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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 (1)

알파고 이전에 두터움의 가치를 정밀하게 계산해냈던 인간

타이젬2017-08-07 11: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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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이버오로 정용진 콘텐츠총괄상무가 월간바둑에 기고한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 내용을 1, 2편으로 나눠 옮겼습니다.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1)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었다!(2)




1967년 8월호 창간을 시작으로 50년 동안 단 한권의 결호 없이 한국바둑을 담아낸 [월간바둑]이 올 7월호로 역사적인 통권 600호 발간을, 이달 8월호로 창간 50주년 기념호를 냈다. 국내에서 전문지로 이같은 성상(星霜)을 쌓아온 잡지가 또 있는지 모르겠다. 50주년 기념호에는 기념호답게 몇 개의 특집을 실었는데, 국가대표(30명)·바둑기자·바둑관계자(20명) 등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앙케트 조사가 눈에 띈다. 여기서 바둑전문가들은 “역대 최고의 기사는?” 누구를 꼽겠느냐는 질문에 이창호 9단을 역대 최고의 기사로 뽑았다. (자세히 보기)

이창호 9단을 역대 최고의 기사라 말하는 까닭은?

지금껏 당대를 호령한 일인자, 그 시대 최강의 기사는 많았다. 그렇지만 최강의 기사=최고의 기사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다면 어인 연유로 바둑전문가들은 ‘이창호 9단을 역대 최고의 기사’로 치켜세울까. 이 글은 [월간바둑]이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국바둑 10대 사건’을 선정하여 매달 한 건씩 연재하고 있고, 그 특별기획 여섯 번째 <'돌부처' 이창호, 세계 최연소 우승 및 바둑계 평정> 편으로(2017년 8월호) 때마침 앞서 소개한 설문조사 기사와 맥락이 닿아 있어 [월간바둑]의 양해를 구해 게재하는 것임을 밝힌다.




애초 [월간바둑] 편집장의 원고청탁은 이랬다. “창간 50주년 특별기획 6편으로 '돌부처' 이창호 9단의 세계대회 최연소 우승을 비롯해 바둑계를 평정한 역사적인 기록을 써달라”는 것. 그러면서 세부적으로 다뤄주었으면 하는 대목을 나열했다.

- 전주의 천재소년, 조훈현 내제자 되다.
- 최고위전 우승(국내 최연소)을 신호탄으로 국내기전 접수 시작.
- 동양증권배 우승(세계 최연소) : ‘이중허리’ 린하이펑 제압.
- 조:이 사제전쟁 승리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 시대 구가.
- 단체전 불패신화 (농심신라면배 5연승 등)
- 우칭위안(吳淸源) 이후 최고의 기사로 평가. (끝내기 분야 개척)


말하자면 이창호 9단이 얼마나 위대한 기사인지 그 궤적을 다뤄달라는 주문이다. 90년대 최전성기로부터 한 20여 년 지나 이창호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이들도 있을 거라며…

천하의 이창호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새삼스런 일이다. 이창호의 궤적과 업적을 새삼 들먹이는 것은. 이는 마치 충무공이 임진왜란에서 펼친 혁혁한 해전사를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과 같다. 언제 들어도 신나는 무공이겠지만 누구나 아는 얘기, 뻔한 얘기를 굳이 재탕 삼탕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편집장이 위에 열거한 대략적인 항목만으로도, 바둑팬이면 누구나 이창호의 일대기를 구체적으로 읽어낼 만큼, 아니 대한민국 온 국민이 김연아에 대해 빠꼼하듯 ‘반상의 돌부처’ 이창호를 안다(고 생각한다). 자~알!

해서 원고의 방향을 틀었다. 편집장에게 야단맞을 노릇이지만 이창호의 등장과 활약상을 담은 뻔한 얘기보다는 바둑사적 평가에 주안점을 뒀다. 어차피 이창호시대는 지났고, 지나서 되돌아보니, 더군다나 알파고라는 인공지능바둑이 성큼 다가온 마당이다. 이런 시기에 이창호의 바둑이 어떤 바둑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녔는지 짚어보는 게 이창호의 위대함을 더 강렬하게 알리는 일일 듯싶었다.

그러자니, 이창호 전성기에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 콧김을 쐬며 승부를 벌인 경험이 있는 동시대의 기사와 인터뷰해보는 게 좋겠다 생각했고, ‘바둑계의 구라’란 별명으로 통하는 김성룡 9단과 국가대표 목진석 감독 두 사람을 꼭 집어 물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김구라 사범과는 카톡으로 대략적인 개요만 필담으로 나눴고, 이를 목진석 감독과 ‘한걸음 더 들어가’는 식으로 대화했다.


