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바둑 정서안정에 좋은 스포츠
권준수 교수팀, 바둑전문가의 정서관련 뇌기능연구 발표
타이젬2017-04-12 01:45:52

흉기로 끔찍하게 살해당한 시체 사진 옆에서 고난도의 바둑문제를 풀어야 하는 실험상황에서 프로기사들은 심리적 동요 없이 착착 해결해 냈다.
프로기사들은 시각적 방해(또는 그밖의 방해)라는 정서적 혼란상태를 이겨내고 인지적 판단을 해야 할 때 뇌를 더욱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권준수 교수 연구팀은 “바둑전문가들은 일반인에 비해 정서적으로 더욱 안정되어 있고 충동성이 적다.”고 하였다.
프로기사들이 바둑을 두고 있노라면 건물 밖에서 땅 뚫는 공사를 하고 있어도 소음을 듣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이번 연구 결과를 놓고 보니 과연 그런 것 같다.
연구팀은 또한 ”휴지기에 뇌가 더욱 효율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쉴 땐 확실히 쉬고 과제를 수행할 때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한단 얘기다.
▲ 권준수 교수는 “바둑을 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은 엄격하게 말하면 틀린 말이다. 그런 측정 결과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중력, 감정조절, 계산 능력 향상이 있으므로 간접적으로 그럴 거라고 예측해 볼 수는 있는 것.”이라고 주의 주기를 잊지 않았다.
권준수 교수는 “우리는 처음에 프로기사의 어떤 기능이 뛰어날까 가정해보다가 공간지각력이 뛰어나지 않을까 예상했다. 과연 프로기사들은 공간지각력이 뛰어났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연구를 하다 보니 감정을 컨트롤 하는 기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알게 됐다. 바둑에는 기싸움이 있다. 상대가 싸움을 걸 때 어떻게 대처할지 감정조절을 해야 하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평정, 평상심이라고도 하는) 이런 점이 공간지각력보다 더 뛰어난 경지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인지기능에 관련해 말하자면 대인관계, 사회적인 면은 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인관계는 현실이다.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판단이다. 프로기사들의 이런 특징은 대인관계에 대한 훈련이 적은 탓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나이가 들어도 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달될 수 있다는 ‘가소성 이론’을 지지한다. 장기간 반복해서 수련한다면 얼마든지 뇌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바둑수련을 오래하다 보면 일반인과 다르게 뇌회로ㆍ뇌기능이 발달한다는 사실이 이처럼 프로기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드러났다.
▲ 11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바둑 프로기사들의 뇌기능에 관한 연구결과 발표회' 모습.
뇌를 어떻게 연구할까
뇌는 엑스레이로 찍어봤자 뿌옇게 보일 뿐이다. 현미경으로 볼 수도 없고 잘라볼 수도 없다. 그 때문에 뇌 상태를 알아볼 방법이 고안되었는데 그게 바로 CT나 MRI 같은 촬영법이다. 얇게 저민 햄처럼 단층을 촬영하고 이를 3D(권준수 교수는 ‘쓰리디’라고 말한 뒤 ‘삼디’라고도 말하였다.)로 재구성하면 뇌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자극을 주고 뇌가 어떻게 변하는지, 어떤 연결성을 보이는지 관찰하는 게 뇌 연구다. 바둑은 자극의 연속이다.
권준수 교수팀은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협력으로 2010년부터 프로기사들의 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이번 연구는 지금껏 해왔던 수차례 연구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데 회백질분석, 백질분석, 휴지기 뇌 연결성분석, 디폴트모드 네트워크 분석, 정서적 혼란상태에서의 뇌인지기능 분석 연구결과를 11일 한국기원 4층 대회장에서 발표하였다.
- 회백질 분석
프로기사는 뇌에서 일반인보다 부피가 큰 영역이 있고, 더 작은 영역이 있다. 전자가 측위신경핵(Nucleus Accumbens)이고, 후자가 편도체(Amygdala)다.
측위신경핵은 도파민 분비 뉴런이 연결되어 보상ㆍ자극을 처리한다. 측위신경핵이 커졌다는 것은 보상과 관련한 도파민 분비 뉴런이 밀집해 있는 곳이 발달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를테면 대마를 잡고 묘수를 구사한다든지, 이러한 바둑에서 오는 자극에 대해 프로기사는 강한 쾌감을 느낀다.
