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2018 월드바둑챔피언십’ 결전의 날이 밝았다.
잠시 대국 전날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대진추첨을 했는데 ‘짜고 치는 고스톱’ 의혹이 있을 정도로 대진이 짜여졌다.
총 6명이 출전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그룹을 두 개로 나누었다. 또한 전기대회 우승자 박정환과 주최국 시드를 받은 이야마 유타는 2회전부터 출전하는 일정이다. 시드자 두 명은 먼저 대진 추첨을 해서 1그룹에 이야마 유타, 2그룹에 박정환이 위치했다.
그리고 남은 4명의 기사가 야마시타 게이고, 커제, 왕위안쥔, 신진서 순으로 대진추첨에 임했다. 설마 ‘박정환-신진서-커제’ 그림이 나오겠어? 라는 생각을 하고 대진추첨 결과를 보는데 상상은 현실이 됐다.

커제는 대회에 출전하기 전 부터 ‘왜 시드가 두 명이냐’고 말하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실제로 기자회견에서도 "시드가 두명이라서 굉장히 놀랬다."며 언급을 하기도 했다. 박정환은 전기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시드를 받았으니, 이야마 유타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딱! 이야마 유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커제의 날카로운 답변 뒤에 이야마 유타의 답변이 이어졌는데 “작년에 나는 유감스러운 결과를 기록했는데, 커제가 조금 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시드를 받아서 좀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신경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답하며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일단락 됐다.
스탠딩으로 진행된 전야제는 화려했고, 자유로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단상에 선 커제는 준비된 음식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특유의 쇼맨십을 선보였다.
전야제를 즐기고 있는 박정환에게 슬쩍 내일 대국이 없는데 검토실에 올 것이냐고 묻자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 숙소에 있을 것 같다.’고 답한다.
신진서에게는 제한시간이 각자 3시간이라서 장시간 대국을 할 텐데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질문하자 “커제 선수는 워낙 속기파라서 바둑이 금방 끝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또한 대국 전이나 도중에는 음식을 잘 먹지 않기 때문에 휴식시간이 없어도 괜찮다.”고 답했다.

화려한 전야제가 끝이 나고 이제 결전의 날이다.
대국장인 일본기원 근처 뉴오타니호텔에서 묵고 있는 신진서는 10시에 호텔에서 나와 대국장으로 향했다. 시드를 받아 2회전에 출전하는 박정환은 대국장에 오지 않고 호텔에서 컨디션 조절 중이라고 한다.
커제는 10시경 일본기원에 도착해 왕레이 단장과 근처 편의점에 들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라면 매니아 커제는 편의점에서 작은 컵라면과 큰 컵라면을 샀다. 대국 종료 후에 살펴보니 왕레이 단장 손에 들린 컵라면을 보니 대국 도중 먹지 않은 것 같다.
대국 15분 전부터 신진서, 커제, 왕위안쥔은 휴식공간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고, 야마시타 게이고가 10시22분에 자리에 착석하자 대만 왕위안쥔도 자리에 착석했다.
2분 뒤 신진서는 한국기원 관계자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자리에 착석했고, 뒤따라 커제도 자리로 왔다.
돌을 가린 결과 신진서가 흑, 커제가 백을 쥐었고 바로 옆에서 대국중인 야마시타 게이고는 백을, 왕위안쥔은 흑을 쥐고 대국을 시작했다.
세계여자바둑대회 ‘센코배’와는 달리 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대국 시작 후 10분 동안만 사진 촬영이 허락되어 현장을 담고 검토실로 내려왔다.
검토실에는 대국을 하는 선수들의 모습과 대국을 볼 수 있도록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커제는 움직임이 많다. 대국 도중 일어나서 동시에 진행 중인 옆 바둑을 구경하기도 하고, 수읽기에 집중할 때면 머리카락을 꼬기도 한다. 반면에 신진서는 허리를 굽혀 바둑판을 더 가까이서 보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다. 야마시타 게이고는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기도 한다.
제한시간 각자 3시간. 긴긴 시간이 흘렀다.
먼저 야마시타 게이고와 왕위안쥔의 대국이 끝났다. 야마시타는 “내가 한판만 이기면 일본 기사가 결승에 진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불계승을 거두며 결승을 놓고 이야마 유타와 대결을 하게 됐다. 일본 기사가 결승에 진출했다.
이후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신진서-커제’의 대국이 끝났다.
현장을 담기 위해 온 기자들이 대국장에 쏟아지듯 입장했다.
엇! 낯선 광경이다.

야마시타 게이고와 왕위안쥔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두 기사가 대국한 바둑판은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두 기사는 복기를 하던 중간에 방송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광경.
이제 막 대국을 끝낸 신진서는 바둑판만 바라보고 있고, 커제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만지작 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 통하든, 안통하든 승부처를 향해 손짓을 하면서 ‘수담’을 나누는 것이 지금까지 봐온 복기 장면인데….
당황도 잠시, 바둑판만 바라보는 신진서를 항해 커제가 휴대폰을 가리키며 뭔가 이야기를 한다.

더 가까이 가봤다.
커제는 바둑인공지능 ‘절예’의 참고도를 보면서 신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인공지능 ‘절예’가 그러는데, 여기가 승부처였다는데?”
“인공지능 ‘절예’가 그러는데, 여기서 여기로 뒀어야 했다는데?”라는 말이었을까.
아! 바둑인공지능, 너는 어느 순간 ‘수담’의 영역에도 훅 들어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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