▲표정에서부터 '우/보/천/리(牛步千里)'라고 써 있는 듯하다. 굼벅이는 눈망울이며 우묵한 입매, 구릿빛 투박해 보이는 피부까지...영락없는 둔한 이미지다. 실제 걸음걸이도 양반 팔자걸음마냥 느릿느릿하다. 도대체 날카로운 맛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듯한데, 그러하므로 베일 여지라곤 결코 없을 듯한데...그런데 이런 둔도(鈍刀)에 베이면 더 못 일어난다. 아프지는 않은데 치명적이다.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쓰러진 뒤에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 초지일관! 시종일관! 오로지 굼벅굼벅.


알파고 이전에 두터움의 가치를 정밀하게 계산해냈던 인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먼저 김성룡 9단에게 아래 두가지 항목을 카톡으로.
1. 이창호의 바둑사적 평가.
2. 알파고 등장한 지금 바라보는 이창호 바둑의 가치.

"사람이 가장 어렵(게 생각한)다는 두터움과 엷음의 가치를 가장 완벽하게 이해했다. 정확한 형세판단에 의한 계산바둑은 끝내기의 완벽함을 구현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알파고가 등장한 지금) 알파고의 바둑을 보며 이창호의 바둑이 오히려 지금 더 대단했었다는 걸 느낀다. 시대를 넘어선 바둑이었다. 우칭위안 선생과 이창호만이 역사에 기록될지도… 줄이면 이 정도 되겠습니다."

- 흠…과연 극찬 중 극찬이구먼.

"작은 부분의 역사를 바꾼 사람은 많아도 큰 그림은 이 두 사람 정도. 한명 더하면 우주류의 다케미야 정도. 다만 역사상 초일류급이지만 다케미야는 우칭위안이나 이창호처럼 세계1위는 아니었다는 게 흠입니다."

- 두터움과 끝내기… 이창호는 한마디로 '두터움에 대한 계산력'이란 얘기인데 이전에 두터운 바둑을 구사한 사람은 린하이펑도 있었구, 중앙바둑은 다케미야도 있었구. 다만 이창호가 다른 점은 그걸 계산해냈다?

"더 정밀하게… 계산에 의한!"

- 흠…사고방식이 달랐던 걸까? 앞세대들과 어떻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음…(1)두터움은 결국 나중에 말을 할 것이다 → 그때까지 일반적인 생각. (2)두터움의 가치가 정확히 얼마다 → 이창호. (3)완벽하게 → 알파고."

- 하…추상적이냐 구체적이냐의 차이가 있군요. 그렇다면 이창호가 이걸 알고 두었으니 당시 대다수 역전승이라고 한 평은 수정되어야할 게 많겠군요.

"엄청요."

- 흠…결국 우린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이었네요.

"흐흐… 김성룡이 알파고 바둑 해설한 꼴.


▲귀신 같은 끝내기 솜씨로 '신산(神算)' 소리를 들었던 이창호. 날카로운 창, 바람처럼 빠른 스승 조훈현의 바둑을 두터운 방패술과 종반 끝내기 계산력으로 뛰어넘으며 '신포석' 패러다임을 선보인 우칭위안 이후 바둑사에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사진은 1990년 29기 최고위전 도전3국 장면. 최고위전은 소년 이창호가 딴 첫 신문기전 타이틀로, 스승 조훈현이 최고위전 우승을 시작으로 조훈현시대를 열었듯이 제자 이창호도 최고위전 우승으로 이창호시대 개막을 알렸다.


'신산(神算)'이라 불리며 종반 끝내기 분야를 개척한 인간

20세기 이후 현대바둑사의 인물로 우칭위안, 이창호, 여기에 한명 더 추가한다면 다케미야 세명을 꼽은 건 목진석 감독도 같았다. 자연스레 김성룡 9단과 개괄적으로 나눈 몇마디를 더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목감독은 이창호와 치열하게 붙어본 사람 아닌가. 그랬더니 자기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상대였다며 웃는다.

- 알파고와 가장 근접한 바둑을 뒀던 인간이 이창호 아니었나 하는 얘기가 있어요. 특히 김구라(성룡) 사범은…

"두터움과 끝내기 이런 걸 형세판단해 냈다는 거겠죠. 철저하게 계산에 의한 바둑, 현실적으로 모양보다는 집계산에 의해서 두는 바둑이었죠. 가령 아래 <장면1>과 같은 정석… 흑이 붙이고 막은 정석은 안 좋다는 걸 창호형이 많이 두어서 유행시켰지요. 말 그대로 귀의 실리를 차지하겠다는 정석이잖아요. 당시는 감각적으로 기피하던 걸…"

▲<장면1>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적인 정석
흑1,3으로 붙여 막는 수법은 다음 백4 한방을 얻어맞아 5에 잇는 모양이 빈삼각 우형이라 다들 직감적으로 기피하던 정석이었다. 다음 백6으로는 A, B에 둘 수도 있고, 흑7까지. 어떤가? 흑의 짭잘한 실리에 비해 어딘가 백은 기분만 낸 느낌이 들진 않는지.


