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박영훈, '훈수 덕분에 이겼어요~'
9년 만에 열린 바둑리그 올스타전 에피소드
이영재2016-09-26 10:24:12

▲ "김성룡 사범님 훈수 덕분에 이겼습니다(장내 폭소)." 박영훈이 승부처에서 해설을 듣고 다음 수를 결정했냐는 질문에 재치있게 대답하면서 행사장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다.
☞ 타이젬과 함께한 차 없는 날 행사 뉴스 바로가기
9년 만에 치러진 바둑리그 올스타전은 유례 없는 대성황을 이뤘다. 100명이 넘는 바둑 팬들이 첫 수부터 종국까지 한국 바둑을 이끄는 선수들과 호흡을 함께 했고, 대국장 바로 옆에서 김성룡 프로가 특유의 코믹 해설로 팬심을 사로잡았다.
"아니, 이렇게 재밌는 걸 왜 그동안 안했던 거지?"
여기저기서 한목소리로 원성 아닌 원성을 터뜨렸다. 모처럼 거리로 나서 팬들과 소통한 바둑TV가 바둑리그 올스타전과 같이 한 발 먼저 다가가는 이벤트를 자주 열어주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25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2016 바둑리그 올스타전이 드림팀(이영구 김지석 강동윤 나현 신진서)과 스타팀(원성진 박영훈 최철한 신민준 최정) 대결로 열렸다.
스타팀이 백으로 불계승을 거둔 이날 올스타전은 45분 타임 아웃제로 벌어졌고, 5명의 선수를 교체하며 대국하는 릴레이 바둑 형태로 진행됐다.
바둑TV에서 생방송으로 송출된 이날 방송은 원숙해진 선수들 입담 덕분에 더욱 재밌었다. 이세돌 강동윤 등 톡톡 튀는 언행 덕분에 신예 시절부터 매스컴을 탄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바둑 선수는 인터뷰를 잘 하지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하지만 차 없는 날 광화문을 찾은 수많은 바둑 팬들 앞에 선 바둑리그 선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재치있는 멘트를 연발하며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
이벤트 대국인 만큼, 기존에 시도 된 적이 없는 독특한 방식 두 가지가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국장 바로 옆에서 김성룡 프로가 마이크를 들고 공개 해설을 했고, 감독과 팀 동료들은 '작전타임'을 통해 바둑을 두는 선수에게 '훈수'를 할 수 있었다.
바둑 경기 중계는 재미가 없다는 선입견을 한 방에 날려버린 바둑리그 올스타전 에피소드를 사진과 함께 전한다.
▲ 차 없는 날 바둑축제 이벤트 일환으로 펼쳐진 바둑리그 올스타전. 오후 2시부터 특설무대에서 시작됐다. 100명이 넘는 바둑 팬들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 대국에 앞서 사전 인터뷰가 진행됐다. 개인 기량은 드림팀이, 팀워크는 스타팀이 앞선다는 평이 있었다.
▲ 생중계 해설을 맡은 포스코켐텍 김성룡 감독이 사전에 채택된 질문지에 있는 내용을 물어보는 장면. "제가 저희 팀 선수한테 이렇게 물어보는 게 참 그렇습니다만… 질문지에 있으니까 할 수 없이 물어보는 겁니다(웃음). 전반기에 가장 못한 선수로 포스코켐텍 주장 최철한 선수가 지목됐습니다. 후반기에는 다시 페이스가 좋아졌는데,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 "감독님 때문이라고는 차마 말 못하겠고요(웃음). 초반에 팀 성적이 안 좋을 때 김성룡 감독님의 어두운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팀이 8연승을 달린 이후 다시 밝아지셔서 기분이 좋습니다. 초반에는 감독님과 잘 안 맞았던 것 같은데(웃음), 후반기 들어 서로 적응도 되고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습니다."(최철한) "고마워^^ "(김성룡 감독)
▲ 화기애애한 스타팀 모습. 원성진-박영훈-최철한 '송아지 삼총사'가 팀을 이뤄 검토를 주도했다.

