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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중국의 불참으로 한국의 독주가 예상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9월 16일 대만의 징화(晶華)호텔에서 벌어진 제1회 중환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16강전에서 한국
선수단은 출전한 5명 중에서 두 명만 살아남아 겨우 참패를 모면했을 뿐이다. 그동안 세계기전이 펼쳐지면 일본과 대만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한국과 중국의 양자 대결로 압축되었는데,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고무적으로 일본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예고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우려했던 사실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최철한 8단과 송태곤 7단은 약 한달 동안에
무려 4개의 세계기전에 출전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일본에서 열린 도요타덴소배를 시작으로 삼성화재배와 잉씨배 준결승에 이은
이번 중환배 출전! 이런 강행군 속에서 살아남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터.
그렇더라도 송태곤 7단이 린즈한 5단에 패한 점은 못내 아쉽다. 비록 린즈한 5단이 대만의 이인자라고는 하더라도 한국의 신4천왕의 한명을 꺾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대만으로선 가능성 있는 인재를 한명 찾아낸 셈이다. 그동안 대만은 저우쥔쉰을 빼면(일본에서 활약하는 대만계 기사 제외) 이렇다 할 성적을 보인 선수가 없지 않은가. 한편 가장 관심을 모은 대결은 이창호-린 하이펑 전. 각각 '삼중허리'와 '이중허리'라는 동류항 별명을 지닌 선수들끼리 오랜만에 격돌한다는 점에서 올드 팬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예상했던 것처럼 초반부터 허리 샅바싸움을 펼쳐 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린9단이 흑73으로 우변의 한점을 끌고 나오면서 몸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지기 시작했고, 흑89로 또 다른 돌을 움직여 극한으로 치달았다. 결국 이창호 9단은 우변에서 흑돌을 잡은 데다가 하변 흑 진영에서도 살아 승세를 굳혔다. 그 동안 7승 4패의 성적으로 이창호 9단이 앞선 전적을 보여왔는데, 특히 91년말에서 92년초에 이르기까지 없어진
동양증권배 결승전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때 5번기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당시 17세인 이창호 9단이
최종국을 승리하면서 세계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 제1회 중환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16강전 대진 및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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