '바둑 속보 뉴스'를 써 본 기자들은 알파고가 '흉내바둑'을 뒀다는 속보를 타전했다.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어이가 없네."

흉내바둑이란 상대가 두는 수를 대칭 형태로 따라두는 걸 의미한다. 상식적으로 흑은 흉내바둑을 둘 수가 없다. 첫 수를 천원에 두지 않는 이상 백의 두 번째 수에서부터 흉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 반면 백은 흑의 수를 대칭 형태로 따라 두면 흉내바둑이 가능하다. 4국은 모두가 알다시피 알파고의 흑이었다.

또 하나, 알파고와 흉내바둑이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게 된 건 많은 사람들이 알파고를 상대로 흉내바둑을 둬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기력이 낮을수록 알파고가 흉내바둑을 파훼할 수 있는 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알파고는 절대로 흉내바둑을 두지 않는다. 오직 승리 확률만을 계산해 최적의 수를 찾는 알파고가 아무런 계산도, 분석도 없이 상대가 두는 수를 무턱대고 따라둔다고 생각하는 건 상상만으로도 한심한 일이다.

흑으로 대국한 알파고가 2국과 똑같은 포석을 4국에서 11수까지 그대로 들고 나온 걸 두고 '흉내바둑'이라며 속보를 타전한 일부 '바보' 언론들 때문에 알파고는 졸지에 흉내바둑을 둔 세계 최초의 컴퓨터가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이번 이세돌vs알파고 대결에 등장한 소위 '오보'라고 할 수 있는 뉴스의 사례들은 무수히 많지만, 단순한 실수로 보이는 것들은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일일이 다 지적하고자 한다면, 이 기사가 관전기만큼이나 길어질 지도 모른다.

바둑에 많은 관심이 쏠린 건 분명 바둑계에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본분을 잊고 아무렇게나 기사를 양산해대는 전문성 없는 기자들 때문에 바둑 용어들이 심각하게 훼손된 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바보를 자청한 수많은 기자들이 앞으로 또 다시 바둑계로 취재를 올 일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한 부주의와 무책임으로 황당한 단어를 만들고 오보를 내는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알파고가 둔 적도 없는 흉내바둑에 대한 분석기사까지 등장했다.

▲ 연합뉴스 기사 캡쳐. 이세돌은 '돌가리기'라고 말했다. 바둑 팬들이라면 바둑에 문외한인 기자들이 '돌갈이 얘기'라고 썼다고 해도 돌가리기로 알아들었을 테지만, 바둑을 모르는 다른 기자들과 일반인들은 '돌갈이 얘기'를 바둑 용어의 하나로 인식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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