"그런데 저는 성룡이형이랑 견해를 좀 달리하는 건, 물론 알파고 바둑이 창호형이랑 비슷한 점도 있지만 많이 비슷한 거 같지는 않고… 두텁게 두는 건 비슷한데… 사실 저도 헷갈리는 게 알파고가 커제랑 혹은 마스터란 아이디로 인터넷에서 60판을 뒀을 때는 그 스타일이 엄청난 초고수의 인간이 둔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알파고끼리 둔 대국보를 보면 또 달라요. 이건 뭐 도무지…

하여간 알파고끼리 둔 바둑을 별개로 친다면 그 전에 인간하고 둘 때는 '두텁게 두는 거' '균형감이 뛰어나다'는 건 창호형이랑 비슷한 건 있는데, 저는 마스터 60국을 딱 보자마자 우칭위안 선생이랑 더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상이 자유롭고 실전적이고… 주변에도 이런 생각 가진 사람 많더라고요. 우칭위안의 마지막 제자인 루이 사범님이 한국 오셨을 때 이런 생각을 넌지시 물어봤더니 역시 많이 비슷하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전체적으로 수법 자체가 상당히 실전적입니다."

- 실전적이라면 이창호도 상당히 실전적 아닌가요?

"그런데 창호형은 느린 느낌이 좀 있다면 우칭위안 선생은 반짝이고 발빠르지요. 약간 둔탁한 느낌? 뭐 이게 창호형 스타일이긴 합니다만."

- 그렇다면 역시 현대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꾼 일대 전환점은 '신포석'을 선보인 우칭위안 선생이고 이후 다들 우칭위안의 어깨 위에서 반상을 바라보다 이창호 때에 와서 중후반 끝내기에 대한 발견이랄까? 이런 게 정립이 된 거라 말할 수 있겠군요.

"그전까지 일본이나 한국 바둑은 끝내기가 승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글쎄요, 한 20% 되려나. 끝내기 실력이 다 고만고만했을 때 그렇다는 얘기죠. 저 또한 일본바둑을 많이 보고 배웠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끝내기까지 안가 중반에 다 승부가 나고 끝내기는 말 그대로 마무리하는 단계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그랬던 것이 창호형이 등장하면서 끝내기가 승부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분야로 부각됐고, 그렇게 만든 주인공이 창호형이지요."

- 그전에도 '컴퓨터 이시다(石田芳夫)'라는 둥 끝내기 잘한다는 기사가 있었잖습니까. 끝내기란 것이 사실 가치를 따지는 거잖아요. 이렇게 두었을 때 몇집 저렇게 두면 몇집… 이것은 정상급 기사라면 어지간하면 보는 거 아닌가요?

"단순한 끝내기 크기만 보는 건 읽어내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봅니다. 하지만 바둑이란 게 집만 짓는 게 아니잖아요. 단순한 집계산이라면 어디가 크고 작은지 지금도 계산 잘하는 기사는 많아요. 허나 두터움에 대한 이해도, 이를 계산해 내는 능력은 사실 굉장히 어려운 분야입니다. 창호형이랑 두면서 혹은 기보를 보면서 느낀 건 확실히 끝내기에 대한 계산, 두터움을 판단하는 능력이 단연 남달랐어요. 끝내기에서 감탄할만한 수법이 많이 나왔죠. 요즘 알파고와 비교해보면 알파고가 더 정교하고 멀리 보겠지만…

 

▲<장면2> 김성룡 9단이 꼽은 이창호의 끝내기 수법

 

4회 응씨배 준결승 1국, 이창호(백) 대 위빈의 대국보다. 바둑은 만만치 않은 형세. 한눈에 보기에도 A의 곳이 가장 중요한 곳. 흑1은 흑의 당연한 선수 권리로 보여지는 수. 그런데 이 순간, 백2는 초보자도 범하지 않는 실수가 나왔다. 흑3으로 단수 치면 백은 졸지에 두점이 잡힌다.

결론은 백2는 절대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 철저한 계산에 따른 한수다. 백 두점을 잡혀도 A를 둔다면 백이 득이라는 것. 지금에 와선 흑은 A로 둘 수 없다. 그러기엔 흑1로 젖힌 흑 한점이 잡히면 4집을 그냥 날리게 된다.

전체 판세를 정확히 계산해 내는 능력이 없다면 누가 백4로 두는 작전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그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백4이다. 내가 아는 이창호. 이런 발상을 실전에서 보여줬던 그는 20년 전 이미 알파고였다. (김성룡 9단)

▲1992년 1월27일, 3회 동양증권배 결승5국에서 린하이펑 9단에게 백 1집반 역전승을 거두고 5번기 전적 3승2패로 17세, 세계최연소 바둑챔피언에 오른 이창호. 종국 직후 두 기사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지켜보던 팬들은, 세계바둑계는 통념을 깨고 세계정상에 오른 십대챔피언의 등장에 '말'을 잃었다. 이 승리로 바야흐로 이창호의 시대를 열었고, 세계가 이창호를 좇는 시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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