한편 편도체는 동기,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다. 편도체가 발달하는 사람은 가수나 연기자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정 표현이 좋다. 바둑으로 가져와 생각해 보면, 상대를 의식하는 것은 편도체가 강화되어 있는 상태다. 그러니 편도체의 부피가 감소했다는 건 감정 억제가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잘 안 써서 작아졌는지, 안 쓰는 방향으로 노력해서 작아진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 백질 변화
프로기사는 우반구에 백질 연결성 변화가 두드러졌는데, 우반구가 공간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결론적으로 바둑이 공간처리의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전두엽, 대상, 시상, 줄무니체를 연결하는 백질 구조물의 연결성이 증가됨이 관찰됐다는 점은 바둑을 두면 공간지각력, 주의력, 집행통제, 문제해결과 같은 높은 단계의 인지기능이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휴지기 기능적 연결성
쉴 때에도 뇌는 활동하고 있다. 프로기사들은 쉴 때 즉 휴지기에, 편도체(Amygdala)와 내측 안와전두엽(mOFC)간의 기능적 연결성의 증가가 발견됐다. 내측 안와전두엽은 목표 지향행동과 정서적 규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측위신경핵(Nucleus Accumbens)과 내측 전전두피질 간의 기능적 연결성의 감소가 발견됐다. 이는 보상을 처리하는 뇌부위가 안정화되어 있어서 이를 통제하는 안와전두피질과의 연결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뇌 부위 용적도 중요하지만 연결성도 중요하다.
- 바둑전문가 디폴트모드 네트워크 활성도 저하
외부 자극에 집중하지 않고 쉴 때 활성화되는 회로를 디폴트모드 네트워크라고 한다.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는 휴지기 상태에서 디폴트모드 네트워크 설정에 이상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휴지기에는 디폴트모드 네트워크의 연결성이 강하지 않은 편이 좋다. 정작 일상생활에서 작업을 할 때는 뇌기능의 연결성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휴지기에 바둑전문가의 디폴트모드 네트워크 활성도의 저하가 발견됐다. 휴지기에 연결성이 약화되었다는 건 결국 뇌가 더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 권준수 교수와 함께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태영 서울대학교병원 교수.
이번 권준수 교수팀의 뇌연구로, 바둑을 둘 때 어떤 점이 좋아질지에 관한 광범위한 추론이 가능해졌다. 정리해보면 ▲ 더 효율적인 보상관련 처리 가능 ▲ 동기,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관련 부위의 효율성 증대 ▲ 공간지각력, 주의력, 작업기억, 집행 통제 및 문제 해결과 같은 높은 단계의 인지 기능 향상 ▲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학습과 같은 목표 지향적인 행동의 발달 가능 ▲ 휴지기 상태에서 보다 뇌가 잘 안정화되어 실제 일을 할 때 더 높은 효율을 냄 ▲ 뇌의 전 영역을 더 많이, 또 고르게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임 등이다.
다만, 정서적 안정을 얻은 경위에 대해서는 바둑 때문에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 것인지, 본시 안정된 사람이 프로기사가 될 정도로 바둑을 잘 둘 수 있게 된 것인지에 대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알파고에 대한, 도전 계속해야 할까
보드게임 중 체스와 장기에 관한 연구도 기존에 있었는데 뇌에서 수학적인 영역의 변화만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바둑은 전혀 양상이 달라 패턴이나 그래픽 처리에 관한 변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워낙 많기에 수학적인 면만으로는 안 되고 내재화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직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알파고의 아버지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하사비스(Demis Hassabis) 박사는 뇌인지과학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 뇌과학을 연구했고 상상과 기억이 뇌의 같은 부위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하사비스는 “바둑이 매우 직관적인 게임”이라고 말했다.
권준수 교수는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무의식의 영역이 ‘직관’이다. 알파고는 사람 뇌의 신경세포가 가진 전달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계산을 수행한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진 것은 전문가적 기능인 ‘직관’이 의식적 분석의 속도에 진 것.”이라며 “결과론적으로 졌으니까 (인간과 인공지능의) 승부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이르지 않나 싶다. 바둑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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