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자바둑리그부터 25연승 대 기록을 세우더니, 올해 33승10패로 다승1위를 달리며 최상의 컨디션을 보인다. 1월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해설자 김영삼은 "비록 졌지만 바둑 내용을 보면 예전의 김채영이 아니다. 실력이 월등히 성장했다"고 치켜세웠다.
김채영은 중국에서 성황리에 개최한 제1회 오청원배 세계여자바둑대회 결승에 올랐다.

중요한 대회나 성적이 좋은 시기이면 지금의 생활 패턴을 안 바꾸고 비슷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1996년생 김채영. 최근 상승세 때문일까 중국 푸저우에서 오청원배가 열리는 6박7일의 긴 일정 내내 김채영은 신중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대국할 때 눈이 반짝였다가, 잠시 쉬어가더니 바둑AI 프로그램을 볼 때 다시 눈이 반짝인다. 바둑AI를 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긴 하지만 늘 차분한 모습이다.
5월2일, 중국 푸저우에서 오청원배 결승에 오른 김채영을 만났다.
"한국 선수들끼리 올라와서 좋긴 하지만 상대전적에서 밀리고 있는 (최)정이와 대결이어서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상대인 것 같다."
두 기사의 상대전적은 최정이 8전전승으로 압도적으로 앞서있다. 특히 올해 2월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2패로 준우승에 머문 것이 뼈 아팠다. 질 때 지더라도 최대한 기량을 발휘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바둑 내용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옛날에는 실력차이가 컸다고 생각했다. 올해 여류국수전 결승에서 아쉬웠던 것은 대국하기 전에 상대전적을 많이 의식했다는 점이다. 6연패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맞붙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지면 8대0이다. '그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났다.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졌으면 괜찮은데 제대로 못 둬보고 진 느낌이었다. 상대전적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8대0이라는 큰 차이로 앞서고 있는 최정은 "(김)채영언니가 요즘 성적이 워낙 좋고, 기세도 좋아서 상대전적은 의미가 없다"고 밝히며 전열을 가다듬는 모습을 보였다. 김채영은 올해 33승10패로 다승1위를 달리는 등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어 초대 챔피언을 놓고 불꽃 튀는 공방이 예상 된다.
최정과는 반대로 동생 김다영한테는 7전전승이다. 이번 오청원배 국내선발전 결승에서도 김다영에게 승리를 거두고 출전권을 따냈으며, 천태산배 결승전에서도 김다영과 만나 승리를 거뒀다. 거참 얄궂은 운명이다.
"동생과의 대국, 그것도 나에게는 다 도움이 된다. 동생이 나한테 지는 패턴이 내가 (최)정이한테 지는 패턴이랑 비슷하다. 동생이 나랑 둘 때 분명 본인이 좋은데 평소랑 다르게 두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이 때 ‘내가 이렇게 (최)정이한테 지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오청원배 준결승에서 대결한 중국여자랭킹1위 위즈잉과도 상대전적 1승4패로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삼성화재배에서 이긴 것이 마인드컨트롤에 도움이 됐다.
"위즈잉한테 4연패를 당하고 지난해에 위즈잉을 만났을 때 아직 한판도 못 이겨봤다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판 이기고 나니까 마음이 확 편안해졌다. 어제(준결승전)에서 둘 때는 가장 최근에 이겼기 때문에 상대전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반 집으로 져서 화가 나긴 한 것 같았다. (내용이 엄청 좋지 않았는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뭐 김채영한테 지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하하. 늘 세계대회 결승에서는 (최)정이랑 두는 그림이었으니까? ^^"
갑자기 실력이 훅 상승한 이유가 궁금한데 '잘 모르겠다. 실력이 좀 는 것 같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중국 푸저우에서 오청원배가 진행되는 동안 일정을 같이한 바둑AI ‘바둑이’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봤다. 혹 인공지능에 영향을 받아 실력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아닐지.
"인공지능 바둑을 엄청 좋아하고, 관심이 많기도 하다. 평소에 인공지능이 둔 수를 엄청 신뢰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한 것 같다."
▲공항에서 오청원배가 열리는 대국장까지는 버스로 4시간 거리. 여자기사들이 한국AI '바둑이' 개발자가 그 동안 테스트를 위해 프로기사와 대국했던 기보를 보여주자 모두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채영도 뒷자리에서 적극적으로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다.
