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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통신]

펑첸, 아버지 뒷바라지로 컸다

펑쥔워이 소개

tygem2004-09-09 13: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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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은 제5회 잉씨배 준결승 3번기 1국이 끝난 후 하루 휴식하는 날이었다. 창하오-장쉔 부부와 한국의 송태곤과 최철한은 모두 호텔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어쩌다 고향에서 대국을 하게 된 펑첸은 당연히 집에 갔는데, 집에는 아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버지 펑쥔워이(彭俊維)가 있었다.

만 19세도 안된 펑첸에게 있어서 이번 잉씨배 준결승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처음으로 잉씨배에 출전하여 4강에 진출하였으며 대회 명예 주임 잉밍하오 선생의 특별한 배려로 일부러 펑첸의 고향인 꾸이양(貴陽)에서 준결승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덕분에 밖에서 떠돌며 바둑을 배우던 소년 펑첸이 난생 처음 고향에서 큰 대회를 치르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를 응원하는 고향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부담이 적지 않을 터인데, 정작 당사자인 펑첸은 비교적 평온하게 이번 준결승전에 임하고 있다. 오히려 평소보다 분주한 쪽은 아버지 펑쥔워이 씨.

펑쥔워이 씨는 희끗희끗한 긴 수염을 갖고 있어 사람들이 많이 붐비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온화하고 선량하며 항상 웃는 얼굴에 성격도 시원시원해 쉽게 다가설 수 있었고, 인터뷰에도 아주 잘 응해주었다. 그리하여 많은 기자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겼다. 아들이 주요 대국을 두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낯익은 기자들을 보면 ‘사정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을 비판하는 글을 쓸까봐 걱정한 게 아니라, 너무 치켜 올려 우쭐대게 만들까봐 우려했던 것이다.


▲ 펑첸 5단

펑첸의 아버지는 “내 아들이 비록 몇 판 이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초일류 가사와는 거리가 멀다. 계속 겸손하게 노력할 때 비로소 초일류 기사로 성장할 것이다.”고 기자들에게 거듭 부탁하며, “많은 사람들이 펑첸을 주목하고 있는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그러나 내 바람은 아들을 너무 치켜 올리지 않는 것이다. 아직까지 비교적 겸손한 편이나 일단 기자분들이 치켜올리기 시작하면 자만해지기 쉽고 그러면 점점 퇴보해 갈 게 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게다가 그는 특별히 이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들까지 찾아가 “선전을 적게 할 것”을 재삼 부탁했으며, 심지어 아들과 친한 기사들이 찾아왔는데도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번 대회가 시작된 전후로 펑첸에 대한 ‘금의환향’의 소식은 아주 간단히 소개됐다.

1국이 벌어지던 날 아버지는 검토실에서 눈 한번 껌뻑하지 않은 채 생방송을 지켜 보았으나 유리한 바둑을 역전패 당하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이 잠시 찌푸려졌을 뿐 금방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확실히 실력이 모자라네. 그래도 좋다. 오히려 2국에서는 사심을 버리고 열심히 싸울 수 있겠군.”

대국 후 그는 조용히 아들과 상대자의 복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 낯익은 기사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이곳 꾸이양까지 왔는데도 대접을 잘 못해주고 있어 미안하다. 게다가 현재 아들의 수준이 아직 모자라 성원해 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번엔 내가 빚진 셈으로 하겠다. 만약 이후 펑첸이 일류 수준에 도달하여 좋은 성적을 거둘 때면 꼭 보답하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오늘의 펑첸…아버지의 뒷바라지 덕분

펑첸이 사람들에게 주는 첫 인상은 아주 내성적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옆에 있을 때는 아주 활발해 지는데, 갑자기 아버지의 목에 팔을 감으며 어깨동무 하듯이 친근하게 지내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다. 처음엔 꽤나 놀랐지만 여러 번 보고나니 친형제 같이 친근한 이러한 행동이 부럽기까지 했다. 매 대회마다 펑첸은 꼭 부친에게 동행해 주길 바랐으나, 아버지는 “너도 이제는 어리지 않다, 내가 별로 도움을 줄 게 없으므로 이번에는 안가겠다.”고 여러 번 거절했다. 그런데도 펑첸은 “그래도 와달라”고 떼를 쓰자, 사람들은 펑쥔워이에게 농담 삼아 “당신 아들이 언제면 ‘젖을 뗄’ 수 있겠는가?”고 말하기도.

그러나 그들 부자지간의 깊이 쌓인 정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펑첸은 아주 어릴 적부터 바둑에 혼을 빼앗길 정도로 푹 빠졌는데 꾸이저우에는 고수들이 별로 없었다. 펑쥔워이는 아들의 앞길을 생각해 회사를 그만두고 아들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무작정 올라가 스승을 찾아 헤맸다.

마땅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어려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 뒤로 펑첸은 허난(河南), 베이징(北京), 텐진(天津)을 여러 차례 누비고 다녔으며 아버지도 항상 그 뒤를 따라 다녔다. 가장 곤란했던 시기는 바로 펑첸이 텐진에서 바둑을 둘 때인데, 그때 아버지는 갖은 방법을 다하여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다행히 같은 고향 사람이 베이징에서 차린 식당에서 일하며 겨우 아들이 바둑을 배우는 학비를 벌 수 있었다. 그리고 매번 주말이면 황급히 아들이 있는 텐진에 가서 아들의 얼굴을 보고 아들의 생활을 보살펴 주고 다시 돌아왔던 것.

어제 한 기자가 펑쥔워이를 보고 “이제 아들이 출세했으니 베이징에 집을 사 놓았겠네.”라고 묻자,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절레절레 머리를 저으며 웃었다. “그럼 지금은 베이징에 가면 어디에 있는가?”고 되묻자, 펑쥔워이는 “아무 곳에나 있는다. 이곳이 안되면 저곳으로 가, 아무튼 아무 곳이나 찾아 잘 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 기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펑쥔워이는 “우리와 같은 사람은 가난한 생활에 익숙해 있다. 아들도 이해 할거라고 믿는다. 이것도 행복이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http://weiqi.tom.com 2004-09-08 東方體育日報 에서 발췌


번역=TYGEM/김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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