▲ 초반부터 백으로 '양대고목'을 들고 나온 최철한. 사진 상단에 보이는 좌하귀 백이 굳힌 형태는 소목에서 두 칸이 아니라 대고목에서 소목으로 굳힌 모습이다. 공개 해설을 맡은 김성룡 감독이 "최철한 선수 뭔가 재밌게 둬보려고 했는데 결국 똑같이 됐습니다" 하고 멘트를 하자, 최철한 선수가 웃음을 지었다.
▲ 초반 주도권을 움켜쥔 드림팀 검토 모습. "동윤이가 왜 안 잡으러 가지?" 흑(드림팀)이 우하귀 백 돌에 맹공을 퍼부었다면 크게 위험했다는 분석이었다. "강동윤 선수 지금 최철한 선수 돌을 잡으러 가면 안 됩니다. 잡으러 가다가 진짜 잡는 수가 있어요. 뒤에 선수들이 4명이나 기다리고 있는데 한 명도 못나오고 바둑 끝나요."(김성룡)
▲ 급기야 한종진 감독(왼쪽)이 작전타임을 요청했다. 박영훈 원성진 등 절친한 동료들이 '훈수'를 해주는 장면. "응씨배 우승자가 훈수를 받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는 해설 멘트로 장내가 웃음 바다가 됐다.
▲ 중반 승부처에 돌입한 장면. 드림팀(흑)이 스타팀(백) 진영에 침투한 돌 생사가 관건이었다. 아예 마이크를 들고 스타팀 검토실로 넘어온 김성룡 해설자가 질문을 하고 있다.
▲ "최정 선수, 흑 대마 삽니까 죽습니까?" "음… 아마 죽겠죠?" "죽겠죠는 안 됩니다. 확실히 말해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웃음)."
▲ "박영훈 선수 생각도 같은가요?" "살아도 안 될 것 같은데요(웃음)." "어? 그 돌을 살려도 안 된다는 얘긴가요?" "살기도 어려운데, 흑이 약한 곳이 많아서 설혹 살린다고 해도 백이 이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살려주고 제가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형세는 좋지 않았지만 시종 화기애애했던 드림팀 검토실. 스타팀과 대조적으로 드림팀 강동윤 선수는 "흑 돌을 살리는 수가 있으며, 우리팀이 승산도 더 높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삼성화재배 챔피언도 피해갈 수 없는 훈수 시간. 한종진 감독을 비롯해 박영훈 최철한 등 주축 선수들이 원성진 선수에게 '훈수'를 하고 있다.
▲ 바둑은 심각하지만 표정은 여유로운 드림팀. 한 수 한 수 돌이 놓일 때마다 "악수 아니야?"가 연발 됐지만, 분위기는 내내 밝았다.
▲ 드디어 '끝판왕' 박영훈(왼쪽)이 등판했다. 승부처로 내다본 좌변 흑 돌 생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이긴다고 계산서를 뽑았던 박영훈이 링에 오르자, 김성룡 해설자는 "내가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박영훈입니다" 하고 소개.
이윽고 드림팀에서 마지막 선수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영훈의 상대로 나현이 등판한 장면. 계산력을 앞세운 끝내기 승부가 될 걸로 예상했으나, 비세를 의식한 나현이 박영훈의 우상귀 백 돌을 잡으러 가면서 사활 승부로 일변했다.

▲ 좌변 흑 돌을 포획한 백은 이미 배가 부른 상황.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었지만 중차대한 장면에서 박영훈은 노타임으로 최강수만 골라서 뒀다. "이거 아까 연구했던 거잖아. 성진이가 이렇게 젖히고 일선 내려 빠지면 산다고 했었는데."(한종진 감독) "그거 확실히 되는 거죠?"(원성진)
▲ "야, 이제와서 너가 그러면 어떡하냐! 영훈이는 지금 공부한대로 숨도 안 쉬고 두고 있는데."(한종진 감독) "영훈이 생각은 검토한대로 둔 다음에 만약에 안 되면 성진이가 시킨대로 했다고 책임전가 하려는 것 같아요." 최철한의 재밌는 분석에 일동들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 패배가 눈 앞으로 다가오자 다소 심각해진 드림팀 검토실. 박영훈이 사는 수를 둔 이후, 결국 얼마 못가서 항서를 쓰고 말았다.
▲ 멋진 팀워크로 승리를 거머쥔 스타팀. 왼쪽부터 원성진 최철한 박영훈 신민준 최정.
▲ 한종진 감독(오른쪽)은 수훈 선수를 뽑아달라는 질문에 최정 선수를 꼽았다. "원래 미인계로 승부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최정 선수가 김지석 선수를 상대로 철벽 방어를 해줬습니다. 최정 선수가 잘 해준 덕분에 이후 경기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 MVP로 지목된 바둑리그 홍일점 최정.
▲ "원래는 미인계를 쓸 생각이었는데, 이제 다들 알고 대비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오늘은 실력으로 승부했습니다."(장내 박수)
▲ 모두가 궁금했던 바로 그장면. 박영훈은 일선에 빠지는 삶의 묘수를 보고 있었을까. "설마 제 얘기 듣고 둔 건 아니죠?"(김성룡)
▲ "아까 검토실에서 사는 수에 대해서 연구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 저는 못봤습니다(팀원들 웃음). 김성룡 사범님이 알려준 수가 좋은 수여서 조금만 수읽기를 더 해보니 되더라고요(웃음). 다른 수가 없나 잠시 연구를 해봤는데, 그 수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박영훈)
▲ 드림팀 김영삼 감독(왼쪽). "한종진 감독이
24일 바둑리그 경기에서 패하는 바람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진 걸로 알고 있다. 저는 저녁에 경기
가 있는데, 거기서 리그 1위를 굳히는 데 주력할 생각
이다(웃음)." "한종진 감독, 의문의 1패입니다."
(최유진 캐스터)
▲ 드림팀 선수들. 왼쪽부터 강동윤 이영구 나현 김지석 신진서, 김영삼 감독, 최유진 캐스터.

▲ 바둑TV 생중계로 진행된 바둑리그 올스타전 '현장'을 책임진 최유진 캐스터(왼쪽)와 김성룡 해설자. "대국자 바로 옆에서 해설을 하면서 훈수도 하는 이런 방식은 아마 한국 바둑 역사상 처음인 것 같다. 바둑 팬 여러분들이 즐거워하신 만큼, 앞으로 이런 시도가 많아지면 좋겠다."(김성룡)
총 댓글수: 0
관련 뉴스
Copyright © 컴투스타이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