▲대국 내내 차분했던 김채영은 바둑AI를 볼 때면 눈이 반짝 빛난다. 오청원배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바둑이' 개발자 이주영 교수는 기사들의 바둑을 분석해주는 열정을 보였고, 선수들도 적극 참여하며 공부에 열의를 올렸다. 같이 온 여자기사들하고 바둑AI '릴라제로(Leela Zero)'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평소에 혼자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김채영에게 바둑AI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겠다. 참, 최정은 '알파고 티칭툴'을 이용해서 공부를 한다고 한다.
"집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릴라제로를 다운 받아서 공부하고 싶었다. 컴퓨터를 잘하지 못해서 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는데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다. 내 컴퓨터가 유독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더라. 한국으로 돌아가면 사양 좋은 것으로 하나 구입해야겠다."
세계대회 결승행도 김채영을 빛나게 하고 있지만 그녀를 먼저 빛나게 한 것은 여자바둑리그 25연승 대 기록이다. 올해 이 대회에서만 12전 전승 중이다. 지난해 이미 13연승을 달성했으니 대단한 기록이다. 국내 단일기전 사상 역대 2위 기록이다. 1위는 이창호가 농심신라면배에서(1999년~2005년) 거둔 30연승이다. 공동3위는 조훈현이 박카스배에서, 이창호가 제왕전에서 거둔 22연승이다. 유독 한국여자리그에서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년부터 여자바둑리그에서 이기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2승하고 엄청 의욕이 생겼는데 곧 바로 2연패를 당했다. 그리고 ‘내가 이럴 분위기가 아니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마음을 내려 놓았다. 그 때부터 이기다 보니 자신감이 쌓였다. 자신감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세계대회 결승에 올라있고, 여자바둑리그에서도 '서울 부광약품' 주장으로 승승장구 중이다. 김채영은 딱히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라이벌이란 존재가 있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며 있으면 스트레스 많이 받을 것 같아서 없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김채영 하면 '삼부녀 프로기사'라는 말이 항상 따라 붙는다. 바둑 어벤저스가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생 김다영의 실력도 월등하다. 자매가 한 분야에서 잘 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하다. 어떤가. 동생이 있어서, 아버지가 있어서 든든한가.
"입단하고 나서 지금이 가장 서로가 비슷할 때인 것 같다. 입단하기 전에는 연관이 있다고 못 느꼈는데, 입단을 하고 같이 바둑리그 선수로 활동하다 보니 생활하는 것이 비슷해지더라. 또 동생도 여자기성전에서 우승도 하고 바둑 실력이 한 단계 올라선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받는 부분들이 있다.
아버지 김성래는 러시아에서 열리는 유럽바둑콩글래스에 7살 김채영과 함께 했다. 김채영은 당시에 유럽선수들과 대국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7살 채영이에게 아버지가 만들어준 적극적인 바둑 환경은 프로기사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아빠가 프로기사라서 크게 다른 점은 못 느낀다. 내색은 하지 않으시지만 바둑을 못 둔 날이면 엄마한테 '오늘 디게 못 뒀어'라고 하시는 것 같더라. 엄마랑 전화통화를 하면 '아빠가 그러는데 너 오늘 바둑 못 뒀다며?'라고 하시곤 한다. 하하하."
▲아버지와 함께 러시아에서 열린 유럽바둑콩글래스에 온 김채영(오른쪽 가운데). 김채영은 당당하게 유럽선수들과 대국을 하며 프로기사로의 꿈을 키워나갔다. 첫째딸 김채영의 바둑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린시절 이창호9단과 사진을 찍은 김채영(왼쪽)·김다영 자매. 꼬마숙녀들이 10여 년이 지나 한국 여자바둑계의 희망이 됐다.
김채영은 5월5일 여자바둑리그에서 최정과 '미리 보는 오청원배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연패의 늪을 탈출 할 수 있을까, 단일기전 역대 최다승으로 향한 질주가 계속될 것인가도 관심사다. 중요한 대국을 앞둔 김채영의 속마음을 마지막으로 들어봤다.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부담스럽다. 하지만 상대전적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마인드컨트롤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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